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는 건축이란 단어를 읊조리는 순간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수십 년 전의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씻겨 내려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집트 사막 도시의 진흙집들, 시작조차 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완성되지 않은'이라는 그럴듯한 명칭을 달고 관광객을 끌어모으던 룩소르 오벨리스크의 영악한 주초이다. 없어질 수도 있었지만 기어코 살아남은 존재들,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의 운이자 타자가 부여한 숙명이 뒤섞인 결과이다.
무너진 뒤에도, 다시 세워진 뒤에도,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건축물들은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늘 후세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건축은 영리한 예술품이다.
건축물이 새겨진 동전들은 늘 내 시선을 가장 확실하게 끌어당긴다. 단지 유명해서 성스러워서 아름다워서 오래되서만은 아니다.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는 것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볼 법한 것들, 어떤 이의 익숙한 생활공간 속에서 그가 늘 지나치는 나무 한그루처럼 떡 버티고 서있는 것들이 가진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일상성'때문이다.

스페인은 3종류의 센트 동전 모두에 성당 하나를 세웠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세비야의 대성당도 톨레도 성당도 아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이다. 독실한 가톨릭 국가 스페인이 자신의 화려한 성당들을 뽐내고자 했으면 동전마다 다른 성당을 새길 수도 있었겠지만 한 성당에 올인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몰려드는 중세의 순례자들이 발끝이 닳도록 걸어와 도달하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역이자 그들의 수호성인 성 야고보가 잠들었다 여겨지는 곳이다. 오랜 기간 이슬람 문명과 자리다툼을 해야 했던 유럽전역의 기독교 역사가 포개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다른 성당이 아닌 산티아고 대성당이 동전에 새겨진것은 가톨릭 성당으로서의 정통성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의 침략을 받으면서 이곳엔 많은 모스크들이 건설된다. 후에 그런 도시들을 가톨릭 왕국들이 재정복 하면서 모스크를 허무는 것이 아닌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하는 합리적인 방식을 택하면서 이곳에는 이슬람과 기독교적 전통이 혼합된 독특한 성당들이 생겨난다.


스페인의 코르도바 대성당과 세비야 성당,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가 대표적으로 그런 경우이다. 모스크의 미나렛은 성당의 종탑으로 개조되고 이슬람 모자이크 장식은 그대로 남겨지고 성당의 제단들이 광활한 이슬람 회당안에 차곡차곡 채워진다. 동로마 제국의 정교성당이었다가 모스크로 개조된 아야 소피아는 반대사례지만 스페인의 세비아 성당과 코르도바 대성당처럼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에선 같다.

이들과 다르게 산티아고 성당은 11세기에 온전히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톨릭 성당으로 세워져서 이슬람적 건축 요소가 전혀 없다. 코르도바와 세비야 성당이 이슬람에서 가톨릭 문화로의 전환과 융합을 상징하며 유럽의 기독교 문명이 강력하게 자리 잡는 시기를 보여준다면 산티아고 성당은 처음부터 오로지 정통 가톨릭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산티아고(Santiago)는 야고보를 뜻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야고보’의 히브리어 이름, 야아코프 Ya'aqov가 그리스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Iakovos 가 되고 라틴어의 Iacobus가 된다. 이것이 스페인어에서 이아고(Iago)로 변하고 성인을 뜻하는 '산토(Santo)'와 합쳐지며 '산티아고'가 된다. 스페인의 흔한 남자 이름 디에고(Diego) 도 야고보를 뜻하니 산디에고 역시 성 야고보이다. 라틴어 Iacobus는 Iacomus를 거쳐서 영어에서는 James가 된다.야고보하면 바로 제이콥일 것 같은데 야콥 Jacob은 독어권에서 쓰이며 프랑스어에서는 자크 Jacques, 이탈리아어에서는 지아코모 Giacomo가 된다. 그렇다면 지아코모 푸치니, 자크 시라크, 제임스 본드, 디에고 리베라는 국적을 초월해서 모두 야고보인 것.


