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18.01.29 08:00


한국어로는 러브 인 프로방스로 번역된 영화. 영어 제목에는 사랑 대신 여름을 프랑스어 제목에는 미스트랄이 들어간다. 사실상 한정된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사랑도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여름도 거센 미스트랄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느낌이다. 양 옆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비포장 도로를 막무가내로 달리는 트럭 기사에게 조금 천천히 달려주세요 하는데 운전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속도를 밟는 듯한 느낌, 기분좋게 물컹거리며 입속에서 퍼지는 올리브 향기를 기대하다 덜 익은 올리브를 깨문듯한 느낌, 씨가 제거되지 않은 올리브 통조림을 스스로 선택해놓고도 으례 씨 없는 올리브인줄 알고 먹다가 이 사이에 매몰차게 들어차는 올리브씨에 화들짝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올리브는 항상 덜 익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먹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특정 지역이나 명칭을 보란듯이 영화 제목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자연스레 기대치가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관객은 항상 잃을게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 를 상상했든 멕 라이언의 미소와 포도 향기로 가득했던 <프렌치 키스>를 상상하며 보든 불어오는 바람과 내리쬐는 햇살 드문드문 올리브 내음을 감지하려 했던 노력으로 어쨌든 뭔가를 잔뜩 이야기 하고 싶었던 누군가의 바램은 전달 받는다.  프로방스의 햇살과 성마른 미스트랄의 변덕을 경험한 사람과 그럴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덜컹거리는 좁은 트럭 짐칸에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는 영화. 막 파종을 마친 보슬보슬한 토양을 뚫고 나오려는 유년 시절과 꺽여버릴까 말라 비틀어져 버릴까 스스로도 몰라 질풍노도하는 청소년기, 이제는 다 알아, 더 이상 배울 게 없다 생각해도 결국 지나 온 모든 시간의 불완전함을 되새기며 살 수 밖에 없을 노년이 집약되었을 올리브 기름 한 병.  프로방스의 모든 햇살을 담은 듯한 아이의 미소와 선글래스를 써도 알아차릴 수 밖에 없는 얼굴을 이미 가져버린 칠십에 들어선 장 르노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시선을 머물게 했던 것이라면 17년전 집을 나간 딸의 방 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들이었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포스터와 슈게이징 밴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로이 오비슨의 멜랑콜리하고도 또렷한 목소리와 마블발의 허무하게 뭉그러진 노이즈가 귀를 채우며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집을 나가는 십대 소녀의 표정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음악적 취향을 결코 하나의 장르만으로 규정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올리브도 하나의 맛과 질감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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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8.01.21 08:00



한국에서는 '나의 산티아고' 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 제목만 보고서는 칠레가 배경인 줄 알았다. 아마도 그 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배경인 영화를 봐서 더 그랬던 듯.  영화는 극심한 과로로 무대에서 쓰러진 유명 배우 한스 페터가 3달 동안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극약 처방을 받고 집에서 뒹굴 거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내용. 순례길에 오른다는 그의 결심을 저지해보려는 친구에게 '그럼 나 이제 떠날게' 라는 유쾌한 말을 남기고선 짐을 꾸린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원제목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정에 대한 순수한 설레임의 어조라기 보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있다가는 설득당해서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릴지 모르는 여정에 대한 두려움에 가깝다. 누군가는 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하지만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좌절하는 한스 페터는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잊고 있던 독일어 특유의 운율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영화를 통해 접해 오던 어떤 외국어들. 조곤조곤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하게 날이 선 프랑스어는 보통 서로 지기 싫어하는 논쟁의 언어였고 스페인어는 최고 온도를 경신하고 고장나 45도 정도쯤에서 멈춰버린 온도계 마냥 항상 열에 들떠있다. 조심스럽고도 자조적인 독어의 운율,  혼자만의 여정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끊이지 않는 투박하고 신경질적이면서도 자아성찰적인 한스 페터의 독일어 나레이션은 어쩌면 죽어라고 일하고 나서 여기가 어디지 라고 묻는 독일인들, '독일인은 참 멋진 책을 쓰는 사람들이죠 이를 테면 나의 투쟁이요' 라고 짖궂게 말하는 무신론자 같은 여행자의 말에 기겁하며 윗세대가 남긴 멍에를 은연중에 짊어지고 갈까 안절부절하는 또 다른 독일인들의 속마음 처럼 느껴졌다.  



