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17.11.18 08:00







아빠가 몹시 부자인데 이런 딸이 등장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이런 딸에게 문제가 생긴다.  부러울 것 없이 자랐으니 이런 딸은 아주 순진하거나 아주 되바라졌다. 오히려 그 문법을 벗어나면 아쉬울 지경. 그래서 이왕 생겨야 할 문제라면 좀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는데 제작자들이 그런 패턴은 싫어하는지 그냥 항상 비슷하다. 





나에겐 30년이 지나도 그저 레밍턴스틸일 뿐인 피어스 브로스넌. 007 골든아이를 당시에 극장에서 본 것도 전부 레밍턴스틸이 갑자기 제임스 본드가 된다고 해서 너무 신기해서였다. 레밍턴스틸의 짝꿍이었던 로라는 비비언 리처럼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그다지 예쁘지 않았구나. 어쨌든 골든아이 조차도 이미 22년전 영화가 되어버려서 피어스 브로스넌의 언제쯤의 이미지에 이제 촛점을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요새 이렇게 나이 드셔서 정장 입고 진지하고 딱딱한 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레밍턴스틸도 제임스 본드도 나는 모르오 하는 느낌. 이 영화는 궁궐같은 집을 완전 자동화해놓고 사는 백만장자가 자신의 회사에 고용된 사이코패스 IT 전문가를 부당하게 해고하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이 또라이 청년이 연기를 잘해서 그나마 끝까지 그 뻔한 스토리도 긴장하면서 봄.  투마더스에서 엄마 친구인 나오미 왓츠와 사랑에 빠지는 연기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자기파괴적인 또라이역을 제대로 소화해주었다. 결국 허당 레밍턴스틸한데 제발 살려줘 소리를 내뱉고 말지만.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My summer in Provence_ Rose Bosch_2014  (2) 2018.01.29
I'm off then_Julia von Heinz_2015  (4) 2018.01.21
로베르토의 둘체데레체  (0) 2018.01.15
I.T._ John Moore_2016  (0) 2017.11.18
Jane Wants a Boyfriend_William Sullivan_2015  (0) 2017.11.15
5 to 7_Victor Levin_2014  (0) 2017.11.04
Walking Dead 시즌 8을 시작하며 잡담  (0) 2017.11.01
Wind River_Taylor Sheridan_2017  (0) 2017.10.31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7.11.15 08:00


Jane wants a boyfriend_2015



남자친구가 있고 싶지 않은, 남자친구가 있지 않고 싶은, 남자친구가 없고 싶은 영화 속 여주인공은 흔하지 않은데.  '배고플 땐 라면먹자' 식의 이런 제목을 당당하게 붙이면 뭐라도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다 . 사실 포스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이퍼텍 나다 같은 곳에서 상영할 것 같은 느낌.  따끈따끈한 크라이테리온 타이틀 같은 느낌. 물론 일반적인 로맨틱 영화 팬들을 흡수하기에도 잔잔한 저예산 영화 팬들을 홀리기에도 뭔가 한 방이 모자란 영화이지만 유쾌하게 공손한 마음으로 보았다. 공손한 마음이라는 것은 주인공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가짐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 누가 제인인지를?  불투명 스타킹 위에 양말을 덧신고 방울 달린 신발을 신은 저 여자아이를 남자친구가 있기 힘든 제인으로 설정했음이 분명하다. 조금 독특하고 괴상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항상 더 매력적이라 느끼고 그런 이들이 그런 이들을 사랑해줄만큼 또 독특하고 간단치 않은 파트너를 지니는 것에 대한 약간의 판타지가 있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속에서의 희한한 이들이란 보통은 집단의 편견속에서 투쟁하고 그럼에도 영화가 해피엔딩을 지향한다면 그를 포용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도 그런 규칙을 벗어나지 않지만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질척한 자기연민을 최소화 했기때문에. 






