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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13 Green book (2018) (2)
  2. 2019.07.19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을 보고 잡담 (2)
  3. 2019.06.13 Ben is back (2018)
  4. 2019.04.19 Night on earth (1991)
  5. 2019.04.06 왕좌의 게임 시즌 8을 기다리며 잡담
Film2019.08.13 23:02



요새 대성당 근처를 자주 가게되서인지 올 초에 본 이 영화가 머릿속에 계속 아른아른. 이 영화가 대성당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 물론 그런 것은 아니고 대성당 앞에 있는 KFC 때문이다. 영화 속의 우아하고 고고한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살라 알리)는 투박하고 거친 이탈리아 이민자 토니(비고 모텐슨)를 통해서 KFC 라는 신세계를 알게된다. 치킨을 그냥 맨 손으로 먹는 것은 둘째치고 먹고 난 치킨뼈를 운전 중 차창 밖으로 보란듯이 내다 던지기까지 하는 토니의 행동에서 피아니스트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이동 중 차 안에서 먹는 치킨은 곧 그들의 일상이 된다. 내 원칙에 상반된다고 생각해서 뭔가를 거절해야할 것 같은 순간은 사실 많지만 딱히 그런것이 아닌데도 괜히 상대방이 나를 만족시키게 했다거나 나의 어떤 고매한 습관을 바꿨다는 데서 얻게될 상대적 승리감에 이상한 자존심을 부려서 뭔가를 끝끝내 거부하고 싶을때가 있다. 이탈리아인 토니와 흑인 피아니스트의 여행은 두 사람 사이의 벽이 되는 그런 자존심과 원칙들이 서서히 뭉그러지는 과정과 겉보기에 확연히 대비되는 두 사람이 결국은 당시 주류 사회에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이탈리아 이민자와 차별받는 흑인으로서 묘한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면서 독특한 우정을 키워가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인종차별, 전쟁, 페미니즘, 실존 인물등에 관한 영화들은 이미 아카데미의 후보작 공식처럼 되어버려서 이제는 흑인 배우들이 수상하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할 정도이다. 게다가 인종 차별이 두드러진 주제인데다가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이런 영화라면 더더욱. 그런 이유로 마허살라 알리가 남우조연상을 받은 것에 별 이견이 없지만 비고 모텐슨에게 남우주연상을 줬어야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오히려 어떤 흑인 배우가 연기했더라도 저 정도의 연기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고 비고 모텐슨이 연기한 캐릭터는 정말 실감났고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이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로드무비, 남자들의 이야기,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미국 사회 속의 여러 다른 이민자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어서 정말 재밌었던 영화.



비고 모텐슨은 반지의 제왕의 과묵하고 멋진 아르곤 역으로 알려진 얼굴이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칼리토에서 경찰의 앞잡이로 휠체어를 탄 채 도청장치를 끼고 알 파치노 앞에 나타나서 빌빌대다가 들키는 찌질한 역, 퍼펙트 머더의 기네스 팰트로우의 정부로 나와서 마이클 더글라스 앞에서 여지없이 깨갱된다던가 하는 역을 맡았을때가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의 그의 연기도 그랬다. 어디에 내다놔도 어떤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생명력, 아무런 컴플렉스 없이 스스로를 전면에 내세우는 강인함, 뒤끝없는 당돌한 자존감을 지닌 생활력있는 가장, 아내를 향한 우정과 사랑을 이토록 허심탄회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등장하는 많은 옛 영화들이 떠올랐다. 그런 영화들하면 으례 빠지지 않는 것이 이탈리아인 특유의 식사, 파티 장면이다. 록키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이 애드리안과 주정뱅이 처남, 어린 아들과 초라한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이라던가 심지어 대부 2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나중에 제임스 칸과 알파치노, 탈리아 샤이어 (그리고 그녀는 물론 록키의 아내 아드리안)로 자라날 아이들과 고요한 가운데 저녁을 먹는 장면등등이 그렇다. 타지에서 또 다른 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보금자리로 돌아와서의 저녁 식사는 길고 긴 하루의 종착역이다. 



 전당포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성실한 유태인 이민자들에 대한 묘사도 깨알같다. 예의상 지나가는 말로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손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채 저녁 식사에 등장하는 유태인 노부부가 등장하는 장면이 그렇다. 돈 셜리와 함께 투어를 떠나는 다른 현악기 연주자들도 알고보면 러시아 이민자들이다. 흑인들만이 머물 수 있는 호텔 리스트가 담긴 그린 북을 지닌 채 떠나는 여행이 주된 테마이긴 하지만 결국은 힘든 시기를 이겨낸 그리고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모든 이민자들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니나 시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니나에서는 정작 딸의 독주회 객석에 앉지 못하고 뒤편에 서서 구경해야 했던 부모의 모습이 그려진다. 돈 셜리 역시 사교계의 음악 파티에 초대되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들을 위해 연주하지만 그들과 함께 식사할 수 없고 흑인들에게 지정된 식당에 가야하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다. 한 개인을 향한 사회적 차별이라는 것은 각자의 인생에서 떳떳한 주인이 되는 가능성을 빼앗는 폭력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들은 토니가 돈 셜리의 도움으로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었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말투로 돈 셜리가 불러주는 미사여구로 가득한 문장들을 받아쓰기해서 여행내내 꾸준히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는 토니, 편지를 받아 든 아내는 그것이 남편 혼자 힘으로 쓴 편지가 아님을 단번에 알아차리지만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짓는다. 풍족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상대의 노력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이라는 것. 언뜻 돈 셜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그의 개인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게 하는 사회적 편견 뿐인듯하지만 그의 삶에서 결여된 것은 결국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 줄 가족 혹은 친구의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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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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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린 북이 이런 내용이었군요 덕분에 출발디오여행보다 훨씬 알차게 영화 다이제스트를 본 느낌이에요! 영화를 못보고 지낸지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새삼 깨닫고 있음!

    2019.08.18 22: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엇 출발비디오여행 보고싶네요..문득..그 남자 진행자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있을까요.

      2019.08.23 05:21 신고 [ ADDR : EDIT/ DEL ]

Film2019.07.19 06:00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이 황망하게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일곱 시즌을 한 달 동안 몰아서 봤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논쟁과 예측을 거듭하며 매 시즌을 기다리던 골수팬들이 느꼈을 실망감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만든 이들의 피로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마지막 시즌은 나로서도 충분히 당혹스러웠다. 억지로 질질 끌고 온 드라마가 아니었기에 아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나서 디저트를 먹듯 본 5부작짜리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 물론 디저트라고 하기에는 음울했다. 아주 탁월한 드라마였나 하면 사실 그렇지는 않았고 확실히 같은 방송국의 화제 드라마의 황당한 결말로 상대적 수혜를 받은 느낌이 있지만 어쨌든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된 비극적 역사가 길고 굵은 여운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 관해서라면 제작 단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드라마의 많은 분량, 주요 장면들이 다름 아닌 리투아니아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인이 간호원 역으로 엑스트라 출연을 하기도 했다. 체르노빌 원전과 동일한 타입이었던 리투아니아의 이그날리나스 원전(10년 전에 이미 가동을 멈췄다)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고 폭발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불타는 원전으로부터 날아오는 회색 방사능 재를 낭만적인 4월의 눈처럼 감상하는 역설적 장면은 카우나스의 어떤 다리 위에서 촬영되었다. 대형 주거단지 흐루쇼프카가 들어선 빌니우스의 어떤 동네는 원전 폭발로 직격탄을 맞고 가장 먼저 대피 대상이 된 동네 프리퍗으로 등장한다.

