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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6 Graduation (2016)
  2. 2020.03.14 Men and chicken (2015)
  3. 2020.03.13 Uncut Gems (2019)
  4. 2020.03.12 The Lighthouse (2019)
  5. 2020.02.28 Born to Be Blue (2015)
Film2020. 3. 16. 07:00

 

Beyond the hills 을 보고 난 후 운좋게 바로 찾아서 볼 수 있었던 Cristian mungiu 의 2016년도 영화.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라서 그냥 영어로 쓴다. 뭉규? 멍쥬?.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이 편애하는 감독들이 확실히 있는것 같다. 이 영화도 발매되어있다.

사실 이 영화는 그로부터 4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오히려 마치 유명해지기 전 데뷔작처럼 훨씬 젊고 용감하고 거칠다. 무거운 주제를 초반에 휙 던져놓고 영화가 엄격하게 전개될 것이라 예상하게 하면서 막상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미지근한 자세와 그들의 일상적이고도 개인적인 대화를 배치하는 이 감독 특유의 형식은 여전하다. 사람이 죽어서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전화를 쓰려고 돌돌말린 충전기를 느긋하게 펴는 의사와 강간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잎담배를 마는 경찰, 얼떨결에 살인을 한 수녀들을 태우고 경찰서를 향하는 자동차의 앞창을 뒤덮는 구정물처럼 리얼한 디테일들이 그렇다.

구멍난 상처를 기우고 또 기운 후에 더 이상 실로도 바늘로도 치유 불가능한 너덜너덜한 천조각이 되었을때에야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어떤 사회적 현안들. 그제서야 부랴부랴 대안을 찾고 혁신에 돌입하는 낡은 시스템. 그리고 그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일순간 또 잠잠해지며 좋은게 좋은거라며 훈훈하게 끝나는 일일연속극 같은 세상에 대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시선도 함께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국의 내부 문제로도 벅찬 작은 국가들이 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과정에서 흔히 직면하는 고충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세상에 보여주려는 예술가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동네의 영화를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곳 리투아니아의 모습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서이기도하다.

독립한지 30년이 지났고 유럽적 가치를 최우선시하지만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소련적 체취가 곳곳에 있다. 머리에 꽃무늬 수건을 두른 할머니와 마트 비닐 봉지를 손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할아버지, 세금 용지를 네등분으로 잘라 뒷면을 이면지로 활용하는 등의 절약이 몸에 밴 노년층과 대화의 절반을 리투아니아어화한 영어 단어로 채워쓰는 10대 사이에 분명히 채울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하지만 특정 과거가 정말 그렇게나 하찮고 빨리 지워버려야하는 치부이기만 한것인지 새로운 흐름에 대한 맹신이 오히려 모든것을 그르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된다.

이른 아침 갑자기 누군가가 내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진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단순히 아침부터 재수없다 라며 화가 날 수도 있을거고 평소에 뭔가 양심에 찔린 행동을 했거나 잘못한 것이 있다면 누군가의 해코지일지 몰라 불안에 휩싸일거다. 이러나 저러나 그것은 일종의 각성작용을 한다. 균열이 생긴 후에야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시작하고 최소한 그랬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소리다. 이 영화도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것이 누구의 소행이었는지는 누가 이 주인공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주인공 자신의 양심에 난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것인지도 모른다.

공공 병원 의사인 주인공에겐 졸업 시험을 앞둔 외동딸이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부인과는 각방을 쓰고 그 관계는 거의 단절된 상태이며 해체직전의 이 가정에서 부부의 유일한 대화주제는 딸의 미래이다. 그는 딸을 등교시키고는 애인의 집으로 가서 밀회를 즐긴다. 영국의 명문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은 딸에게 졸업 시험 성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험 성적으로 취종 입학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을 코앞에두고 딸은 대낮에 강간을 당한다. 미수로 그치긴 했지만 그것은 아빠의 계획에 큰 걸림돌이 된다.