제인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연극배우 언니가 속한 극단의 의상을 담당하는 바느질 하기 좋아하는 여자아이이다.  제인은 별다른 문제 없이 생활해 나갈 수 있을만큼 정상적이지만 그녀는 결국 '완전히 정상적인', 일반적인'의 범주에 비교당하며 '어쩔 수 없이 비정상적인'이라는 주변의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포스터의 제목 아래 부제처럼 붙은 'Not your neurotypical love story' 는 하나의 냉소이다.  이 쪽 세상에서 바라보는 저 쪽 세상,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저 쪽 세상에서 바라보는 반대편의 세상 역시 하나의 범주로 묶이기 시작하면 그 역시도 얼마나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는가.  소파를 뒤집어쓰고 하루종일 똑같은 옛날 영화를 보며 대사를 따라 한다고 해서 그들을 이미 정상적인 무리에 섞일 수 없는 부류로 판단지어 그들을 마치 죽을때까지 할당된 인생의 패턴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행동하는 것, 특히 그것이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행해진다면 그런 행동이 한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어마어마한 행복의 잠재력을 앗아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  







그것은 분명 특정 신드롬을 앓고 있는 의학적인 진단을 거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요리사 잭 역시 항상 파티에 새로운 일회성 파트너를 데려오고 정상적인 이성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너가 그러면 그렇지' 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탕하고 진지하지 못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그 자신을 그런 편견없이 대하는 제인에게 호감을 갖는다. 마냥 달콤하기만한 설정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우리는 매순간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을까.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내가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생겨먹은 그대로 보여지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회를.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I'm off then_Julia von Heinz_2015  (4) 2018.01.21
로베르토의 둘체데레체  (0) 2018.01.15
I.T._ John Moore_2016  (0) 2017.11.18
Jane Wants a Boyfriend_William Sullivan_2015  (0) 2017.11.15
5 to 7_Victor Levin_2014  (0) 2017.11.04
Walking Dead 시즌 8을 시작하며 잡담  (0) 2017.11.01
Wind River_Taylor Sheridan_2017  (0) 2017.10.31
Fargo 시즌 4 를 기다리며 잡담  (10) 2017.09.10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7.11.04 08:00





외교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뉴욕에 살고 있는 프랑스 여인 아리엘. 작가 지망생 미국인 브라이언. 그들은 뉴욕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브라이언이 먼 발치에서 끽연중인 아리엘에 반해 다가가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우연인듯 말을 걸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아리엘이 반대편에서 걷고 있는 브라이언을 먼저 보고 그가 건너오기를 기다린 것 같은 뉘앙스로 아리엘의 관점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관객인 나는 왜 그 장면에서 브라이언을 좀 덜 동정해도 된다는 것에 안도한 걸까. 그것은 먼저 반한 사람이 더 사랑하는 것이고 그가 더 많은 것을 잃는 존재라고 끊임없이 암시하던 많은 사랑 영화의 문법에 세뇌당한 까닭이다. 몹시 없어 보이는 그런 관념을 이젠 좀 떨쳐내고 싶다. 그들은 항상 같은 시간에 호텔 앞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런 몇번의 만남끝에 브라이언은 아리엘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리엘은 프랑스인 남편의 미국인 애인 제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인의 존재는 그녀의 결혼 생활을 파국으로 이끄는 통속적인 장애물이 아니다. 아리엘은 제인에 대해서 남편의 장례식이 행해진다면 아리엘 그녀와 함께 울어 줄 또 하나의 존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제인은 결코 <위험한 정사>의 글렌 클로즈처럼 애인의 집에 무단침입해서 고양이를 삶을 여인이 아니다. (글렌 클로즈가 이 영화에서 브라이언의 엄마로 나온김에 인용해 봄.) 프랑스인 부부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파괴하지 않고 배우자의 애인을 인정하며 함께 공존한다. 그 공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브라이언은 3주간 고민하지만 결국은 아리엘의 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너의 전부가 아니라면 반쪽이라도 갖겠어' 라고 하던 <글루미 선데이>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부분인다. 하지만 그들은 월요일의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만 호텔에서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아리엘이 브라이언에 대한 믿음을 담보로 정해놓은 규칙이다.  그녀의 남편은 브라이언을 파티에 초대하고 그는 연인의 아이들과 남편의 환대를 받으며 집에 들어서고 연인의 남편과 연인의 남편의 애인과 함께 근사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연인의 남편의 애인과 택시를 나눠타고 돌아온다. 그들의 조금 이상한 형태의 사랑은 얼마간 평화롭게 지속되지만 잡지사의 소설 공모에 당선되서 6000달러의 상금을 받은 브라이언이 샤넬 반지를 사들고 아리엘에게 청혼을 하면서 균형이 깨진다. 그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가 아니라 아리엘과의 평생을 꿈꾼다.  아리엘은 브라이언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연인의 남편은 브라이언에게 25만달러 수표를 끊어주며 아리엘과 관련된 지출에 쓰라고 전해주며 빰을 갈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아리엘은 결국 프랑스 남편과 남는다. 브라이언은 자연스레 5시부터 7시까지의 사랑도 잃게 된다. 브라이언과 제인은 프랑스인 커플과 헤어진 이후 각자의 가정을 꾸린다. 몇년 후 아리엘과 브라이언 가족은 조우한다. 아리엘은 장갑을 벗어 브라이언이 선물한 반지를 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이언은 미소짓는다. 영화의 줄거리를 낱낱이 다 적어보았다. 이것은 브라이언과 아리엘이 결국 하나가 될까 말까에 관한 손에 땀을 쥐는 영화는 분명 아니다.  사랑은 무엇이고 결혼은 무엇이고 그 제도속의 사랑이란 무엇이고 그 제도권에 들지 못한 사랑은 또 무엇일까. 무엇이 이상적인 관계이고 무엇이 이상한 관계일까. 옛 연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를 남편 브라이언을 둔 아내는 비련의 여인인가.  