 


촬영이 한창일 때 리투아니아에선 유명 방송사의 드라마 촬영에 대한 고무된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소련 시절로부터 30년이 지났는데도 30년 전 모습을 그대로 재연할 수 있는 동네에서 아직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게 뭐가 자랑스럽나'는 힐난과 푸념성 댓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수만, 수십만이 사는 아파트 단지를 그럴듯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몽땅 철거해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소련 시절의 습관과 사고방식들은 비단 건축뿐만 아니라 생활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최소한 그런 사고방식의 근원과 폐혜를 안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소련 체제를 겪진 않았지만 단지 지금 그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 드라마는 원전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니 절대 지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명 예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을 것이니 체르노빌이 탈원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드라마는 그렇다고 사건의 원인이 된 원전 자체의 기술적 결함에도 크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희생자들에 대한 감상적인 묘사도 최대한 자제했다. 오히려 폭발 이후의 아날로그적인 대처, 사건 처리에 여러 소련 국가에서 기계적으로 동원된 수십만 인력들의 해체 작업들을 담담하고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 속에서 암묵적이고도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거짓말이 비단 체르노빌 원전 비극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붕괴 직전의 체제를 지탱하던 본질이었음을 보여준다. 사실을 왜곡하여 그럴듯한 다른 말로 진실인 양 포장하는 것. 그냥 침묵하는 것. 말하지 않는 것.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의 범주에 놓일 수 있을까. 



드라마의 기본 토대가 된 벨라루스의 노벨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드라마 촬영 당시 리투아니아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 책은 원전사고로 피해를 본 벨라루스 시민들은 물론 당시 현직 공무원들의 인터뷰들로 구성되어있다. 원전 폭발 직후 무방비 상태로 화재 진압에 동원된 소방대원의 아내가 드라마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녀의 인터뷰가 책에는 가장 처음으로 등장한다. (물론 가장 최초의 사망자는 폭발 현장을 원전 내에서 눈으로 목격하는 원전 직원이겠고 그들의 시체는 여전히 폐쇄된 원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20년이나 전에 쓰여진 것이다. 당시 아직 살아남아서 인터뷰에 응할 수 있었던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른다. 체르노빌 원전은 분명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있었지만 원전 폭발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는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아닌 다름 아닌 벨라루스였다. 원전 자체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 근처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영토내에 원전 자체가 없었던 농업국가 벨라루스는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피해 국가로 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체르노빌을 향하는 관광버스가 있겠고 원전을 뒤로한 셀피가 어딘가에 굴러다니겠지만 그 지역은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은 땅으로 남아있다. 체르노빌이라는 명칭은 러시아어로 '검은 과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지금은 어떨까.  벨라루스는 자국 최초의 원전을 세웠고 곧 가동을 앞두고 있다. 바로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 국경 근처의 아스트라바라는 도시이다. 빌니우스로부터 고작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원전 폭발 시 봉쇄 구역을 최대 30 킬로미터로 지정한다고 해도 빌니우스에서는 꽤나 가까운 거리이다. 하지만 이 원전 자체는 리투아니아 내에서 생각만큼 이슈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가 구소련 국가들의 원전 건설에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는데 교묘하게 국경 근처에 지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이라는 소리도 있다. 보다 용이한 전력 수출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정치적 음모이든 경제적 전략이든 진실만을 말하는 체제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가장 믿을 만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진작에 건설되었지만 몇 년 전 국민투표로 가동이 무산된 리투아니아의 또 다른 원전도 따지고 보면 벨라루스 국경 근처에 있다. 타국가에 피해를 주지 않을 목적으로 원전을 내 나라 한가운데 세운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비논리적으로 들린다. 아스트라바 원전 가동을 앞두고 혹시 원전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도시의 모든 성당의 종을 울리자는 우스꽝스러운 제안을 어떤 기사에서 보았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종지기한테 연락이 닿기도 전에 인터넷이 이미 들썩할거다. 혹시 모를 재난에 대비하여 요오드화칼륨을 국가적 차원에서 배급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드라마 속에서 벨라루스의 여성 핵 물리학자는 사무실 직원에게 요오드화칼륨을 쥐어주며 최대한 빨리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방사성 요오드 흡수를 억제하는 약품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의 연구실의 방사능 측정계가 이상 수치를 보이자 연구자들은 곧바로 400킬로 남짓 떨어진 리투아니아의 이그날리나스 원전을 언급한다. 사실은 알고 보면 600킬로미터나 떨어진 체르노빌로부터 이미 신호가 온 것이다. 멀리 600킬로미터나 떨어진 연구소 창틀에 조차 몇 시간 전에 폭발한 원전이 옮겨다 놓은 방사능 먼지가 감지될 정도이고 스웨덴 어딘가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되어 소련에 진상을 요구했었던 것이라면 폭발 후의 흑연 파편으로 뒤덮인 원전 지붕의 방사능 수치는 방사능 측정계를 망가뜨리고 로봇의 작동이 중지 될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전쟁에 징집되듯 영문도 모른 채 소집되어 온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작업복을 입고 옥상으로 교대로 달려 나가 삽으로 흑연 덩어리를 아래로 밀어놓고 황급히 뛰어 들어온다. 1인당 90초에서 2분가량으로 작업 시간을 제한했다는 것이 당시의 유일한 대책이자 배려였다. 



어떤 광부들은 50도가 넘는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심지어 맨몸으로 굴을 팠다. 지금 그때와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떤 식의 사건 처리가 이뤄질까. 기술적으로 같은 사건은 반복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만한 인력이 동원되기란 불가능한 일일 거다. 방사능 피폭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신 질환과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내 직업이 방사능 측정 기사였다면 나는 거절할 수 있었을까. 당장 주택 대출금과 자동차 할부를 갚아야 하는 가장이었다면 특별 수당을 준다는 말에 조금은 혹하지 않았을까. 그곳이 나의 삶의 터전이었다면 쉽게 등질 수 있었을까. 체르노빌에서 대피해 온 나의 혈육을 나는 거리낌없이 집 안으로 들일 수 있었을까. 누구라도 드라마를 보고나면 나라의 엉성한 대처에 영웅심리를 가지고 분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거다. 당장 내 집 마당의 사과를 따 먹을 수 없는 데서 오는 절망으로부터 무엇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었을까. 



 재미있게도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200미터 정도를 걸어가면 벨라루스 대사관이 있고 거기서 또 200미터를 걸으면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나온다. 러시아의 지배를 제외하고도 리투아니아는 이들과 이미 오래전부터 공유하고 있는 역사가 있다. 리투아니아의 영토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까지 확장된 시기에 그 지역을 활보했던 대공들이 세워 놓은 성채와 성벽들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친서방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왠지 여전히 러시아색이 강한 두 나라여서 인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에는 피난길에 미처 데리고 오지 못한 형제자매 같은 미묘한 감정을 품게된다. 대외적으로는 발틱 3국이라는 이름으로 우방처럼 느껴지지만 라트비아든 에스토니아든 그 외의 구소련 국가들 국민들이 서로에 대해 '형제의 나라, 어려움을 함께 한 이웃 나라'라는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종교적 구성도 역사도 판이하게 다른 이들 나라들은 왠만하면 좀 더 서유럽으로 그리고 북유럽으로의 독자적인 살길을 찾고자 알게 모르게 경쟁하며 그 어두운 과거로부터도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이 한 조국의 일원으로 어떤 강령과 부름을 그저 믿고 따라야만 했던 시기는 분명 있었다. 



