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uanian Language2019.05.03 06:00

아침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통 그 시간이면 새로 구운 빵을 내놓는 마트가 있어서 집 앞 마트를 놔두고 그냥 들어갔다. 이런저런 식품들을 주워 담고 잡지까지 한 권 넣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지갑이 없었다. 큰 가방 작은 가방을 번갈아 사용하니 가끔 지갑을 옮기는 걸 잊곤 한다. 아 집에 가서 따끈한 빵 먹어야 되는데 결국은 주워 담은 식품들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기가 귀찮아서 장바구니를 맡겨두고 집에서 지갑을 가지고 다시 와서 계산을 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을 절약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은 그냥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계산대 옆 진열대에 스니커즈가 딱 한 개 놓여있는데 '배고파요' Alkana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n Language2019.04.29 18:23

지난번 빌니우스 도서 박람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백야가 묶인 도스토예프스키 책 한 권을 샀다. 현금도 없었고 현금 지급기도 없는데 카드를 받지 않는 부스가 많아서 그나마 한 권 유일하게 사 온 책이었는데. 얼마 전에 책장 아래칸에 잡다한 책들과 섞여있는 것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책들 근처로 옮기려고 보니 위칸에 터줏대감처럼 꽂혀있는 책. 책을 잘 사지도 않는데 같은 책을 두 번 사다니 황당했다. 내가 이들을 몹시 좋아하던가 아니면 기억력이 이제 다 했던가 공부하라는 계시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50권 남짓되는 주니어용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는데 신동우 화백이었나 그가 그린 삽화 속의 인물들 얼굴이 꽤나 특색 있었다. 1번은 부활, 2번은 로미오와 줄리엣 3번은 좁은 문 4번이 가난한 사람들 그런 식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가난한 사람들과 죄와 벌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 권 씩이나였다. 난 그 전 집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책 세 권과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가장 좋아했다. 시간이 지나서 드라마틱한 삽화가 빠진 완역본으로 읽었을 때의 감동은 또 달랐다. 그리고 언젠가 그 작품들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면 독자로써 작가에게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경일 거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데뷔작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가 사모임에 가담하고 유형소 생활을 시작하게 된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소설이기도 하고 마까르 제부쉬낀과 바르바라의 편지글로 이루어진 질척 질척 구구절절한 책으로 내가 가장 먼저 접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이다. 그래서 돔 크니기에 갔을 때 상징적으로 이 책을 샀었다. 건방지게 그중에 그래도 가벼운 책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할 생각으로 사 왔는데 13년이 지났는데 절반도 읽지 않았구나. 그나마 알던 얼마 안 되는 러시아어도 다 잊어가고 있다. 백야는 어렴풋이 뻬쩨르를 환상하게 했던 소설이다. 세상에 구제할 수 없는 것이 많겠으나 사랑에 빠진 몽상가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몽상가여야 한다. 마까르 제부쉬킨도 한편으론 그렇다. 여름의 뻬쩨르 가고 싶다. Baltosios naktys는 Baltoji naktis의 복수형이다. 하얗다는 표현 Baltoji 도 Baltas라는 일반 형용사 대신 특정 고유 명사나 상황에 붙는 형용사 형태를 쓴다. 이런 형용사의 형태를 문법적으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n Language2019.02.28 07:00



