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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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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님의 말씀 만남의 여운은 결코 시간과 양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커튼과 에스프레소 오늘은 설마 장갑을 다시 꺼내야 하나 진심 고민했을 정도로 날씨가 차가웠다. 아마 비가 와서 더했을 거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쁜 날씨는 없다. 옷을 잘못 입었을 뿐.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눈 앞에 보이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그냥 들어갈까 고민했지만 비를 맞고 좀 걸어서 그래도 이 카페로 갔다. 비오는 날에 유난히 어울리는 곳들이 있다. 이곳은 잔술을 파는 바 겸 카페인데 층고도 높고 중간에 문으로 연결되는 구조라 조금만 더 변화를 주면 좀 더 오래된 카페의 느낌이 날 것 같은데 벽과 탁자의 일관된 색상이 가끔 아쉽다. 그래도 빨간 커튼이 항상 묵묵히 에스프레소에 대꾸해준다.
13시의 엠빠나다와 커피. 스포티파이에서 슈게이징과 로우 파이 장르를 랜덤으로 걸어놓고 듣다가 Bubble Tea and Cigarettes 란 밴드를 알게 되었다. 요즘 같아선 드림팝을 베이스로 한 음악들이 유행을 하는 세월도 찾아오는구나 싶어서 신기하다가도 너무 귀에 쏙들어오는 멜로디들에선 아쉽게도 곡 전체가 산으로 가는 듯한 슈게이징 특유의 헤매는 멋은 없는것같아 결국 90년대 슈게이징 시조새들의 음악에 더 빠져들게 된다. 아무튼 이 밴드도 등록곡이 많지 않아서 들은 곡을 듣고 또 듣고 했는데 조금은 검정치마를 떠올리게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공일오비의 멜로디를 슈게이징화한듯한 느낌에 꽂혀서 오히려 90년대 가요들이 많이 생각났다. 제일 먼저 듣고 귀를 쫑긋 세우게 했던 노래는 5AM Empanada with you. 빌니우스에..
두번째 커피 오후 네 시에 커피 마실 생각을 하면 오후 세 시부터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그 커피가 항상 훌륭한 것은 아니다. 보통은 오전에 마시는 첫 커피가 역시 가장 맛있고 커피가 믿음직스러울 때는 그것이 하루의 단 한 잔일 때이다.
아는 냄새의 커피 한국에 갈 때마다 마트에서 꼭 한 두 번 정도 사서 마시게 되는 드립백 커피. 포장을 뜯고 컵 안에 걸치고 물을 붓는 내내 약간은 긴장한다. 왠지 인디언밥 과자 같은 거 너무 세게 뜯어서 산산이 흩어지는 것처럼 뜯지 말아야 할 부분을 건드려서 커피 가루가 다 쏟아지거나 물을 붓다가 포트 뚜껑이 열려서 물이 쏟아져 나와 드립백이 컵 안으로 풍덩 빠질 수도 있을 거라 상상한다. 그런 몇 가지 변수들 사이에서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커피 향기가 피어오르는 순간 분명 도토루 커피를 떠올릴 거라는 사실. 내 기억 속에선 다방과 카페의 공동경비구역 같은 곳쯤에 있는 카페랄까. 일부러 어려운 나라 이름만 골라서 쓴 것 같은 커피 이름들을 마주하고 내 의식이 결국 명동 성당 앞의 도토루 카페로 ..
수집 거리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곳들. 누구나 안 보는 책들을 넣을 수 있고 또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는 일종의 도서 교환함이다. 보통 오래된 교과서들과 소설들, 표지만 딱 봐도 발행연도를 짐작케 하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이다. 구시가에서 중앙역으로 가는 길목에 특히 19세기 말경에 지어진 임대용 주택들이 많이 있다. 벽난로로 난방을 하던 시기에 지어진 집들이어서 여전히 장작 태우는 집들이 많다. 이 동네의 거리 도서관에 책이 가득 채워져 있어도 돌아오는 길에 보면 텅 비어 있을 때가 많은데 그것은 누군가에게 그 책들이 땔감용으로 유용하기때문. 리투아니아의 교과서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학교로 돌려주는 구조라서 돈 주고 사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려워서 쓸만한 교과서는 나도 챙겨둔다. 얼마 전에 가져다 놓은 옛날 4학년..
10/11/2021 얼마 전에 산 커피 원두를 개봉하여 향기에 감탄하며 열심히 갈았는데 여과지가 없다. 그래서 며칠 전에 내려 먹고 놔둬서 바싹 마른 커피들을 툭툭 털어내고 어쩔 수 없이 헌 여과지를 통해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리고 바람이 들어오는 창가에 서버와 드리퍼를 그대로 놔두면 컵에 지각한 커피물은 그대로 떨어진 채 증발하고 필터 속의 커피는 마르는 그 장면들에서 뭔가 커피 한 잔의 여정이 완벽이 끝났다는 담백한 느낌이 든다. 축축하고 묵직한 커피 필터를 곧 장 버릴 때 쓰레기 봉지 안에서 젖은 커피들이 미련을 가지고 질척되는 느낌과는 상당히 다른 그런 것.
10월 입문 짧았던 여름을 뒤로하고 지속적으로 비가 내렸다. 비와 함께 무섭게 추워지다가도 다시 따뜻해지길 몇 번을 반복하다가 9월에 내리는 비들은 아직은 꽤 남아 있던 가을과 그 가을 속에 또 아주 미묘하게 엉겨붙어있던 늦여름을 전부 말끔히 탈탈 털어 헹궈버렸다. 낙엽은 3분의 1 정도 떨어졌다. 난방이 시작되기 전, 이 시기의 집안 공기는 때로는 옷을 잘 챙겨 입고 바깥에 있는 것이 더 아늑하다 느껴질 만큼 야멸차고 스산하다. 정점에 이른 겨울이 풍기는 중후한 낭만과는 또 다른 까탈스러운 매력으로 충만한 시기. 그와 함께 커피는 또 얼마나 빨리 식는지 말이다. 어릴 적 가지고 있던 주니어 고전 전집 리스트를 기준으로 시간이 나는 대로 고전 다시 읽기 축제를 하고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주최자도 참가자도 나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