드라마에서 사건 처리를 놓고 국가 우두머리들이 모여서 긴급 대책 회의를 하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서로를 동지라고 칭하는 사람들. 진실을 규명하기위해 백방으로 뛰는 학자들을 감시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 KGB 직원들,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그들에게 달리 맞설 수 없는 사람들, 보고된 사실들의 참혹함을 인지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는 크렘린 사람들이 온통 새하얀 열주들로 가득한 호화로운 공간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 뒤편으로 아주 대조적인 핏빛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일리아 레핀의 '폭군 이반과 그의 아들 이반'이라는 그림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격찬한 적이 있는 이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의 그림은 왠만해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있다. 대를 이을 자식을 낳지 못한 아들의 아내들을 차례로 수녀원으로 보내고 임신한 세번째 며느리마저 때려서 유산시킨 아버지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찾아 온 유일한 혈육인 아들을 지팡이로 찌른다. 아들 이반은 며칠 후 사망하고 유일한 후계자였던 이반이 사망하므로써 러시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차르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이반의 대는 끊긴다. 자신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아들 이반을 간신히 가누고 있는 아버지 이반,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처럼 충혈되어 스스로에 대한 공포를 숨기지 않는 그의 눈빛은 한편으로는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결국 그의 선택은 같았을 거라 말하는 듯 하다. 이 그림이 실제 그 당시 그 공간에 걸려있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드라마상의 다분히 의도적인 배치이고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 소련의 각 나라 각 지방에서 차출되어 사건 처리에 동원되었던 사람들, 그 중에는 분명 그 시기에 태어나고 자라서 믿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믿음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의 인생은 항상 묻힌다. 스스로의 독자적인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부정하고 항상 내 개인의 인생보다는 공동체의 삶이 더 중요했으며 늘 누군가의 말을 믿고 복종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시기. 멀쩡해보이는 숲과 강을 잔뜩 오염시킨 방사능 물질처럼 머리 깊숙히 틀어박힌 사상으로 상장 하나와 몇푼의 상여금에 조국의 어딘가로 차출되어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에 폭군 이반이 가누고 있는 핏빛 이반의 이미지가 겹치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전쟁에서 죽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사람들에게 그 당시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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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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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설마

    왕좌의게임 원작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한 참이었는데..
    읽지 말아야 할까?

    체르노빌이 너한테는 더 와 닿은 곳이 되었구나.
    우린 체르노빌은 역사책에서나 접했던 사건이고
    우린 후쿠시마를 매일매일 이야기 하지..
    난 사실 이미 바다는 거기나 여기나 똑같이 오염됐다 생각하고 일본에 가는것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는데 안전불감증인가?
    이젠 다른 이유로 일본을 갈 수 없게 됐네...

    2019.07.19 22:23 [ ADDR : EDIT/ DEL : REPLY ]

Film2019.06.13 15:47


오랜만에 줄리아 로버츠가 보고 싶어서 비교적 최근 작이 있어서 보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예전에 살던 동네 서점 주인아저씨 이야기를 하다가 노팅힐의 휴 그랜트가 떠올랐더랬다. 그렇다면 어찌 그가 서점에 들어서던 줄리아 로버츠를 보던 그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여전히 영화 귀여운 여인의 발랄한 티브이 광고가 기억난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역은 알 파치노와 멕 라이언이 거절한 역이라고 하지. 지금의 멕 라이언은 너무나 변해버렸지만 너무 여위었다면 또 여윈 대로 여전히 싱그러운 줄리아 로버츠를 본다. 이제는 저렇게 큰 청년의 엄마 역할을 할 수 있는 줄리아 로버츠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려나 예상하고 보는데 의외로 굉장한 긴장감 속에서 보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매즈 미켈슨의 헌트가 뿜어내던 불안감과 흡사했다. 겨울. 크리스마스이브.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폐쇄적인 작은 마을. 불안은 여전히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도 그랬다. 벤은 돌아왔지만 그가 되돌아온 세상도 그 자신도 이미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옷을 사러 쇼핑센터에 가서 벤은 우연히 친구와 마주치고 친구는 벤을 보며 죽은 줄 알았다며 어안이 벙벙해져 뒤돌아 선다. 벤 스스로에게 조차 그 존재는 단지 원래부터 살아 숨 쉬는 존재라기보다는 죽다가 살아난, 죽을 수도 있었던 혹은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존재로 변질되었다. 그런 아들에게 엄마는 살라고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다 살아 난 벤이지만 동네의 여자 아이는 살아 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지내려고 요양소에서 예고 없이 돌아오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려는 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의 마약상, 마약 공급책이기도 했던 벤으로 인해 마약에 빠져든 어떤 사람들, 그리고 이미 죽고 없는 사람조차 현실의 그를 옭아맨다. 마약 중독에 관한 영화가 널리고 널렸지만 유난히 어둡고 음울한 느낌을 받은 이유는 아마 중독된 자들이 지극히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 속의 평범한 인물들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어려서 함께 자라고 뛰어놀던 동네 아이가 마약에 빠져 알아볼 수 없는 몰골로 변해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순간, 한 중독자의 엄마는 빨리 엄마에게 돌아가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의 악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평범한 다수의 불행이 요구되어야 하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가족들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라는 말조차도 타성에 젖은 무책임한 말로 들릴뿐이다. 조폭들의 칼받이가 되어서 칼에 찔려가며 엄마를 절규하던 아주 평범한 소년들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엔딩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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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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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9.04.19 19:02

지상의 밤... 영어 제목보다 한국어 제목이 조금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지상... 어떻게 들어도 참 멜랑꼴리 하고 센티멘탈하다. 2년이 지나면 이 영화도 30년 전 영화가 되니 지금 이런 영화들을 고전처럼 찾아보고 있을지 모를 나보다 어린 세대들에겐 어쩌면 90년대 후반의 내가 70년대의 스콜세지 영화를 보았을 때와 같은 그런 기분일까. 그런데 80년도에 영원한 휴가를 만든 짐 자무쉬를 스콜세지와 거의 동시대의 감독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텐데 이 두 감독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임권택과 홍상수 사이에서 감지되는 세대차이가 느껴진다. 짐 자무쉬가 도시 뒷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파편처럼 부유하는 인물들을 최대한 날 것으로 표현해낸다면 스콜세지는 그런 인물들에 묵직한 표정과 목소리를 부여하며 아주 드라마틱한 원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를 떠올린다.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니로가 만들어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택시 운전수, 트래비스. 세상 모든 영화 속의 택시 운전기사들을 볼 때마다 반사적으로 트래비스를 떠올리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거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들도 트래비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고. 그런데 실제 택시를 타면 오히려 지상의 밤 속의 택시 운전기사들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생활 속에서 내가 일미터 반경 내에서 마주치는 인물들은 오히려 좀 더 평범하고 무덤덤한 표정일 거다. 세상을 이루는 나와 같은 한 조각, 작은 입자 같은 인물들 말이다.지상의 밤은 뉴욕, 로스앤젤레스, 파리, 로마 그리고 헬싱키 에피소드로 나뉘어져있고 그들의 밤을 운전하는 5명의 택시기사들의 이야기이다. 매번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마지막 도시는 헬싱키가 아닌 도쿄였다고 착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쿄 에피소드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헬싱키를 겨우 생각해내곤 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아마 헬싱키가 생뚱맞은 배경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영화에서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호텔 로비에 매달려있는 시계들을 떠올리면 상식적으로 그런 시계들이 보통 런던 파리 뉴욕 홍콩 도쿄 뭐 이런 곳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서도 였을 거다. 새해에 헬싱키에서 보낸 짧은 하루 탓에도 연초부터 이 영화 생각을 유독 많이 했다. 번화한 헬싱키의 중심가를 향하는 공항철도가 거리 낙서로 가득한 평범하고도 무뚝뚝한 주거 단지들을 휙휙 스쳐 지나쳤다. 직장에서 해고된 동료를 대신해 신세 한탄을 하던 남자들이 택시에서 내려 비틀대며 걸어가던 것과 꼭 같은 그 눈 덮인 거리를 하루 상간에 왔다 갔다 지나치며 결국 헬싱키 그 특유의 암울한 어둠이 기억났고 택시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일상적인 대사로만 채워진 그 짧은 에피소드들에서 자무쉬는 참 풍부한 느낌을 담아냈구나 다시 감탄했다. 

