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93) 썸네일형 리스트형 외국에서 책 읽기, 책 대 담배(108g), 한나절의 바르샤바 일전에 이웃님이 주셔서 가지고 있는 쏜살문고 책이 두 권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책의 키와 몸무게가 좋다. 그 책들을 체급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아마도 슈퍼 플라이급정도 되려나. 양장이 아니어도 분량 때문에 최소 웰터급 이상이 되어버리는 책들과 비교하면 이 문고의 책들은 체급심사장까지 겨우 기어 들어갈 듯 왜소하다.혹시 이 시리즈에서 가지고 싶을 법한 책이 더 있을까 검색하다 좋아하는 단편이 담겨있는 오웰의 를 발견하고 작년 가을 주문했다. 108g. 초콜릿 한 블록 정도의 무게. 1g/한 페이지. 친구는 그 책을 들고 바르샤바로 오고 있다. 오전 기차를 눈앞에서 놓치고 예정보다 8시간 늦게. 나는 거의 텅 비었다고 해도 좋을 가방을 들고 반대편에서 바르샤바로 왔다. 오웰의 묵직한 두 장편보다는, 짧.. 회색, 스톤헨지,거인들의 어깨 'Sunday morning call'이라고 일요일이면 간혹 생각나는 오아시스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속해있는 앨범 제목이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인데 예전에 시디에 들어있던 부클릿에는 그 거인이 선배 영국 뮤지션들을 뜻한다고 쓰여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앨범 제목이 떠오르면서 비가 내리던 추운 여름날, 회색 하늘 아래 서있던 스톤헨지가 생각난다. 몰타 거석신전들에 대해 알아보다가 이런 거석 기념물들을 보통 Free-standing structures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 멋있는 조합의 단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역시 그런 구조물 중의 하나라서 스톤헨지와도 몰타의 신전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트라산의 수녀들 크라쿠프에서 아침 버스를 타고 타트라산에 오를 수 있는 도시 자코파네로 향했다. 크라쿠프에서 먹고 남은 삶은 달걀과 식빵과 소시지를 뜯어먹으며 설렁설렁 천천히 올랐다. 그리고 하산해서는 야간 기차를 타고 포즈난으로 이동했다. 슬로베니아의 트리글라우 찬양가를 듣고 있으니 갑자기 산중턱에서 만났던 수녀님들 생각이 나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반나절의 바르샤바 바르샤바는 나에게 '알지만 모르는 곳'이고 알고 싶은 동시에 잘 모르고 싶은 곳 이기도하다. 알고 싶은 마음을 아주 낮은 고도로 유지하고 있고 그런 마음이 들면 웬만해선 그냥 갈 수 있는 곳이다. 늘 그런 생각으로 가면 그곳은 영원히 영영 모르는 곳이자 항상 가고 싶은 곳으로 남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있다. 모르는 동안엔 모든 것이 다소 더 아름답다. 좋아하는 상태보다는 좋아함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항상 더 우아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단념할 수 있는 것은 휴지심에 반쯤 붙어있는 마지막 휴지 한 칸뿐이었으면 좋겠다. 바르샤바는 그냥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에 어떤 즐거움이 있다. 한없이 폐쇄적인 이 도시가 나에게 늘 열려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냥 지나치기엔 뭔가 아쉬운 위치, 애매모호하면서.. 바르샤바의 기마상 지난번 바르샤바에서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진하게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마 먼발치에서 그가 보이면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노비쉬비아트 거리 근처의 24시간 주류 상점들이 존재감을 발휘하는 시각에 동상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학생들도 귀여웠다. 그래서인지 코페르니쿠스의 자리는 갈 곳 없는 취객들을 품는 공간처럼 각인되었었는데 이번에 보니 그는 의외로 큰 거리 입구에 꽤 의미 있고 고상한 자태로 앉아있었다. 화창한 정오에 사람들은 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상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들 틈에서 코페르니쿠스는 단연 인자한 셀럽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바르샤바.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린다. 운동화 밑창으로 물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가랑비에도 운동화 흠뻑 젖을 수 있구나 .. 바르샤바의 유료 화장실 바르샤바 구시가의 좁고 한산했던 골목. 검고 둥근 것을 보면 엘피판이 먼저 생각나는지라 먼발치에서 봤을 때 저것은 화장실이 아닐 것이다, 저것은 예전에 화장실이었던 곳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쓰는, 이상한 명칭을 가져다 붙인다면 조금은 더 힙해보일거라는 강박이 있는 세상의 많은 클럽 중 하나일 것이다. 생각하며 다가갔다. 하지만 이곳은 마블 영웅들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컬러 포스터들과 모나리자가 거짓말처럼 두루마지 휴지에 둘러싸인 그림들로 장식된 진짜 유료 화장실이었다. 그런데 건물 색감과 번듯했던 문 때문이었는지 이 장면에선 베를린에서 지나쳤던 한자 스튜디오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결국 이 화장실은 순전히 나의 억지로 아주 음악적인 화장실로 뇌리에 남는다.바르샤바에서 간혹 음악을 들었다. 텔레비전에서.. 바르샤바의 피아노 상점 1년전 우리는 스타인웨인의 상점을 지나며 힘겹게 피아노를 운반해서 사라지는 성실한 도둑에 관한 농담을 했었다. 오래된 농담이 거짓말처럼 떠오를때 난 그것이 일상의 성공이라 느낀다. 인생이란 결국 자잘한 농담들의 집합이라는 것. 바르샤바행 감자트럭 1년 만에 가는 바르샤바. 바르샤바를 몇 번 갔어도 항상 오후 11시 넘어 야간버스를 탔던지라 딱히 바깥 풍경을 본 적이 없다. 이번엔 처음으로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우선 야간 버스보다 한산했고 자리를 옮겨 가장 뒷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졸며 갈 수 있었다. 국경을 지나고도 한참 숲과 들판을 낀 풍경은 그 어디와도 비슷하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감자를 잔뜩 실은 트럭이 지나간다. 높이 쌓아 올린 것은 아니지만 굴러 떨어지지 않는것이 신기하다. 리투아니아 친구들에겐 유머 한토막을 보낸다. 폴란드인도 감자먹으니 충분히 친구 될 수 있다고. 이전 1 2 3 4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