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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07 사라진 시간 (2020)
  2. 2021.03.01 어떤 영화들 2
  3. 2021.02.16 Man push cart (2005)
  4. 2021.02.04 The mule (2018)
  5. 2021.02.03 미나리 (2020)
Film2021. 3. 7. 08:19

 

 

 

사라진 시간 (2020)

 

배우 정진영과 배우 김윤석이 감독 데뷔를 하였다고 하여 매우 궁금한 마음으로 본 두 영화 '사라진 시간'과 '미성년'. 두 영화 모두 재밌고 볼만하다. 하나는 상업 영화의 서사에 매우 충실한 영화여서 모르는 길이지만 아는 사람 손을 꽉 잡고 잘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그런 영화이고. 하나는 누군가가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 해서 흥미진진하게 듣는데 다음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며 이야기를 끝맺지 못해 계속 찝찝한 영화이다. 하지만 그 찝찝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사라진 시간'은 지방의 초등학교 교사와 저녁이 되면 누군가로 빙의하는 그의 아내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내의 사정이 그러하니 일부러 자진해서 사람이 적은 시골로 전근을 온 것일 텐데 그것이 잘못된 생각인 것이 마을이 작을수록 사람들은 시시콜콜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이건 너만 알고 있어' 하고 말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결코 비밀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작은 마을에서라면 이웃 간의 끈끈한 정이란 것이 존재할법한데도 선생님 부부의 비밀을 알고 나서 그들을 동정하고 염려하기는커녕 겁에 질린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은 집 속에 또 다른 철문을 만들어서 밤이면 여자를 가둬놓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이나고 선생님 부부는 죽고 만다. 사건을 해결하려 온 경찰은 마을 사람들을 수사하기 시작하고 제발이 저린 주민들이 초대한 잔치에서 술을 먹고 거나하게 취한 경찰은 불난 집에서 자고 일어나니 경찰이 아닌 죽은 선생님이 되어있다. 아무도 그가 인식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며 그는 결국 경찰이었던 그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그가 살아왔던 시간은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을 마주한 상태에서 어떤 삶이 그의 진짜 삶이었는지는 미궁에 빠진다.

 

 

영화를 보고 처음에는 누가 불을 질러서 사람이 죽었는지 생각하며 이 미스터리를 풀겠다고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결국 그 모든 이야기들은 순식간에 잊히고 주인공이 잃어버린 그 삶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그의 절망감에 감정이입을 하고 결국 그에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며 모든 것이 꿈일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만다.

 

 

그런데 어쩌면 영화 속엔 처음부터 단 한 사람의 삶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꾼 두 개의 꿈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이 화염에 스러져가는 찰나에 회상한 자신의 과거일 수도 있으며 혹은 죽고 난 후의 그가 다시 태어난 것일 수도 있으며 한동안 사건 생각에 몰두했을 경찰이 불탄 집에서 잠이 들어 자신의 삶이 뽑혀나가는 악몽을 꾼 것일 수도 있으며 그들을 잠가 가둔 열쇠를 지닌 주민의 죄의식이 발현된 꿈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 깨어나 보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야 할 일이 생긴 것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그가 살아왔던 삶이 도리어 꿈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그 결말이 품은 논리에 얽매이는 것은 이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타인이 인식하는 나의 삶과 내가 인식하는 내 삶 속의 괴리에 대한 상징적인 이야기이며 내가 나의 것이라고 인식하는 삶 혹은 타인이 나의 인생을 이렇게 볼 것이다라고 우리가 넘겨짚으며 살아가는 삶은 내가 숨기고 싶은 나의 내면과 내가 그것을 숨기므로해서 정의되는 나의 표면적인 인생의 합이라는 것을 아주 재밌는 방식으로 장르를 눈속임하며 보여줄 뿐이다. 외진 농촌으로 시집을 왔다가 자식을 두고 떠나버린 외국인 엄마의 사진을 남몰래 사물함에서 꺼내어 보고 다시 열쇠를 잠가 가슴에 묻어야하는 어린 아이의 아픔이나 밤이면 자기도 모르게 남의 인생을 살아야만하는 기구한 사정들이 타인에 의해 넉넉하게 전부 보듬어지길 바라는 것은 어리섞은 일이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그 삶은 좀 쉬울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못알아보는 어이없는 상황속에서 동료 교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아픔을 지닌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여력이 자신에게 생겼음을 감지한 경찰은 마음이 편해진다. 