어떤 여정에든 끝이 있다는 것, 도달할 목표가 있다는 것은 모든 고통을 이기는 유일한 처방전인지도. 그 침묵과 고행의 마침표를 찍는 어느 순간을 기다릴 수 있는 가능성만한 큰 선물이 있을까. '600킬로미터를 걸어왔다.' 라고 말하며 끝모를 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200킬로 미터 남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안식을 선사 받는 것.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순례길도 그것을 일주일에 끝내든 30일에 끝내든 일년에 걸쳐 끝내든 하루에 30킬로를 순례하든 3킬로씩 순례하든 그곳엔 도착 지점이 있다. 현대인들의 순례에는 하루 평균 얼마라는 물리적 척도가 존재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순례길 여권에 마지막 도장을 받고 다시 처음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처 가보지 못한 길을 향한 극기의 행진보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굳이 다시 거꾸로 밟는 여행이라면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스 페터가 순례 중간에 마시는 우유를 넣은 커피. 얼마나 달콤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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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8.01.15 08:00


Chinese Take-out_Sebastian Borensztein_2011


한국에서는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 이라고 번역된 이 영화. 스페인어 한 마디 못하는 중국인 쥔이 유일하게 남은 혈육을 찾으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다. 그가 가진 유일한 정보는 팔목에 새긴 동네 이름과 백부의 이름.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는 아르헨티나인 로베르트는 오갈데 없는 그를 돕게 된다. 하지만 쥔은 백부를 찾을 수 없고 그 동네까지만 데려다주면 될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그의 작은 선행은 결국 기약없는 동거로 이어진다. 로베르토라는 지푸라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중국인 쥔은 눈치껏 행동한다. 영화는 국적이 다른 낯선 이방인과의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의 시공간에서 맞물린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로베르트는 세상은 논리적으로는 설명 될 수 없는 일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조 섞인 불신은 외부를 향해 폭력적으로 분출된다기 보다는 그를 그 자신 속으로 가두어 버린다. 그런 로베르트의 생활은 정체되어 있다. 마당 한 켠은 철 지난 잡동사니로 가득하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탁상 시계 속 숫자뿐이다. 자주 찾아오는 단골도 귀찮기만 하고 자기가 좋다고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여자도 밀어내기만 한다. 지나간 신문의 황당한 해외 토픽면을 읽고 닫힌 유리 장식장 속에서 말없이 웃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 보는 것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이다. 약혼녀를 잃고 고향을 떠나와 과감히 새로운 세상속으로 진입한 쥔은 결과적으로 세상 모든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상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든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임하든 어찌됐든 세상은 굴러 간다. 찰나의 우연에서 한 발짝 움직이는 순간 그것은 각자가 선택한 어떤 운명이 된다. 



영화 속에서 로베르토는 거의 웃지 않는다. 하지만 쥔의 백부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된 그는 한 가득 미소를 안고 쥔에게 아르헨티나 디저트인 둘체데레체를 꺼내 맛보게 해준다. 하겐다즈 중에 둘체데레체 맛이 있어서 난 지금까지 그게 그냥 그 아이스크림 회사가 만든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우유에 설탕을 넣고 졸여서 만든 남미 전통 디저트였던 것. 영화 속에서 껄끄럽고 떨떠름한 관계의 사람들이 마주 앉아 먹는 음식들은 그들 관계의 어떤 강력한 윤활유가 된다. 둘체데레체 뿐 아니라 이들이 서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도 중국 배달 음식이다. 물론 어떤 음식을 먹고 나자마자 더 없이 돈독한 관계가 된다거나 하는 급진적 변화를 매번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것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게되는 어떤 전환점에서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말랑하고 달콤해지는 지를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임이 분명하다. 새벽 바닷가에서 한바탕 멱살을 잡고 싸우다 텅 빈 부엌으로 돌아와서 이탈리아인 형제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없이 먹던 <빅 나이트>의 오믈렛이나 갑자기 들이닥친 사촌 여동생이 못마땅하기만 한 윌리가 사와서 먹던 <천국보다 낯선>의 티비 디너. 그 조악한 미국식 도시락에 에바가 보인 티없는 호기심이라니. 각자의 동의하에 시작한 동거라지만 끝끝내 마음을 열지 않고 까칠하게 구는 브론테에게 조지가 끓여주는 <그린 카드>의 에스프레소 같은 것들. 물론 저 야심차게 꺼낸 둘체데레체가 무색하게 철물점 앞에 도착한 사람은 쥔의 백부가 아니었지만. 그 짧은 순간 로베르토가 만끽했던 둘체데레체는 아마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달콤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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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7.11.18 08:00







아빠가 몹시 부자인데 이런 딸이 등장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이런 딸에게 문제가 생긴다.  부러울 것 없이 자랐으니 이런 딸은 아주 순진하거나 아주 되바라졌다. 오히려 그 문법을 벗어나면 아쉬울 지경. 그래서 이왕 생겨야 할 문제라면 좀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는데 제작자들이 그런 패턴은 싫어하는지 그냥 항상 비슷하다. 





