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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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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정거장 카페에서 자주 가는 카페의 좋아하는 자리. 딱히 아늑하지 않은지 거의 항상 비어있다. 우유 거품 가득 올라간 커피잔을 들고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는 사람들, 반쯤 시작된 수다와 함께 카페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따뜻하게 포옹한 채로 주문 차례를 기다리는 연인들, 빈자리를 못 찾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모든 주문을 처리하고 숨을 돌리는 바리스타까지. 그 모두로부터의 각기 다른 호흡과 생명력이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자리이다. 한 달에 두어 번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이곳에서 시작을 읽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반쯤은 고정된 일상이 있다. 이제는 짧은 시간에 작은 커피와 고밀도의 휴식을 취한 후 가볍게 일어나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푹 늘어지고 싶은 구석진 곳의 포근한 자리보단 이런 자리가 편하..
카페에서 5분. 이 카페는 정말 날씨가 지나치리만치 좋을 때 킥보드를 타고서 1년에 한 번 정도 간다. 자주 가지 않는 카페는 결코 아니다. 날씨가 그냥 자주 안 좋을 뿐. 대성당부터 베드로 성당 뒤쪽으로 이어지는 안타칼니스( antakalnis) 동네까지 네리스 강변을 따라 별다른 장애물 없이 쭉 타고 올라갈 때의 뻥 뚫리는 기분. 출퇴근 차량과 트롤리버스는 한결같은 매연을 내뿜고 있겠지만 곳곳의 과묵한 녹음들이 피톤치드를 분사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동한다기보다는 놀이기구를 타는 마음으로 혼자 몰래 불량식품 먹으러 간다는 생각으로 간다. 인터넷에서 중고책을 샀는데 만나서 전해주겠다는 장소가 바로 이 근처여서 오랜만에 이 카페에 들를 생각에 그러자고 했다. 11월인데 벌써 너무 춥다. 4시에 만나기로 했는..
2023년 10월 마지막 월요일 10월 마지막 일요일 서머타임의 종료는 아주 깊고 쫀득쫀득한 밤으로 가는 두 달 여정의 시작이다. 그 뒤로 모든 성자들과 죽은 자들을 위한 차분한 애도의 날들이 이어지고 늦춰진 한 시간으로 인해 2주일 정도 도시는 빛의 풍년을 맞는다. 이른 월요일 아침에 잠시 앉아 가는 카페. 멀리로는 보슬비 사이로 여전히 솟구치는 바닥 분수가 보이고 늘 앉는 자리 너머로는 꽃다발을 든 남자가 지나간다. 세상의 라디에이터들이 늘 따뜻했던 손처럼 가까스로 평균 온도를 획득하면 아늑해지는 것은 카페, 맛있어지는 것은 커피.
더블 에스프레소와 파리 브레스트 지난겨울에 먹었던 파리 브레스트. 파리는 엄연히 낭만적이고 달콤해야 했겠지만 낯선 디저트 이름을 보는 순간 벨파스트가 몹쓸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가본 적도 없는 벨파스트지만 몸을 덮은 얇은 헝겊조차 버거워하던 헝거의 마이클 패스빈더의 얼굴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도시이거늘. 이 모든 오해와 억측은 사실 브레스트라는 지명을 내가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파리와 브레스트 구간에서 벌어졌던 자전거 경주 대회를 기념하며 만들어진 바퀴 모양의 디저트라고 한다. 물론 아주 오랜 옛날에. 이 빵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라면 아마 이 날의 이 커피와 이 빵이었다. 늘 커다란 라떼잔에 담아주는 적은 양의 커피가 꼭 깊은 우물 바닥의 고인 물같았더랬는데 드디어 커피의 보송보송한 표면이 보이는..
