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uanian Language2020. 5. 13. 06:00

 

Vilnius 2016

 

 

리투아니아어 단어 중에 좋아하는 단어가 세 개 있는데 Kriaušė (https://ashland11.com/389), Batsiuvys 그리고 Knygnešys 이다. 이 단어들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거나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사실은 어감 때문이다. Batsiuvys와 Knygnešys는 흔한 복합명사로 직역하면 신발을 만드는 사람(Batai+siuvėjas), 책을 옮기는 사람 (Knyga+nešėjas)이란 뜻인데 보통 많은 단어들이 자모의 규칙적인 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이 단어는 두 단어의 자음과 자음이 만나는 흔치 않은 단어라서 그 어감이 독특하다. 두 개의 성깔 있는 자음이 만나서 입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작지만 고집스러운 충돌이 이 단어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느낌마저 든다. 사실 이 두 단어는 그만큼 개성 있고 사연이 많은 단어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때 한글 말살정책이 있었던 것처럼 19세기의 제정 러시아 시대의 리투아니아에도 리투아니아어 말살 정책이 있었다. 그것은 라틴문자 대신 키릴 문자로 리투아니아어를 표기하게 하고 리투아니아어로 된 출판물을 금지하는 정책이었는데 대략 40년 넘게 이어지던 그 정책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나서 약 10년 정도 후에 리투아니아는 독립을 이룬다. 그 시기에 유행했던 직업이 바로 책을 옮기는 사람이었다. 40킬로에 육박하는 책꾸러미를 짊어지고 다니며 특정 장소에 책을 놔두면 다른 책 배달자들이 그 꾸러미를 여기저기 옮기는 방식으로 중요한 책과 출판물들을 배포했다. 그러니 이들은 단순히 책을 운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시로썬 금지된 책의 불법유통자와도 같았다.

 

사진은 구시가의 어떤 서점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어느 책 전달자를 추모하는 기념판(?)이다. 언젠가 이 단어에 관해서 쓰고 싶을때가 올까 오래전에 찍어 놓은 사진이지만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 단어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오랫동안 반납하지 못하고 있는 도서관 책들을 봤을 때였다. 도시 곳곳에 도서관 사물함이 있어서 내 번호가 붙은 사물함에 책을 가져다 놓으면 책 전달자가 반납도 해주고 내가 고른 책도 넣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주 합법적이고 친절한 책 전달자 말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단어에 대한 이야기들 읽는게 좋아요. 책 옮기는 사람에 대한 얘기는 찡해지네요. 전 노어에서 쌈아곤 самогон 이란 단어가 어감 때문에, 그리고 너무나 러시아 느낌 나서 좋아해요 ㅋㅋ

    2020.05.13 09: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쌈아고나스!!ㅋ 이 단어 역시 여기서도 그대로 어미만 리투아니아식으로 바꿔서 써요. 확실히 러시아색채가 짙은 단어들은 그냥 그대로 쓰는것 같아서 좋아요. 뭔가 굳이 러시아 단어를 썻을때 강하게 어필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있는 것 같아요.

      2020.05.13 19:52 신고 [ ADDR : EDIT/ DEL ]
    • 앗 쌈아고나스 이것도 좋아요 ㅋㅋ

      2020.05.14 22:29 신고 [ ADDR : EDIT/ DEL ]

Lithuanian Language2020. 5. 8. 06:00

 

Vilnius 2018

 

 

문이란 당기세요 라고 써있어도 무심코 밀기 시작하는 것. 열려 있는 줄도 모르고 열쇠를 넣어 돌려 다시 잠그고 마는 것. 세번을 돌리고 돌려야 열릴 때도 있는 것. 리투아니아어에서 Į 는 4격이 붙는 방향의 전치사로 뒤따라오는 단어를 향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저 문은 그렇게 열면 된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보자마자 '구해줘요...' 라고 해석해버린 저... 업무에 찌든 노동노예는 구원을 받고 싶은가봐요 ㅜㅜ

    2020.05.10 20: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Lithuanian Language2020. 4. 24. 06:00

 

Vilnius 2020

 

Kas 는 누구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 의문대명사이다. 리투아니아어와 문법적으로 유사한 러시아어에선 이 두 단어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밌는일이다. 전깃줄에 걸린 신발을 보자마자 튀어나오는 많은 질문들의 시작이 그랬다. 저게 뭐야. 누가 던졌을까. 누가 저기 올라갈 수 있을까까까. Kas, Kas, Kas, 줄 위를 걷다가 벗어놓고 온 신발이면 좋겠다라는 바램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카스/kas가 사람과 사물 모두를 인칭하는 의문대명사로 쓰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네요. 겨우 러시아어 크또 와 슈또 구분 가능 레벨이 리투아니어에까지 관심을 갖게되니.... 큰일입니다 ^^
    그나저나 저 신발의 주인 마음 상태 무척 궁금해지네요 ㅎㅎㅎㅎㅎ