브라이언과 아리엘의 관계가 성립과 해체를 겪는 과정속에서 관객을 그리고 브라이언 자신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요소는 여러가지이다. 결혼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평생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깨진 와인병을 거꾸로 꽂아놓은 담벼락 같은 제도일까. 그래서 그 테두리에서 빠져 나오려는 사람과 그 안에 남는 사람, 그 안으로 향하려는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는가. 아니면 합법적인 관계 속에서 자식을 낳고 기르며 좀 더 안락하게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인가.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제3자와 맺는 감정적 육체적 연대는 제도를 위협하는 기형적 관계인가.  제도권 밖에서 위성처럼 떠도는 사랑이 불멸이여도 그것은 불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야 하는 걸까.  결혼이라는 계약을 잡음없이 이행하기 위해 수십년 동안 수차례 다가올 지도 모를 사랑에는 등을 돌려야 하나. 오히려 그런 사랑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결혼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리엘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아무런 공식적 지위도 갖지 못했다고 해서 그 감정이 허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리엘이 브라이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지정한 2시간의 규칙은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그들 사이의 제도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리엘과 그의 남편이 정립한 사랑에 관한 그들의 철학이기도 하다.  아리엘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을 두고 유능한 남편이 보장하는 안락하고 부유한 삶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 값진 것을 포기하고 쟁취하는 가난한 사랑이 진짜라는, 진정한 사랑 컴플렉스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엘이 브라이언을 그 정도까지는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상대적 질량으로 저울질 하는 고약한 습관에 기인한 것이다.  이들의 사랑을 비관적으로 보면 그것은 애인이 있는 남편에게서 상대적 상실감을 느끼고 자신도 똑같은 대안을 마련해두고 싶었던 아리엘의 판타지일뿐이고 낙관적으로 본다면 모든 관계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쌍방의 믿음과 합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공존하고 존속될 수 있다고 보는 믿음이다.  





