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919) 썸네일형 리스트형 떠도는 구름 Drifting Clouds (1996) 이 영화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또 다른 트릴로지인 '핀란드 3부작' 혹은 '루저 3부작'의 시작을 여는 작품이지만 사실 프롤레타리아 3부작의 정신적인 후속작에 가깝다. 비록 마티 펠론파가 출연하진 않지만 그동안 카우리스마키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이전 작품들이 장면장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프롤레타리아 3부작과 루저 3부작을 연결한다. 속의 주인공들은 더 이상 진척 없는 애정문제로 고민하지도 않고 어딘가로 떠나버릴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에 감독의 이전 작품들에서 뭔가 달라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사회변화에 가장 취약하고 전환기의 예측불가능한 파고를 가장 깊숙이 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데에선 변함없다. 언젠가 휴대용 카세트와 여행가방만 들고 어딘가로.. 아리엘 Ariel (1988) 내 멋대로 '카티 오우티넨 3부작'을 만들어서 쓰다 보니 자연스레 건너뛸 수밖에 없었던 영화 . (1986), (1990)와 함께 카우리스마키의 프롤레타리아 3부작에 들어가는 영화이고 카티 오우티넨은 출연하지 않는다. 이렇게 특정 테마로 한배를 탄 영화들은 감독의 치밀한 구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다작 성향이 있는 감독들의 작품을 분류하는데 재미가 들린 평단의 팬심이 만들어낸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분류들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감독의 영화마다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고 또 인물이나 영화자체를 좀 더 낭만화하는 경향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비교적 분명하고 서술적인 다른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제목과 비교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너무나 간단하고 그래서 좀 불친절하다. 도대체 아리엘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영화.. 마티 슈프림 (2025) 2025년에 기대했던 몇 편의 영화가 있다. 아리 애스터의 , 켈리 라이카트의 처럼 좋아하는 감독들의 신작들이 있었고 사프디 형제의 영화는 엄밀히 말해서 https://ashland.tistory.com/895 를 보자마자 2019년부터 기다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이들이 각각 종합 격투기 선수와 탁구 선수가 주인공인 전기 영화를 크랭크인한다고 했을 때엔 솔직히 김이 샜다. 운동선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기 영화들은 어쩔 수 없이 아주 확고한 패턴이 있다. 전성기를 누리고 다시 밑바닥을 찍고 다시 위로 올라가거나 하는 뭐 그런 전개. 그러니 사프디 형제가 만드는 전기 영화는 조금은 다를 거라 기대하면서도 과연 그 견고한 전기 영화의 서사를 어떤 식으로 깰까 궁금했다. 동생 베니 사프디의 은 그 패.. 다리가 있다면 너를 걷어찰거야 (2025) . 사프디 형제와 짝을 이뤄왔던 로널드 브론스테인의 동반자인 메리 브론스테인의 영화이고 그래서 기대를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재밌게 봤다. 이 브론스테인 부부는 각각 과 이 영화로 주연 배우를 아카데미 남녀주연상 후보에 올린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속의 로즈 번의 연기가 에서의 제시 버클리의 연기보다 훨씬 좋았다. 