 

 

영화를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자고 일어나 보니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이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며 고통스러워한다면 나는 최소한 믿어주겠다고. 그의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줄 순 없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것 만으로도 그가 새로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더 행복한 삶에 도달하는 꿈 따위는 꾸지 않아도 좋지만 누군가가 꿈을 꿨는데 그 꿈속에서의 그가 내가 되어 내가 지금 사는 이 삶을 잠시라도 대신 살아가야 한다면 그가 꿈속에서나마 잠시 천국에 도달한 것처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잠에 들어 내 삶에 당도한 그가 내 삶이 지옥 같다 여겨 빨리 깨어나고 싶어 발버둥 치고 있다면 그건 그대로 그가 현실에서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겠지만.

 

 

 만약 이 영화가 다른 감독의 영화였다면 이런 식으로 끝난 영화에 화딱지가 날 수도 있고 이 결말에 얽매여서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애썼을지 모르고 감독이 끝내지 못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배우 정진영이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니 왠지 너무 그답고 그가 그냥 잠꼬대하듯 던져놓은 이야기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게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아마 영화를 보는 내내 '풀잎들'이나 '클레어의 카메라'같은 홍상수의 영화에서  감독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계속 떠올리며 봐서인지도 모르겠다. 카페에 앉아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은근슬쩍 말을 걸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자리를 옮겨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이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 이야기들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와 논리를 부여하려 그가 굳이 애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진행은 굉장히 대담하고 심지어 순박한 느낌으로 충만한데 그 와중에 또 컬트적이다. 그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든다면 그 영화도 재미있기를 바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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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1. 3. 1. 07:55

 

 

 

Nomadland (2020)

 

기대를 많이 하고 보았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좋아하고 '인투 더 와일드'나 '와일드' 같은 느낌의 영화를 좋아해서 분명 접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보는 동안 재미있었고 촬영도 음악도 아름다웠고 뭉클해서 눈물이 나오는 부분도 있었는데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에 잠겨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강요받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다시 한번 강하고 자주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고 싶었던 프랜시스 맥도만드의 개인적 욕심 같은 것도 느껴졌다. '파고'도 너무 좋아하고 '쓰리 빌보드'에서의 연기는 정말 너무 멋있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떤 캐릭터이길 원하는지가 너무 분명히 보인다. 그런데 개척자적 느낌을 주기에는 좀 덜 억척스러웠고, 자유롭고 거침없고 싶었지만 뭔가 가식적인 느낌이 들었다. 실존 인물들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가 접목된 드라마를 만든것이라면 차라리 단단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자연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관조적인 캐릭터였더라면 더 몰입이 되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보는 내내 '인투 더 와일드'의 캐서린 키너와 '와일드'의 리즈 위더스푼을 떠올렸다. 하지만 '노매드는 현시대의 개척자와도 같아'라는 극 중 결연한 대사에 걸맞으려면 두 배우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을 거다. 

 

감독은 절대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뭉클하고 싶었던 영화는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보면 은근히 아주 흡족해할 만한 영화이다. 정말 나쁜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기더러 나쁘다고 해도 그것에 죄의식을 느끼거나 하지 않을 거다. 착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힘든 가운데서도 서로 의지하며 살길을 찾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함을 느낀다면 나쁜 사람들은 이때다 하고 더 많은 나쁜 짓을 신나게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의미를 부여한 듯 무슨 소용이야. 우린 저 사람들에 비하면 가진 것이 많아. 물질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 그것 말고도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많지. 지금 우리의 삶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아. 우리가 얽매인 것들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회귀해서 최소한의 삶을 사는 것만이 우리를 이런 지옥 같은 삶 속에서 자유롭게 할 거야'. 이런 생각에 물론 공감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행복을 재정의하고 포기할 것과 가져갈 것의 기준을 재정립하며 오히려 더 많이 원하는 스스로를 탓하도록 하고 빈곤과 불평등을 내면화하게 하는 것이 결국 그들이 끈질기에 때리고 또 때리면서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방식은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소공녀 2018

 

노매드 랜드에서 프랜시스 맥도만드가 '난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야'라는 대사를 한다. 그 대사를 듣고 떠오른 사람 둘이 있으니 '소공녀'의 미소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남이다. 미소는 가계부에서 담배값과 위스키 한 잔을 지우는 대신 월세를 지우고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텐트를 친다. 바퀴 네개가 달린 움직이는 집에서 사는 노매드랜드의 유목민들을 생각하면 소공녀의 미소야 말로 천막을 치는 진정한 유목민이 아닌가. 