로스앤젤레스 에피소드에서는 가위손의 긴 머리 소녀에서 리얼리티 바이츠의 숏커트 여인으로 성장하는 중의 보물 같은 위노나 라이더를 만날 수 있다. 운전 내내 담배를 꼬나물고 되바라진 톤의 대사를 토해내는 그녀는 뒷좌석의 지나 롤랜드의 카리스마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혹시 영화를 해보지 않을래요. 얼굴도 예쁘고 택시 운전수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요'라며 마치 '내가 너의 구세주이다, 너는 분명 지금의 인생이 싫다'라는 확신에 찬 영화배우님의 말에 위노나 라이더는 '전 그냥 택시 운전할래요. 모든 게 내가 계획한 대로 되고 있어요'라고 쿨하게 말하며 트렁크를 닫으며 이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이들이 각자 집으로 호텔방으로 돌아가 다리를 뻗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의 뻔한 엔딩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흥겨운 리듬으로 시작하는 짧은 영화를 저런 단순한 대화로 임팩트 있게 끝낼 수 있는 것이 자무쉬의 힘일 거다. 각자 잘하는 것이 분명 있다. 단편을 찍는 스콜세지는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좀 긴 서사를 가진 자무쉬의 장편 영화들에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뉴욕 편에는 드레스덴에서 온 독일 이민자가 택시기사이다. 말도 운전도 버벅된다. 뉴욕의 밤거리를 제대로 알리 없다. 결국 그보다 뉴욕 길을 훨씬 잘 아는 급한 승객이 운전대를 잡는다. 택시 여행의 절반이 뒷좌석의 여성과의 욕설로 이루어진 이 거친 택시는 낮처럼 밝은 뉴욕의 밤을 종회무진 질주한다. 그리고 택시에 가득 들어찬 감성은 오히려 옆좌석에 앉은 독일 이민자가 느끼는 평화로움이다. 무엇 때문에, 어떤 말이 오가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오롯이 마주하는 역설적 고요함 같은 것, 길 모르는 택시 운전사를 탓할 만큼 한가하지 않은 성질 급한 승객이 가끔은 조급했을 이민자에게 선사한 선물 같은 밤이다. 뉴욕이라는 배경 때문에 특히 트래비스를 자주 떠올렸다. 

이 흑인 배우는 짐 자무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결국 이름은 항상 모르겠다. 파리 에피소드에서는 어쨌든 앞을 못보는 베아트리체 달의 연기를 보는 재미. 앞을 못 보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택시기사와 당당하게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는 여인, 어두운 센 강변에 내려 아무런 문제 없이 제 갈길을 걸어가는 여인과 곧 자동차를 들이받는 택시 운전기사 뭐 그런 에피소드이다. 그는 아마 그녀가 안전하게 잘 걸어가는지 살펴보다 사고를 냈을 거다. 

헬싱키에서는 술에 잔뜩 취한 남자 승객 3명이 탄다. 새차를 뽑자마자 직장에서 해고당해 절망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셔준 친구들이 친구의 하소연을 늘어놓자 운전기사가 그보다 더 슬픈 자기 얘기를 들려주며 모두를 울음바다에 빠뜨리는 뭔가 교과서적인 흐름이다. 사실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지속적으로 묘사하는 어둡고 침침한 핀란드의 느낌도 그렇지만 난 이렇듯 조금은 절망적이고 세기말적인 느낌의 영화 속 북유럽이 오히려 실제의 그곳과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미디어에서 보여주며 모범사례로 삼으려는 밝고 긍정적인 전형적인 북유럽의 모습은 어쩌면 허상이라는 반사적인 반발감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다. 기후와 원초적 자연이 만들어내는 어둡고 비관적 감성들을 보완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완벽한 사회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들이 바라보는 자신도 외부세계의 그것만큼 긍정적일까 하는 물음이 생긴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나왔으니 예상할 수 있겠지만 로마편은 가장 정신없는 동시에 생기 넘친다. 이 도시에 대한 사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도시 그 자체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노력한 에피소드이다. 그는 다섯 중 가장 능숙한 운전사이자 가장 밤의 도시를 즐긴다. 그는 몇 달간 말 한마디 못해 본 사람처럼 떠든다. 어린 시절 첫 자위 경험부터 시작해서 처형과 나눈 금기된 원나잇에 대한 이야기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깜깜한 로마 시내를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새벽의 도시 곳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뒷좌석의 신부에게 다가와 살가운 인사를 건네는 성전환자들, 택시기사의 듣기 민망한 고해성사까지 신부는 버겁기만 하다. 그는 지병이 있었는지 손에 겨우 덜어낸 알약이 흔들리는 택시 속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베니니의 폭풍 수다 속에서 급사한다. 급사한 신부를 거리 벤치에 앉혀놓고 그는 성급히 택시에 올라탄다. 로베르토 베니니급의 수다를 털어낼 택시기사를 만날 가능성은 로버트 드 니로의 헤어스타일과 표정을 가진 택시기사를 만날 가능성만큼 희박할 거다. 근데 있을법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내용의 수위만 다를 뿐이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신기하게도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들이 세상엔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면 특히나 택시처럼 아주 밀폐된 공간에서라면 조금 민망하고 불안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느낀 상대를 오히려 연민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경청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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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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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9.04.06 22:36


마지막 시즌을 남겨두고 있는 왕좌의 게임. 8년간 방영되었던 일곱 시즌을 한 달 동안 몰아서 보았다.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새 시즌 시작하기 전에 다 보려고 마치 1분 남은 투명의자를 하는 심정으로 팔다리를 빌빌 꼬며 보았다. 반칙왕에서 송강호가 벌 서면서 난닝구를 물고 버티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딱이다. 잘 이해도 안되고 별로 재밌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몇 년 전에 시즌 1을 중반까지 두 번 보다가 말았다. 다행히 8년 동안의 내용 전개를 모르는 상태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시즌이 영영 시작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 기분은 뭘까. 나는 왜 뭔가가 결론이 나는 것이 이토록 싫은걸까. 마지막 시즌이 다 끝나면 그때가서 다 몰아볼걸 그랬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70편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마치 한 시즌으로 느껴질 정도로 모든 이야기들과 인물들이 아직 팔딱팔딱 생생하다.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든다. 

