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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12)
Russia 12_한편으로는 그저 여전한 것들에 대해서 언어라는 것은 마냥 신기하다. 모든 언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단어의 의미 그 이상의 살아 숨 쉬는 느낌을 가져버린 그런 언어와 단어들이 있다. 꿈을 꾸며 배웠던 언어들이 보통 그렇다. 가령 말라꼬에 대해서라면 난 우유를 마신다기보다는 말라꼬를 마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흘롑은 단지 빵이기 이전에 이미 흘롑이고 울릿쨔는 시작과 끝이 있는 통로라기보다는 모든 시대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결코 진화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대끼는 커다란 공동이다. 쵸르니는 이 세상에는 없는 농도의 검음이며 스따깐은 아무리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그 무엇이다. 16년 전 이번 주는 뻬쩨르에 있던 날들이다.
Russia 11_네바강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시절의 어떤 인상과 풍경들이 지금의 내 속에 얼마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그것들이 오히려 남은 내 삶에 무한한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현재의 내가 의식적으로 부단히 기록하고 선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간직하려하는 것들보다 내가 마감할 인생에선 궁극적으로는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것은 아닐지. 꽁꽁 얼어붙은 네바강 위의 이들을 마주쳤던 순간이 아마 그런 생각들의 출발점이었을 거다.
Russia 10_한 페이지의 시간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거주 등록을 해야했던 순간은 번거로웠지만 저 스탬프를 문제없이 받았을 때에는 왠지 대단한 일을 한 것 마냥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러시아에 갈 때 비자도 필요 없거니와 거주 등록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래도 덕분에 내가 15년 전 이번 주에 뻬쩨르부르그에 있었다는 기록은 오래 된 여권 한 페이지에 오롯이 남았다. 오늘 달력 속 날짜와 눈이 마주치자 어떤 숫자들이 그저 생각이 났다.
Russia 09_3시 25분 어떤 여행은 누군가를 추억하게 하고 누군가는 또 어떤 여행을 추억하게 한다. 아직은 그래도 많은 것이 여전하여 그 추억이 덜 먹먹하고 더 수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잊혀지고 사라질 모든 타자와 함께 나 조차도 포함해서 미리 아낌없이 추억하는 것이다.
Russia 08_회색 광장 나는 가장 이상적인 회색을 붉은 광장에서 뒷걸음질치며 모스크바의 한 귀퉁이에서 만났다. 3월의 모스크바는 세상의 모든 회색이 숨어든 공간이었다. 아니 그들은 너무나 당당히 점거했다. 오색의 바실리 성당도 크렘린도 민낯이 되었다. 뭘 봐야 좋을지 몰랐던 나에게 회색의 모스크바는 한없는 소속감을 주었다. 저 구름은 내 마음 속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아주 잠시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을때조차 회색은 그를 품어주지 않았다.
Russia 07_부산의 뻬쩨르부르그 부산역에서 내려서 남포동까지 걸어가는길에 뻬쩨르부르그라는 이름의 러시아 어학원이 있었다. 어학원 간판이라고 하기엔 너무 예뻐서 찍으려고 했지만 짐도 있고 비가 너무 내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는데 남포동 근처에 다와서 횡당보도 건너편에 또 다른 뻬쩨르부르그가 보였다.
Russia 06_엽서 속 바실리 성당 (Moscow_2006) 여행가고 싶다. 엽서쓰고 싶다. 여행가서 엽서쓰고 싶다. 뱀발- Nothing book 수첩 아직 파나.
Russia 05_오래전 러시아 여행 회상하며 보낸 소포 (Vilnius_2006) 러시아부터 발트 3국을 여행하고 바르샤바로 떠나기전 빌니우스에서 해당 나라의 론니 플래닛을 전부 잘라서 버렸다. 동유럽 론니 플래닛이 너무 두꺼워서 무겁기도 했지만 (물론 그것을 잘라 버렸어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지만) 3월말에도 짖궂게 쌓여있는 눈을 보며 4월에는 제발 따뜻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물론 지금은 4월에 겨울 부츠를 신고다니는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나긴 겨울에 익숙해졌다. '여름이 싫다, 추운 나라에 살면 좋겠다, 겨울이 긴 나라에 살고 싶어.' 라는 어릴적 나의 막연한 생각들은 어느 겨울의 끝자락, 러시아로 나를 끌어 당겼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 러시아를 추억하는것이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낯설지 않은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러시아 여행에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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