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게으름뱅이 케익, 팅기니스 Tinginys
짧은 바르샤바 여행에서 함께 돌아온 커피콩을 개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케익이라도 만들어서 같이 마시자 결심하고 얼마전부터 벼르던 리투아니아의 케익, 팅기니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름에 빌니우스에 오셨었던 이웃 liontamer 님이 서울로 귀환하시면서 몇 조각 챙겨가셨던 팅기니스. 그 이후로는 마트나 카페에서 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6월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오래전에 리투아니아의 게으름뱅이 케익 레시피 (https://ashland.tistory.com/277 ) 를 올린적이 있지만 사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진정한 팅기니스 조리법은 아니고 오븐을 사용하지 않고 재료를 쌓아 올려서 굳히는 방법 때문에 그냥 게으름뱅이 케이크라 이름을 붙였었다.
팅기니스의 주재료라고 할 수 있는 비스킷. 가이델리스. Gaidelis 는 수탉을 뜻하는 Gaidys 의 지소체이다. 러시아 소설을 읽다보면 서민의 삶을 묘사할때 그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과 제공되는 것이 '수탉 모양의 당밀 과자'이다. 이 수탉 비스킷의 조상은 아마 그 당밀 과자가 아니었을까. 한국의 비스킷 에이스처럼 짠맛은 없지만 씹고 있으면 입에서 뭉그러지는 느낌이 에이스를 연거푸 씹었을 때의 느낌이고 동물 과자보다 좀 더 달고 더 부드럽다. 씹었을때의 식감은 눅눅해진 오레오와 비슷하고 땅콩샌드의 과자 부분이 당도에선 가장 근접하다. 그런데 이 가이델리스도 7가지 곡물 베이스며 코코넛이 들어간 것 , 초코맛 등등 종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서 가장 소박한 포장에 Klasika라고 쓰여 있는 것이 말 그대로 가이델리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Tinginys 는 게으름을 피우다를 뜻하는 동사 Tingėti, Tinginiauti 를 명사화 한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칭할때도 팅기니스 단어를 사용한다. 대신 나무에 매달려 게으름 피우는 나무늘보는 Tingininiai 로 부른다. 이 과자는 집에 비상용으로 한봉지 정도는 놔두면 티푸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제법 훌륭한 간식이 된다. 이미 버터 혹은 마가린, 쇼트닝, 팜유 등등의 온갖것들이 포함된 과자이겠지만 그 위에 또 두툼하게 버터를 얹어 먹는다면 그 또한 맛있다.
수탉을 파괴시키자니 당장 달려온다. 팅기니스를 만들기 위해서 수탉을 부셔야 하는데 너무 잘게 부수면 완성해서 잘랐을 때 단면이 부실할 수 있고 또 너무 큼지막하면 버터 연유 믹스로 전부 덮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하나에 네다섯 등분 정도로 잘라준다.
비스킷 다섯개 정도는 그냥 아주 곱게 갈아줬다.
보통 버터:연유 비율을 1:2이지만 쓰다남은 버터가 있어서 160 그람 정도만 넣어줬다.
버터가 다 녹으면 연유를 다 붓고 코코아 가루도 두세스푼 넣는데 진짜 진한 코코아 가루 두 스푼과 그것만 넣으면 왠지 너무 진할 것 같아 네스퀵 한 스푼도 넣어주었다. 아예 초코 연유를 쓰는 사람도 있다. 이 상태로 10분 정도 농도가 되직해질 때까지 끓인다.
다 잘 섞이면 한마리의 수탉도 소외되지 않도록 골고루 부어서 섞는다. 그렇게 금이 좋으면 너 다 먹으라며 대너리스의 오빠 입속에 펄펄 끓는 금을 붓던 드로고가 갑자기 왜 생각이 나는건지.
오븐용기에 빈틈없이 부어서 상온에서 잘 식힌다. 버터나 코코아 가루를 더 넣었어야 되는 건가? 아님 좀 더 끓였어야 했는지 뭔가 좀 더 질척이는 느낌이 있음. 원래는 그냥 종이에 부어서 손으로 모양을 잡아서 랩에 돌돌 말아서 식히는데 그러기엔 너무 묽어서 그냥 용기에 부었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식게 놔둔다. 벌레가 날아들까봐 굳이 도마로 덮었다.
잘 식으면 그대로 냉장고에 넣고 굳힌다. 대략 7시간 정도면 된다는데 그냥 다음날 아침까지 놔뒀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 굳었다. 절반은 먹고 절반은 냉동실로 직행했다. 대략 10조각 정도가 나온다고 치면 이 팅기니스 한 조각에는 버터 16그램과 연유 40그램이 들어간다. 그러면 그냥 버터 한 숟갈. 연유 2 숟갈 반 정도를 먹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버터 한 숟갈을 넣고 간장에 비빈 밥 한 공기와 연유를 두 숟갈 씩이나 넣은 베트남 커피를 수탉 비스킷 2개와 함께 디저트로 먹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음.
다음날 밤에 녹차와 먹는 팅기니스.
동네 빵집에 아마 빌니우스에서 본 중 제일 큰 팅기니스를 판다. 저 정도 크기면 대략 3유로 정도는 나올 각. 비스킷이 좀 듬성듬성하지 않은가. 멀리서 보면 비계가 촘촘히 박힌 햄 같다.
이 빵집에서 내가 자주 먹는 것이 이 견과 타르트인데 내가 만든 팅기니스의 농도는 어쩌면 저 타르트의 필링 농도에 더 근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견과를 넣었더라면 더 맛있었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음
Caif cafe라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파는 삼각김밥 비주얼 팅기 니스. 근데 사실 팅기니스를 파는 카페들의 커피가 아주 막 맛있지는 않다. 커피가 맛있는 카페들은 팅기니스를 잘 안판다. 커피가 맛있는 곳들은 디저트가 보통 비싼데 고급스러운 팅기니스를 팔자니 팅기니스 본연의 수더분함은 포기해야하고 팅기니스를 비싸게 파는 데에 한계가 있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 번거로운 리투아니아의 전통 음식들을 파는 동네 식당인데 느끼한 것이 먹고 싶을 때. 그냥 아무생각없이 배부르게 먹은 후에 후회하고 싶을때 간다. 이 팅기니스는 너무 푸석푸석해 보인다. 가격도 다른 곳보다 훨씬 싸다.
동네 빵집보다 훨씬 저렴한 마트 팅기니스. 보는 순간 무슨 맛인지 예측 가능하고 원하는 만큼 잘라서 살 수 있지만 보통 300그람 정도로 잘린 것들이 상자에 담겨있어서 그걸 산다.
liontamer 님과 처음 만난 날 가파른 우주피스 언덕에 올라가서 처음 마셨던 커피. 이웃님이 드셨던 팅기니스는 코코아를 넣지 않은 버전이다.
까눌레와 팅기니스 그리고 소시지가 들어간 빵 사이에서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지만 모든 것이 허용될 때도 있다. 정말 오래된 빵집의 팅기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