제목이 왕좌의 게임이고 그들은 그 왕좌를 심지어 철왕좌라고 부른다. 권력의 최상위자,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물불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말 안해도 뻔하다. 이것은 어쩌면 그냥 금수저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극 속에서 끈질기게 부상하는 인물들이 핸디캡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모두 명문가 출신이다. 물론 건물 몇 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금수저가 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성 안에 은신하면서도 몇 년 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구비해야 함은 말 할 것도 없고 금광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고 대장 말 한마디면 집안 대대로 목숨바쳐 싸워 줄 몇 만의 병사는 물론이다. 심지어 용을 다룰 줄도 알아야한다. 그런데 그 화려한 의상들과 치렁치렁한 보석들, 정의를 앞세운 대사들과 그럴 듯한 아첨들을 먼지 불 듯 후후 불어 다 걷어내고 나면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아주 단순하게도 어떤 부모들과 그 자식들의 관계이다. 결국 이들 모두는 이름 있는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서 밤이나 낮이나 선조들의 역사를 읊으며 가문을 지켜나가야 하는 숙명을 학습해 나간다. 어떤 부모들은 자신이 채 이루지 못한 이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너와 가문을 위한 것이라며 자식을 닥달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만큼만 살아라 라고 자식에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스스로의 확고한 철학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한다고 해도 인간이라면 내가 누리지 못했던 삶에 대한 욕망이 분명 죽음 끝까지 따라다닌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자식의 삶에 투영시킨다. 태생적으로 권력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어떤 자식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량이나 낙오자로 부모에게 낙인찍히면서도 어떤식으로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혹사 시킨다. 불구로 태어나거나 혼외자식으로 태어난 이들 역시 평생을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투쟁한다. 그런 그들이 그 악조건을 극복하고 특유의 근성과 노력으로 모두 훌륭한 지도자가 되면 다행이지만 일부는 사이코 패스 기질이 다분한 지도자로 성장하고 부모를 죽이는 패륜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부모들은 돌에 맞은 자식에게 더 큰 돌을 쥐어 준다. 더 강한 자식을 길러내기위해 비교도 서슴치 않는다. 맹목적인 사랑으로 길러진 어떤 이는 부모 조차도 두려워 해야하는 가학적 폭군으로 성장한다.  

그런 금수저들의 틈에 맛깔나게 도사리고 있는 이런 조연급 캐릭터들의 운명이 어찌될지도 항상 궁금하다. 그들은 출신 성분 따위에는 아랑곳 하지 않기에 누구보다 자유롭다. 보통은 그들 자신이 한때는 한 무리의 대장이었지만 '나보다는 너가, 너만이 더 강력해. 너만이 우리를 이 수렁에서 건져줄 수 있어' 라고 감상적으로 말하며 떠오르는 세력의 조력자가 되길 자처하는 인물들이다. 현실인식과 상황대처능력이 뛰어나지만 그 정의로움의 기저에는 분명 좀 더 편하게 묻어가려는 심리가 강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절대 노선을 갈아타지 않을 충성심 가득한 사람들과 주인님의 쇠락을 예상하며 어리석은 판단에 조차 힘을 실어주며 한 눈을 팔기 시작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이것은 결국 권력에 묻어가려는 사람들과 스스로 그 권력을 쟁취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권력에 기생하면서 어 혹시 나도? 라고 생각하고 나름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제거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캐릭터들이 있고 세상사 새옹지마의 자세로 충만한 냉소적인 캐릭터들이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분.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배우들이 많지만 그 전부터 이미 알려진 배우들도 상당히 많은데 아마 그 중 독보적으로 지명도 높은 배우는 숀 빈, 그는 북구의 수호자, 윈터펠의 영주, 에다드 스타크를 연기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의 영화라면 사일런트 힐에서 회색재가 날리는 유령 도시 한 가운데에 딸을 잃고 불안한 눈빛으로 서 있던 모습. 어쩌면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의 윈터펠 수장이자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캐스팅에 그 영화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높낮이 없는 중저음의 침착한 목소리가 불안한 앞날을 예측하는 듯한 눈빛과 우수로 가득 찬 저 표정에 힘을 실어준다. 그는 의리있지만 우유부단하고 권력욕이 없으며 지방색이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오른팔이 되어 달라고 손수 윈터펠까지 행차하는 왕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윈터펠을 떠난다. 드라마의 명대사 중 하나인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를 멋들어지게 내뱉더니 그의 출타는 언제든 찾아오고 말았을 그들의 겨울을 앞당기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아들이 성벽에서 떨어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자신의 동생을 사랑했던 왕과의 우정 때문인지 이번이 아니면 윈터펠에 틀어박혀 여생을 보내야한다는 기사 본능이 작용했던건지 미련없이 떠난다. 모두 자기 핏줄은 아니지만, 그의 역할을 대신해 줄 만한 장성한 자식들이 있으니 이제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시즌 1 첫 회에 에다드 스타크가 자식들과 함께 성으로 돌아오면서 새끼들을 남기고 죽어있는 어미 늑대를 발견하는 것은 이미 그가 이 드라마에서 오래 살아 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뻔할 정도로 충분히 암시했지만 시즌 1도 못넘기고 그렇게 죽어버릴 줄은 정말 몰랐다. 억울하게 반역자로 몰린 에다드 스타크는 스스로 반역자임을 인정하고 영원히 윈터펠에 짱박히는 조건으로 처형을 면하는 제안을 받고 제 입으로 난 반역자라고 거짓말을 하고도 결국 잔혹하고 무자비한 어린 왕의 눈먼 판단으로 처형당한다. 이 정도 비중의 인물도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대담한 전개에 놀라면서도 권력에 눈이 먼 무자비한 지도자들과 그 폭정 속에서 살아 남기위한 자들의 맹목적인 충성들이 만들어냈던 숱한 역사 속 장면들을 생각하면 이것도 마냥 드라마틱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드라마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가문의 명예를 되찾으려는 스타크의 자식들과 부정한 방법으로 찬탈한 왕위를 수호하려는 라니스터가의 긴긴 대결이다.  

전형적인 귀족 부인 역할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좀 의뭉스러운 캐릭터라고 해야하나. 암암리에 일을 크게 만들며 초반의 모든 갈등을 앞장서서 야기하는 에다드 스타크의 부인 캐틀린 스타크. 나는 이 배우를 하치에서 리차드 기어 부인으로 나왔던 조안 알렌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봤는데 지금 찾아보니 전혀 다른 배우였다. 캐틀린 스타크가 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피의 결혼식 에피소드는 정말 압권이었다. 그만큼 가장 극적으로 죽고 가장 속속들이 묘사된 캐릭터이다. 에다드 스타크와 자식 다섯을 나은 그 자신도 명문가의 여식. 자식 사랑에 목숨이라도 내어줄 자세가 되어 있는 드라마 속 많은 엄마들 중 한 명으로써 가장 감성 지수가 높고 사려깊게 그려지는 듯 하지만 알고보면 그냥 내 자식이 가장 중요한 엄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주겠어' 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부모가 보는 앞에서 그들 자식의 가슴에 칼을 꽂고 독약을 들이붓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상실감을 통감하며 가슴 아파할만큼 주인공들을 우상화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이 드라마의 힘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의 자세가 팽배한 시대이고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지도자가 결국 왕좌를 차지 할 수 있을거라는 암시로 드라마는 흘러 간다. 처형당한 에다드 스타크의 명예 회복을 위해 라니스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버지의 대를 이어 북구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세력을 모으는 큰 아들 롭 스타크를 돕기 위해 가문의 옛 동맹들을 차례차례 찾아나서 도움을 요청하며 외교 수완을 발휘하기 하기 전까지는 그냥 윈터펠에서 남편 내조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전형적인 귀족 여인상으로 그려지는 듯 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남편 에다드 스타크와 큰 아들 롭 스타크의 그것을 압도하는 은근한 권력욕이 있다. 때로는 두 남자가 엄마와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하기 싫은 권력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 될 정도로 권력의 생리에 밝다. 