매년 2월 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빌니우스의 큰 행사. 지난 주 빌니우스에서는 4일 동안 도서 박람회가 열렸다. 전광판에 도서 박람회 광고가 지나가길래 책을 뜻하는 리투아니아 단어 Knyga 를 포착하려고 사진을 찍는데 정작 찍고 나니 광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라는 단어. '20년이나 됐으니 광고할 필요도 없지요' 가 광고 컨셉이라서 '빌니우스'와 '박람회' 단어만 남기고 정작 '도서' 자리에 다른 문구들을 채운 것이다. 그래서 그냥 다른 단어 쓰기. 전시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들, 노천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장터들을 리투아니아에서는 보통 '무게 Mugė' 라고 부른다. 봄은 이미 만져질듯 성큼 다가왔다. 2월의 마지막 주부터 연달아 열리는 도서 박람회와 3월 첫째주의 카지우코 무게는 빌니우스 사람들에게는 겨울을 떠나보내는 작별 인사이자 봄의 전령이다. 물론 2월과 3월의 기후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킨텍스나 부산의 벡스코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빌니우스의 대규모 전시회들이 주로 열리는 전시장 리텍스포(litexpo).  티비 타워에서 가깝고 주변이 온통 숲이라 공기도 좋고 산책하기 좋지만 사실 날이 좋은 여름에는 이곳에 갈 일이 거의 없다. 휴가철이니 사람들이 있을리 없고 여름에는 구시가처럼 야외에서 열리기 적합한 행사들이 주를 이룬다. 게임 전시회, 여행 박람회와 같은 굵직한 행사들은 전부 가을과 겨울에 걸쳐서 이곳에서 열린다. 4일간 6만 5천명 정도가 다녀갔다고 하니 빌니우스의 인구를 생각하면 큰 숫자다. 인구가 적은 리투아니아에서 공통의 화제 거리가 되는 이런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리투아니아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참여하고 크고 작은 출판 기념회와 토론회가 오전부터 저녁까지 이어진다. 전시장에서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지만 동분서주하지 않으려고 이번에는 시간대별로 나만의 시간표를 아예 만들어 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외에는 이렇다할 번역물을 내놓지 않는 어떤 출판사의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들. 가난한 사람들과 백야가 묶여진 책을 한 권 샀다. 왼쪽에서 첫번째는 '딸이 본 도스토예스프키' 라는 제목의 회상록으로 제법 읽을만하다. 



언젠가 대부분의 책을 그냥 영어 원서로 읽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그러니깐 대학을 졸업한 20대 친구이다. 워낙에 리투아니아어로 번역되는 책들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영어 원서를 읽다가 대학 졸업 무렵에는 결국 영어를 마스터하게 됐다는 소리를 했다. 물론 구조적으로 영어를 더 쉽게 습득할 수 있는 리투아니아어의 특성도 무시 못하지만 결국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불가피한 일상이 되어야 하나보다. 어쨌든 그럼에도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활발한 출판 테마는 역사이다. 정말 끊임없이 나오고 또 나오는 역사 관련 책들. 사실 리투아니아의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 14세기 이후라고 생각하면 딱 조선 왕조와 구한말과 맞아 떨어지는 600여전 정도의 시간에 관한 책들이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빗살무늬토기 발굴지부터 배우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기억하는 시간은 턱없이 짧다. 그 시간들을 또 잘게 쪼개고 또 쪼개고 이야기의 배경은 오히려 전통적인 구시가에서 빌니우스 교외로 넓혀간다. 그것은 리투아니아인의 나라로써의 리투아니아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려는 노력이자 폴란드와 러시아 심지어 우크라이나 같은 주변국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이 영토에 관한 자아성찰인지도 모르겠다. 박람회 나들이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향하여'의 리투아니아어 번역에 관한 좌담이었다. 이미 번역이 된 상태의 출판 기념회인줄 알았는데 프랑스어로 된 그의 이 시대 기념비적 창작물을 리투아니아어로 번역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고 상징적인 작업인지 흥분 상태에서 설명하는 자리였음. 번역물이 없어서 영어 원서를 읽어야하는 맥락에서 보면 전공자들에게도 애호가들에게도 이런 작업 자체가 환영할일일 것이다. 그런 작업에 전문가로써 참여할 수 있는 그들이 멋있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프랑스어로도 워낙에 독특한 어법과 비유들로 쓰여졌다고 하는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을 읽어봐도 번역자가 얼마나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지가 눈에 보인다. 심지어 리투아니아어에는 있지도 않은 건축 용어도 엄청 많고 단순히 불어 전공자에게 번역을 맡기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어 폴란드어 러시아어판을 전부 고려해야했다고. 온 정성을 들여 번역될 리투아니아어판을 곧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n Language2019.02.08 07:00


