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어 123_Konteineris 컨테이너
찾는 책이 동네 도서관에 없어서 오랜만에 국립 도서관을 향하는 길. 버스 정류장 뒤로 헤드셋을 낀 여인이 온갖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나른하게 앉아있다.
Neieškok kampo, ieškok spec.konteinerio!
구석을 찾지 말고 전용 컨테이너를 찾아!
컨테이너 Konteineris는 리투아니아에서도 여러 용도로 쓰이는 단어이지만 대개 일차적으로 쓰레기 컨테이너를 떠올린다.
전자 폐기물을 애꿎은 곳에 버리려고 애쓰지 말고 전용 컨테이너를 찾아서 버리라는 내용의 벽화인데 그런 전용 컨테이너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나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이 벽화는 이미 제 역할을 다했다.
알고 보니 이 헤드셋 여인의 원형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Portrait of Madame Récamier이라는 그림 속의 여인이었다. 부유한 은행가 남편을 두었던 이 여인은 19세기 프랑스 셀럽이었고 그 자택은 당대지식인들의 집합 장소였다고 한다. 많은 화가들의 모델이었다고도 하니 아마도 저 긴 의자를 구애자들이 둘러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21세기 빌니우스에서는 처치불가능해진 전자기기들 틈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저렇게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국처럼 폐기물 스티커를 관공서에서 발급받는 시스템이 있으면 간편하고 명확할 것도 같지만 인구가 적은 빌니우스에서 과연 효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난번에 서울에 갔을 때 아직은 꽤 쓸모 있어 보이는 나무로 된 팔각 쟁반과 소반이 길가에 버려져 있길래 집에 주워간 적이 있다. 이걸 다시 버리려면 스티커를 발급받아야 되는데 이런 걸 도대체 왜 주워오냐고 엄마한테 욕을 한 바가지 먹었던 기억이 나서 웃었다.
서울엔 유독 그런 쓰레기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무로 된 밥상, 목침, 쟁반, 나무로 된 가구. 플라스틱이라면 모를까 나무는 질리지 않는 재료인데 왜 버릴까. 오래됐다는 느낌이 강해서일까. 꼭 이사 간 집 마당에 남은 고목처럼 유독 쓸쓸해 보였던 폐기물들.
집에 가져가자마자 욕실에서 정성스럽게 씻겼으나 곧장 재활용 쓰레기가 집결하는 베란다로 향했던 그 쟁반과 소반은 결국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나저나 우리 엄마는 스티커를 사다 붙였을까 아니면 구석을 찾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