시대극보다는 현대극을, 친자연적이고 목가적인 배경보다는 도시를, 서정적인 상징보다는 직설적인 유머에 본능적으로 더 끌리기 때문이겠지만 가녀린 로즈 번을 데리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속도감이 와 의 스타일을 지향한 흔적이 역력해서 사프디 형제 스타일속의 브론스테인의 큰 지분에 대한 생각을 더 굳히게 만들었다. 사프디 형제 특유의 폭주하는 남성성이 매번 강력한 암세포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전부 끌어들.. 리투아니아어 143_Tvora 담장, 울타리 영화 햄닛(Hamnet)의 한 장면. 둘째 아들 햄닛을 잃고 수심에 잠긴 아녜스가 열심히 달걀을 깐다. 남은 아이들을 먹여야하고 생활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셰익스피어는 런던으로 떠나려고 한다. 좀 더 머물러 달라고 붙잡기도 남편의 여행을 축복하기도 애매하다. 고뇌하는 셰익스피어를 처음 런던으로 보낸 것은 분명 아녜스 본인의 선택이었지만 충분한 애도가 끝나기도 전에 자연스레 짐을 챙기는 남편이 어쩔 수 없이 야속하다. 하지만 살아있는 자들의 삶은 계속된다. 예술혼을 잠재울 수 없는 글쟁이 남편은 글을 써야 하고 어미는 생활을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여러 모순들이 교차한다. 그리고 분명 착잡하고 슬픈 장면인데. 나는 분명 아녜스의 절망에 이입하며 안타까운 감동을 느껴야 하는데 뭔가 .. 천국의 그림자 (1986) 헬싱키 어딘가. 잔잔한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과 함께 니칸더(마티 펠론파)의 일상이 그려진다. 니칸더는 쓰레기 처리 업체에서 일한다. 그날의 할당된 쓰레기 컨테이너들을 하나둘 비우고 포화 상태가 된 쓰레기 수거 차량을 매립지에서 비우면 하루가 끝난다. 니칸더의 일상은 건전하다. 퇴근 후 간단히 장을 보고 영어 학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제법 정성스레 저녁을 해 먹고 간이 나빠서 도수 높은 술은 안 마신다. 어느 날, 라벨도 안 붙여진 시너병 같은 보드카 병을 들고 코가 빨개진 니칸더의 동료가 다가와서 말한다. 마치 25년 동안 매일 아침 했던 생각이지만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그간의 인생을 전복하겠다는 듯이. 은행 대출을 끼고 트럭 5대를 사서 자기 사업을 시작할 테니 합류하라.. 성냥공장 소녀 (1990) 성냥공장에서 일하는 핀란드 여인 이리스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 다 마시고 세척한 것으로 보이는 보드카병이 물병과 꽃병으로 변신하여 여기저기 널려있고 의미 있는 말 한마디 오고 가지 않는 그 차가운 집안을 채우는 것은 긴박한 국제뉴스들이다. 러시아에선 가스 폭발로 열차가 전복되어 사람들이 죽고 이란에선 이슬람 지도자가 죽고 천안문 사태로 비무장 상태의 학생들이 죽는 뉴스들이 계속 흘러나오지만 원한다면 그 티브이를 꺼버릴 수 있는 이쪽은 엄연히 다른 세상이다. 세상곳곳에서 벌어지는 비극과는 상관없이 이리스의 일상은 표면적으론 평화로워 보인다. 공장에서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저녁이면 퇴근해서 모두를 위한 밥상을 차리고 자기 전에 대중 소설을 읽고 주말이면 댄스장에 가서 남자를 기다린다. 쓸쓸하고 생명.. 타티야나, 당신의 스카프를 조심하세요 (1994) 독서에 침대용책과 화장실용 책이 있는 것처럼 영화에도 프로젝터용 영화와 식사용 영화가 있다... 어떤 영화를 식사용 영화로 분류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한 영화에 던지는 최대의 찬사이자 가장 진솔한 우정의 표시 같은 게 아니려나. 짐 자무쉬, 아키 카우리스마키, 홍상수, 오즈 야스지로,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고 그 외에도 무수한 영화들이 있다. 식사용 영화 클럽에 들어오는 기준은 사실 간단한 듯 간단치 않다. 또 봐도 재밌다는 게 소름 끼칠 만큼 여러 번 본 영화여야 함은 말할 것도 없고. 플롯이 단순하고 대사가 적고 흑백이면 더 좋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해선 안되며 주인공들의 은근한 속웃음과 수줍은 좌절감 같은 게 느껴져야 한다. 그리고 밥을.. 이전 1 2 3 4 ··· 1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