딸에게 몹쓸짓을 한 범인을 찾기위해 경찰서를 드나들고 딸이 순조롭게 시험를 치룰수 있도록 교사와 시험 관계자들도 만나봐야하는 눈코뜰새없는 남자에게 내연녀는 보다 정확한 관계를 요구하고 부인은 집에서 나가달라고 통보하며 노모는 지병으로 쓰러지는등 정신이 없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깨진 창문 조각이 익명의 경고 메세지처럼 아른거린다.

의사인 남자에게 수술을 앞두고 돈봉투를 건네는 환자, 다 큰 아들에게 잼이며 채소절임등이 담겼을 유리병을 가방에 넣어주는 연금생활자인 노모, 중고 옷가게에서 샀음직한 후줄근한 니트를 입고 낡은 책을 정리하는 도서관 직원인 아내, 이곳은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희망이라곤 안보이는 나라이지만 그들 전부는 그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이들이다.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뇌물이 유효하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지녔지만 철망을 쳐야 그나마 발뻗고 잘수있는 우범지역의 5층짜리 대단위 연립에서 살 수 있는 생활 수준. 적은 월급을 쥐어짜서 시킨 자식의 고급 과외에 희망을 걸어야하는 삶. 이 모든 모습이 낯설지 않다.

80, 90년대에 공산주의 사회에서 혈기왕성한 20대를 보냈을 남자. 굳건했던 체제의 붕괴를 목도하며 혼란을 경험하고 올바르고 살기 좋은 세상에 관한 희망으로 30대를 지나왔을 거다. 하지만 자유를 얻자마자 급변할거라 믿었던 세상은 생각만큼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완숙인줄알고 깨뜨렸는데 줄줄 흘러나오는 덜익은 노른자처럼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도 구성원의 멘탈도 설익었다. 더 나은 삶은 여전히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어보인다. 하지만 본인의 삶에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은 무너진다. 내 자식만은 이 나라가 아닌 다른곳에서 꿈을 펼치길 바란다. 하지만 정작 자식이 뭘 원하는지는 모른다. 그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대해선 이미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이다. 자식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는 부모의 말에 결코 감동하지 않는다. 삶은 여전히 그곳에서 지속되고 있었지만 그것을 회피하는 이들에게 보장된 것은 절망뿐이다. 이른 아침 창을 뚫고 날라오는 돌멩이는 변화를 주도해야 할 지식인들을 향한 경고이다.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 해야할 사람은 결국 여전히 그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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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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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3. 14. 07:00

뭔가 짜증나는데 자꾸 보게 되는 포스터.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패러디한 그림을 또 퍼즐로 만든 것 같은 느낌. 분명 매즈 미켈슨이라고 써있는데 저 사람이 매즈 미켈슨이라는 건가? 이 배우도 참 가지가지 다양한 영화들을 찍었구나 라는 감탄을 품고 보기 시작하는 영화. 사실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져 헤드 이래 닭들이 등장하려고 폼을 잡는 영화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보는 내내 간당간당했다.

컬트 영화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설득력있고 모범적이며 단순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혁신적이다. 다시 봐도 똑같은 장면에서 또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매즈 미켈슨이 몸개그를 하는, 어찌보면 슬프고도 아름다운 블랙 코미디.

죽은 아버지가 남긴 비디오 테잎을 통해서 생물학적 아버지가 따로 있으며 심지어 엄마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형제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그 미지의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섬마을을 향한다. 오래도록 방치된 듯 보이는 커다란 저택 마당에는 방임된 가축들이 가득하고 또 다른 형제로 보이는 세명의 남자들은 두 형제의 말을 들어볼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폭력으로 응수한다. 조금씩 전부 비범하게 생긴 이유로 결국 전부 닮은 이들. 알고보니 이들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후이고 아버지의 비밀이 고스란히 남은 지하실은 금기의 장소이다.

