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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u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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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여행 회상_쉬벤치오넬리아이 Švenčionėliai 8월 말에 빌니우스에서 한 시간 거리의 쉬벤치오넬리아이(Švenčionėliai)라는 도시로 당일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 2명과 가기로 했는데 그나마 좀 아는 사람이 고양이가 아파서 못 가는 바람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가게 됐다. 잘 모르면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오히려 할 말이 많아서 사실 편하다. 물 한 병과 읽을 책 한 권을 가져갔다. 물은 다 마셨고 책은 별로 읽지 못했고. 갑자기 이 여행을 회상하는 이유는 바르샤바-빌니우스 구간 기차가 12월 11일 재개통한다는 기사를 읽기도 했고 지난 주말에 연극을 보면서 백치의 므이시킨 공작이 타고 오는 기차가 아마 이 구간을 지났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 사진을 찍었던 순간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기차역 1층에 위치한 카페 벽에 바르샤바..
리투아니아식 서양 자두 잼 만들기 2주 전쯤 마트의 할인 광고인데. 마트들이 가끔 이상한 방법을 써서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는데 바로 이런 식이다. '특가 (Super kaina) 푸른 자두, 54프로 할인' 이라고 쓰여있으나 할인된 가격은 적혀있지 않고 자두는 온데간데없다.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정직하게 2.79 유로라고 쓰여있는 엄청난 물량의 과일은 알고 보면 그 할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복숭아라는 것. 착각하고 얼떨결에 좀 더 비싼 복숭아를 사게 하려는 건지 괜히 이런 꼼수를 쓰다가 자두마저 못 팔게 되는 건 아닌지 가끔 의문이 생긴다. 어쨌든 자두잼은 시판 제품이 거의 없고 텃밭이 있는 사람들이 주지 않으면 먹기도 힘들어서 이런 기회가 오면 보통 잼을 만들어 먹는다. 복숭아를 미련 없이 지나쳐서 자두를 찾아 나섰다. 껍질을 따로 ..
리투아니아의 게으름뱅이 케익, 팅기니스 Tinginys 짧은 바르샤바 여행에서 함께 돌아온 커피콩을 개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케익이라도 만들어서 같이 마시자 결심하고 얼마전부터 벼르던 리투아니아의 케익, 팅기니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름에 빌니우스에 오셨었던 이웃 liontamer 님이 서울로 귀환하시면서 몇 조각 챙겨가셨던 팅기니스. 그 이후로는 마트나 카페에서 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6월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오래전에 리투아니아의 게으름뱅이 케익 레시피 (https://ashland.tistory.com/277 ) 를 올린적이 있지만 사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진정한 팅기니스 조리법은 아니고 오븐을 사용하지 않고 재료를 쌓아 올려서 굳히는 방법 때문에 그냥 게으름뱅이 케이크라 이름을 붙였었다. [리투아니아음식] 오븐없이 냉장고만으로 리투아니아 ..
리투아니아의 봉지쌀 여행 다닐 때 이런 쌀이 세상 방방곡곡에 있었더라면 혹은 마트 어딘가에 있었을지 모르는 이들을 발견했더라면 그 여행들은 어떤 면에서는 편했을 것이다. 뻬쩨르에서는 대학 기숙사의 법랑 냄비를 홀랑 태워먹고 동행과 깔깔거리며 한밤중에 새까맣게 탄 냄비 바닥을 씻기도 했고 지은 밥을 락앤락에 넣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도 했으니 냄비에 쌀밥을 짓는 것은 새로운 여행지를 탐색하는 것만큼의 일상이었다. 간장과 버터에만 비빈 밥이어도 껍질을 벗긴 프랑크 소시지 하나만 곁들여도 맛있었던 소박하고도 풍요로웠던 어떤 여행지의 끼니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빌니우스를 여행하던 첫날 지금은 사라진 우주피스의 호스텔 부엌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남겨두고 간 냄비에서 물이 팔팔 끓고 있었다. 뒤이어 나타난 여인..
체펠리나이 지수 (Cepelino indeksas) 오늘 귀여운 기사를 보았다. 리투아니아에 '체펠리나이 인덱스'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월급에서 살 수 있는 체펠리나이의 개수를 통해서 소비자의 구매력을 판단하는 지수라고 하는데 물가 수준, 구매력 평가에서 빅맥 지수 신라면 지수 이런 거랑 비슷하겠지만 체펠리나이를 파는 나라가 세상 유일하게 리투아니아밖에 없을 것이 분명하므로 리투아니아 자국 내의 구매력 판단 지수라고 하면 되겠다. 체펠리나이 Cepelinai는 감자를 갈아서 수분을 제거하고 전분과 잘 섞은 반죽 속에 다진 고기를 넣어 삶아 내는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이다. 보통 사워크림을 곁들인다. 느끼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돼지비계나 베이컨 볶은것과 함께 먹는다. 손이 많이 가니 한 두 개 만들기는 좀 그렇고 최소 열개 정도는 만들어서 정말 큰..
리투아니아의 초등학생들과 함께 한 한국어 캠프 지난 여름. 인구 50만 가량의 빌니우스에서 7명의 초등학생들과 함께 했던 소박한 캠프. 여름 방학이 세 달 가까이 되는 리투아니아에서 학생들이 여름을 보내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가족 친지의 여름 별장으로 바다로 호수로 숲으로 놀러가는 것.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일하는 학부형들에게 긴 여름방학은 큰 고민거리이다. 그렇게 여름 휴가를 꽉 채워서 쓰고도 남는 아이들의 방학은 이런 저런 캠프 참여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리투아니아에서는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체험 학습과 학교를 가듯 등학교를 하며 만났다 헤어지는 단기 사설 학원과 같은 것들을 통틀어 모두 Stovykla 라고 부른다. 출근 전의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아침 8시 경에 모였다가 오후 5시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종의 놀이방..
Kernavė 2 도망다니는 헤이즐넛을 잡아 세우려고 그 날 그 소년은 얼마나 분주했던지.
Kernavė 케르나베. 오랜동안 잊혀져있던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 1979년 발굴이 시작된 선사시대 유적지로 200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문화 유산으로 지정 된 면적을 다 발굴 조사하려면 수치상으로 600여년은 걸린단다. 멈출 줄 모르는 질긴 태양 아래 더 이상 왁자지껄 할 수 없는 각종 행사들이 가득했지만 햇살 아래 부끄럼없이 그을리고 쪼그라들고 있는 사과 반 쪽이 왜인지 가장 큰 울림을 주었다. 척박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얼굴을 내미는데 성공한 무수한 것들과 아직 발굴되지 못한 낡은 그릇 조각들. 이미 저 멀리 석양을 품어버린 하늘을 뒤로하고 수십년 전 케르나베에 첫 삽을 꽂았던 순간을 회상하던 고고학자의 뭉클한 소회와 함께 그렇게 긴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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