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20. 3. 12. 07:00

 

 

 

 

40일 동안 외딴 섬의 등대를 돌보기 위해 함께 도착하는 베테랑 등대지기와 그의 신참 조수.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만큼 출발을 부추기는 것도 없다. 기한이 정해진 여정은 그래서 한편으론 달콤하고 안락하다. 얼마간은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한 망상도 한 몫 한다. 하지만 갑자기 기상 조건이 악화되어서 와야 할 배가 오지 않으면서 이들은 기약 없이 섬에 고립된다. 점점 바닥을 보이는 음식, 서로 잘 모르는 이들 관계에 그나마 윤활제가 되었던 술도 떨어져 간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진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과 하루 온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상황 그 자체이다. 행동을 제약하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기분나쁜 사람과의 동거와 혼자남는 고독 중 과연 무엇이 더 수월한것일까. 게다가 엄밀히 말해서 낭만적인 등대는 근무지일 뿐이고 하나뿐인 동거인은 고약한 상사일 뿐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기록되고 누군가는 24시간 내 위에서 군림한다. 그 모든 고충을 보상받을 방법은 단 하나 등대에 오르는 것, 하지만 정작 빛을 내뿜는 등대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 없다. 등대지기에게 빛을 다루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다. 군림하려는 의지와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그것을 제재하는 법도 사람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극한으로 치닫는다.

굉장히 기대했던 영화이다. 흑백 영화라는 것. 포스터도 멋있고 섬에 고립된 두 등대지기가 윌리엄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이라니 그냥 보기에도 잘 어울렸다. 뭔가 원시적이고 초자연적인 느낌의 윌리엄 데포와 뱀파이어로 진작에 떴지만 요즘 들어 뭔가 다크호스 같은 존재감을 뿜는 로버트 패틴슨의 조합이 궁금하기도 했다. 멋있고 깊이 있고 굉장히 색다른 영화가 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젊고 독특하고 기이한 공포를 기대했지만 그 음산함은 사실 낯설지 않았고 이들이 서서히 정신줄을 놓는 과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예상외로 너무나 많은 클리셰들이 등장했다. 물론 로버트 패틴슨이 폭풍을 헤치고 우여곡절 끝에 배설물 통을 버리러 가서 역풍을 맞는 장면에선 박장대소했다.

거칠고 위압감을 주려는 영상은 그것이 자연의 날 것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오히려 아름답고 서정적이었다. 불편한 감정과 이물감은 오히려 두 등대지기가 서로를 향해 내뱉는 공격적인 대사들과 특유의 억양과 영어 발음이 만들어낸다. 윌리엄 데포가 저런 눈을 부릎뜨고 작정하고 대사를 내뱉는데 뭔가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19세기 말 등대 속 등대지기들의 생활을 구경하는 것은 재밌었다. 물론 그것이 엄청난 고증을 참고로 했을 세밀한 묘사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통해 옛날 사람들의 습관, 오래된 물건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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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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