 

귀엽고도 잔혹한 블랙 코미디 속의 영원 불멸 캐릭터들. 미소는 나에게는 '천국보다 낯선'의 에바와 '영원한 휴가'의 앨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이고 이런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참신했던 캐릭터이며 잘 까지지 않는 삶은 달걀을 마주할 때에 생각나는 사람이기도 하다. 만추의 탕웨이 코트만큼 미소의 코트도 좋아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차라리 없는 게 좋을 달콤 씁쓰름한 환영이다. 이런 캐릭터의 이런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불우한 현실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다 상징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보는 것이 마음 편하다. 당장 그 많은 짐을 짊어지고 또 어딘가로 여행할 내일의 그녀를 걱정하자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녀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자면 더 불안하다. 

 

미소가 남의 집을 열심히 청소하고 잠시 발을 뻗고 앉아서 햇살을 쏘이는 순간에만 감정이입을 한다. 여유롭게 위스키 한 잔에 담배 한대를 문 그녀의 머릿속도 별수없이 내일의 삶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을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포기할 것 들이 많이 생기는데 포기하더라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아 그냥 함께 가기로 결정하는 것들이 있다. 내 곁의 누군가가 미소식의 자유와 품위 유지권을 추구한다면 난 결코 질투하거나 비난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미소는 단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저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속 보이는 행복론을 펼치지도 않는다. 어쩌면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것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뭔가를 가진다는 것에 대한 개념조차 발아하기 직전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5)

 

오래 전에 봐서 디테일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너무 불쌍한데 너무 웃기기도 하고 미안하고 슬프고 복잡한 감정이 스쳤던 영화. 가장 기억에 남는건 오토바이 타면서 명함 꽂아 넣는 스킬로 빵에 들어있는 스티커 같은 거 꽂아서 사람을 죽이거나 굉장히 멀리 뭔가를 던져서 불내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연상호의 '염력'을 엄청 욕하지만 류승룡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설정을 하고 그걸 장면으로 결국 구현해내고 마는 것은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내가 약간 그런 식의 유머를 좋아하는 것 같다. 

 

수남은 모든 불행의 집합체이다. 그렇게 원하던 집을 달동네에 겨우겨우 얻었는데 남편은 자살을 시도하다 식물인간이 되고 혼자서 대출금과 병원비를 벌어야 하니 몸이 부서저라 일한다. 심지어 힘들게 마련한 자기 집에 살지도 못하고 세를 주고 고시원에서 산다. 수남은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점점 더 불행해지고 불행을 탓할 여력도 없다. 그러니 하우스푸어라는 단어도 사치다. 단지 가난하다는 말로는 그녀의 인생은 설명이 안된다. 세입자한테 월세를 올려달라는 갑질을 하지만 수남은 결국 하우스리스이자 마음의 집조차없는 하우스리스일뿐이다. 미소 같은 친구가 있었더라면 대출 서류를 작성 중인 수남의 뒤통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수남의 인생은 좀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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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1. 2. 16. 08:00

 

 

Man push cart 2005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페이지에 이번 달 발매 타이틀로 소개되었길래 찾아보았다. 타이틀 커버의 결코 편안해 보이지 않는 남자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제 이런 영화는 보기가 좀 불편한데 라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그의 삶이 내 생각보다 수월하기만을 기대한다.

 

파키스탄 이민자 아흐메드는 새벽 3시의 맨해튼을 달린다. 이른 시간에도 이미 자동차로 빽빽한 위험한 도로에서 무거운 커피 카트를 손수 운반한다. 자신의 일터를 손수 주차하고 나면 비좁은 카트 속에서 베이글을 진열하고 종이컵을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오손도손 함께 일하던 부인은 죽고 없다. 아들을 손수 키울 수도 없게 되었다. 빨리 자리를 잡고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살고 싶지만 당장은 갓 태어난 길고양이만을 집에 데려와 보살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조차 쉽지 않다. 뉴욕 한복판을 누비는 무슬림계 이민자의 삶. 누군가를 감당하기에 앞서 그 조차도 지금은 울타리가 필요하다. 

 

일터를 향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차와 베이글을 기다리는 동안 아흐메드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는 다시 찾아오고 그는 누군가를 기억한다. 그것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이다. 그는 소외되어있다. 이미 불행은 깊이 내재되어있고 이 모든 것을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가 살아내는 하루의 본질이 되어버렸다. 


맨해튼 어딘가를 달리는 저런 커피차에서 커피를 사서 마셨다면 그것은 한편으론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파키스탄 친구들을 몇 명 알고 있어. 그들이 이따금 파코라나 비리야니를 요리해서 가져오곤 했어.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라며 아흐메드와 짧은 대화를 이어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돌아와서도 그와의 대화를 기억하겠지만 그는 아마 기억하지 못할 거다. 하루하루 수십 명의 사람들과 주고받는 짧은 대화들은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끌고 달려야 하는 바퀴 달린 커피차처럼 기약 없이 되풀이될 뿐 그런 일상은 그의 현실을 눈속임하지 못한다. 