다양한 가축들에 점령당한 저택은 오히려 다섯 형제가 그들 가축이 귀여워해 마지않는 애완용 동물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만큼 주객이 전도되어 기괴하다. 말보다는 주먹이 우선인것이 당연시되고 동물도 사람도 아닌 이상한 가축들이 등장하기 시직하며 설마설마했던 아버지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과학자 아버지는 자신의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물질을 각종 동물의 정자와 결합시켜 여자에게 착상시켜 아이를 얻는데 성공한다. 엄마들은 아이를 낳다가 죽어버리고 우여곡절끝에 태어난 이들은 개와 닭, 쥐 심지어 황소의 유전자까지 지닌채이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불임이었던 남자는 아이를 낳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길 꿈꿨을 것이다. 한때는 지상낙원과 같았을지 모를 외딴 섬 속 깊은 숲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고택에서. 그리고 그 섬은 희박한 인구로 행정상의 존속 위기에 처해있다. 더 이상의 인구유입도 출생의 징조도 없는 섬마을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절망적이다. 줄어드는 인구로 시름이 깊어질 국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동물과 인간의 배합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이제타인종과 다른 국적간의 결합도 퍽이나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결합과 그로인해 생겨나는 조금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혐오의 대상이 되고 사회적 불협화음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런 다양성에 관용을 가지지 않으면 어떤 공동체도 존속되기 힘들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신생아 한 명을 지키기 위해 육아서와 기저귀를 들고 날뛰는 코엔형제의 블랙 코미디, 아리조나 유괴사건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삶에 대한 염원과 그 가정을 지키기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이 영화도 그런 행복한 가정과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말이 안통하는 다 큰 무대뽀 형제들이 잠들기 전 내복을 입은 채 옹기종기 누워 아이들처럼 책을 읽는 모습, 누가 어떤 접시를 사용해야하는지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박제된 동물처럼 지하실에 잠든 엄마들의 시체, 자신의 서재에서 미이라처럼 영면한 아버지와 조금씩의 그들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를 어떤 동물들과의 공존은 불완전하게라도 함께이고픈 가족에 대한 꿈과 다름아니다.

정말 고양이나 하마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내 이웃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능이 높은 동물의 유전자는 돈이 많은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불평등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즈 미켈슨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정말 못난이로 나왔는데 하얀 테니스복을 입으니 윔블던의 스타 같아보였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지 옷이 날개인지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문제만큼이나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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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3. 13. 07:00

 

 

세상 모든 영화들은 결국은 어떤식으로든 맞물려있다. 역풍에 똥을 뒤집어 쓰는The lighthouse의 로버트 패틴슨을 보며 그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좋았을 영화, 사프디 형제의 Good time 을 떠올린다.

보는 사람은 말그대로 똥줄이 타는데 그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남의 욕실을 뒤져 발견한 염색약을 뒤집어쓰고 티비를 보는 로버트 패틴슨의 똘끼. 사프디 형제의 특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분명 나보다 젊은 세대만이 만들 수 있을 법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 20년 전 코엔 형제의 영화를 봤을때 만큼의 두근거림, 좋아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만으로 점점 빠져드는, 유행처럼 등장하는 형제 감독들 중 이들만이 단연 코엔의 계승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Good time 이 감각적인 음악과 편집, 일말의 클리셰도 허용하지 않고 뒤통수를 때리는 전개, 로버트 패틴슨의 인생 연기로 정신을 쏙 빼놓는 한편의 뮤직 비디오 같았다면 이 유태인 형제의 최근작 Uncut gems 에서는 이미 수차례 재발견되고도 남았음에도 여전히 어디에도 없는 배우, 훨훨 날아다니는 아담 샌들러를 만날 수 있다.

굉장히 기분나쁜 불안감을 유발하며 영화는 얼렁뚱땅 시작되고 놀랍게도 그 불쾌함은 신호를 기다리고 휘발유를 채우는 동안 가슴을 쓸어내릴 순간 조차 허락하지 않은채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일관적으로 지속된다. 아주 간단명료한 슈제트에 초강력 가속장치를 달아 집요하게 몰아부쳐 한 순간에 폭발시켜버리는 그 특유의 연출에 유태인들의 속물적 작태를 낱낱이 고발하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똑똑한 시선까지 합해져서 이 영화는 흡사 몰래 카메라를 장착한 급박한 다큐같다는 인상도 준다.