    2020.04.25 22: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Lithuanian Language2020. 4. 21. 06:00

Vilnius 2020

오래되고 새로운 것, 초라하고 멋진 것을 상관하지 않으며 힘들이지 않고 뚫고 들어오는 것. 빛은 단 한순간도 낡은 적이 없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TAG Vilnius

댓글을 달아 주세요

Lithuanian Language2020. 4. 18. 06:00

 

Vilnius 2020

 

같은 밀가루 덩어리에서 나왔는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니 진시황의 병마용을 떠올리게 하는 자태인가? 하긴 눈을 감고도 매번 1 그램의 오차도 없는 쌀밥을 집어 오물조물하는 스시 장인의 초밥도 어디 모두 같은 모습이겠냐마는. 그리고는 이들 밀가루 음식의 이름대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 말을 최종적으로 되새겼다. 가장 평범한 밀가루 반죽을 가장 평범하게 떼어내어 치즈 강판의 뒷면에 쑥 밀면 탄생하는 리투아니아의 가장 평범한 밀가루 음식. 그리고 이렇게 평범한 음식인데 각 가정마다 다른 레시피가 존재 한다는 것이 이들 평범함들이 지닌 비범함일 것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에지우카이..... 혹시 이리 발음되나요? 지난번 수무쉬티니수(?) 이후로........ 용기내어 읽어보는 도전!!!! 정신입니다 ^^
    이 음식은 이탈리아 요리 '뇨끼'와 모양새가 같아 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와 가족의 연으로 묶인 것이 16년차가 되어가는데요...... 여전히 그 쉬워보이는 라구소스를 만들어내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뇨끼의 소스로, 파스타의 소스로, 라자냐의 속 내용물로 이용되기에 라구소스는 잘 배워둬야하는 '요리' 중 하나인데...... 우리의 '된장찌개'와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그 맛이 다 다르고 엄마, 할머니, 시어머니, 이모님, 고모님, 증조 할머님 비법이 모두모두 다르니....... 참 재미나요...

    마지막 말씀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평범함들이 지닌 비범함....... 개인적으로 이 논리를 깨달은 것이 그리 오래전이 아니니......

    2020.04.18 15: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정말 정확하게 읽으셨습니다! 이탈리아의 뇨끼와는 아주 가깝고도 먼 친척이 될듯하네요 ㅋ 증조할머니 시어머니 고모님이 만드는 각기다른 라구 소스 정말 궁금해요 .

      제 개인적으로는 이 분의 라구 레시피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탈리아 식과 많이 흡사한지 궁금하네요. (https://m.blog.naver.com/frankbyon/120210821809)호방하고 자유로운 이분 요리 포스팅을 정말 좋아했는데 요샌 뜸해서 아쉬워요.

      하지만 아무리 레시피가 좋아도 타들어가는 햇살 아래에서 자라난 토마토와 막 뜯은듯 신선한 허브가 들어간 현지의 음식과는 비할 수 없을것도 같아요. 이탈리아에 가시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첫 식사의 모습 정말 궁금해지네요.

      2020.04.18 20:15 신고 [ ADDR : EDIT/ DEL ]
    • 쿠킹하는 사회주의자님의 레시피는 정말 전문 요리사 의 그것이던데요? ^^
      제 시어머님, 시할머님, 이모님의 라구는 꽤 단순한 재료 그렇지만 언급하신 텃밭에서 막 따온 토마토와 허브 거기에 오래된 어르신들의 손맛이 주된 포인트 인것 같습니다. 저도 어제 오랜만에 라구 소스 만들었어요. 저는 거의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를 익히는데.... 계속저어줘야하는 고된 손목 운동, 거기에 계속 지켜봐줘야하는 인내심 그리고....마지막으로 라구 소스 냄새를 온통 뒤집어 써야하는 고역(?)에 꽤 힘든 요리 시간이었습니다 ㅎㅎㅎㅎ
      영원한 휴가님 덕분에 쿠사님 블로그 재미나게 한참을 들여다 보고, 오랜만에 남편과 아이 (라구 파스타 덕에 행복해하는 모습봤네요 ^^
      썡유!

      2020.04.25 21:53 신고 [ ADDR : EDIT/ DEL ]
  2. 고슴도치는 노어랑 비슷하군요! 아 배고파

    2020.04.27 00: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