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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Berlin 26_Berlin cafe 08_Five Elephants





그날은 비가 내렸다. 갑작스럽고도 짧은 비로 하루 온종일 후덥지근함이 지속되었다.  왠지 모든 탓을 비로 돌려야만할 것 같은 날의 그런 가엾은 비들이 있다. 비 내리는 횡단 보도를 건너 현금 지급기가 여러 대 놓인 은행 건물로 들어섰을 때 손수 문을 열어주고는 자신의 동전통을 내미는 아저씨가 있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를 떠올리게 했던 차림의 그 아저씨,  하지만 시드 비셔스처럼 취해있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모아진 동전으로 무얼 했을까.  빌니우스에는 꽤나 알려진 거리의 여자와 남자가 한 명씩 있다.  매우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매일 빌니우스 근교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빌니우스로 출근을 해서 보통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전을 부탁하거나 그녀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과 포즈를 취하시고 매우 '공식적인' 동전을 받으시는 '로제', 장미 라고 불리우는 할머니. 언젠가 빵 집 한 켠에서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녀를 걸어다니면서 자주 본다. 또 다른 한 명은 짐들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다니면서 한 여름에도 겨울 부츠를 신고 오랫동안 감지 않은 머리가 마술사의 탑햇처럼 굳어져버린 아저씨이다.  식당에서 일했던 초기에 나는 그와 거의 매일 아침 만났다. 그는 식당이 문을 열기 전에 들어와 남은 음식이 있는지 묻거나 유로를 쓰지 않을 당시에 1리타스를 내밀며 커피를 부탁하곤 했다. 내가 일하는 식당은 커피를 팔지 않았음에도. 커피에 헌정된 그 1리타스는 나에게 퍽이나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느껴졌더랬다. 그는 음식을 부탁할때에는 단 한번도 동전을 내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모른다. 그들도 굳이 그것에 대해 말하려 애쓰지 않았다. 나는 베를린의 시드 비셔스 아저씨도 그날의 비 그친 오후에 커피를 마시러 갔었더라면 좋았겠다 생각한다.  나는 <말라노체>의 월터가 새벽의 상점일을 끝내고 허름한 아파트로 돌아와서 마시던 커피도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의 약물 재활중인 밥이 집으로 돌아와 고독속에서 들이키던 커피도 기억이 난다.  어떤 방식이로든 어떤 모습의 삶이었든 그냥 주어진 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커피는 오히려 이미 어떤식으로든 깨어있는 자들을 위한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잊기 위해서 무엇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 마신다고 하기에 커피는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커피는 한바탕 쏟아지고 자취를 감추는 스콜이라기보다는 무던하고 은근한 몬순에 가까운 놈인지도 모른다.


 

 


베를린에서 몹시 이성적이고 친절한 스콜을 맞닥뜨린 그날 찾아 간 카페의 이름은 재미있게도 Five Elephants 였다.  게다가 이 다섯 마리 코끼리의 카페는 이전의 베를린 카페들은 가지고 있지 못했던 커다란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있는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모이는 동네 평상 같은 아늑함.  겹친 다리위에는 책을 쥔 손이 놓여져 있고 더 이상 일상적일수 없다는 표정으로 커피를 들이키던 사람들이 카페 옆으로 난 건물 현관에 열쇠를 꽂으며 집으로 돌아갈 것 같은 그런 느낌.  미테의 북적한 브런치 카페가 주말을 맞이한 이들이 옹기종이 모여 뿜어내는 해방감으로 가득찼었다면 이곳은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보냈던 분주했던 주말을 빠져나와 가까스로 자신만의 한가로운 오전을 만끽하고픈 사람들을 위한 퍽이나 개인적인 공간으로 다가왔다.  야외 테이블의 느낌만으로는 월요일 오전에 가고 싶은 그런 카페이다.  느낌상 디스트릭트 커피와 (http://ashland11.com/605) 비슷하지만 두배 정도는 거리폭이 넓었고 좀 덜 졸렸다.  노이쾰른의 투앤투 라는 카페와 비슷한 면적의 야외 공간이지만 투앤투 카페는 짙은 소음과 먼지를 친구로 가지고 있는 카페라서 이곳과는 또 좀 다르다. 