유태인 사회에 대한 날선 시선을 보여주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사실 어디 그들만의 모습인가. 측정되지 않은 가치에 대한 습관적인 맹신, 돈냄새를 풍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과 그 냄새를 맡고 똥파리처럼 꼬이는 사람, 한 번 맡은 냄새를 잊지못하고 코를 킁킁대며 허우적거리는 사람. 분명 그런이들에게 무슨일이 생기긴 할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언제 어떤식으로 벌어질까 . 그리고 결말에 대한 강박에서 가까스로 해방되고나면 대책없는 허무함을 안고 올라가는 크레딧을 멍하게 쳐다봐야한다.

농구광이자 스포츠 도박에 목숨을 건 유태인 보석상. (NBA의 최초득점자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누군가로부터 저당잡은 물건을 다시 저당잡혀 당겨쓴 돈으로 스포츠 도박에 몰두하고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다시 한탕을 노리는, 값비싼 시계와 금붙이들을 몸에 달고 뉴욕의 보석 타운을 시한폭탄처럼 활보하는 아담 샌들러. 시합에 운을 가져다 줄 뭔가를 찾는 노장 농구 선수가 그의 보석가게에 발을 들여놓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때마침 소말리아인지 에티오피아인지 아프리카의 어느 광산에서 아프리카계 유태인을 통해 구입한 세공되지 않은 보석 한 덩어리가 택배로 도착한다. 그 원석을 경매에 내놓아 큰 돈을 벌 꿈에 부푼 아담 샌들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힙합 갱같은 농구 선수에게 그 원석을 보여주는 실수를 저지르고 이 원석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감지했다고 믿는 농구 선수는 제발 일주일만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해달라며 농구대잔치 우승 반지 같은것을 담보로 맡기고는 가게를 떠난다. 자신의 원석을 갈취해 간 그 농구 선수의 경기에 행운을 빌어야 할 입장이 된 아담 샌들러는 급기야 그 농구대잔치 반지를 맡기고 급전을 얻어 경기에 배팅을 한다.

물건을 맡기는 순간 급박하게 오고가는 이자율과 상환시기에 대한 익숙한 대화들, 반복되는 협박과 무수한 약속, 돌려줄 돈이 있지만 그 돈을 투자해 더 큰 돈을 벌어야하기에 돈을 갚지않을 기회만 엿보는 아담 샌들러와 그런 관계의 생리를 알기에 서두르지 않는 그를 역겨워하며 벼르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도 맞물려있기에 쉽게 어찌할 수 없는 빚쟁이들, 매사에 계산적이고 조금의 손해도 용납하지않는 유태인들의 생리가 그런 과정들을 통해 속속들이 그려진다.

 유태인을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은 유태인 그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드는게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뭇매를 맞을 가능성이 크기때문에. 나이든 우디 알렌이 신경질적톤으로 스스로를 맘놓고 놀리며 그럼에도 당당한 지성인으로써의 유태인들의 습성을 되려 수준높고 세련되게 포장하는 속보이는 장기를 보인다면 이 젊은 형제 감독은 불필요한 말장난은 쏙 빼고 물질의 노예가 된 유태인 남성의 뒤를 바짝 밟으며 자신의 윗세대가 견고하게 쌓아올린 유태인적인 가치와 그들에게 드리워진 긍정적인 선입견에 반기를 든다.

지금껏 만나 본 유태인들로부터 세대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듣는 문장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 로 시작하는 그들 원칙과 가치관의 나열이다. 그들은 마치 집안에 개인 랍비를 둔것처럼 부모세대의 가르침을 종교처럼 삼고 자라난다. 하지만 영화 속의 아담 샌들러는 자식들에게 형식적인 관심만 보일뿐이고 직원 여자와 놀아나며 입만 나불대는 엉터리 가장일뿐이다. 그들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로서의 가정은 없다. 이 영화 어디에도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천년 역사의 희생자로써의 유태인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은 없다.

이제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의 자녀들이 얼추 사회의 주축이 되어가려는 지금, 부에 대한 관념과 삶의 가치관이 완전 달라졌듯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홀로코스트 이후에 이를 악물고 축적한 가치들 위에서 부족할것없이 성장하고 있는 지금의 어린 유태인들의 끌고 갈 미래에 대한 우려섞인 시선이 느껴진다.