 

왠지 저 남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에 한편으론 그가 여전히 저 자리에서 저런 표정으로 서있을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의 본질은 살아본 적도 없는 남의 삶을 훔쳐보고 나보다 힘든 삶이라고 단정짓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안도하는 자신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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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1. 2. 4. 08:00

 

The mule 2018

 

 

미나리를 보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올라서 웃겼다. 농장일을 시작하는 제이콥(스티븐 연)에게서 원예 일에 미쳐 한평생을 보낸 할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이 겹쳐졌다. 정작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도 제이콥의 노년도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 둘의 삶은 전혀 달랐기를 바라지만.

 

아흔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손녀딸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달콤한 할아버지이지만 딸과 아내와는 사이가 안 좋다. 원예 관련 시상식에 상을 타러 가느라 딸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고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일을 택하고 가족을 등한시한 결과 그에게 남은 것은 그나마 살가운 손녀딸과 한 줌의 잡초 덩어리. 그렇게 무료하고 외로운 노년을 보내던 그는 트럭으로 물건을 옮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한두 번 날라주다 생각보다 짭짤한 수입이 생기더니 나름의 활력이 생긴다. 그런데 그가 운반하는 물건은 알고 보니 코카인.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제 와서 과연 뭘 더 잃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었을까. 그는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동네 친구 식당에 돈도 보태주고 얼떨결에 마약왕의 저녁 파티에도 초대받는다. 

 

그런데 그가 몸 담은(?) 마약 카르텔에 하극상이 벌어진다. 서두르는 법도 없고 긴장도 하지 않고 시간 개념도 없이 능글맞게 마약을 운반하는 그를 보며 동료들은 안절부절 못한다. 하지만 마약을 싣고 도로를 질주하는 깡마른 90살의 할아버지는 아무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이 얼굴과 행동에 그대로 남아있는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 정도의 세월을 견뎌내면 저절로 얻어지는 연륜에 그 특유의 근성이 합쳐져서 그는 점점 능숙한 마약 운반자가 되어 간다. 하지만 그를 믿지 못하는 애송이 동료들이 그의 뒤를 밟고 마약 운반 첩보를 입수한 수사팀까지 따라붙으며 일이 꼬인다. 그를 쫓는 담당 형사 브래들리 쿠퍼와 심지어 모텔에서 아침까지 같이 먹는다. 물론 이렇게 꼬장꼬장하고 여유로운 노쇠한 할아버지가 마약을 싣고 다니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놓쳐버린다. 범인을 잡느라 가정은 뒷전일 젊은 형사에게 할아버지는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건넨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있을 때 잘하라고. (이 부분에서는 심지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브래들리 쿠퍼한테 개인적으로 하는 조언처럼 들렸다. 두 배우가 이 영화에서 또 만났고 브래들리 쿠퍼도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뭔가 더 접점이 생긴 느낌도 들고.)

 

그런데 딸의 연락을 받은 그는 임종을 앞둔 아내를 외면할 수 없어 마약으로 가득 찬 트럭을 몰고 아내의 집으로 향한다. 갑자기 행적을 감춘 그를 찾으려 모두 바빠진다. 그는 그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한다거나 개과천선하는 기회라기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그를 찾아 준 가족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차리고 정말 사랑했지만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아내를 외롭게 남겨두고 싶지도 않았을 거다. 어쩌면 이제와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마지막이니깐. 더 늦으면 후회조차 할 수 없으니깐 말이다. 

 

항상 딴 곳에 마음이 가있던 남편과의 영원 같은 시간을 가진 아내. 그들의 삶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사랑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였을거다. 인간적인 매력으로 충만하고 서로 충분히 사랑하지만 단지 뭔가에 미쳐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는 사람으로 인해 늘 남겨지는 사람들의 고통 말이다. 반드시 뭔가 굉장히 큰 일에 마음이 쏠려 가정을 내팽개쳐야만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하고 마는 상대를 감내하지 못하고 나를 향한 기대를 나도 늘 배반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때 문제가 생긴다. 만약 내가 누군가로 인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뭔가를 미치도록 해야겠단 사람을 막을 방도는 없을 것 같다.

