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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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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 lives 와 After sun 킬리언 머피의 BAFTA 수상 소감 중에 화면에 잡힌 배우 유태오가 반가워서 잠시 써 내려가는 글. 지난 12월에 카페에 갔는데 게시판에 꽂힌 셀린 송의 패스트 라이브즈 포스터가 보였다. 이 영화는 지난가을에 빌니우스에서 개봉을 해서 가서 보았는데 극장 상영이 끝나고 꽤 지난 최근까지도 영화 포스터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해성(유태오)과 노라(그레타리)가 테이블 지지대를 사이에 두고 오묘하게 분리되어 있다. 그것이 그들이 떨어져 있었던 시간과 공간 같아 묘했다. 늘 이 영화를 생각하면 덩달아 떠오르는 것은 샤를롯 웰스의 애프터 선이다. 얼추 1년의 차이를 두고 등장한 이 두 편의 영화가 함께 생각나는 것은 우연은 아니다.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 굳이 더 들어가면 여성 감독이라는 것. 그리고 20년..
2월에 떠올리는 12월의 바냐 삼촌 어느새 2월이 되었다. 12월 초에 슬로베니아 연출가의 리투아니아어 연극 바냐 삼촌을 보고 왔다. 이 작품은 작년 가을의 빌니우스 국제 연극제에서 상연이 되었는데 너무 금방 매진이 돼서 아쉬워하던 차에 빌니우스 소극장 공연이 다시 잡혀서 가까스로 표를 구했다. 리투아니아에서 뭔가가 아주 금방 팔려버려 못 사거나 하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연극 티켓이 아닐까 싶다. 리투아니아의 창작 연극들이 꽤 많이 있지만 그 틈에 가장 자주 올라오는 고전 작품은 역시 체홉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체홉의 소설들이 희곡보다 훨씬 더 깔끔하니 재밌지만 작가의 재치나 유머는 살짝 지루해지려는 좀 더 옛스러운 희곡의 분위기도 결국은 참지 못하고 뚫고 나온다. 연초에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일부러 찾아 보았다. 솔직히 상당..
짧은 감상 두 영화.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영화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경삼림이나 접속, 베를린 천사의 시와 같은 팔구십년대 영화들이야말로 멜랑콜리를 알려줬다.'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배우 자신의 지극히도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깊이 공감했다. 이것이 이 짧고도 다소 오그라들수도 있는 자전적인 기록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다. 인간이라면 그 자신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서 결정적인 순간에 건들여지는 자신만의 멜랑콜리가 있어야 한다고 넌시지 말하는 것 같다. 영원한 휴가의 앨리,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알렉스를 움직였던 그런 보이지 않는 힘 말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배우의 모습이 극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그대로 확장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런 영화를 이 배우가 만들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도 해본다...
오스카 아이작이 사양하는 커피 -커피 마실래요? -언제 만든 건데요? -아침에 내렸어요. -괜찮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를 쓴 폴 슈레이더가 연출하고 오스카 아이작이 출연한 카드 카운터라는 영화를 보았다. 럼즈펠드 시절에 문제가 되었던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 관련된 구역질 나고 소름 돋는 이야기이다. 신입 고문관으로 일하던 오스카 아이작은 포로 학대와 관련해서 주요 고위 관리들이 모두 처벌을 면하는 가운데 단지 매뉴얼대로 모질게 잘 한 덕에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긴긴 수감 기간 동안 열심히 카드를 배워서 석방 후엔 나름 원칙 있고 깔끔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카지노를 떠돈다. 큰돈을 따고도 카지노의 고급 호텔에 머무르지 않고 싼 여관을 향하는 것은 카지노의 번잡함과 타락한 분위기가 수용소에서 경험한 폭력과 소음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아침..
장르만 로맨스 2019년 가을. 빌니우스 우주피스에서 이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이따금 구름이 몰려오긴 했지만 9월의 날씨는 찬란했다. 만약 그날의 날씨가 가을 빌니우스의 일반적인 음울 우중충 모드였다면 엔딩에 등장하는 두 작가의 만남은 먹먹하고 무겁게 느껴졌을거다. 돌이켜보니 그날의 날씨는 정말 큰 행운이었다. 처음 크랭크인 할때의 가제는 입술은 안돼요 인걸로 알고 있었는데 장르만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결과적으로는 잘 바꾼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은 어색하게 코믹스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런 부분이 복고적이고 클래식하게 다가왔다. 배우 류승룡은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캐릭터를 구현해내는데 탁월한 것 같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나 '염력' 같은 작품속의 인물들이 내겐..
영화 한 편, 미성년 얼마 전 모가디슈를 보고 배우 김윤석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는 모가디슈 같은 대작을 만드는 일은 감독으로서 너무 힘든 일일 것이라며 자신은 그냥 지금처럼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모가디슈는 상습적으로 대작을 만드는 감독들도 만들기 쉬운 영화는 아닐것으로 보여지지만) 그래서 나는 그의 작고 잔잔한 두 번째 영화를 몹시 기다리는 중. 미성년.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한편으론 정말 상관있다. 소설에도 무책임한 어른들 여럿 나오니깐) 작년에 본 영화인데 생각난 김에 뜬금없이 짧게 기록해 놓기로 한다. 배우가 만든 영화여서일까. 배우 기용에 있어서도 재치가 넘쳤고 모든 배우들이 동료 배우의 감독 데뷔작을 위해 으싸으싸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 엠 히어 (2019) 영화를 보기 전 느낌을 생각하면 포스터가 좀 달랐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영화를 보고 포스터를 보니 딱 이 정도의 영화였단 생각도 든다. 사실 배두나 배우를 보기 위해 본 영화인데 이 영화에 관한 최대 스포일러라면 배두나는 10분도 채 나오지 않는다는 것... 15분 나왔을 수도 있다.. 마치 '1987'을 생각하며 유해진과 김태리의 케미를 보려고 승리호를 봤는데 유해진의 목소리밖에 안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끝날 때까지 업동이의 경쾌한 목소리를 들었으니 그 영화는 그나마 양호한 건가. 하지만 경치 좋은 프랑스 어딘가에서 삼촌으로부터 물려받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삶을 사는 스테판이 하루 종일 수를 생각하고 그녀에게 보낼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벚꽃 같이 보면 좋을 텐데'라는 ..
사라진 시간 (2020) 배우 정진영과 배우 김윤석이 감독 데뷔를 하였다고 하여 매우 궁금한 마음으로 본 두 영화 '사라진 시간'과 '미성년'. 두 영화 모두 재밌고 볼만하다. 하나는 상업 영화의 서사에 매우 충실한 영화여서 모르는 길이지만 아는 사람 손을 꽉 잡고 잘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그런 영화이고. 하나는 누군가가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 해서 흥미진진하게 듣는데 다음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며 이야기를 끝맺지 못해 계속 찝찝한 영화이다. 하지만 그 찝찝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사라진 시간'은 지방의 초등학교 교사와 저녁이 되면 누군가로 빙의하는 그의 아내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내의 사정이 그러하니 일부러 자진해서 사람이 적은 시골로 전근을 온 것일 텐데 그것이 잘못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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