혼을 쏙 빼놓는 아담 샌들러의 연기였고 그의 뒤로 앞으로 바짝 달라 붙어 그가 뿜어내는 아드레날린을 고스란히 담아 낸 촬영도 멋있었다. 혹자는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조차 오르지 못한 것을 두고 의아해하는데 유태인이 소재인 영화라면 오스카는 아직은 쉰들러리스트 같은 영화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조조래빗 같은 영화가 후보에 오른 상태라면 더더욱. 게다가 이 젊은 형제가 아카데미라는 주류를 통해 너무 큰 주목을 받는다면 라라랜드의 데미안 셔젤 같은 케이스가 될 것 같아서 아쉬울거다. 계속 똘끼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서 30년후에도 코엔처럼 건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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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3. 12. 07:00

 

 

 

 

40일 동안 외딴 섬의 등대를 돌보기 위해 함께 도착하는 베테랑 등대지기와 그의 신참 조수.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만큼 출발을 부추기는 것도 없다. 기한이 정해진 여정은 그래서 한편으론 달콤하고 안락하다. 얼마간은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한 망상도 한 몫 한다. 하지만 갑자기 기상 조건이 악화되어서 와야 할 배가 오지 않으면서 이들은 기약 없이 섬에 고립된다. 점점 바닥을 보이는 음식, 서로 잘 모르는 이들 관계에 그나마 윤활제가 되었던 술도 떨어져 간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진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과 하루 온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상황 그 자체이다. 행동을 제약하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기분나쁜 사람과의 동거와 혼자남는 고독 중 과연 무엇이 더 수월한것일까. 게다가 엄밀히 말해서 낭만적인 등대는 근무지일 뿐이고 하나뿐인 동거인은 고약한 상사일 뿐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기록되고 누군가는 24시간 내 위에서 군림한다. 그 모든 고충을 보상받을 방법은 단 하나 등대에 오르는 것, 하지만 정작 빛을 내뿜는 등대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 없다. 등대지기에게 빛을 다루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다. 군림하려는 의지와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그것을 제재하는 법도 사람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극한으로 치닫는다.

굉장히 기대했던 영화이다. 흑백 영화라는 것. 포스터도 멋있고 섬에 고립된 두 등대지기가 윌리엄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이라니 그냥 보기에도 잘 어울렸다. 뭔가 원시적이고 초자연적인 느낌의 윌리엄 데포와 뱀파이어로 진작에 떴지만 요즘 들어 뭔가 다크호스 같은 존재감을 뿜는 로버트 패틴슨의 조합이 궁금하기도 했다. 멋있고 깊이 있고 굉장히 색다른 영화가 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젊고 독특하고 기이한 공포를 기대했지만 그 음산함은 사실 낯설지 않았고 이들이 서서히 정신줄을 놓는 과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예상외로 너무나 많은 클리셰들이 등장했다. 물론 로버트 패틴슨이 폭풍을 헤치고 우여곡절 끝에 배설물 통을 버리러 가서 역풍을 맞는 장면에선 박장대소했다.

거칠고 위압감을 주려는 영상은 그것이 자연의 날 것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오히려 아름답고 서정적이었다. 불편한 감정과 이물감은 오히려 두 등대지기가 서로를 향해 내뱉는 공격적인 대사들과 특유의 억양과 영어 발음이 만들어낸다. 윌리엄 데포가 저런 눈을 부릎뜨고 작정하고 대사를 내뱉는데 뭔가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19세기 말 등대 속 등대지기들의 생활을 구경하는 것은 재밌었다. 물론 그것이 엄청난 고증을 참고로 했을 세밀한 묘사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통해 옛날 사람들의 습관, 오래된 물건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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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2. 28. 21:16

 

 

 

5분가량으로 짧게 편집된 오스카 시상식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예전만큼 패기 있게 내려가진 않았지만 여전히 반쯤 내려간 바지를 입은 에미넴이 거짓말처럼 스쳐 지나간다. 눈 앞의 오스카는 페이드 아웃되고 공연 전체 영상을 보며 이제는 세상에 없는 브리트니 머피와 함께 한 그의 영화 8마일을 추억하기 시작했다. 나름 베스트 음악상 수상자인 에미넴이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 앞에 선 그의 공손한 공연을 그마저도 거의 졸면서 보고 있는 마틴 스콜세지와 열심히 그루브를 타는 갤 가돗 사이의 세대적 괴리만큼이나 18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 사이의 거리는 8000마일쯤은 되어 보였다.

