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2센트 동전 - 에델바이스,알프스의 별,알프스 보드카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

1200km 길이의 알프스 산맥은 프랑스, 스위스, 모나코, 이탈리아,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슬로베니아까지 8개국의 298 128 km²에 달하는 면적을 차지하며 뻗어나간다. 리히텐슈타인은 나라 전체가 알프스에 자리 잡고 있다. 알프스 산맥 곳곳에 솟아있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만 해도 128개. 오스트리아는 국토의 2/3 가 알프스 산악 지형이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도시, 토리노에 있는 몰레 안토넬리아나가 새겨진 이탈리아 2센트 동전 (https://ashland.tistory.com/1295)과 알프스로부터 뻗어 나온 트리글라우를 새긴 슬로베니아의 50센트 동전(https://ashland.tistory.com/558975)을 보면서 알프스에 조금이라도 지분을 가진 유럽 나라들이 직간접적으로 그 알프스 부심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산이라는 자연물에 대한 편협한 소유욕이라기보다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부터 존재했던 산과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사람들을 통해 대대로 전해지며 내려오는 고양된 정신 상태일 것이다. <여덟개의 산 Le Otto Montagne>과 <베르밀리오 Vermiglio>라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영화 두 편이 최근 개봉했었다. 영화 이름에서부터 이미 이것은 '알프스가 배경인 이탈리아 영화입니다'라고 말하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영토 분쟁을 겪었고 일부 국경을 다시 그으면서 결과적으로 이탈리아의 알프스 면적은 줄어들게 되었는데 이건 앞으로 발생할 알프스 빙하와 관련된 많은 이슈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 국기를 토양처럼 삼고 오스트리아 소액 센트 동전 속에 피어있는 세 종류의 식물들. 유럽 중앙은행의 오스트리아 동전 페이지에는 이들 주인공들을 각각 Gentian, Edelweiss, Alpine primroses로 표기하고 있다. 식물들도 태어난 지역에 따라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지고 부르는 이름도 다양해져서 특정 이름을 딱 지정하는 것이 쉽지가 않은데 우선 영어명을 알아두는 것이 결국 가장 편한 것 같다. 찾아보니 이 명칭 그대로 겐티아나, 에델바이스, 알프스 로즈 혹은 프림로즈로 부르거나 각각 용담, 에델바이스, 앵초꽃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가 알프스의 꽃을 주제로 3개의 주화 시리즈를 발행한 것은 단순히 동전을 예쁘게 만들려는 욕심 때문만은 아닐 거다. 알프스 산맥이 지나가는 다른 유럽 나라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는 알프스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큰 나라이다. 에델바이스를 비롯해서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알프스의 고산지대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꽃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멸종 위기에 처해있기도 하고 알프스의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슬로베니아, 스위스 그리고 인도는 에델바이스를 포함한 고산 야생 식물들에 식물 보호법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알프스의 특정 꽃들에 대해 꺾을 수 있는 용량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하지만 에델바이스의 경우 채집 자체가 아예 금지되어 있다. 어길 경우 최대 750유로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얼마큼 꺾어도 되는지 법적 규제를 확인할게 아니라 그냥 야생꽃은 꺾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사실 해발 3000미터까지 올라간 김에 꽃을 꺾으면 알프스 물을 담아 화병에 꽂아서 하산하지 않는 이상은 내려오는 동안 전부 시들지 않으려나. 관광객들이 인증샷을 찍으려고 몇 번씩 포즈를 취하다 실수로 밟고 뭉갤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등산을 하다가 바위틈 사이에 피어있는 꽃들을 발견하면 나부터라도 근처까지 다가가서 구경할 것 같다.