필요할때면 정의를 운운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그녀의 기회 주의자적 면모는 결국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아들의 명예를 지키고 아들에게 지도자로서의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한 모성으로 아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동맹국과의 약혼을 성사시켜버리면서 절정을 달한다. 하지만 전쟁 중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감성적인 아들은 동맹의 힘으로 전쟁에서 이기고서도 파혼을 선언한다. 그리고 파혼에 자존심이 상한 동맹은 라니스터와 손잡고 스타크 가문을 배반하고 임신한 며느리와 아들, 엄마는 몰살당한다. 원칙에 충실하고 이성적인 그녀는 불안한 결말을 야기할 수도 있는 아들의 파혼 선언을 왜 그냥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그녀는 아들과 사랑에 빠진 전장의 나이팅게일 같은 여인에게 여자로써의 질투를 느끼지만 결국 아들에 대한 모성으로 그녀를 인정한다. 그것은 어쩌면 행복하지도 불행하다고도 할 수 없는 밋밋한 그녀의 결혼 생활에 대한 반추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대한 여자로써의 동경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평생동안 따라다니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리틀 핑거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거두어들어 양자처럼 키워진 리틀 핑거는 그들 가문보다는 조금 못한 가문의 자식이었을거고 그녀는 정해진 수순대로 더 명망있는 가문과의 결혼을 선택한다. 게다가 실제로 캐틀린이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사람은 에다드 스타크의 형이었다. 필요하다면 약혼자의 동생과 결혼하기도 하고 며느리의 오빠와도 결혼해야 하는 것이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운명이다. 결혼은 동맹의 조건이자 화합의 상징이고 대를 잇기 위한 출산을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녀는 수단과 댓가로써의 결혼이 아닌 순수하고 뜨거운 감정에 이끌린 아들의 결혼을 그렇게 묵인할 수 밖에 없었을거다. 자식이 자신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는 많은 부모들의 욕망이 그것일거다. 

에다드 스타크의 큰 아들 롭 스타크. 극 초반부터 가장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더니만 피의 결혼식에서 비극적으로 죽는다. 멋진 스코틀랜드 억양을 가지고 있던 배우. 목소리도 인상적. 보는 내내 콜린 파렐 생각이 났다. 그런 억양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좋은건지 억양이 좋게 들리면 목소리도 덩달아 괜찮게 들리는건지 항상 의문이다. 언어의 억양이라는것이 기본적인 목소리의 톤을 결정하기야 하겠지만. 동생들이 모두 나이가 어려서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어려서부터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자라난 큰 아들의 기품을 온 몸으로 풍긴다. 흠잡을데 없는 둥글둥글한 인성에 쉽게 적을 만들지도 않지만 결정적으로 그런 정적인 면이 그의 몰락을 부추긴다. 작은 승리에 도취된 상태에서 나이팅게일과 사랑에 빠지며 동맹과의 약혼을 파기하고 약혼 상태였던 신붓감을 사촌 형에게 내어주는데 그 결혼식에서 임신한 아내와 어머니와 함께 처참하게 살해된다. 시즌 3의 피의 결혼식 에피소드에서는 스타크 가문의 핵심인물이자 드라마의 중요 인물들이 다 제거되면서 어느 정도 비중있다는 인물들도 갑자기 죽어버릴 수 있겠구나 하는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것이라기 보다는 누가 어떤식으로 언제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상상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왠지 언젠가는 죽어버릴 것 같은 인물들이 이야기거리가 없는 밍숭밍숭한 조연급 캐릭터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더 강력할수록 거침없이 제거되고 그 사라진 캐릭터들의 화려함과 개성은 남은 인물들에게 고스란히 가중된다. 워킹 데드 같은 드라마가 새 시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기존 인물들의 개성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편이라면 왕좌의 게임에서는 시즌 후반에 등장하는 유론 그레이조이 이외에는 별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 시키지 않으면서 긴 시즌들을 이끌어갔다.  

스타크 가문에 맞서는 라니스터 가문의 수장이자 왕도 눈치봐야하는 재력가이자 지략가인 타이윈 라니스터. 강력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드라마도 인생도 재미가 없다. 오히려 왕좌는 조금은 불완전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정도의 포스를 풍기는 배우라면 안소니 홉킨스 정도의 필모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스위밍 풀에서 별로 존재감없는 출판사 사장으로 나왔던 것만 우선 기억이 나고 이제 그의 다른 영화를 보더라도 라니스터를 능가하는 포스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시즌 1 후반부부터 등장하면서 과연 부모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저들 라니스터들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실 극 중 카리스마가 무색하게 별다른 비중없이 그려지다 좀 허망하게 죽는 인물. 어쩌면 드라마 속의 타이윈 라니스터 본인도 남은 생애에 딱 그 정도의 역할만 할 수 있는 스스로의 한계에 냉소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로 하여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식들을 쥐잡듯 잡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거대한 재력을 기반으로 왕의 전쟁을 지원하고 결과적으로 딸을 왕비 자리에 앉힌다. 평생 쓰고도 모자를 돈을 가지는 재력가들이 자신이 가진 것 전부를 주고라도 사고 싶어하는 그 권력을 위해 그는 평생을 학습한다. 하지만 스스로 왕 위에 오르기에는 아무런 왕족적 혈통이 없고 수렴청정을 하기에도 어린 손자는 지나친 폭군이며 이미 반역으로 이뤄낸 그들의 왕좌 자체가 명분이 없다. 결국 그는 명분 없는 권력을 지탱해보려 힘 좋은 주변 가문들을 끌어모은다. 난장이 아들은 자신들이 손수 무너뜨린 스타크 가문의 딸과 결혼시키고 자신의 딸은 손주 며느리의 오빠에게 시집을 보내려는 나름의 지략을 뽐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한계이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못이기는 척 그런 잘못된 제안들을 받아들이지만 결국 부모로써의 일말의 자비심도 없는 그런 그의 판단들은 그를 파멸로 이끈다. 죄없는 아들의 처형을 묵인하는 패륜의 끝을 보여주며 그는 결국 화장실에 앉은채로 아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진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어떤 계기로 완전 개과천선하게 되지 않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연민을 불러 일으켰던 조프리 바라테온. 악랄한 엄마도 비정한 할아버지도 능가하는 거침없는 캐릭터이지만 아버지로부터의 사랑이 완전히 결여된 채 왕좌를 위해 사육되는 인물이다. 첫번째 에피소드부터 거슬리는 눈빛을 보여주더니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잔혹한 새디스트의 면모를 보이며 파멸해간다. 흔히 말하는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무관심한 아버지라는 삼박자를 갖춘 금수저 중의 금수저. 타이윈 라니스터의 손자이자 로버트 왕의 아들이지만 알고보면 라니스터 쌍둥이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비운의 인물로 엄마 서세이 라니스터의 계략으로 왕이 되긴 하지만 엄마와 할아버지의 치맛바람으로 고분고분한 왕이 될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폭군으로 변해간다. 에다드 스타크를 처형하라는 그의 명령은 계략에 능한 엄마인 서세이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 스타크의 무리한 처형은 그가 왕비가 오빠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는 소문 아닌 흉흉한 소문을 퍼뜨리고 그의 왕위 계승은 명분을 잃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왕위 계승자로 엄마에게 혹독하게 학습되었지만 탄생의 비밀로 인한 컴플렉스로 로버트 왕이 밖에서 낳은 자식들을 모두 찾아내서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그는 공포정치를 감행한다. 언젠가는 죽게될것 같은 인물, 하지만 초라한 행색으로라도 살아남길 바랬던 인물인데 똑똑하고 현명한 난장이 삼촌을 향한 능멸을 일삼는 아슬아슬한 파티 장면 속에서 독살된다. 그의 독살로 누명을 쓰고 궁지에 몰린 티리온 라니스터가 아버지를 죽이고 도주를 감행하면서 결국 대너리스와 조우하게 되니 가장 큰 그림을 위한 가장 필요한 죽음이기도 했다.  