코끼리 카페의 아프리카 지도.  5개의 지도마다 연도가 표시되어 있어서 시기마다 아프리카의 식민지 지도가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설마 아프리카의 코끼리 분포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는 아닐 것이다. 커피 재배지를 나타내는 지도였을까? 그런것 같지도 않다. 근데 커피와 코끼리는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커피와 기린, 커피와 톰슨가젤보다는 커피와 코끼리의 조합이 좀 더 그럴 듯해 보이는 것 같다. 코끼리는 코로 커피잔을 쥘 수 있을 것도 같다. 





여기도 지도가 있었네.  저런 물병 속은 어떻게 씻는걸까. 달걀 껍질을 넣어서? 어차피 깨끗한 물만 담기고 항상 부어서 마시는데 안 씻어도 된다고 하려나?   아프리카와 코끼리 그리고 커피. 이 지점에서 생각나는 한 편의 영화 <그린 카드>. (http://ashland11.com/117옥상의 멋진 온실이 딸린 아파트를 갖고 싶은 브론테.  아파트 주거자들이 규정한 구입 조건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얻으려는 프랑스인 조지와 서류상의 부부가 된다.  온실이 딸린 아파트가 가지고 싶어서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여러모로 굉장히 달랐던 두 사람. 브론테는 식물 기르기가 취미인 환경 운동가이다. 새모이(조지의 표현) 뮈즐리 같은 것 만 먹고 커피도 디카페인 커피만 마신다. 조지는 거침없다. 그는 모카 포트를 들고 다니고 자유분방하고 거침없고 즉흥적이지만 까탈스럽고 이성적인 브론테에 비해 정적이고 따뜻하다.  그들은 서류상의 부부가 된 후 헤어져 따로 떨어져 살지만 이민국의 심사 때문에 얼마간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 간다. 그들의 집에 방문한 이민국 직원이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아프리카' 라고 대답한다,  '조지는 코끼리도 잡았어요'  물론 그들은 아프리카는 커녕 함께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다. 그들이 위장 결혼 브로커를 사이에 두고 처음으로 만났던 장소가 아프리카 라는 이름의 카페였던 것이다.   





얼마전에 쓴 '누군가의 커피' (http://ashland11.com/635) 에서 묘사한 비오는 날의 테이블 의자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베를린과 빌니우스의 카페 테이블이 똑같구나.  이케아 테이블이다.  유럽의 어딜가도 이케아 물 컵. 이케아 전등갓. 이케아에 자체 브랜드 커피도 있었던가? 북유럽의 기후는 정말 커피를 부르는 기후인데 오히려 커피는 계절 구분이 극명한 지역에서 더 열심히 마시는것 같다.  하긴 북유럽의 기후에서는 왠지 밖으로 나가 카페에 가기 보다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더 포근한 느낌이다. 집에서 이케아 가구에 둘러싸여서 털 양말 신고 담요 속에 들어가 무한 필터 커피 마시기. 이케아 패밀리 카드 들고가면 커피는 그냥 마실 수 있었는데. 이케아의 음식은 별로 맛이 없지만 케익이나 머핀은 무료 커피와 마시기에 내 입에는 나름 훌륭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이 코끼리 카페는 원래 카페를 하려던게 아니라 케익 가게를 하려던 거였다고. 그래서 여기 치즈 케익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보통은 그런거 원래 잘 모르고 가니깐 놓치고 오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또 오라는 계시라며 합리화 한다.  하지만 알고가도 정말 땡기지 않으면 또 안 먹고 오게 된다. 그럴 때엔 또 다음에 와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것이다.  심지어 열심히 찾아 간 카페에서 맥주만 마시고 오기도 하는 법이니깐. 하지만 그 치즈 케이크를 먹지 않았음에도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나는 아마 이 야외 공간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비가 한 차례 내렸으니 더 이상 내리지 않고 점점 개어 가고 있다는 느낌의 날씨도 그날을 기분좋게 했다. 프리드리히 샤인의 넉넉한 녹음과 탁 트인 거리가 이 동네의 다른 카페들을 궁금하게 하기도 했다.





이날은 에스프레소와 레모네이드 한 잔을 마셨다. 이곳도 자체 로스터리가 있고 미테에 다른 지점이 하나 더 있다. 미테의 코끼리 카페는 왠지 좀 다를 것 같다. 그곳에도 아프리카 지도가 걸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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