에델바이스의 일반적인 이름은 독일어 “Edelweiß “ 에서 온 것으로 고귀함을 뜻하는 Edel과 백색을 뜻하는 weiß가 합쳐진 것이다. 에델바이스가 속한 식물의 속명은 Leontopodium으로 그리스어로 '사자의 발바닥'이라는 뜻이 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알프스의 별'이라고 부른다. 에델바이스는 전통, 순수함 그리고 강인함을 상징하는 오스트리아의 아이콘이다. 그것은 에델바이스가 자라는 알프스의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에델바이스는 알프스의 해발 2000m-3000m 부근에서 7월과 9월 사이에 피어난다. 이 꽃을 그냥 사진으로 봤을 땐 약간 슈가파우더를 뿌린 세이지나 펠트로 만든 꽃 느낌도 나고 특유의 생강맛이 나서 가장 좋아했던 돌돌 말린 하얀 센베이 과자 생각도 났다. 동전 속의 에델바이스는 잎사귀 10개가 같은 높이에서 빙 둘러 피어있는데 사실 에델바이스는 불가사리를 몇 개 겹쳐놓은 것처럼 굉장히 입체적인 꽃이다. 험준한 바위산에서 혼자 알아서 피어난다고 하기에는 계속 보살펴줘야 할 것처럼 우아하다. 사진만 봐서는 이 꽃의 구조가 잘 이해가 안 가서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초정밀 현미경으로 촬영해서 놀랍지 않은 세상만물이 어디 있겠냐 마는 시선을 끄는 독보적인 하얀 잎을 뒤로하고 에델바이스를 당기고 또 당기면 마치 강황가루에 떨어진 정향을 가느다란 핀셋으로 집어 탈탈 털어놓은 듯 예민한 노란 부분들이 최종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에델바이스는 아주 따뜻한 옷을 입고 알프스를 이겨내고 있는거다. 그들을 둘러싸고 겹겹이 채워진 솜털은 한밤중의 추위와 한낮의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꽃을 지켜준다. 그래서 에델바이스가 하얀색을 띠게 되고 피부 보습이나 자외선 차단제등의 화장품에 추출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해발 3000미터까지 올라가서 이 희귀 식물을 한 송이씩 채집해서 화장품을 만들고 있는 유럽 사람들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고가의 화장품이라면 도난 방지 태그가 붙은 상자 속에 들어있는 몇 가닥의 샤프란처럼 아마 화장품 가게 점원이 암호를 풀고 열쇠로 열어야만 하는 진열장에 들어가 있어야 할 거다.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에델바이스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에델바이스를 낮은 제대로 가져와서 심어서 오랜세월동안 길들이고 대량 재배가 가능한 품종으로 개량된 것이다. 해발 3000미터의 고산이 아니라면 1500미터 높이의 계곡지대에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해발 900미터 고도에서 '솜다리'라고 부르는 에델바이스가 자란다.솜다리도 에델바이스라는 단어만큼 예쁘다.

바위틈에서 보통 자라는 에델바이스. 확실히 하루 온종일 태양에 노출되지 않는 위치이고 비싼 윈드 브레이커 같은거 안 입어도 버텨낼 수 있을것 같은 위치이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 에델바이스는 사랑과 용기를 상징한다. 많은 민담 속에서 높은 알프스에 올라가 에델바이스를 꺾어 내려오는 남자는 용기 있고 강인한 남성으로 묘사되어 왔다. 저 멀리 더 높은 봉우리에 쌓여있는 만년설을 구경하며 언제 눈앞에 나타날지 모르는 에델바이스를 찾아 조심스럽게 바위산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인다. 사진이 없던 시대에 그려진 그림일테니 알프스의 야생화를 발견한 사람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가져간 화구를 펼쳤을 거다. 완전히 흐린 날씨는 아닌 것 같고 시시각각 지나가는 구름들이 적당히 동적이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다시 나타나고 도화지 속에 그려진 에델바이스의 물감이 마르는 동안 가방에 담아 온 샌드위치와 차를 꺼내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알프스도 식후경일 테니깐. 유럽에선 긴 시간 하이킹 하는데 주로 많이 챙겨가는 음식이 하드치즈라고 하는데 하드치즈 먹으면 술 생각나지 않을까 해서 좀 아찔하다.