성 야고보는 스페인에서 예수의 12제자 중 가장 존경받는 성자이자 스페인의 수호 성인이다. 성 야고보의 전설이 재밌다. 초기 기독교 선교 시절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후 그의 유해는 돛도 선원도 없는 배에 태워져 지중해와 대서양을 거쳐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 루파 여왕의 영토까지 당도한다. 시신을 바위 위에 내려놓자 바위가 마치 밀랍처럼 부드럽게 변해 시신을 품었고, 바위가 무덤처럼 변한다. 제자들이 장사 지낼 장소를 요청하자, 루파 여왕은 사나운 황소 두 마리를 수레에 매라고 말하며 속임수를 쓴다. 그러나 제자들이 황소를 축복하자, 온순해진 황소들이 순순히 시신을 싣고 언덕 꼭대기로 간다. 그곳에 야고보의 시신은 매장되고 루파 여왕은 이 기적들을 보고 회개하고 개종한다.


야고보의 무덤은 오랜 세월 동안 잊혀졌다가 로마 제국의 몰락과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기억에서 사라진다. 시간이 흘러, 갈리시아 땅에 안정된 가톨릭 왕국이 들어서고 무덤에 대한 전설도 다시 등장한다. 813년, 수도사 펠라기우스는 꿈에서 별이 언덕 위 들판을 가리키는 모습을 보게 된다. 펠라기우스는 이 꿈을 지역의 주교에게 전하고, 그 빛이 머물던 곳에서 성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는 예배당과 무덤이 발견된다. 이 기적적인 재발견은 곧 종교적 부흥과 순례 운동을 이끌게 되고 그렇게 1075년 현재의 웅장한 산티아고 대성당이 건설되기 시작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별빛 들판의 성 야고보'라는 뜻이다. 동전 속에서 산티아고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유럽연합의 12개의 별은 다양한 상징을 지니지만 성 야고보의 별을 상징하기도 하니 스페인으로썬 다른 성당을 새기는 것이 불가능했겠단 생각도 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독일 영화 <나의 산티아고 https://ashland.tistory.com/702> 를 오래전에 재밌게 봤다. 그런데 순례길의 종착지인 이 도시가 어디쯤인지는 지금에야 정확히 알게 됐다. 영화나 다큐 속에서 본 순례자들을 힘겹게 하는 갈증과 뜨거운 태양의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난 줄곧 이 도시가 스페인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도시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도 한참 떨어진 대서양을 바라보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에 위치해 있다.
갈리시아 지방은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서늘하고 습하기 때문에 혹서를 피하려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인기있는 피서지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구간이 모두 갈리시아 지방에 속해있으니 순례객들은 점차 서늘해지는 기온을 느끼며 성당에 가까워지고 있음에 안도할지도 모르겠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스페인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인지 더 깊이 천천히 중심을 관통한다. 수도인 마드리드에서는 600km 이상 떨어져 있어서 서울에서 해남까지 가는 것보다 멀고 바르셀로나에서보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가는 것이 훨씬 빠르다. 개인적으로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면 스페인을 통과하기보다는 리스본에서 출발하는 포르투갈 루트(Camino portugues)를 통하고 싶다.

갈리시아는 이베리아 반도에 이슬람 세력이 출몰해서 가톨릭 왕국들의 위신이 점점 좁혀질때에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거의 800여 년간 벌어진 스페인의 국토 회복 운동 '레콩키스타'가 벌어졌던 주요 지역이다. 7세기 반 동안 내내 큰 전투로 몸살을 앓은 것은 아니지만 그 기간 동안 이슬람과 가톨릭 세력 간의 지루한 충돌은 지속적이었기에 성 야고보가 전투 중에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나타나 무어인을 물리쳤다는 전설마저 생긴다. 야고보는 급기야 '무어인을 죽이는 성인' 이라는 산티아고 마타모로스 (Santiago Matamoros)라는 군신의 명칭까지 얻게 된다. 그리고 이후의 스페인 국왕과 기사들은 ¡Santiago y cierra, España!” (산티아고여, 스페인을 닫아주소서!)라는 문장을 외치며 전투에 임하게 된다.