잠시 브라이언을 연기했던 안톤 옐친을 추모하며.  안톤인걸로도 모자라 옐친이라고 그가 나오는 영화를 볼때마다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너무나 어린 나이에 황당하게 죽어버렸다.  꾸준하게 다작을 하면서 점점 가능성을 넓혀가던 배우였는데 아쉽고 안타깝다. 러시아 태생의 이 배우는 이름 때문에라도 항상 체홉을 떠오르게 했는데 <5 to 7>  에서는 실제로 작가 지망생으로 등장하고 결국 소설을 출간하는데 성공한다. 이 배역에 정말 잘 어울렸다. 영화의 배경이 뉴욕이어서도 더 그랬겠지만 이 영화도 그도 뭔가 우디 알렌스럽다. 약간 외곬수 느낌의 꾸밀 줄 모르고 단도직입적인, 글쓰는 남자, 몇몇 영화에서 작가로 출연했던 에단 호크나 존 쿠삭 같은 느낌도 주었다. 뱀파이어에게 오래된 기타를 가져다 주며 황당한 모습으로 등장한 이 영화 <Only lovers left alive> (http://ashland.tistory.com/208)   딱히 개성이 없는 배우라 생각되다가도 어떤 역을 해도 잘 해내던 배우.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이 영화 Like Crazy (http://ashland.tistory.com/198) 에서 였다. 이 영화에서는 영국인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하며 마음 고생하는 미국인으로 나온다. 아슬아슬하고 섬세했던 연기들, 이해가 가면서도 답답했던 그들의 행동. 이 영화의 제이콥이 조금이라도 브라이언 같은 성격이었다면 저들의 사랑이 그리 힘들지 않았을텐데. 저 영화에서 저들은 참 어렸고 살아있었다면  지금도 그는 여전히 어릴텐데 아쉽다.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베르토의 둘체데레체  (0) 2018.01.15
I.T._ John Moore_2016  (0) 2017.11.18
Jane Wants a Boyfriend_William Sullivan_2015  (0) 2017.11.15
5 to 7_Victor Levin_2014  (0) 2017.11.04
Walking Dead 시즌 8을 시작하며 잡담  (0) 2017.11.01
Wind River_Taylor Sheridan_2017  (0) 2017.10.31
Fargo 시즌 4 를 기다리며 잡담  (10) 2017.09.10
Lion_Garth Davis_2016  (4) 2017.08.09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7.11.01 08:00



릭 그라임즈의 카우보이 모자가 시즌 몇까지 저 형태를 유지 했었는지 모르겠다. 





로스트, 프리즌 브레이크의 계보를 이으며 장황한 미국 드라마의 전형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워킹 데드. 언젠가 왜 꾸역꾸역 계속 만드는걸까 라는 우문에 친구가 현답을 해주었다. 너처럼 보는 사람이 있으니깐. 맞다. 나 처럼 보는 사람이 있는 이상 시즌 20이 문제랴.  '우리 드라마를 봐주시는 단 한명의 시청자분이 남을때까지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의 모토로 사력을 다해 만들고 있는것이다. 이제는 지금까지 본 시즌들, 좀비 엑스트라들의 노고 때문에라도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쨌든 재밌다. 시즌 4였는지 언제였는지 이 드라마 이거 이제 안되겠네 싶었던 지지부진하던 때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 고비를 넘기고  여전히 살아 남아서 시즌 8이 시작됐다. 시즌 10까지는 나왔으면 하는 심정이지만 가장 막강한 리더 니건과의 전쟁이 선포된 이상 왠지 마지막 시즌이 되지 않을까 싶어 조금 섭섭해진다. 2010년부터 8년이면 갓난아기가 태어나서 학교에 들어가고도 남는 기간이다. 실제로 시즌 1에서부터 살아남은 유일한 아역인 칼 그라임스 (챈들러 릭스) 는 시즌 1에서는 유치원생 정도의 나이로 좀비가 나타나면 엄마 아빠 뒤에 숨기 급급했지만 이젠 총탄에 왼쪽 눈까지 실명했음에도 살아 남아 총질은 물론 칼질 발길질 못하는게 없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빌니우스에 와서 살고 있는 거의 매해 가을이면 이들은 나타났다. 보통 시즌이 끝난 미드들을 한 두번에 걸쳐 몰아서 보는 편인데 이 드라마는 거의 본방 사수를 했던듯.      





도대체 언제까지 돌아오는 거니.  돌아가라 저쪽으로.





