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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uanian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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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117_고기분쇄기 Mėsmalė 그런 물건들이 있다. 딱히 실용적이지 않지만 버리기엔 무척 애매해진 것, 꺼낼 때마다 오래된 이웃들과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 카다시안들이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 것,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편리하게 잊는 것, 그 생애와 본적을 알고 싶어 절로 거꾸로 들어 밑바닥을 보게 하는 것, 한때는 모두에게 새로웠던 것, 대체 가능하다는 이유로 별안간 폄하되는 것, 잊으려고 마음먹으면 걷잡을 수 없이 소멸되는 것. 그게 뭐 물건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동안 파네베지에 있으면서 소련 시절의 오래된 고기분쇄기로 커피를 갈아 마셨다. 바닥에 쓰여진 대로라면 러시아어로 먀싸루프까Мясорувка, 리투아니아어로는 메스말레 Mėsmalė 라고 한다. 탁자에 고정시키고 손수 돌..
리투아니아어 116_목록 Sąrašas 마트에 가서 바구니를 집으려고 보니 옆바구니에 남겨진 쪽지 한 장이 보인다. 그래서 그 바구니를 집었다. 이 쇼핑 리스트의 주인은 이 식품들을 전부 샀을까. 필기체를 썼고 복수를 잘 썼고 찍어야 할 곳에 점을 잘 찍었다. 긴 단어는 적당히 줄였고 파프리카에서는 망설였다. 대체로 자주 반복되는 기본 식품들을 사러 아주 일상적으로 마트에 왔다. 냉장고에 항시 있어야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목록을 작성했을거다. 가령 이것은 어른 아이 다같이 오랜만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토요일 오전을 위한 리스트 같다. Pirkinių sąrašas - 쇼핑 리스트 Pienas 2 vnt - 우유 두개 Graik.jogurtas - 그릭 요거트 Užtepėlė - 스프레드 Duona Batonas - 빵. ..
리투아니아어 115_고고학자 Archeologas 내가 처음 도착했던 2006년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파네베지 버스 터미널. 17년 동안 나도 바뀌고 기후도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고 화폐단위도 바뀌었지만 역내의 긴 나무 의자나 간판이라도 부분적으로 바뀔만한데 모든것이 소름 끼칠 만큼 그대로이다. 이 버스역에 들어서면 같은 해 겨울 들렀던 러시아의 이르쿠츠크 버스터미널이 늘 떠오른다. 짐을 맡겨놓는 Bagažinė는 역내의 꿈꿈한 흐라녜니에, 체부렉이나 감자전 같은 주로 튀긴 음식들을 파는 Valgykla는 스탈로바야와 그저 똑같다. 다를 이유가 없는것이 맞다. 러시아 대도시의 역 규모는 리투아니아와 비교할 수도 없지만 이르쿠츠크는 상대적으로 소도시인지 그 오밀조밀 아는 사람끼리 부대끼는듯했던 인상을 종종 파네베지에서 느낀다. 파네베지는 얼마 전까..
리투아니아어 114_어드벤트 리스 Advento vainikas 부활절즈음해서 초콜릿 토끼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11월 중순이 되면 어드벤트 달력들과 파네토네가 담긴 둥글고 큰 틴 케이스들로 이미 리투아니아의 마트도 점령당한다. 보통은 대목을 맞이한 초콜릿 회사들이 내놓는 초콜릿 달력들이 주를 이루고 마트의 또 다른 한쪽은 붉고 푸른 성탄 장식들로 화려해진다. 꽁꽁 얼기 시작한 어두운 거리 곳곳은 크리스마스 조명들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 리투아니아의 크리스마스 공식 휴일은 24,25,26일 3일이지만 크리스마스이브부터 1월 첫째 주까지 2주간 겨울 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12월은 크리스마스 연휴와 겨울 방학 전의 싱숭생숭한 분위기로 상당히 빠르게 정신없이 지나간다. 12월 1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드벤트 달력을 열기 시작하는 그날,..