라니스터들의 계략이 아니었다면 죽은 형의 유언에 따라 피 한 방울 안흘리고 왕이 될 수 있었던 스타니스 바라테온과 그의 부인. 사실상 종교에 빠져 동생도 죽이고 딸 마저 불에 태워 공양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측은한 인물이기도하다. 직언하는 부하의 말에 귀 기울일줄 알고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지 않는 온건하고 관용적인 지도자형으로 그 스스로를 움직이게 했던 것은 오히려 권력욕이라기보다는 기사로써의 명분이었다. 대를 이을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심신이 미약한 아내가 아니었다면 그의 삶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너가 그렇게 된 건  다 내탓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건강한 영감을 줄 수 없다. 스타니스의 위치와 삶의 가치는 아내의 죄책감으로 정의되어버린다. 

사실 시즌 1을 보다가만 가장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 캐릭터와 도트라키 부족의 등장때문이었다. 초반부터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갈피를 못잡고 있는데 갑자기 배경이 뜨거운 지방으로 옮겨가더니 비논리적인 폭력과 섹스신이 난무하면서 판타지 코드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 이 건장하고 우락부락했던 불멸할것 같았던 야만인 도트라키의 칼 드로고 캐릭터는 시즌 초반에 칼에 찔린 상처가 덧나면서 맥없이 죽어버린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갓 결혼한 대너리스의 가녀리고도 순수한 자태는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그의 죽음으로 그녀는 부족의 수장이 된다. 철왕좌를 차지하기에는 너무 미개한 무사 캐릭터라 오래 가지 않을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인상적인 전투씬도 하나 없이 무기력하게 사라짐. 드라마 초반에 짧고 굵게 등장했기에 왕좌의 게임 그림자에서 가장 일찍 벗어나서 아쿠아맨이 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저기 보이지. 저기 너 형이 있잖니. 저기까지만 잘 뛰어가. 그러면 넌 살 수 있어' 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는 달리는 막내 스타크를 향해 활을 겨누기 시작하는 이분. 램지 볼튼. 왕좌의 게임의 어떤 전투씬들은 마치 실제 역사의 한 장면을 재현하듯 묵직하고 스펙터클하게 한 시간이 넘는 에피소드 전체를 커버하기도 했다. 시즌 초반의 블랙워터 전투도 그랬지만 시즌 6의 서자들의 전투 에피소드는 정말 장관이었다. 영화 속의 전쟁과 전투들이 대부분 뻔한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해도 양 진영이 거의 모든것을 잃는 상태에서도 승자는 존재한다. 램지 볼튼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밖에서 낳아 온 자식으로써의 지위를 아들에게 상기시키며 그의 전투욕을 자극한다. 그가 중요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때 적자로서의 지위를 선포하지만 아들은 이미 질렸다. 그는 아버지를 손수 살해하는것으로도 모자라 아버지가 정실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자 25살은 족히 차이가 날 것 같은 갓난아기임에도 서자로서의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모친과 아들을 사냥개에 물려뜯어 죽게 만든다. 그리고 서자들의 전투에서 패하고 나서는 스스로도 개들의 먹이가 된다. 독살된 조프리 바라테온을 잇는 사악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제 마지막 시즌을 남겨두고 이런 극악무도한 캐릭터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약간 균형이 깨진 것 같은 느낌이다. 모두가 함께 맞서 싸워야하는 나이트 킹, 화이트 워커스가 남아있지만 그들을 악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그들은 너무나 완벽하다. 그들이 정복되길 바라지 않는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위의 인물들이 마지막 시즌되기 죽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들이라면 지금부터는 살아남아서 걱정되는 인물들. 시즌 7까지 다 보기 전의 유일한 스포일러였다면 서세이 라니스터의 이 헤어스타일을 봐버렸던 것. 뭔가 마구 잘린것이 분명해 보이는 헤어 스타일로 그녀의 삶도 평탄하지만은 않겠구나 짐작 할 수 있었다. 서세이는 드라마에서는 드물게 누군가의 딸인 동시에 누군가의 엄마인 캐릭터이다. 엄격한 아버지 타이윈 라니스터의 딸이자 로버트왕의 왕비 그리고 조프리 바라테온의 엄마이기도 했으며 결국 안되겠다 그냥 내가 해야지 하고 여왕이 되어버리는 인물. 라니스터의 자식들은 기본적으로 애정 결핍을 안고 자라난다. 난장이 동생을 낳다가 죽어버린 엄마의 부재를 안고 평생 동생을 증오하며 살아가며 그들의 아빠는 평생 서로를 사랑한 쌍둥이 자식들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할 정도로 부모로써 무관심하다. 악랄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다가도 아버지 앞에서는 별로 힘을 못쓰고 쩔쩔맨다. 그래도 쌍둥이 남자 형제 제이미 라니스터와의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진실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는데 결국 그녀의 권력욕에 학을 뗀다. 그녀는 쌍둥이 형제 제이미와의 사이에서 자식 셋을 낳지만 자식 둘은 독살당하고 막내 아들은 자살한다. '왕이 되거나 아니면 그냥 죽기', '권력을 지향한다는 것이 푸줏간 주인의 행위와도 같지만 권력에서 한 발짝 물러서있는다는 것은 그냥 누군가의 고기가 되는 것'. 인물중 유난히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대사 중 유난히 권력에 관련된것이 많다. 그리고 마냥 틀린말은 아니다. 살아있는 화이트 워커스를 데리고 와서 함께 힘을 뭉쳐야 한다고 역설하는 적들을 향해 조금은 화합의 기척을 보이지만 역시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인물. 제이미의 손에서 피를 흘리고 죽는 장면만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개인적으로 드라마에서 가장 그리고 또 가장 불필요했던 부분은 존 스노우가 죽고 그가 다시 살아나는 설정이다. 차라리 그냥 죽어버렸거나 아예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 자체가 없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런 극적 긴장감도 주지 않았다. 극의 초반부터 아주 착실하고 설득력있게 끝까지 살아남아야하는 인물로 그려졌기때문이다. 존 스노우는 에다드 스타크가 밖에서 낳아 데려온 자식이다. 램지 볼튼처럼 혹독하게 차별받으며 길러지진 않지만 캐틀린 스타크의 냉랭한 대우속에서 조금은 우수에 젖은 캐릭터로 자라난다. 에다드 스타크의 온화함을 닮아서인지 그의 자식들은 대부분 존 스노우에게 관대하다. 에다드 스타크는 때가 되면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주겠다고 하지만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는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결국 듣지 못한다. 그는 스타크 가문의 대를 잇겠다는 포부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일찌감치 결혼도 할 수 없고 자식도 낳을 수 없는 나이트 워치의 길을 택해 윈터펠을 떠난다. 창녀와 잠자리를 하게 되는 장면에서 그는 자기처럼 엄마없는 자식은 만들고 싶지 않다며 잠자리를 거부한다. 그것이 그 장면이 쉽게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그가 겪어 온 삶에 대한 모든 애환을 말해준다. 누가 뭐래도 마지막 시즌에서 모두가 기다리는 순간이라면 존 스노우가 언제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일거다. 평생을 에다드 스타크의 서자로 서럽게 자라온 그가 알고보니 금수저 중의 금수저 타르가리안의 장손의 아들이자 에다드 스타크 여동생의 아들이다. 밖에서 자식을 낳아 왔다는 아내로부터의 비난을 평생 감수하면서도 존 스노우를 자신의 자식처럼 기르고 그의 출생의 비밀을 지킨 에다드 스타크의 현명함과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가 맞닥뜨린 인간적인 지도자들의 포용을 교과서로 삼은 존 스노우는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장해나간다. 드라마의 또 다른 명대사. 이그리트가 늘상 내뱉던 말. '존 스노우, 넌 아무것도 몰라'. 관객들도 마지막 시즌 직전에야 알게되는 그의 출생의 비밀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낸 대사임에 분명하다. 빨간 머리 이그리트와의 짧았던 로맨스도 아름다웠다. 특히 동굴속 온천에서의 애정씬은 세상에 둘만 남은 연인, 그래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아주 함축적인 장면이었다. 이그리트 자신도 그 동굴속에서 나오지 말아야했다고 죽음 직전에 회상한다. 존 스노우와 대너리스가 사랑에 빠진 것도 개인적으로 불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에다드 스타크와 캐틀린 스타크의 첫째 딸이자 드라마 속의 모든 악랄한 인물들과 한 번 정도 다 엮이는 기구한 운명의 산사 스타크. 시즌 1의 에피소드 1에서 가족 중 유일하게 흥분된 미소를 지으며 왕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순진한 모습에서 그 운명이 순탄하지만은 않겠다 가늠할 수 있었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철없는 공주 캐릭터를 벗어나 매 시즌 조금씩 강해지며 현실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로 변해간다. 조프리 바라테온과 결혼해서 답답한 윈터펠을 떠나 킹스랜딩으로 떠나는 날만 꿈꾸다 결국 그 꿈을 이루지만 아버지의 처형을 눈앞에서 경험하는 비극을 경험하며 결국 라니스터가의 인질로써의 힘겨운 삶이 시작된다. 폭군 조프리에게 농락당하고 난장이 티리온 라니스터와 결혼하게 되며 뒤이어 조프리보다 더 한 싸이코패스 램지 볼튼과 결혼하며 불운의 정점을 찍는듯하다가 우여곡절끝에 윈터펠로 재입성하며 스타크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려 한다. 엄마인 캐틀린 스타크를 평생 사랑했던 리틀 핑거의 도움으로 매순간 위험에서 벗어나지만 결과적으로는 리틀 핑거에게 그루밍당하지만 윈터펠로 돌아와서 결국 리플 핑거로부터의 자유도 획득한다. 램지 볼튼과의 저 결혼식 장면에서 사실상 가장 예뻤다. 