최다 에피소드 출연. 최다 죽다 살아 남는 주인공 릭 그라임즈 (앤드류 링컨). 사실 미드에서 주요 인물들이 불로초를 먹은듯 살아남는 것이야 새로울 것 없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꽤나 독창적이고 설득력있는 방식으로 드라마틱 하게 살아남아서 죽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코스비 가족의 코스비 아저씨와 프리즌 프레이크의 스콧필드처럼 되어버렸는데 사실 이 배우는 러브 액츄얼리에서 키라 나이틀리의 집 앞에 서서 사랑 고백이 적힌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 순정남이다. 그 장면은 로맨틱의 끝판왕으로 끓임없이 재생되는데 정작 그 역을 연기한 이 배우는 별로 존재감이 없었음.  어쨌든 릭은 이 드라마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를 대변하지만 구멍이 많다. 리더라서 사랑에도 잘 빠진다. 스케치북 안남겨도 누군가는 항상 그를 좋아한다. 





이 좀비 드라마의 기본 골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 아마 저것이다. Fight the dead, Fear the living.  시즌 1,2 정도 까지야 좀비 처치 초보자들이 살아있는 시체들을 무서워 하기도 하고 황당하게 먹힘당하고 그러지만 시즌이 더 해 갈수록 이들이 두려워하는것은 그냥 산 사람이다. 좀비는 그 산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미친듯이 쓰러뜨리고 넘어가는 허들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한다. 그리고 방패막이 되고 종국에는 조력자가 된다. 






릭 그라임즈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여럿있었지만 어쨌든 가장 강력한 상대역으로 남은 니건 (제프리 딘 모건). 악역이라고도 할 수 없다. 지나치게 상대적이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드라마에 악역이란 있을 수가 없다. 좀비 조차도 악역은 아니다.  그냥 전부 살아남아 보겠다고 하는 짓.  이미 죽어서 좀비가 된 자들도 그런채로라도 살겠다고 애쓰는 것.  자타공인 악역들도 결국에는 가족을 잃은 과거라던가 하는 애달픈 드라마를 조금 보여주기 마련인데 이 니건의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게다가 그는 항상 웃고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눈빛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통치술을 보여주는 리더. 난 사실 그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좀비가 되지 마세요. 






당신은 죽은 거 맞습니까? 두둥.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I.T._ John Moore_2016  (0) 2017.11.18
Jane Wants a Boyfriend_William Sullivan_2015  (0) 2017.11.15
5 to 7_Victor Levin_2014  (0) 2017.11.04
Walking Dead 시즌 8을 시작하며 잡담  (0) 2017.11.01
Wind River_Taylor Sheridan_2017  (0) 2017.10.31
Fargo 시즌 4 를 기다리며 잡담  (10) 2017.09.10
Lion_Garth Davis_2016  (4) 2017.08.09
Coming home_Yimou Zhang_2014  (2) 2017.07.09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7.10.31 09:00