굳이 마시는 커피 에스프레소 토닉을 마시면 뚜껑을 딴 250ml 토닉워터를 잔에 부은 후 병에 남은 음료도 커피와 함께 주는 카페가 있는 반면 남은 음료를 냉장고에 다시 넣는 곳도 있다. 그럼 김 빠진 토닉을 나 다음에 와서 나랑 똑같은 거 마시는 사람의 에스프레소에 붓는 걸까. 에스프레소 토닉에 들어가는 토닉의 양도 카페마다 다른데 적당히 붓고 얼음 몇 개 띄워주고 라임 한 조각 넣어주면 그게 가장 맛있다. 아메리카노와 롱블랙의 차이가 물 위에 커피를 붓느냐 커피 위에 물을 붓느냐라고 하는데 토닉 워터에 에스프레소를 붓는 것과 에스프레소 위에 토닉 워터를 붓는 것에 따라서 명칭이 바뀌진 않는 것 같다. 사실 그 형상과 맛은 참으로 다르다. 왠지 호주 어디에선 다른 명칭이 있을 것만 같다. 날이 더워서 하루 종일 이 커피..
뺑 오 쇼콜라의 여름과 겨울 직장 근처의 이 빵집은 지난 1월과 2월에 매우 자주 드나들었다. 격일 출근을 하며 거의 매일 이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샌드위치와 케익을 제외한 모든 빵을 다 먹어보고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들은 한 번 더 먹고 나니 한겨울 패딩 정도는 사양할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 1월 초에 문을 연 빵집은 손님이 정말 많았다. 8시에 문을 여는데 9시 반 정도에만 돼도 진열대가 텅 비었고 오후 2시면 재료소진으로 문을 닫았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 시기가 빵이 가장 맛있었다. 만드는 즉시 진열되었고 곧장 팔렸기 때문에 정말 갓 구워져 나온 빵들을 먹을 수 있었다. 빵을 전문적으로 굽는 베이커리치곤 커피도 맛있었다 . 지금은 직원이 늘었고 판매수량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게 되었는지 언제나 트레이..
간혹 마셔야 하는 커피 오늘Bolt 택시 이용 내역을 확인하다가 올해 들어 첫 킥보드 탔던 날의 기록을 보았다. (Bolt는 택시, 킥보드, 배달 통합앱) 4월 30일. 일요일. 오후 9시 01분-09시 09분. 1.4킬로미터. 8분 운행. 1.58유로. 이 날은 밖에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집에 있기로 한 날인데 저녁 늦게 마트 가려고 나왔다가 건물 나서자마자 현관 앞에 킥보드가 있길래 알 수 없는 포스에 이끌렸다고 생각하라는 포스에 사로잡혀 바로 올라타고 카페를 향했다. 어둑어둑해지려는 순간이었지만 흔치 않게 일요일 9시를 넘기고서도 일하는 카페가 약간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나. 8분이면 사실 꽤 긴 시간인데 정말 슝하고 순식간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주 가끔씩만 가기 위해 노력하는 카페이다. 이 집 커피..
동네 문방구 프로피테롤 구시가에 문방구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 카페 자리에는 사실 오랫동안 털실 가게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예쁜 색깔의 복슬복슬한 털실들을 사서 겉뜨기 안뜨기로만 뜬 목도리를 휘감고 다니다 풀고 뜨고 또 풀곤 했다. 털실은 그게 좋다. 망침의 업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이곳 생활 초기에는 그 어떤 신발을 신어도 발이 시려서 아랫집 할머니에게서 털양말 뜨는 법도 배웠는데 이젠 할머니도 안 계시고 양말은 뒤꿈치 뜨는 방법을 까먹었고 이제 이 기후에 적응이 된 것인지 웬만한 신발은 다 따뜻하다. 그와 덩달아 뜨개질 인구도 줄었는지 털실 가게는 사라졌다. 그리고 4년 전에 문방구 카페가 생겼다. 늘 가는 거리에 있음에도 4년 전 뜨거운 여름에 콤부차 한 병을 먹은 이후로 가지 않다가 트롤리버스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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