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1917 (2019)

영원한 휴가 2020. 2. 3. 20:09

 

 

이 영화를 한 줄로 줄여 설명하자면 뭐랄까. 정우가 석호필이 되어 혼자서 개고생하는 영화라고 해도 좋겠다. 얼떨결에 동료에게 택일되서 적군의 함정에 빠져 말살되기 직전의 부대를 구하러 가게 된 스코필드를 연기한 이 조지 맥케이라는 배우를 캡틴 판타스틱에서 비고 모텐슨의 큰아들로 나왔을때 처음 봤는데 그때는 몰랐는데 이 영화에서는 전부 다 똑같이 군복을 입은 와중의 뭔가 지극히 평범하고 순수해 보이는 그 외모가 영화 '바람'에 나왔던 한국 배우 정우를 너무 닮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등을 보이고 뛰고 또 뛰며 미션을 수행하는 싱글 플레이어처럼 전장을 누빈다. 공중에서 폭파 된 비행기는 굳이 그의 발 앞에서 추락하고 화염에 불탄 도시에서 총격전을 하며 무사히 빠져나와야 하고 폭포에서도 적절히 추락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 죽고 개미 한 마리 없을 것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짧게 대화하는 장면들은 게임 속에서 다음 미션 수행을 위해 꼭 지나쳐야 하는 읽기 싫어도 꼭 엔터키를 누르면서 다 읽고 지나가야 하는 대화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 모든 장면들이 그토록 칭찬해 마지않는 한 컷으로 롱테이크 촬영 된 보고나면 뭔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조금 이상한 전쟁 영화. 전쟁이 마치 무너져내린 참호속에서 잠시 정신을 잃은 가운데 찾아 온 아기 병사의 백일몽처럼 느껴진다. 작품상에 오른 전쟁영화라면 으례 씬 레드라인이나 플래툰 같은 영화를 떠올렸거나 설정상 약간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느낌의 훈훈한 영화이거나 피아니스트처럼 다소 인위적인 감동을 끄집어내는 영화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도 이 영화는 사실 전쟁 영화의 문법을 깼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고 결국 적이 됐으므로 죽여야만 하는 전쟁의 참혹함 이런 것은 뭐 우리가 어떤 전쟁 영화를 보더라도 습관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전쟁이 빚어낸 슬픈 광경이 그 모순으로 인하여 도리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포화 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생명은 비단 이름을 모르는 아기뿐만이 아니라 황폐한 벌판 속에서 피어나는 벚꽃이고 아직 식지 않아 따뜻한 양동이에 채워진 우유이다.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들, 시체들, 총알들, 포탄들은 진열장을 찾지 못한, 너무 숱하게 많아서 일련 번호 조차 갖지 못한 박물관 창고에 쌓여있는 전시물처럼 그려진다. 두 청년이 넓은 웅덩이를 지나가는 장면에서 물의 표면에 촛점을 맞추며 점점 카메라가 내려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큰 화면에서 좋은 화질로 봤더라면 좋았을걸 싶어 아쉬웠다. 스코필드가 목표지점을 향해가는 와중에 짧게 조우하는 주요 인물들이 예상치 못한 유명 영국 배우들이 연기한 것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감동을 와장창 깨는 부분이었다. 킹스맨과 닥터 스트레인지라니. 그럴꺼면 아예 휴 그랜트나 로완 아킨슨 한테도 한 역할 주지 왜 안그랬냐 싶었을 정도로. 물론 결국은 그런 짧고도 인상적인 캐스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신예 배우로 하여금 두시간의 전쟁영화를 끌고 가게하므로써 결국 현실에서 길고 긴 지루한 전쟁을 이끌어나가는 것도 그렇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평범한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빠들이었다는 메세지를 강조하려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전쟁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겠지만 그 영화들은 이 영화로 큰 부담을 안게됬다. 조커 때문에 이제 코믹스 장르도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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