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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차력 2024년의 어드벤트 차력(티캘린더)과 2025년 친구의 작품 달력. 고맙게도 3년째 이 조합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해를 맞이한다. 같은 소포 상자에 담겨있던 또 다른 친구가 전해준 동화책들. 행사에서 생긴 꽃 한 다발과 책자들, 언제나처럼 테이블 위의 잡동사니들과 함께 12월이 또 시작됐다. 11월 말에 독일 화물 수송기가 빌니우스 공항 근처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났었다. 비행기 잔해 옆으로 배송되지 못한 노란 상자들이 산산이 흩어져있고 그걸 주우러 갔던 사람들은 현장에서 잡혀가고. 그 와중에 독일에서 보낸 소포가 폴란드에서 움직이질 않는다는 친구의 문자. 어쩌면 친구가 보낸 차력이 굳이 추락한 비행기에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차력을 하늘로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3일 후에 ..
비 맞는 중의 에스프레소 아주 애지중지 마셔야 겨우 두세 모금 나오는 에스프레소를 테이크아웃하는 때란 사실 드물다. 뚜껑을 덮는 것은 거의 치명적으로 불가능하다. 에스프레소용 컵에 맞는 뚜껑을 가져다 놓는 카페를 아직까진 본 적이 없다. 있다고 해도 그 뚜껑을 누가 닫겠는가. 안에서 마시면 될 일이다. 오늘 아침부터 일하기 시작한 초보 바리스타에게 아주 결연하게 '어제도 내가 분명히 닫았다'며 에스프레소 뚜껑을 달라고 버티면 그게 원래부터 없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물품 창고를 다 뒤엎고 나서 매니저에게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 뭔가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우린 늘 집요하게 왜 나한텐 없는지 묻곤 하니깐. 에스프레소잔 뚜껑을 닫겠다는 불필요함은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신발과 미니 신발주걱을 세..
리투아니아어 127_탄핵 Apkalta 한국이 리투아니아 언론에 등장하는 경우는 보통 북한과 관련해서이다. 애석하게도 북한의 김정은이 또 나름 월드 스타이기에. 그래서 아마 한국의 대통령은 김정은을 뛰어넘는 인지도를 얻고 네타냐후와 푸틴, 트럼프를 밀어내고 슈퍼스타가 되고 싶었다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슈퍼스타가 되지도 못했다. 아무도 이 빌런의 서사를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른다. 대통령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골든 라즈베리 트로피 정도...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에 그나마 개인적으로 유익한 점이 있다면 리투아니아 언론에 비교적 신속하게 한국 소식이 올라와서 관련단어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것. 물론 BBC 등 여타 해외 유명매체들의 기사들이 재전달 되는 정도이긴 하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를 받으며 ..
리투아니아어 126_ Ausų krapštukas 면봉 22년간 씻지 못한것으로 보이는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을 위해 헌신적으로 솜방망이를 들다. Krapštukas 는 쑤신다는 의미의 동사 Krapštyti에서 나온 명사이다. 굳이 발음하자면 크랍슈투카스.그러니 귀(Ausis)를 쑤시면 면봉 아우스 크랍슈투카스 Ausų krapštukas, 이(Dantys)를 쑤시면 이쑤시개 단투 크랍슈투카스 Dantų krapštukas.
Vilnius 177_두 거리의 꼭지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길은 카페 가는 길. 그 길의 모든 모퉁이와 모든 직선과 막다른 길조차, 설사 커피가 맛없다 해도 그 길은 대체로 훌륭하다. 하지만 그 길이 훌륭하지 않다면 맛없는 커피는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 가슴과 거리에 켜지는 등불이 따스함의 노예가 될 때, 지난여름 아낌없이 부서지던 햇살이 한 점의 거리낌도 없이 인색해질 때, 악착같이 매달려있던 나뭇잎들을 보란 듯이 털어내며 미래의 겨울에 맞설 때, 훌륭함과 자비로움으로 무장한 그 길들을 그저 걸으면 된다.
리가의 어느 카페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음에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아늑하게 느껴진다면 으레 짐작할 수 있는 도시의 일조량이 있다. 햇살을 지워낸 회색 하늘 속에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겨진 달력의 흔적이 있다. 열린 채로 흔들거리지 않는 창문 곁에는 바람이 잠시 고여있다. 테이블 위의 빗방울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그곳엔 그친 비의 마지막 움직임이 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앉을 곳을 찾고 있다면 이제 곧 피어오를 연기가 있다. 물기를 닦아낸 벤치를 발견했다면 그곳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불건전한 취미를 비벼 끄고 카페를 향했거나 카페와 작별 했을 사람. 리가에서 두번 갔던 이 카페에서는 두 장소가 떠올랐다. 지금은 없어진 동네 티룸과 다르질링에서 들렀던 후덥지근했던 2월의 여행자 카페. 전자인 빌니우스의 ..
지난 일요일의 리가 바르샤바와 리가는 빌니우스를 중심으로 반대방향이다. 바르샤바 가는 길이 서울로 전학 간 친구를 보러 가는 느낌이라면 리가는 연락이 닿지 않는 먼 친척이 사는 바닷가 도시 구경 가는 느낌. 좀 고약하고 냉정한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르샤바는 꽉 막힌 사람들이 괴롭힘 당한 도시의 인상이 있고 리가는 셈에 능한 사람들이 단물을 빨아먹은 도시의 느낌이 있다. 그 외의 다른 점이 있다면 버스 옆으로 감자를 실은 화물차 대신 목재 화물차가 지나갔다는 정도..목적이 없는 여행이 어디 있겠냐마는 리가엔 이전에 꽤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 번 왔었다. 그리고 볼일만 보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발길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발길은 미련이 남아도 돌려야 하는 놈이고 미련은 발길을 안 돌리면 안 남으려는 놈이라는 걸 끊임없이 증..
리투아니아 유로기념주화 -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언덕 (Kryžių kalnas) 유로 동전 디자인은 15년마다 한 번씩 바꿀 수 있다. 평균 수명이 80세라고 하면 살아가면서 네다섯 번 정도는 다른 동전 도안을 볼 수 있다는 소리인데 유로가 과연 그 정도로 영원불멸의 존재인지는 모르겠다. 리투아니아가 근 80년 동안 사용한 화폐만 놓고 봐도 러시아 루블과 리투아니아 리타스와 유로화 세 종류이다. 리투아니아는 2015년부터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https://ashland.tistory.com/336) 원한다면 2030년이면 동전 디자인을 바꿀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나름의 비전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1센트부터 2유로까지 모든 동전 도안을 국장 하나로 통일한 것은 참 따분하고 재미없다. 보여주고 싶은 게 차고 넘치는 나라와 하나라도 제대로 품고 싶은 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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