 

언젠가 코미디언 이경규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제대로 된 기억인지 모르지만 그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는 부분이었다. 여전히 현역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노감독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자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영화 감독으로 남고 싶은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자기분야에서 최고인 그의 삶도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을까. 영화가 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회한이 담긴 자전적인 스토리인 것 같아서 더 재밌게 봤던 기억. 이 배우를 보면 정말 뱀파이어인가 싶다. 필모를 보면 끝도 없이 내려가서 50년대 까지 간다. 학생때 퍼펙트 월드 보고 엄청 울었는데 그때도 이미 60대였구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만들었을 때도 엄청 할아버지였는데 아직 영화를 만들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다음 영화가 나오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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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1. 2. 3. 08:05

 

미나리 2020

 

 

콩나물이 나왔으니 미나리. 콩나물 다듬는 주인집 아줌마 (ashland.tistory.com/1015),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콩나물 사러 가는 아이(https://ashland.tistory.com/1016), 그리고 딸 보러 미국에 와서 미나리 키우는 할머니. 콩나물 무침에 미나리며 쑥갓이 들어간 전골이 보글보글 끓는 밥상에 이들이 빙 둘러앉아 수다 떨며 저녁 먹는 모습을 상상해도 별로 낯설지 않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곧 드라마일진대 크게 억지 쓰지 않고 양념 치지 않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예산 영화 특유의 방식들로 서로 모두 닮은 구석이 있다.

 

잘 먹고 잘 살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잘 죽기. 그러기 위해서 인생은 많은 선택과 결정을 요구한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지만 왠지 그러기엔 아쉽다. 그 결정들이 매번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합리적이고 타협 가능한 결정이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때도 있다.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혹은 그것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많은 이들이 새 삶을 찾아 무언가로부터 떠난다. 어떤 이는 고향을 떠나고 나라도 떠나고 때로는 사랑도 포기하고 사람도 포기한다. 만약 내 배우자나 자식이나 부모가 내 바람과 의지와 계획과는 정말 배치되는 결정을 내려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정적인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며 모든 것을 뿌리칠 각오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던가.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했고 자연스러웠던 결정들이 누군가를 당혹스럽게 슬프게 아쉽게 한 적은 없었을까.

 

어떤 가족이 허허벌판에 놓인 길고 긴 컨테이너 앞에 도착한다. 남자는 오랫동안 병아리 감별사로 일해서 돈을 모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농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들떠있다. 여자는 이 시골에 오래 머물일이 없다며 짐도 풀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면서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는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 어린 아들은 심장이 약하다. 병원은 멀다. 여자는 불안하다. 빚은 늘어간다. 남자를 설득해보지만 남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농장을 포기할 수 없다.

 

농장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온도차를 보며 마음이 불안불안했다. 하지만 둘 모두를 이해한다. 단지 잘 살기 위해서. 흩어지지 않고 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이것 때문에 혹은 이것이 아니면 불행해질 것 같은 불안에 둘은 갈등하지만 네가 아니면 아무도 없는 이 먼 땅에서 서로의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두려워 결국 자기 자신과 갈등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거다. 

 

병아리 공장 굴뚝에서는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피어오를 것 같은 연기가 올라간다. 알을 낳지도 못하고 닭이 되어도 맛이 없는 수컷 병아리를 태우는 것이다. 알에서 부화한 수컷 병아리는 바로 죽음을 맞이한다. 운좋게 살아남은 암컷은 사육될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 알을 낳다가 때가 되면 또 죽음을 맞이할 거다. 울타리 없는 넓은 벌판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던 닭도 결국은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가는 법이다. 닭의 입장에서 가장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닭의 삶을 인간의 삶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닭과 정말 다른 것인가. 이 지점에서 난 좀 허무했다. 남자는 그리고 남편은 그리고 아버지는 알도 낳지 못하는 쓸모없는 수컷의 삶이 아닌 의미 있고 쓸모 있는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 열심히 일하고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도 그런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신에 의지하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자도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본다. 

 

한국에서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온다. 화투짝과 함께 맛있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관대하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누굴 가르치려는 생각도 별로 없다. 그저 애정의 눈초리를 지니고 있을 뿐이며 그래서인지 가끔 멋진 말들을 무심코 내뱉는다. 미나리 미나리 신기한 풀 원더풀 기적의 풀 원더풀. 미나리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와서 낯선 이국땅의 외진 시골 시냇가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의 결정을 따를 뿐이다. 그들의 갈등을 목도하며 그들의 걱정과 사랑 속에서 자라난다. 어디에서 사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삶이 어때 보이는지도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여도 살아남을 거다.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말이다. 이것은 아마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후에도 제자리에서 하늘거리고 있는 미나리 덤불처럼. 어쩌면 다 잃었을 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순간 옆을 지키고 있는 작은 것들의 거대한 의미로 우리는 또 다른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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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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