힙합팬이 아니어도 가슴이 뜨거워졌던 영화, 흑인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힙합씬에 혜성처럼 나타난 말끔한 백인 아이. 오스카 시상식은 언제나 역시 잘 짜인 각본처럼 타인종과 타문화에 배타적으로만 보이는 우리 백인이지만 우리도 어떤 분야에서는 차별과 편견을 딛고 일어선다는 뒤끝 있는 메시지를 에미넴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퍼튜니티를 외치는 에미넴의 위로 느닷없이 겹쳐지는 것은 에단 호크가 연기했던 쳇 베이커의 전기 영화 Born to be blue 였다.

날고 기는 흑인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백인 연주자. 그는 찰리 파커에게 선택되었고 전설적인 마일스 데이비스와 경쟁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음과 동시에 그들을 능가하고자 하는 마치 금기시된 욕망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그 피 말리는 연주 인생을 맨 정신으로 살 수 없었는지 그는 트럼펫에 대한 열정만큼의 노력을 헤로인 복용에 쏟아부었던 대책 없는 약물 중독자이기도 했다.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얻어맞아서 앞니가 전부 나가버린 상황에서도 말 그대로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광기로 핏물을 뱉어가며 트럼펫을 불었던 서부 재즈의 대명사.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그것'의 존재와 가치와 환희를 이미 알아버린 사람들이 늘 그랬듯이 그는 자신과 연관된 모든 것을 상처 내며 그의 삶을 살아낸다. 그리고 그의 음악과 그것을 연주하는 그는 결국 남았다.

 

재즈와 블루스 하면 흑인들의 정서가 깊게 서린 음악이라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끝 모르고 이어지는 즉흥 연주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오히려 그 슬픔에서 해탈한 기쁨의 정서를 전달받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한다. 그런데 쳇 베이커의 연주와 노래는 방구석에 처박힌 한창 예민한 시기의 사춘기 학생이 읊조리는 멜로디처럼 대책 없이 슬프고 나른하다.마치 흑인들이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재즈 부심을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어떤 백인의 한이 주체할 수 없는 우울로 변이 된 느낌마저 준다. 

도무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은 인생을 사는 사람. 한 가지만 미친 듯이 할 수 있도록 놔두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이것만큼은 꼭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인생은 알다시피 평탄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힘겨운 건 그런 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인생에 함께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의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그것을 실현시키는데 치러야 하는 대가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당장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보다 길들여져 있고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힌 삶에서 예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배고픔을 감수하고 뭔가에 올인하려는 순간에는 과연 이 재능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 자신도 음악을 좋아했고 재능이 있었지만 대공황에 맞서서 가족을 부양하기위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일들을 전전했던 쳇 베이커의 아버지. 아버지를 통해 음악을 배운 쳇 베이커는 그 누구보다 늘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했지만 어쩌면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이뤄낸 예술가 아들에 대한 질투심이 컸는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냉랭했다. 모두가 들어서 아는 위대한 음악을 남기진 못했지만 약에 취해 사는 아들과 달리 가정을 지켜냈다는 사실 하나로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위로한다. 그것이 자조인지 자부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늘 던지는 질문이다. 어떤 인생이 행복한 인생일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산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줄곧 살아가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데 사용하는 그 가치들은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가치일까? 

어떤 역도 독자적인 해석으로 소화해내는 배우 에단 호크. 은근한 다작 배우인데 90년대부터 2000년대를 지나온 그 또래의 배우들 사이에서 아마도 거품이 가장 적은 배우. 그의 모든 영화가 볼 만하다는 것은 그가 대단한 연기파 배우여서라기보다는 작품 선택에 많은 공을 들이기 때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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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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