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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99_모과 Svarainiai

영원한 휴가 2022. 9. 8. 07:00



집에 탄산수가 있어서 작년에 만든 모과청과 섞어서 마셨다. 사실 모과 냄새와 그 끈적거리는 표면은 힘든 기억의 발원지. 어릴 땐 멀미가 심해서 지하철로 못 가는 곳은 잘 안 갔고 큰집이 있는 시골은 대관령이며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각종 고개를 돌고 돌아 도착하던 강원도 양양. 아빠는 이번엔 어떤 고개를 넘어갈까 어떤 국도를 탈까 늘 고민하셨다. 추석 무렵에 보았던 멋진 단풍들, 핸들을 잡고 조용하게 운전하던 아빠의 모습,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낭떠러지 같았던 고개들, 휴게소의 가락국수, 이해하기 힘들었던 오색 약수의 맛 모두 추억으로 남았지만 멀미는 참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자동차 특유의 냄새를 없앤다고 뒷좌석에 장식처럼 놔둔 모과는 오히려 자동차 향기를 머금은 못 먹는 과일의 인상이 생겨서 뒤통수에 도사리고 있는 모과 냄새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목구멍이 좁혀져 오면서 멀미 침이 고이곤 했다.



작년 11월인가. 남편 지인이 주고 간 모과. 모과 한 바구니를 들고 간다고 해서 엄청 큰 모과 몇 덩어리를 생각하며 잘라서 설탕에 재우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기뻐했는데 가지고 온 모과는 낑깡만한 크기에 가지고 놀기도 귀엽고 좋으니 좁은 집안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었다. 나뭇잎과 빗방울, 작은 자갈들이 골고루 섞여있는 것을 보니 시골집에 떨어진 것들을 다 긁어모아 온 모양이다. 저 바구니 한가득 저 딱딱한 모과를 갈라서 씨를 발라내고 자르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으니 사실 욕이 좀 나왔다. 그래도 어릴 때 겨울이면 마시던 모과차 생각하면서 열심히 잘랐다. 한 병은 친구. 한 병은 바구니 주인. 한 병은 시어머니 주고 남은 제일 큰 것은 집에 놔두기. 설탕이 녹아 점점 고생해서 썰은 모과가 잠길 때마다 매실이 담긴 큰 정수기통을 두 팔로 안고 이미 시럽이 된 매실액과 새로 들어간 설탕을 진지한 표정으로 두 팔로 섞던 엄마 생각도 났다. 모과 색이 다채로운 게 여러 종류의 올리브가 섞인 모습이랑 비슷한데 그 미묘한 톤이 확연히 다르다.



감기에 걸리면 보통 민간요법으로 치유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향이 강한 리투아니아에서 모과청은 겨울을 책임지는 비타민이다. 잼을 만들기도 하지만 모과잼이 들어간 빵을 파는 곳은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간혹 모과 콤포트를 주는 공공식당들은 있다. 장미과에 속하는 모과나무를 스봐라이니스 Svarainis라고 하고 열매인 모과는 스봐라이니아이 Svarainiai라고 한다. 모과의 아이들 이런 뉘앙스. 가장 좋은 방법은 별도의 설탕 첨가 없이 말려서 보관하며 집어 먹는 것이겠지만 이게 집에 있다고 해서 자주 타 먹게 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차가 제일 좋은 듯. 겨울을 좋아했어서인지 유난히 그런 따뜻한 차를 마셨던 기억이 또렷하다. 율무차, 대추차, 생강차, 들깨차. 그런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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