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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남자 Tavern Man (2012)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인생 40년을 내 기준에서 두리뭉실하게 나눈다면 구소련 붕괴 즈음의 1990년대까지, 1990년에서 2010년 사이. 그리고 그 이후의 영화들이다. 프롤레타리아 3부작과 핀란드 3부작을 비롯하여 그 트릴로지의 색채가 짙은 영화들이 그 중간을 섭섭치 않게 지탱하고 1990년 이전은 카우리스마키식으로 재해석한 고전들과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고약한 영화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201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영화들은 유머의 톤도 조금 달라지고 색감도 비교적 선명하고 따사롭다. 따뜻한 수프에 딱딱하게 굳은 빵 한 조각을 넣어 먹을 때 부들부들해지는 빵처럼 마음이 풀리는 그런 느낌. 는 핀란드 3부작이 끝나고 프랑스의 항구도시 (2011)https://ashland.tistory.com/..
오프사이드 Offside (2006)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이란으로 돌아갔다. 수감과 가택연금이라는 징벌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 그의 최근작 은 반정부 색채 영화 제작 혐의로 실제 복역 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시 감옥에서 좋은 소재를 찾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당당히 고국으로 돌아간 그를 보면 어쩌면 이란은 대외적으로 가장 핫한 이란 감독의 창작열을 기이한 방법으로 북돋으며 나름대로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국가 홍보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든다. 여자 축구 대회에 참가한 이란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국가 부르기를 거부해서 구설에 오르고 망명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 일부는 결국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물론 2026년 요즘 이야기이고. 는 2006년에 만들어진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다..
사과 The Apple (1998) 다시 이란 영화로. 는 로 잘 알려진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각본을 쓰고 당시 17살이었던 그의 딸 사미라 마흐말바프가 연출을 맡은 짧은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픽션이고 실존 인물이자 비전문배우들이 출연해서 기록영화적 요소도 많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엄마, 늙은 아비, 태어나서 12년 동안 집 안에 갇혀 자란 쌍둥이 자매 가족이 나온다. 이웃들은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을 적어 서명을 모아 복지부에 보낸다. 곧 카메라가 출동하고 이들의 상황이 세상에 알려진다. 12살 된 아이들은 의미 있는 문장 하나를 제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은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 못한 이들을 씻기고 머리도 잘라준다. 하지만 곧 찾아온 엄마는 아이들의 머리를 더듬어 히잡을 찾고 우리는 ..
황혼의 빛 Lights in the Dusk (2006)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핀란드 3부작 마지막 작품. 비슷한 시기에 여행했던 헬싱키의 모습이 많이 나와서 반가운 영화이다. 보안업체의 직원인 코이스티넨(얀 히티아이넨)은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깔끔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며 복수의 칼을 가는 킬러처럼 공장 건물 지하에서 고독하게 각을 잡고 산다. 저녁에는 학원에도 간다. 상관들은 코이스티넨이 뭔가 못마땅하다. 3년 일했으니 그냥 잘라버리자는 잔인한 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코이스티넨은 어딜 가든 대놓고 따돌림당한다. 그의 무표정은 뭔가 도전적이고 의심스럽다. 주변을 무시하고 으스대고 싶은 어떤 이들에게 그의 눈빛은 당연히 기분 나쁘다. 카우리스마키 영화의 어떤 주인공들처럼 코이스티넨도 지금 일하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자기 회사를 세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과거가 없는 남자 The Man Without a Past (2002)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https://ashland.tistory.com/559090 을 잇는 핀란드 3부작의 두 번째 작품. 트릴로지로 묶여있는 이 영화를 비롯해서 2000년도 이후의 카우리스마키 영화는 색감도 훨씬 선명해지고 배경을 롱샷으로 잡는 경우도 훨씬 많아진다. 핀란드 3부작은 어쨌든 핀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한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이니 그전 영화들에 은근히 남아있던 소련 분위기가 조금씩 없어지고 줄거리도 다소 복잡해진다. 마르카를 내밀며 커피를 사던 주인공들은 유로를 내밀기 시작하고 은행에서 단순히 돈을 인출하는 대신 은행 대출을 받으러 다니고 주인공들에 대한 묘사보다는(어쩌면 이제 우리가 그들을 잘 알아서) 그들이 뚫기 힘든 체계적이고 견고한 시스템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프롤레..
더 나일 힐튼 인시던트 The Niel Hilton Incident (2017) https://ashland.tistory.com/559091 에서 셀마는 엄청난 골초이다. 프랑스 국적의 인텔리 아랍 여성의 모습을 부각하려는 의도적인 설정이겠지만 자파르 파나히 영화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자 살벌하게 주의받는 이란 여성이 생각나면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라는 튀니지가 실감이 났다. 그리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신 담배를 피워대던 남성이 떠올라서 짧게 적는다. 는 스웨덴 태생 레바논 감독 타릭 살레의 카이로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 포스터 속의 배우는 '저는 누아르 말고는 모릅니다'라고 말하는듯한 눈빛과 가공할만한 화살코에 담배를 꼬나문 파레스파레스 Fares Fares. 뒤로는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성공을 꿈꾸는 튀니지 이민자 여가수의 얼굴과 이집트 국기가 휘날리는 매캐한 혁명..
속초에서의 겨울 Winter In Sokcho (2024) 따사로운 튀니지의 지중해를 벗어나 차가운 속초의 겨울바다로 간다. 수하(벨라 킴)는 엄마(박미현)와 단 둘이 살며 속초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한다. 새로운 투숙객이 오면 방을 안내하고 그들이 떠나간 방을 청소하고 그들이 먹을 음식도 만든다. 늘 체구보다 큰 옷 속에 마른 몸을 숨기고 음식을 할 때마다 김이 서리는 안경을 걷어내며 뜨내기들을 상대하는 많은 그곳 사람들처럼 하루하루 살아간다. 엄마는 언젠가 속초에 도착했던 프랑스인과 사랑에 빠지고 수하를 낳았다. 남자는 여자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속초에 남지 않고 떠나온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느 날 프랑스인 예술가 얀(로쉬디 젬)이 수하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수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를 생각하며 배웠을지 모를 프랑스어로 얀과 대화하며 ..
아랍 블루스 Arab Blues (2019) 잠시 차갑고 쓸쓸한 헬싱키의 발트해를 벗어나야겠다. 문 닫은 두브로브닉 식당의 아드리아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밝고 따사로운 지중해가 펼쳐지는 튀니지로. 무뚝뚝한 핀란드어와는 다른 성미를 지닌 정신없는 프랑스어와 드문드문 끼어드는 아랍어가 있는 곳으로. 미지근한 필터 커피와 통호밀크래커 대신 매콤한 하리사와 뜨끈한 오크라 스튜가 있는 곳으로. 그곳에는 파리든 런던이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여학생 올파가 있고 파리에서의 오랜 생활을 정리하고 뚱딴지같이 고향 튀니지로 돌아오는 셀마(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있다. 프랑스 국적의 친척 셀마를 롤모델이자 떠나야 하는 이유로 여겼던 올파는 그래서 혼란스럽다. 다시 돌아온 셀마가 반갑기보다는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어서 돌아온 거라 생각한다.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을 금의환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