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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날의 파블로바 몇 년 간 친구의 생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여 매번 그 주변의 날들에서 서성이며 두리뭉실 축하하다가 작년인가는 간신히 기억해 낸 그 날짜가 어딘가 익숙하여 생각해 보니 4월 21일 과학의 날이었다. 산속에 위치한 중고등학교를 다닌 관계로 과학의 날이 되면 우리들은 대학 캠퍼스의 모나지 않은 널찍한 바위들을 하나씩 전세내고 앉아 과학 상상화를 그리던가 과학 글짓기를 하던가 날아다니는 벚꽃을 잡으러 다니던가 그랬다. 이제 30세가 된 리투아니아 친구는 자신의 생일이 한국의 과학의 날로 인해 잊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고 나는 내가 리투아니아에 처음 왔을 때 그가 고작 13살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신기했다. 하지만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식의 어른스러운 말을 적용하기엔 우리가 영원히 철이 들..
동네 문방구 프로피테롤 구시가에 문방구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 카페 자리에는 사실 오랫동안 털실 가게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예쁜 색깔의 복슬복슬한 털실들을 사서 겉뜨기 안뜨기로만 뜬 목도리를 휘감고 다니다 풀고 뜨고 또 풀곤 했다. 털실은 그게 좋다. 망침의 업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이곳 생활 초기에는 그 어떤 신발을 신어도 발이 시려서 아랫집 할머니에게서 털양말 뜨는 법도 배웠는데 이젠 할머니도 안 계시고 양말은 뒤꿈치 뜨는 방법을 까먹었고 이제 이 기후에 적응이 된 것인지 웬만한 신발은 다 따뜻하다. 그와 덩달아 뜨개질 인구도 줄었는지 털실 가게는 사라졌다. 그리고 4년 전에 문방구 카페가 생겼다. 늘 가는 거리에 있음에도 4년 전 뜨거운 여름에 콤부차 한 병을 먹은 이후로 가지 않다가 트롤리버스 정류장..
부활절 지나고 먹은 파스타 회상 부활절을 보내고 일정상 혼자 하루 먼저 일찍 돌아와서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를 뒤져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며 영화 컨트롤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컨트롤은 조이 디비전의 프론트 맨이었던 이안 커티스에 관한 영화인데 결정적으로 흑백필름이고 음악이 많이 나오고 음악을 했던 사람이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명명백백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이다. 비록 실재했던 그 영화 속의 삶은 암울하기 짝이 없지만. 무슨 계기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진 건진 한 달이 지나니 그 경과가 또렷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더 웨일에서 사만다 모튼의 피폐한 연기를 보고 이 영화가 생각난 것도 같고 지난달 한창 듣던 본즈 앤 올의 영화 음악 때문에 그랬던 것도 같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가장 쉬운 경로는 나..
부활절 회상 4월의 중턱에 있었던 부활절 회상. 부활절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달걀을 잡고 서로의 달걀을 깨뜨리는 게임에서 깨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 달걀들은 점심쯤 지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 달걀들은 이제 광활한 대지를 굴러야 한다. 얕은 언덕에 저런 나무 막대기를 적당한 경사로 세워놓고 그 위에서 달걀을 굴려 남의 달걀을 건드리면 가져가는 게임이다. 부활절이 지나고 직장에서든 지인이든 만나면 서로 염색한 달걀을 교환하기도 하는데 그때 참 난처한 감정이 있다. 내가 계획해서 작정하고 만든 갓 삶은 반숙은 고소하고 맛있지만 금방 삶은 달걀이 아닌 며칠 지나서 교환한 타인의 달걀을 까보니 반숙인 경우 그 순간엔 달걀과도 데면데면해질 수 있구나 깨닫는다. 아주 오래전에는 저 언덕에 동네 아이들이 다 나와서 달걀을..
오스트리아 50센트 동전, 빈 분리파, 클림트 이렇게 똑같이 생겨서 심지어 태어난 해도 같은 생소한 동전들이 서로 떨어져서 굴러다니고 있으면 다른 것들을 옆으로 제쳐 두고 만나게 해주고 싶다. 이 동전은 무덤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 같기도 하고 중동의 사원 같기도 하다. 근데 막상 왕의 묘지라고 생각하면 좀 너무 뻔하다. 가령 왕은 되지 못했으나 후대에 오래도록 회자된 덕망 있는 대군의 묘지라든가 할머니 무릎 위에 올라앉은 세손을 나무라는 며느리 중전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인자한 대왕대비마마처럼 왕의 주변에 머물 뿐이었지만 훌륭한 능을 가져 과연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묘처럼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싶다. 그것은 아마 동전에 새겨지는 것이 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유명한 정점의 과거만은 아님을 ..
도서관에서 차 한 잔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다. 장갑은 확실히 안 껴도 되고 5개월을 주야장천 입었던 제일 따뜻한 패딩도 이제는 드디어 세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계속 비가 오고 있는 걸로 봐선 내일부터는 분명 또 기온이 내려갈 것이다. 오늘의 라디에이터는 여전히 따뜻하고 서머타임도 시작되어 어제의 22시는 오늘의 23시가 되었다. 며칠 후면 내가 빌니우스에 처음 발을 디딘 그 주간이다. 그때 게디미나스 언덕에는 찢은 론리플래닛을 꽂을 수 있을 정도로 녹지 않고 얼음 결정이 되어가는 단단한 눈들이 가득했었고 어떤 날은 비가 하루 종일 내려서 호스텔 접수창구(?) 아주머니에게 우산을 빌려서 돌아다녔었다. 17년 전보단 확실히 따뜻해졌지만 날씨의 패턴은 여전히 비슷하다. 대부분의 카페들이 바깥으로 테이블을 내다 놓기 ..
동네식당의 라그만 우리 동네 베트남 식당이 안타깝게도 문을 닫아 일 년간 비어있던 자리에 할랄표시가 붙은 꽤 진지해 보이는 무슬림 식당이 생겼다. 새로 생긴 식당의 운명이란 것이 음식이 맛있음에도 불구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손님이 많아지면 처음과 달리 뭐가 변해도 변하게 되니 최대한 빨리 아직은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순간 한번 정도는 꼭 가보게 된다. 이 식당 건너편에는 십 년도 끄떡없는 아르메니아 식당이 있고 이 골목의 끝에는 작년 여름에 생겨 성업 중인 케밥집이 있는데 이들은 보기 좋게 삼각편대를 이루게 되었다. 이 식당들 특유의 동향들의 커뮤니티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 낯섦은 배타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여행을 하다가 알게 된 현지인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얼떨떨하면서도 푸근하다. 카이로의 시리아 대사관 앞에..
동네카페의 셈라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어서 통계적으로 가장 자주 가는 동네 로스터리 카페. 2년 전에 중국 대사관 옆의 허름했던 건물이 재단장을 하더니 스타트업이 들어섰고 카페도 동시에 문을 열었다. 카페가 정상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물론 최근 1년 사이다. 작년에 생긴 공유 오피스가 카페 내부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는데 간혹 가볍게 입고 노트북만 들고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약간 대학 동기가 살던 대형 고시원의 휴게실이 떠오른다. 대형 고시원들이 다 그랬던 건지 전기밥솥에 담긴 쌀밥이 기본 옵션이었는데 한동안 친구 준다고 반찬 가져다 놓고 거기서 친구랑 밥을 많이 먹었었다. 이 카페에 아침 일찍 가면 빵을 공급하는 조그만 배달차량이 도착하는데 그 차량이 떠나고 나면 정말 단 시나몬바브카나 라즈베리잼이 들어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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