항상 이 단어를 보면 이탈리아의 롬바디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를 떠올리곤 괜히 따스해지고 뭔가 넉넉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들 단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롬바르다스는 전당포이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구시가를 걷는다면 옷가게든 빵집이든 한 번에 알아봄직한 상점들 사이에 별다른 간판도 없이 영업하고 있는 전당포들을 간혹 마주칠 수 있다. 특히나 부엌 찬장 속의 마지막 남은 싸구려 숟가락 마저 전부 저당잡히고 영혼이라도 꽁꽁 싸매서 가져다 줘야 할 것 같은 후미진 전당포가 구시가의 트라카이 거리에 하나 남아 있다. 바사나비치어스 거리에서 주욱 내려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들어설 수 있는 거리이다. 건너편 상점들의 조명이 반사된 탓에 속이 쉽사리 들여다보이지 않는 이곳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듯 보인다. 혹시 어둠속에서 밖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지도 모르는 오싹함을 감수하고 손으로 빛을 가려 유리창에 콧등을 대고 들여다봐야지만 텅 빈 탁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란 램프 빛을 가까스로 발견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의 가격을 알고 있고 그 어떤 무형의 것도 달아서 잴 수 있는 물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듯 주변의 모든 어둠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빛이다. 주중이면 거의 매일 지나치는 이 거리 어딘가를 나와 함께 걷고 있을거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노파를 찾아가 호주머니에서 은시계를 끄집어 내는 라스콜리니코프와 경매장에서 방금 구입한 앨범을 배로 되팔고 흥분 상태에 이르는 아르카지 돌고루키, 그리고 자신의 원고를 헐값에 넘겨야 했던 어떤 도스토예프스키이다. 얼마 전에 본 러빙 파블로 라는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있었다. 콜롬비아 마약왕의 정부로 부와 쾌락을 누리던 앵커 페넬로페 크루즈가 애인으로부터 버림받고 커리어마저 빼앗긴 채 파산을 맞은 상황에서 그 애인이 선물했을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보석을 되팔려고 장물업자를 찾아간다. 뒤이어 청부살해업자들이 탄 차가 도착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장물업자는 영업 창구 위의 방탄 셔터를 내린다. 복면을 한 청부업자들이 자동차 문을 열고 나오는 급박한 순간에도 방탄 셔터는 늘 그랬을 속도로 천천히 내려간다. 상점 창문 자체가 방탄 유리로 되어 있었어서 스카 페이스의 한 장면을 방불케하는 그들의 총질에도 페넬로페 크루즈는 살아 남는다. 물론 총격이 멈추고 방탄 셔터가 다시 올라가고 거래가 다시 이루어 진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셈 법도 필요하지 않는 순간, 모든것이 의미를 잃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주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모면하고나면 또 모든것은 희미해진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n Language2019.01.29 07:00


제목을 쓰기 전에 검색을 해보았다. 이 단어에 대해 과연 아직도 쓰지 않았을까?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하기엔 너무나 습관적인 단어이고 그 단어를 쓰는 우리의 자세는 단어 자체의 울림에 비하면 오히려 한없이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 볼레벤이라는 독일 작가가 쓴 이 책은 한국에서는 '나무 수업'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리투아니아어로는 '신비로운 나무의 일생' 정도로 직역할 수 있겠다. 뭔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은 가히 수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어 최종 제목을 두고 출판사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판매 부수에 좀 더 영향을 줄 수 있는 단어를 궁리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숲을 거닐며 이 나무 저 나무에 청진기를 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상상된다. 한국어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조건이 되어서, 평상시에는 잘 쓰지 않지만 유용한 단어들이 많아 보여 연초에 도서관에 예약을 했더니 찾으러 오라는 메일이 왔다. Gyvenimas 기벤니마스. 동사 살다 'Gyventi' 에서 오는 명사이다. 나무도 알까. '사는게 다 그렇지' 와 '이런게 사는거지' 사이의 작고도 큰 간극을.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