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빌니우스풍경] 오랜만의 엽서

영원한 휴가 2016. 7. 25. 08:00



커피를 줄때 우유를 따로 내어주는곳도 좋다. 우선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설탕을 넣어서 한 모금 마시고 원한다면 우유를 부을 수도 있다.  정 아니면 우유를 따로 마실 수도 있다. 이 베이글 카페는 10센트를 추가하니 따뜻한 우유를 따로 내어주었다. 같은 커피 두잔을 주문하고 우유를 추가했는데 커피 한 잔은 약간 큰 잔에 담아주었다.  기계에서 추출된 획일적인 커피 맛이 좋다. 그럼에도 커피 맛은 전부 다르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것이라곤 각설탕을 혀 위에 얹으면 녹아버릴것이라는 사실 뿐이다.




카페 건너편에는 작은 출판사가 있었다. 이 출판사의 책을 한권 가지고 있다. 빌니우스 구시가지의 조각과 동상들에 관한 책이다.  이 거리를 지날때마다 바깥에 내놓은 엽서 진열대를 마주치곤 했기에 나중에 엽서를 한장 사서 건너편에서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에게 엽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엽서 진열대를 꺼내놓지 않아서 엽서를 사러 안으로 들어가야했다.  대여섯명의 직원들이 한 겨울 난로 근처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양상으로 저마다의 일에 분주했다.  한쪽 창문과 다른 쪽 창문의 사무실은 개방된 채 두세개의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사무실 한켠에는 팔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출판사의 연혁을 설명하듯 진열된것에 가까워보이는 엽서들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엽서 한장을 골랐고 현금 50센트가 없어서 카드를 써야했다.  갑자기 들어온 외부인에 약간 당황한듯한 직원들이었는데 카드 사용에도 난처한 기색을 보이지 않아서 고마웠다.  불편한 표정을 보였더라면 엽서 두세장을 더 샀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를 생각해서 두번째 세번째 엽서도 미리 봐두었다.  내가 가진 책도 진열되어 있어서 이 책이 너무 좋은데 책이 잘 팔리는지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이어가기에는 카드 단말기를 마주하고 흐르던 침묵은 헝클어버리기 아까운 커피의 크레마처럼 섬세했다.  




엽서 속 그림을 지배하고 있던 것도 어떤 침묵이었다.  침묵은 두 종류이다.  더 커다란 침묵으로 감싸줘야 할 종류의 절대적인 정적과  모든 상처를 감수하고 깨뜨려야 하는 위험한 고요.   나는 쉽사리 엽서를 뒤집을 수 없었다.  은근한 빛과 파도 내음이 감도는 어둡고 잔잔한 바다.  커튼은 흔들림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호텔방에 들어서서 쉽사리 짐을 풀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창밖을 응시하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혹은 이미 문 옆에 짐을 내려 놓고 밖으로 나가 벽에 등을 대고 철퍼덕 앉아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듬성듬성 놓여진 가구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던 그 정적은 기다려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출구가 없는 통유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갑갑해졌다.  흩트러 버리고 싶지 않았던 침묵을 삼키려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는듯했다.  나는 받는이를 결국 생각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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