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파슬리 버터

영원한 휴가 2023. 1. 25. 08:00

 



파슬리는 리투아니아어로 페트라죨레 Petražolė 라고 한다. 마트에 파는 허브들은 아예 조그만 화분에 심어져 있거나 25그램 정도로 포장이 돼있어서 이렇게 많이 살 이유도 살 수도 없는데 갑자기 집에 파슬리가 다발채로 생긴 것은 식당의 주방 직원이 고수와 파슬리를 혼동했는지 고수 대신 별안간 파슬리 2킬로그램이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끼리 나눠가졌다. 여러 허브들 사이에서 그나마 고수와 파슬리가 닮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파슬리 잎사귀가 좀 더 조화처럼 빤짝거리고 굵고 억세다. 우리는 멋쩍어하는 동료를 한껏 위로했다. 고수 대신 파슬리를 뿌렸어도 심지어 맛을 보고도 모를 손님도 분명 많았을 거라고.


그래서 우선 파슬리 버터를 만들기로 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파슬리를 차로도 곧 잘 끓여 먹는다. 파슬리 하면 정말 기억에 남는 노래가 있다. 바로 밴드명부터 이미 뭔가 축복스러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버러 페어.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노래지만 막상 제목만 들어선 잘 모르는 노래. 이 노래를 오랜 세월 동안 흘려 들었을 땐 가사가 귀에 또박또박 들어 올리도 없고 그저 참 성스럽고 고전적이고 새벽 어스름에 이슬 내린 것처럼 고요하고 청초한 멜로디로구나 하고 지나쳤는데 언젠가 가사를 눈으로 따라가며 음악을 들었을 때 느닷없이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 앤 타임' 이렇게 나와서 놀라고 황당했었다. 마치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에 '부추 쑥갓 미나리 앤 쑥' 이런 가사가 나오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스카버러 페어에 한국 나물 가사 붙여도 안 어색함) 사실 오히려 정태춘 님의 노래에 이런 식물들이 등장했더라면 정겹고 시적이다 생각했을 텐데 저런 허브의 영단어들을 문학 작품이 아닌 마트의 야채 코너와 요리책에서 습득한 터라 상당히 이물감을 느꼈다.


왜 굳이 이 약초들이 노래에 등장했는지에 대해선 오랜 기간 많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구전되어 온 민요이다 보니 중간에 사라져 버린 가사들을 친숙한 약초 이름들로 채웠다는 설도 있고 강인함, 사랑, 용기, 위로, 정절 등의 각종 미덕을 상징하는 이 허브들이 이미 중세 민요들에 자주 등장했었고 약초로서의 효능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 허브들을 액땜에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거의 세 소절당 한 소절이 등장하는데 스카버러 시장에 가는데 다짜고짜 고기나 생선이 등장하는 것보단 향긋한 풀들이 나오는 게 서정적인 멜로디를 생각하면 더 어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운율은 진짜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파슬리를 내가 제일 처음 접한 때는 아마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같다. 제이미 올리버가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 가서 매일 사던 것이 허브였다. 진짜 신선해 보이는 그 허브들을 한 움큼씩 집어 와서는 열변을 토하며 트로이 전사의 투구에서 뽑아낸 듯한 둥근 칼로 거침없이 다지곤 했다. 버터와 섞어서 닭껍질을 들추고 쑤셔 넣기도 했다.


어쨌든 허브 버터 만드는 방법이 수없이 많겠지만 그냥 마늘 10톨 정도를 다졌고 파프리카 가루나 후추등 뭔가 맛에 영향을 줄 것 만 같은 향신료들과 다진 파슬리를 넣고 골고루 섞는다. 마늘에 통째로 오일을 뿌려서 포일에 싸서 오븐에 넣어서 구우면 마늘이 정말 치약처럼 되어서 쭉 빠져나오는데 그걸 버터에 섞는 방법이 있는데 달랑 마늘을 굽겠다고 오븐 한 시간을 돌리는 게 아까워서 관뒀다. 원래는 차를 다 우릴 때까지 완성해서 치우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거름망 건져내고 차 마시며 계속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걸 한 번에 다 먹기 힘드므로 3번 분량으로 나눠서 얼린다. 보통 더 굵게 만들지만 나누면 그렇게 굵게 나오지 않는다. 비비빅 정도의 굵기. 랩에다가 얹고 잘 굴려서 감싼 후에 양 끝을 잡고 위로 밀었다 아래로 밀었다 하면 돌돌 말리면서 삐삐 머리가 된다. 얼핏 보면 곰팡이 치즈 같기도 하다. 먹기 전 날 냉동실에서 꺼내뒀다가 발라 먹는다. 버터 묻은 식기를 씻는 것 만한 체벌이 없고 그렇게 씻겨 나가는 버터가 아까우므로 최대한 도구 하나로 끝내야 한다. 그리고 저 그릇은 그냥 놔둔다. 다음날 아침 상온에서 패배적으로 녹아있는 이것을 샅샅이 발라 먹을 때가 사실 가장 맛있다.

버터를 좀 더 그릇에 남겨 둘걸 아쉬워하며 모자라게 발라 먹은 다음날 아침.


토스트한 두꺼운 빵에 바르면 버터는 파슬리만 남기고 빵의 중간 부분까지 사르르 녹아 내려간다. 먹다 남은 구운 고구마와 함께 아침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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