소설도 그렇지만 영화도 추운지방이 배경이면 더 보고 싶어진다. 영화가 추우면 보통은 재밌다. 그 추위를 잔혹하지만 세련되게 묘사할 수 있다면 그 영화는 또 멋있다. 그런 영화들은 또 얼마나 폐쇄적인가. 그들은 절대 추위를 남겨두고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로 날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고립된다. 낯선 곳에서 어쩔 수 없이 흘러들어와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만 있을뿐이다. <인썸니아>의 알파치노나 <트윈픽스>의 카일 맥라클란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건의 심각성을 평가 절하한채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혈혈단신 파견되는 FBI 요원 엘리자베스 올슨이 그렇다.  주인공들은 그 어떤 눈보라와 폭풍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더 이상 적절할 수 없는 옷을 입고 등장한다. 추위를 일상적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방어해 낼 수 없는 종류의 추위는 다른 이들에게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눈빛으로 항상 의연하다.  이런 영화들 속 그 특유의 기후와 자연환경은 그냥 함께 어깨를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이지 이겨낼 수 있는 종류였던 적이 없다. 영화는 오랜 세월 이어진 백인과 미국 원주민들간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소재 위에서 끊임없이 실종되지만 미국의 실종자 통계에서는 누락되는 차별 받는 원주민들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하얀 설원에서 하얀 보호색을 띤 사냥용 방한복을 입고 사냥감을 찾고 피의자를 찾아 헤매는 백인 코리는 얼핏 강자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도 원주민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잃은 피해자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의 백색 설원은 오랜 세월 원주민들을 착취한 백인들을 상징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약한 자, 자신보다 약한 사냥감만 상대하는 동물, 그것에 굴복하고 타협할 수 밖에 없게하는 모든 불가항력에 대한 것이다.  '이곳엔 아무것도 없어. 여자도 없고 적막뿐이라고.' '적막, 그것이 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것이야.' 이것은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도 남겨진 가치에 순응하고 또 그것에 배반당하는 삶을 반복하는 사람들과 주어진 가치를 전복하려다 파멸해버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깊은 발자국을 남겨도 눈보라와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공간이라면 진실은 어떤 식으로든 왜곡된다. 그럼에도 그 사라진 발자국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그리고 그 마저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와 <헬 오어 하이 워터>의 시나리오를 쓴 테일러 쉐리단이 감독한 영화이다.  사실 영화가 시작되고 감독이름을 봤을때는 저 영화들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심지어 저 두 영화의 시나리오를 같은 사람이 쓴 줄도 영화 포스터를 보고서야 알았다. 하지만 윈드 리버를 보는 내내 저 영화들의 이미지들이 실제로 머릿속에 맴돌았다면 테일러 쉐리단은 정말 성공한 영화 감독이 아닐까.  모든 감독들이 자신들의 작품 사이에서 그 특유의 일관성과 고유의 빛깔을 뿜어내는 것은 아니니깐.  한편으로는 시카리오의 드니 빌뇌브나 헬 오어 하이 워터의 데이비드 메켄지 역시 테일러 쉐리단의 각본을 그의 의도되로 영화화 한 훌륭한 감독일지 모른다.  등장 인물들의 구성이나 고립된 배경속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까지 착취당한 원주민들의 등장 같은 공통점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어쨌든 이 세 영화는 트릴로지로 묶어도 될법한 영화들이다. 특히 윈드 리버에서 존 번탈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짧고 강렬한 연기를 남기고 사라졌을때 시카리오에서 에밀리 블런트의 상대역으로 나와 역시 짧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의 눈빛이 생각나 더더욱 그랬다.  각각의 영화의 배경이 된 끝없는 설원이 펼쳐진 와이오밍의 원주민 보호구역과 건조하고 텁텁하기 그지없는 텍사스 사막,  거리거리 전시용 시체들이 넘쳐났던 멕시코의 어느 도시,  최근 일이년 사이에 본 영화들중에 이들만큼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줬던 영화들은 없었다. 양심도 동정도 법도 부재한 아무것도 없는 각기 다른 황량한 배경속에서 이들은 마지막 남은 가치 하나를 수호하려 발버둥 친다. 




가장 큰 긴장감을 유발했던 이 장면은 자동차들이 빽빽히 늘어선 도로에서 조차 아무런 죄책감도 경계심도 없이 총격전이 난무하던 시카리오의 초반 총격씬과 헬 오어 하이 워터에서 제프 브리지스와 벤 포스터가 벌이는 황무지에서의 마지막 총격씬에 대구를 이루는 장면이다. 마이클 만의 히트를 압도하는 총격씬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이클 만의 뒤를 이을 감독이 있다면 테일러 쉐리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거듭났으면 좋겠다.  




이건 그냥 설원을 배회하는 제레미 레너를 보자마자 우연치고는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첨부해 보는 사진. 이 멋진 배우는 자신이 출연했던 가장 괜찮았던 영화들에서는 항상 이렇게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의상을 걸치고 나오신다. 



완전 무장하고 혼자서 투벅투벅 폭발물을 향해 전진하던 허트 로커에서의 한 장면. 





갑자기 외계인과 조우하기 시작하는 박사님으로 등장하는 어라이벌에서도 역시 땀차는 옷을 입고 등장. 




난 괜찮아요. 입으라면 입어야죠. 



존 번탈 이 배우는 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워킹데드에서도 너무 일찍 죽어버리시더니.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