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92) 썸네일형 리스트형 바르샤바의 우육면 네 번째 폴란드행이지만 세 번 모두 도착해서 당일 딴 곳으로 야간 이동을 했으니 바르샤바에서 숙박을 한 적은 처음이다. 그래서 때 되면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메뉴를 고르던 기억은 없고 그냥 새벽에 버스 타고 도착해서 걸어 다니다가 맥도널드나 마트 같은 데 가서 아침을 먹었던 기억이 가장 또렷하게 남았다. 중국인들은 정말 한자를 잘 쓴다. 자기 나라 글자라곤 하지만 필체 확인이 가능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자를 잘 썼다. 폴란드도 역시 독일이나 네덜란드처럼 뭔가 대대로 뿌리내린 베트남계 중국계 이민자들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 날 짐 싸가지고 역을 향하는 도중에 들어갔던 중국 식당. 고를 것도 없이 난 제일 첫 번째 우육면을 먹었다. 국물이 맛있어서 밥 생각이 날까 봐 공깃밥도 시켰는데 주시기도 .. 르비우 어딘가 '아침에 눈을 떠보니 기차는 끝없이 펼쳐진 우크라이나의 흑토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농부들이 비옥한 흙에 파묻힌 채, 뼈대가 굵고 육중한 말을 부리며 쟁기질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바위나 동산, 숲 따위는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다. 이따금 가냘픈 몸매의 하얀 포플러나 배고픈 까마귀들이 하늘을 나는 것이 눈에 띌 뿐이었다. 안개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는 드문드문 흩어진 마을들이 보였다. 마을 중앙에는 한결같이 서양배 모양의 초록색을 칠한 돔이 있는 교회가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빽빽하게 낮은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마을 변두리에는, 양 떼 사이로 양치기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러시아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요즘 조금씩 읽고 있는 책 중에 키예프에 관한 짧은 부분. .. 부다페스트행 야간열차 우크라이나를 떠나 부다페스트를 향하는 기차 안. 아마 부다페스트에 도착할 무렵 아침에 일어나서 이 사진을 찍었을거다. 야간열차였고 승객이 없어서 큰 침대칸을 혼자서 썼다. 오래전에 이 여행을 계획했을 때에는 뻬쩨르부르그의 비텝스키 역에서 출발하는 40시간이 넘게 걸리는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타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왠지 굳이 그 두 도시를 연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뻬쩨르에서 헬싱키로 올라가 이곳저곳을 거쳐서 거의 3주가 지나서야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마 이 기차는 뻬쩨르에서 출발하는 동일한 기차였을지도 모르겠다. 15년이 지나고 나니 그 기차여행에서 생각나는 것은 새벽에 잠에 깨서 표검사를 받던 순간의 몽롱한 느낌뿐이다. 베르겐의 라이더 며칠 전 꿈에 베르겐에 여행 갔을 때 신세 졌던 친구네 집이 나왔다. 지금 그 친구 부부는 오슬로로 옮겨서 살고 있는데 꿈에서 내가 그 집 우편함을 서성거리며 그들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도대체 왜 갑자기 그런 꿈을 꿨나 생각해보니 아마 며칠 전에 베르겐에서 사 온 접시를 깨버려서 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저런 베르겐 생각에 사진을 뒤지고 있으니 심지어 친구 집 근처에서 찍은 우편함 사진이 보인다. 짧게라도 글을 올리겠다고 이 사진 저 사진을 고르고 나니 이미 오래전에 다 올렸던 사진들.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한 번 기억에 새겨진 것은 비록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잊는 순간에도 결코 잊을 수 없도록 남게 되는 건지. 그 찰나에 사로잡힌 어떤 생각들이 결국 그들을 사진 속에 남기도록 .. 오늘은 쉬는 날 오래 전 인도의 뉴델리 코넛 플레이스를 걸을때이다. 맥도날드 앞에 경비원이 보초를 서던 꽤나 번화가였는데 저울을 앞에두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깡마른 할아버지가 있었다. 집에 체중계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길거리에서 체중을 잰단다. 얼마전에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라는 이란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 속에도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다. 뉴델리에는 없었던 활활타는 장작이 그 옆에 함께였다. 지나가는 여주인공을 붙잡고 체중을 재보라고 하는데 55킬로가 나간다는 여자에게 78킬로그람이라고 우긴다. 체중계를 고치셔야겠다는 여자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런다. '저울일은 이틀에 한 번 만이야. 내일은 구두를 닦을거야.' 가위와 칼을 갈던 이는 그날 무슨 다른 일을 하러 갔을까. 이곁을 지나면 만두 찜통에서 뿜어져나.. 서울의 피아노 학원 나는 서울에서는 가희 피아노 학원을 10개월, 천안에서는 리듬 피아노 학원을 2년을 다녔다. 쇼팽 피아노 학원이나 모차르트 피아노 학원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많은 것들이 자취를 감춘 와중에 유난히 남아있는 피아노 학원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어릴때 놀았던 마당 초등학교 입학하고 4년 동안 살았던 이 집 마당을 서울에 갈 때마다 찾아가서 들여다보곤 했다. 3층에 살던 주인집 할머니는 꽃을 정말 좋아했다. 마당은 거의 항상 젖은채였다. 마당엔 장미 나무가 있어서 가시를 떼어 내어 코에 붙이고 코뿔소 놀이를 했고 물방울이 떨어져도 묻어나지 않고 서로 모이고 모여 큰 물줄기가 되어 떨어지던 잎이 넓적했던 화초를 비롯해서 마당에는 화분이 가득했다. 화초를 돌보는 할머니와는 이야기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의 며느리는 어머니가 또 화분에 물을 주시는 모양이구나 하는 시크한 표정으로 항상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집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복도에는 어김없이 귀뚜라미들이 뛰어다녔다. 뒤쪽으로 향하는 저 큼지막한 계단에 서있던 동생의 사진을 쥐고 창원 친척집에 놀러 가서 눈물.. 암스테르담의 어떤 부엌 암스테르담에서 뜻하지 않게 많은 이들의 부엌을 훔쳐 보았다. 자전거가 빼곡하게 들어찬 거리에 어둠이 깔리면 많은 집들이 부엌에 은은한 조명을 켜둔 채 지나는 이들의 관음욕을 충족시키려 애썼다. 보통은 반지하거나 1층집이었다. 내가 빌니우스에서 도착해서 살기 시작한 집의 부엌은 오랜동안 누군가의 암실로 쓰여졌던지라 화학용품과 사진 자료들로 가득차 있어서 도착해서 거의 1년이 넘도록 복도에 놓인 작은 인덕션에서 음식을 해먹었다. 그런데 오븐도 부엌도 없던 시절에 이 가게에서 빨간색 르쿠르제 코코떼와 모카포트와 미니 거품기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코코떼는 처음부터 변함없이 그저 소금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고 이제는 아담한 부엌의 가스불 위에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덕션 위에서 .. 이전 1 2 3 4 5 6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