리투아니아어 113_공증인 Notaras 동네 곳곳에 공증 사무실이 정말 많다. 간판에 보통 'Vilniaus m.10-asis notaro biuras 빌니우스시 10번째 공증 사무실' 이런 식으로 적혀있다. 오래전에 종로 구청 근처 공증 사무실에서 몇 가지 증명서를 영문 번역하여 공증을 받았었다. 그 서류들을 리투아니아어로 번역해서 다시 공증받은 후에야 효력이 생긴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내려 받을 수 있는 서류도 많고 아포스티유도 발급이 되니 전에 비하면 모든 것이 엄청 간단해진 듯 보이지만 해외에 거주하면서 신분증이나 거주 관련 문서들을 준비하고 갱신하는 것은 어쨌거나 참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늘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으니 한편으론 고맙다. 간혹 일간지를 사서 읽는다.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고 날짜와 장소가 바뀌고 모든..
리투아니아어 112_Tūris 함량 세상에 여러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 꼭 해야 하는 일을 굳이 안 하는 것.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 그리고 1) 평일 2) 대낮에 3) 마트의 독주코너를 4) 말끔한 정신으로 5) 어슬렁거리다 6) 구매의 목적을 창조하고 7) 세상과 나를 설득하는 것. 이들 중 제일 까다로운 즐거움은 단연 가장 후자가 아닐까 싶은데 그것이 즐거운 행위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복잡 미묘한 즐거움을 만끽하기 시작하면 대체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질척이다 결국 모두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 마치 정도를 넘겨 근본 없이 희석된 독주처럼. 꽁꽁 언 바닥에 엉겨 붙은 지난밤으로부터의 토사물처럼. 술을 선물하는것을 좋아하는데 술이든 뭐..
리투아니아어 111_숫자 Skaičius 이제는 이 동네식으로 숫자 쓰기에 익숙해져서 우체국에서 한국 주소나 전화번호를 적어야 할 때라든가 가장 최근만 해도 대사관에서 주민번호 하나를 적는 데에도 약간의 내적갈등이 일어난다. 오래전에 한국에서 내가 쓰던 식으로 적자니 이제는 내 손에 익지 않아 어색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숫자를 적는 것만 같고 여기서 쓰던 대로 적자니 왠지 어떤 숫자는 오해의 여지를 남긴 채 잘못 읽힐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모든 숫자가 골고루 전부 포함되어 있는 페이지를 보니 숫자 하나하나가 또렷하여 크게 헷갈리거나 딱히 애매해 보이는 숫자는 없다. 주로 문제가 되던 숫자 세 개를 조합하고 보니 반갑게도 외대 앞 정류장에서 수없이 지나쳐 보낸 147번 파란색 버스가 생각난다.
리투아니아어 110_퍼즐 Delionė 1000피스짜리 중고 퍼즐 한 상자. 상자 속의 퍼즐 봉지가 뜯지 않은 상태였고 그림들이 재밌어서 다같이 하려고 샀다. 레스토랑의 번잡한 주방이 배경이라 서빙하다 넘어지는 웨이터들과 술 취한 셰프들, 애벌레 나오는 요리들 등등 비교적 분명하고 개성 있는 삽화여서 복잡한 퍼즐은 아니다. 어떤 퍼즐이든 그 완성에는 다소의 인내심이 요구되겠지만 그건 맞추기 힘든 조각을 집념을 갖고 찾아내는데 쓰이는 인내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완성되지 않은 퍼즐을 오래도록 그냥 펼쳐두고도 관조할 수 있는 체념의 인내심 같기도 하다. 눈에 띄는 조각이 보이면 설득력 있는 좌표에다가 놔두고 그냥 지나가거나 오며 가며 한 두 조각씩 맞추는 식이라면 편하고 가볍다. 퍼즐을 잘 맞추는 사람들은 확실히 눈썰미가 좋으니 그냥 전체 그림만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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