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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126_ Ausų krapštukas 면봉 22년간 씻지 못한것으로 보이는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을 위해 헌신적으로 솜방망이를 들다. Krapštukas 는 쑤신다는 의미의 동사 Krapštyti에서 나온 명사이다. 굳이 발음하자면 크랍슈투카스.그러니 귀(Ausis)를 쑤시면 면봉 Ausų krapštukas, 이(Dantys)를 쑤시면 이쑤시개 Dantų krapštukas.
Vilnius 177_두 거리의 꼭지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길은 카페 가는 길. 그 길의 모든 모퉁이와 모든 직선과 막다른 길조차, 설사 커피가 맛없다 해도 그 길은 대체로 훌륭하다. 하지만 그 길이 훌륭하지 않다면 맛없는 커피는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 가슴과 거리에 켜지는 등불이 따스함의 노예가 될 때, 지난여름 아낌없이 부서지던 햇살이 한 점의 거리낌도 없이 인색해질 때, 악착같이 매달려있던 나뭇잎들을 보란 듯이 털어내며 미래의 겨울에 맞설 때, 훌륭함과 자비로움으로 무장한 그 길들을 그저 걸으면 된다.
리가의 어느 카페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음에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아늑하게 느껴진다면 으레 짐작할 수 있는 도시의 일조량이 있다. 햇살을 지워낸 회색 하늘 속에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겨진 달력의 흔적이 있다. 열린 채로 흔들거리지 않는 창문 곁에는 바람이 잠시 고여있다. 테이블 위의 빗방울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그곳엔 그친 비의 마지막 움직임이 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앉을 곳을 찾고 있다면 이제 곧 피어오를 연기가 있다. 물기를 닦아낸 벤치를 발견했다면 그곳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불건전한 취미를 비벼 끄고 카페를 향했거나 카페와 작별 했을 사람. 리가에서 두번 갔던 이 카페에서는 두 장소가 떠올랐다. 지금은 없어진 동네 티룸과 다르질링에서 들렀던 후덥지근했던 2월의 여행자 카페. 전자인 빌니우스의 ..
지난 일요일의 리가 바르샤바와 리가는 빌니우스를 중심으로 반대방향이다. 바르샤바 가는 길이 서울로 전학 간 친구를 보러 가는 느낌이라면 리가는 연락이 닿지 않는 먼 친척이 사는 바닷가 도시 구경 가는 느낌. 좀 고약하고 냉정한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르샤바는 꽉 막힌 사람들이 괴롭힘 당한 도시의 인상이 있고 리가는 셈에 능한 사람들이 단물을 빨아먹은 도시의 느낌이 있다. 그 외의 다른 점이 있다면 버스 옆으로 감자를 실은 화물차 대신 목재 화물차가 지나갔다는 정도..목적이 없는 여행이 어디 있겠냐마는 리가엔 이전에 꽤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 번 왔었다. 그리고 볼일만 보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발길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발길은 미련이 남아도 돌려야 하는 놈이고 미련은 발길을 안 돌리면 안 남으려는 놈이라는 걸 끊임없이 증..
리투아니아 유로기념주화 -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언덕 (Kryžių kalnas) 유로 동전 디자인은 15년마다 한 번씩 바꿀 수 있다. 평균 수명이 80세라고 하면 살아가면서 네다섯 번 정도는 다른 동전 도안을 볼 수 있다는 소리인데 유로가 과연 그 정도로 영원불멸의 존재인지는 모르겠다. 리투아니아가 근 80년 동안 사용한 화폐만 놓고 봐도 러시아 루블과 리투아니아 리타스와 유로화 세 종류이다. 리투아니아는 2015년부터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https://ashland.tistory.com/336) 원한다면 2030년이면 동전 디자인을 바꿀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나름의 비전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1센트부터 2유로까지 모든 동전 도안을 국장 하나로 통일한 것은 참 따분하고 재미없다. 보여주고 싶은 게 차고 넘치는 나라와 하나라도 제대로 품고 싶은 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무..
리투아니아어 125_ Kopa 사구 사구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람과 모래. 우거지면 우거질수록 결국 그 본연의 사구 자체는 사라지는 중이라는 것이 그저 아이러니하다. 모래 사와 죽을 사 사이의 언덕 어디쯤으로 새벽 5시에 일출을 보러 간다. 캄캄한 찻길에서 여우를 만났는데 라군이 내려다보이는 모래 더미 위에도 여우의 발자국이 지나갔다. 동일한 여우였다면 참 부지런한 여우다. 숙소에서 사구까지 거의 20킬로미터 거리였으니깐. 전 날 저녁 해지는 것을 보고 새벽이 되어서야 도시로 돌아오는 중이었다면 정녕 여우는 기다림의 대명사이다. 물론 여우가 절대 그랬을리는 없겠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해 뜨는 것을 본 게 아마도 20년 전의 시나이 산 같다. 홍해 바다와 태양의 색감은 기억나지 않지만 떠오른 후부터 시나이 산 바위 여기저기에 묻어나며 자리를 ..
Poland 03_구름처럼 지나가기 크라쿠프에서 아침 버스를 타고 타트라산에 오를 수 있는 도시 자코파네로 향했다. 크라쿠프에서 먹고 남은 삶은 달걀과 식빵과 소시지를 뜯어먹으며 설렁설렁 천천히 올랐다. 그리고 하산해서는 야간 기차를 타고 포즈난으로 이동했다. 슬로베니아의 트리글라우 찬양가를 듣고 있으니 갑자기 산중턱에서 만났던 수녀님들 생각이 나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슬로베니아 50센트 동전 - 슬로베니아의 상징, 트리글라우 (Triglav) 유로 동전 디자인의 몇 가지 스타일이라면,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신이 새겨진 동전, 방문해서 구경 가능한 문화유산이 들어간 동전, '영국 말고 우리나라에도 왕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입헌 군주국의 동전, 지금보다 강성했던 역사적 부흥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나 민족의 상징을 앞세우는 동전, 그리고 국가가 끊임없이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우직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 유산을 담은 동전. 자연 유산을 새기면 물론 그 나라의 관광 소득을 올리는데도 일조를 하겠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나라가 힘이 없어 대대로 강대국들에 휘둘렸고 민족 구성원도 종교도 다양하다. 멀쩡했던 나라가 세계 지도 속에서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할머니가 살았던 나라와 손자가 살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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