하드 치즈와는 딱히 어울리지 않지만 역시 알프스의 에델바이스도 술을 피해 가지 못했다. 술을 포용할 수 없는 것이 어찌 민족의 상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하얀 술'이라고도 불리는 보드카가 순수의 상징 순백의 에델바이스를 품으니 더 그럴듯하다. 물론 이 보드가에 에델바이스가 들어간 것은 아니다. 알프스의 광천수와 약간의 서양배가 곁들여졌다는 도수 40프로의 오스트리아 보드카는 알프스의 설산을 배경으로 한 사진만 봤을때는 지금껏 본 보드카 디자인중 가장 미니멀하고 마음에 든다. 오스트리아의 최고봉은 해발 3798미터의 그로스글로크너이다. 40% 보드카는 보통 영하 27도까지는 얼지 않는데 이 강인한 에델바이스는 왠지 영하 50도에서도 버텨줄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에델바이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노래일 거다. 하지만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 민요도 동요도 아니고 미국인들이 뮤지컬을 위해 만든 노래이다. 그 뮤지컬을 토대로 만든 영화에서 엄격한 오스트리아 아버지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아이들 틈에 앉아서 감미롭게 부른 노래가 에델바이스이다. 혹시 아직 에델바이스가 오스트리아 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많이 놀라지 않았기를.
마치 백만 송이 장미가 가수 심수봉의 노래가 아니라 푸가초바가 부른 노래란 것을 알게 됐을 때, 그리고 그것이 심지어 러시아 노래가 아니라 라트비아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처럼, 독일 민요속의 타넨바움이 소나무가 아닌 전나무이고 가요톱텐에서 칵테일 사랑을 부른 3인조 듀오가 원작자인 마로니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처럼 놀라지 않았기를.

1984년 오스트리아 대통령 루돌프 키르히슐레거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에델바이스 노래를 인용하며 축배를 들자 오스트리아 언론에서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 대한 무지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마디로 알프스 중턱에서 오스트리아 할아버지를 만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면 알아듣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 사실 '조국 오스트리아를 영원히 축복해 달라'라고 하는 가사도 딱히 문제 될 건 없다지만 오스트리아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애매한 상황일것 같긴 하다.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의 출생지로서의 뿐만 아니라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도 유명해지고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으니 오스트리아 사람들 입장에선 결과적으론 득이 된 경우일까.

에델바이스의 꽃말은 '소중한 추억'이다. 히말라야에도 에델바이스가 있다는데 3700미터 지점까지 올라갔지만 너무 완만한 트레킹 코스였는지 야생꽃은 구경하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산에 갔던 모든 순간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에델바이스에 대해 즐겁게 써 내려가는 순간 조차 이미 추억이 된 느낌이다.
리투아니아는 식목일을 기점으로 갑자기 서리가 내리며 영하의 날씨가 되었다. 에델바이스 보드카 회사에서 제공하는 칵테일 레시피를 덧붙이며 에델바이스 송가를 마무리해야겠다. 에델바이스의 실물 영접은 운명에 맡겨야겠지만 미래의 나는 알프스 보드카 한 병은 살 수 있을 거라 희망하며.

the Alpine Raspberry
5 cl Edelweiss Vodka
6-8 Raspberries
1 dash of Lime Juice
1-2 tablespoons of Cane Sugar
1 dash of Club Soda
Source:
https://www.ecb.europa.eu/euro/coins/html/at.en.html
http://www.microscopy-uk.org.uk/mag/indexmag.html?http://www.microscopy-uk.org.uk/mag/artjul12/bj-Edelweiss.html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3/aug/16/alpine-hikers-warned-of-750-euro-fine-for-excessive-flower-picking
https://maint.loc.gov/law/help/plant-protection/plant-protection-edelweiss.pdf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lifestyle/1984/03/02/muddled-melody-the-sound-of-music-doesnt-play-in-austria/0ad77a1a-216d-4d4d-8288-31ad6b684d7b/
https://www.edelweiss-vodka.com/the-alpine-raspbe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