중세사람들은 아마 전쟁 피로감에 꿈에서도 성 야고보를 만나지 않았을까. 추운 날씨때문에 이슬람 세력들이 이 지역까지 치고 올라오지 못했다는 설도 있는데 나폴레옹 군대나 나치독일의 발목을 잡은 러시아의 툰드라급 추위라면 모를까 설마 스페인의 추위 정도가 문제가 되었을까 싶으면서도 어쩌면 아프리카 출신의 이슬람 세력에게는 영상의 스페인 온화한 겨울조차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이슬람 세력들이 지도자를 바꿔가며 가톨릭 왕국들을 공격할때 이베리아 반도의 가톨릭의 성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도 고난을 겪었다. 대성당에서 떼어낸 문과 종은 안달루시아에 있는 코르도바의 모스크를 꾸미는 데 사용되고 나중에 다시 가톨릭 세력들이 그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그 문과 종은 톨레도 대성당으로 옮겨갔다. 이때 성당에 남아있던 성 야고보의 묘와 성유물들은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심을 배려했던 당시 이슬람 지도자덕에 훼손되지 않고 남겨졌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스페인 서북부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장려된 방법 중 하나이다. 늘어나는 순례자들로 인해서 순례길 곳곳에 도시가 생겨나고 급기야 순례에 나서면 지은 죄를 속죄받는다는 교황의 말에 순례행렬은 급격히 늘어난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가 최종적으로 가톨릭 왕국으로 복귀하면서 순례행렬은 점차 줄어든다.


길게는 929킬로미터에 달하는 순례길의 끝에는 대성당의 오브라도이로 광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 광장에서 동전에 새겨진 성당의 바로크식 파사드를 정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유럽의 주요 성당과는 그 주변 모습부터 많이 다르다. 지금까지 본 많은 유럽의 대성당들은 광장 한가운데 자립적으로 서 있어서 그 주위를 돌면서 감상할 수 있지만 산티아고 대성당은 몇 개의 크고 작은 광장을 대학이나 호텔, 관공서 건물들과 공유하며 도시의 골격안에 약간 '붙박이'되어있는 느낌이다.

성당이 먼저 세워지고 오랜 세월동안 그 주위에 다양한 건축물들이 세워졌겠지만 마치 빈자리에 겨우겨우 성당을 끼워 맞춘 느낌도 든다. 어느 방향에서도 성당 전체를 온전히 조망하기 어려워서 주변 건축에 흡수된 듯한 인상을 준다. 어쩌면 성당이 자리 잡은 그런 독특한 구조 때문에 거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이 광장에 들어설 때의 느낌은 전혀 색다를 것 같다. 멀리서부터 탁 트인 공간에서 대성당의 장엄함을 조망하며 서서히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비탈을 지나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성당의 파사드가 시야에 잡히는 것이다.

성당 파사드 양옆으로 이어지는 부분들은 마치 파도를 이겨내는 요새 같기도 하다. 오랜 세월동안 증축과 개조를 거쳐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더해져 위로 자유롭게 수직 상승하는 멋이 있지만 결국 그 시작은 로마네스크 양식이었기에 자칫 자신의 화려함을 뽐내려는 성당을 지상에 단단하게 꽉 붙들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종교 건축물에서 받는 감동은 투철한 신앙심 때문도 아니고 그 종교의 신성함에 압도되어서도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 지은 그 건축물이 인간으로부터 원했던 것, 그리고 인간이 그 건축을 통해서 신과 연결된다고 믿고 원했던 것들을 그저 그들의 입장에서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종교 건축에 기대했던 것은 피렌체 두오모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건축물을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구에서 기인했지만 아주 작고 소외된 성당이나 얼떨결에 들어선 중정의 외벽에 자리 잡은 작은 예수상이 주었던 전혀 다른 소박한 감동을 생각하면 산티아고 대성당이 내게 줄 감동의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가끔 손안에 굴러 들어오는 동전 속 성당을 구경하면서 때를 기다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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