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세상을 떠돌다 작년에 나에게로 굴러들어 온 독일의 2유로 동전. 빌니우스에서 독일 동전을 의외로 자주 보는데 그들과 사뭇 다른 이것은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이 새겨진 독일의 기념주화이다. 그러니 이것이 나에게 온 것은 아주 흔치 않은 여정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여름 현금만 받는 딸기 천막에서 몇 번을 쓸뻔하다가 딸기를 포기하며 간신히 간직했다. 이 동전이 속세에서의 여행을 마치려면 계속 쓰지 않고 나와 함께 재가 되는 것이 맞지만 난 언젠가 다시 드레스덴에 가서 이 동전을 쓸 즐거운 계획을 세웠다. 아니면 엘베강에 방생을 하고 와야 할까?
드레스덴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부인 안나와 함께 수년간 머물면서 아이를 낳고 소설 악령을 탄생시킨 도시이다. 드레스덴으로 가는 도중 빌니우스에도 머물렀으니 150년 전 그가 빚쟁이들로부터 도망치듯 시작한 여행의 족적이 내가 지금 걷는 이 거리 어딘가에 남았을 거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진다.
그는 츠빙거 궁전에 놓인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사랑했다. 악령에도 기억이 맞다면 백치에도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몇 시간이나 그 그림 앞에 서서 감탄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과연 그 그림의 무엇이 당시의 그를 그토록 감동시켰는지 궁금해진다. 나의 눈은 그의 눈이 본 것과 같은 것을 보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뭔가에 감동받을 때 정화되는 감정, 뭔가에 마음을 뺏긴 스스로의 감정에 질투를 느끼지 않고 솔직하게 압도됐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순수함과 용기는 그림을 보지 않고도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여행했던 19세기의 바로크 도시 드레스덴과 20세기 전쟁의 포화를 맞고 재건된 지금의 도시는 너무나 다를 것이다. 하지만 16세기의 화가가 남긴 그림 한 점이 변함없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이 동전의 마지막 여정을 꿈꾸게 한다. 다시 찾아 간 그곳은 나에게 다른 인상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사실 그림 속의 턱을 괸 아기 천사들만을 확대한 그림이나 패러디는 모나리자의 패러디만큼이나 많은데 난 구름을 지그시 밟고 있는 성모의 발부분이 제일 좋다. 아이를 안은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롭고 금방이라도 구름위를 몇 걸음 걸어 떠올라 날아갈듯 가볍다. 타란티노 같은 발 페티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그 발 부분을 확대한 엽서가 있다면 이 동전을 주고 사 오고 싶다. 물론 그런 엽서가 있을리 없을테니 시스티나의 마돈나가 인쇄된 엽서를 사거나 혹은 그 엽서를 누군가에게 보내면서 마실 커피 한 잔이라도 사는데 쓰일 수 있다면 즐거울 거다. 하지만 어쩌면 직경 25밀리 안에 굳건하게 자리잡은 이 궁전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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