산사 스타크와 확연히 다른 기질의 아르야 스타크. 평소 잘 웃지 않는 에다드 스타크가 몇 번 정말 다정한 미소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아르야 스타크를 볼때이다. 어릴때부터 바느질과 예쁘게 웃기에 능한 언니와 다르게 칼을 쓰는 오빠들과 어울리며 명문가 규수가 되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사가 되고 싶은 포부를 내비친다. 다행히 캐틀린 스타크도 별로 그녀를 신경쓰지 않는다. 자식이 많은 집안의 수혜자라고도 할 수 있다. 천방지축 여자 아이에게 매달리기에는 신경써야할 자식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녀는 스타크 가문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라난다. 부모님과 큰 오빠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혈혈단신 복수의 칼날을 가는데 그렇다고해도 킬러도 성장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가문의 서자로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안 존 스노우와 가족 중 가장 가깝게 지내며 그가 손수 만든 바늘 이라는 이름의 검을 선물 받는다. 혼자서 고독하게 데스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가문의 원수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나간다. 서세이도 그 목록 중에 있는데 과연 목표를 달성할지 궁금하다. 

누나 산사, 아르야와 함께 살아남은 스타크 가문의 아들. 브란 스타크. 평소에 엄마가 하지 말라는 성벽 기어올라가기 놀이를 하다가 라니스터 쌍둥이들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면서 추락하고 생사를 헤매다 초능력을 선사받으며 깨어난다. 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지만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조종을 한다거나 하는 다양한 능력이 있다. 나이트 킹과 머릿속에서 이미 접선을 마친 상태. 뭔가 대단한 역할을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용의 몸속에 들어가려나. 

드라마를 통해 가장 큰 지명도를 가지게 된 배우는 아마 티리언 라니스터일거다. 배우 자신이 실제 삶에서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해야했음을 말할 것도 없고 극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난장이인 자신을 낳으면서 죽은 어머니로 인해 다른 형제는 물론 그의 아버지로부터 없어도 됐을 자식 취급을 받는다. 그가 시즌 1에서 처음으로 존 스노우와 맞닥뜨렸을때 했던 대화가 있다.  '너가 밖에서 낳아 온 자식의 설움을 알아?'라는 존 스노우의 물음에 '세상 모든 난장이들이 그의 아버지에게는 서자와 다름없지' 라고 되받아치는것. 이 대화는 그 둘 사이의 끈끈한 교감으로 남아서 시즌 후반에서도 존 스노우에게 보내는 서신에 이 대화를 첨가하며 자신이 보낸 편지가 맞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조우한다. 결과적으로 사진 속의 두 인물은 스스로는 칼 한 번 쓰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말 그대로 세치 혀가 백만 군사 보다 강하다는 논리를 몸소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드라마 내내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니는 인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기반으로 한 섬세한 본성이 위기때마다 그를 살려낸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역까지 할 수 있었던 대너리스. 린다 해밀턴의 사라 코너는 그 누구도 대체하지 않았어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바뀌었으니깐. 등장할때마다 너무나 길고 장황한 자기 소개를 해서 살짝 지루한 캐릭터가 되었다. 바라테온 가문 이전에 일곱 왕국을 지배했던 타르가르안 가문의 유일한 적자(라고 스스로는 아직까지는 알고 있는)이자 불속에서 용을 부화시킨 용의 모친. 이미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가을 동화 같은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대너리스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용 엄마로써의 자신을 대신하여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존 스노우의 존재를 두 손 들어 환영할까. 자식 셋 중 한 마리 용은 이미 나이트 킹의 수중으로 들어가버렸고 이제 존 스노우와 각각 한 마리의 용을 나눠타고 하늘을 날 일만 남았다. 철왕좌의 가장 적합한 두 인물로 남은 이들은 근본적으로 권력을 대하는 그 자세가 사실 확연히 다르다. 대너리스가 계획대로라면 순순히 물려받았을 그 권력에 대한 권리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면 존 스노우는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책임과 의무로써 그 권력을 대한다. 개인적으로는 타르가리안과 바라테온, 라니스터가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권력의 정점에 서봤으니 이제 스타크 가문의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함이 드라마의 논리상 맞다고 생각하지만 논리를 위한 논리, 드라마를 위한 드라마를 지양하는 드라마라 어떻게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 대너리스는 왠지 죽을 것 같다. 사실 모두 죽을 것 같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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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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