나에겐 30년이 지나도 그저 레밍턴스틸일 뿐인 피어스 브로스넌. 007 골든아이를 당시에 극장에서 본 것도 전부 레밍턴스틸이 갑자기 제임스 본드가 된다고 해서 너무 신기해서였다. 레밍턴스틸의 짝꿍이었던 로라는 비비언 리처럼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그다지 예쁘지 않았구나. 어쨌든 골든아이 조차도 이미 22년전 영화가 되어버려서 피어스 브로스넌의 언제쯤의 이미지에 이제 촛점을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요새 이렇게 나이 드셔서 정장 입고 진지하고 딱딱한 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레밍턴스틸도 제임스 본드도 나는 모르오 하는 느낌. 이 영화는 궁궐같은 집을 완전 자동화해놓고 사는 백만장자가 자신의 회사에 고용된 사이코패스 IT 전문가를 부당하게 해고하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이 또라이 청년이 연기를 잘해서 그나마 끝까지 그 뻔한 스토리도 긴장하면서 봄.  투마더스에서 엄마 친구인 나오미 왓츠와 사랑에 빠지는 연기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자기파괴적인 또라이역을 제대로 소화해주었다. 결국 허당 레밍턴스틸한데 제발 살려줘 소리를 내뱉고 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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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7.11.15 08:00


Jane wants a boyfriend_2015



남자친구가 있고 싶지 않은, 남자친구가 있지 않고 싶은, 남자친구가 없고 싶은 영화 속 여주인공은 흔하지 않은데.  '배고플 땐 라면먹자' 식의 이런 제목을 당당하게 붙이면 뭐라도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다 . 사실 포스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이퍼텍 나다 같은 곳에서 상영할 것 같은 느낌.  따끈따끈한 크라이테리온 타이틀 같은 느낌. 물론 일반적인 로맨틱 영화 팬들을 흡수하기에도 잔잔한 저예산 영화 팬들을 홀리기에도 뭔가 한 방이 모자란 영화이지만 유쾌하게 공손한 마음으로 보았다. 공손한 마음이라는 것은 주인공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가짐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 누가 제인인지를?  불투명 스타킹 위에 양말을 덧신고 방울 달린 신발을 신은 저 여자아이를 남자친구가 있기 힘든 제인으로 설정했음이 분명하다. 조금 독특하고 괴상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항상 더 매력적이라 느끼고 그런 이들이 그런 이들을 사랑해줄만큼 또 독특하고 간단치 않은 파트너를 지니는 것에 대한 약간의 판타지가 있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속에서의 희한한 이들이란 보통은 집단의 편견속에서 투쟁하고 그럼에도 영화가 해피엔딩을 지향한다면 그를 포용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도 그런 규칙을 벗어나지 않지만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질척한 자기연민을 최소화 했기때문에. 






제인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연극배우 언니가 속한 극단의 의상을 담당하는 바느질 하기 좋아하는 여자아이이다.  제인은 별다른 문제 없이 생활해 나갈 수 있을만큼 정상적이지만 그녀는 결국 '완전히 정상적인', 일반적인'의 범주에 비교당하며 '어쩔 수 없이 비정상적인'이라는 주변의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포스터의 제목 아래 부제처럼 붙은 'Not your neurotypical love story' 는 하나의 냉소이다.  이 쪽 세상에서 바라보는 저 쪽 세상,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저 쪽 세상에서 바라보는 반대편의 세상 역시 하나의 범주로 묶이기 시작하면 그 역시도 얼마나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는가.  소파를 뒤집어쓰고 하루종일 똑같은 옛날 영화를 보며 대사를 따라 한다고 해서 그들을 이미 정상적인 무리에 섞일 수 없는 부류로 판단지어 그들을 마치 죽을때까지 할당된 인생의 패턴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행동하는 것, 특히 그것이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행해진다면 그런 행동이 한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어마어마한 행복의 잠재력을 앗아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  







그것은 분명 특정 신드롬을 앓고 있는 의학적인 진단을 거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요리사 잭 역시 항상 파티에 새로운 일회성 파트너를 데려오고 정상적인 이성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너가 그러면 그렇지' 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탕하고 진지하지 못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그 자신을 그런 편견없이 대하는 제인에게 호감을 갖는다. 마냥 달콤하기만한 설정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우리는 매순간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을까.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내가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생겨먹은 그대로 보여지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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