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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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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에스프레소와 파리 브레스트 지난겨울에 먹었던 파리 브레스트. 파리는 엄연히 낭만적이고 달콤해야 했겠지만 낯선 디저트 이름을 보는 순간 벨파스트가 몹쓸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가본 적도 없는 벨파스트지만 몸을 덮은 얇은 헝겊조차 버거워하던 헝거의 마이클 패스빈더의 얼굴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도시이거늘. 이 모든 오해와 억측은 사실 브레스트라는 지명을 내가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파리와 브레스트 구간에서 벌어졌던 자전거 경주 대회를 기념하며 만들어진 바퀴 모양의 디저트라고 한다. 물론 아주 오랜 옛날에. 이 빵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라면 아마 이 날의 이 커피와 이 빵이었다. 늘 커다란 라떼잔에 담아주는 적은 양의 커피가 꼭 깊은 우물 바닥의 고인 물같았더랬는데 드디어 커피의 보송보송한 표면이 보이는..
굳이 마시는 커피 에스프레소 토닉을 마시면 뚜껑을 딴 250ml 토닉워터를 잔에 부은 후 병에 남은 음료도 커피와 함께 주는 카페가 있는 반면 남은 음료를 냉장고에 다시 넣는 곳도 있다. 그럼 김 빠진 토닉을 나 다음에 와서 나랑 똑같은 거 마시는 사람의 에스프레소에 붓는 걸까. 에스프레소 토닉에 들어가는 토닉의 양도 카페마다 다른데 적당히 붓고 얼음 몇 개 띄워주고 라임 한 조각 넣어주면 그게 가장 맛있다. 아메리카노와 롱블랙의 차이가 물 위에 커피를 붓느냐 커피 위에 물을 붓느냐라고 하는데 토닉 워터에 에스프레소를 붓는 것과 에스프레소 위에 토닉 워터를 붓는 것에 따라서 명칭이 바뀌진 않는 것 같다. 사실 그 형상과 맛은 참으로 다르다. 왠지 호주 어디에선 다른 명칭이 있을 것만 같다. 날이 더워서 하루 종일 이 커피..
뺑 오 쇼콜라의 여름과 겨울 직장 근처의 이 빵집은 지난 1월과 2월에 매우 자주 드나들었다. 격일 출근을 하며 거의 매일 이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샌드위치와 케익을 제외한 모든 빵을 다 먹어보고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들은 한 번 더 먹고 나니 한겨울 패딩 정도는 사양할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 1월 초에 문을 연 빵집은 손님이 정말 많았다. 8시에 문을 여는데 9시 반 정도에만 돼도 진열대가 텅 비었고 오후 2시면 재료소진으로 문을 닫았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 시기가 빵이 가장 맛있었다. 만드는 즉시 진열되었고 곧장 팔렸기 때문에 정말 갓 구워져 나온 빵들을 먹을 수 있었다. 빵을 전문적으로 굽는 베이커리치곤 커피도 맛있었다 . 지금은 직원이 늘었고 판매수량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게 되었는지 언제나 트레이..
간혹 마셔야 하는 커피 오늘Bolt 택시 이용 내역을 확인하다가 올해 들어 첫 킥보드 탔던 날의 기록을 보았다. (Bolt는 택시, 킥보드, 배달 통합앱) 4월 30일. 일요일. 오후 9시 01분-09시 09분. 1.4킬로미터. 8분 운행. 1.58유로. 이 날은 밖에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집에 있기로 한 날인데 저녁 늦게 마트 가려고 나왔다가 건물 나서자마자 현관 앞에 킥보드가 있길래 알 수 없는 포스에 이끌렸다고 생각하라는 포스에 사로잡혀 바로 올라타고 카페를 향했다. 어둑어둑해지려는 순간이었지만 흔치 않게 일요일 9시를 넘기고서도 일하는 카페가 약간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나. 8분이면 사실 꽤 긴 시간인데 정말 슝하고 순식간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주 가끔씩만 가기 위해 노력하는 카페이다. 이 집 커피..
동네 문방구 프로피테롤 구시가에 문방구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 카페 자리에는 사실 오랫동안 털실 가게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예쁜 색깔의 복슬복슬한 털실들을 사서 겉뜨기 안뜨기로만 뜬 목도리를 휘감고 다니다 풀고 뜨고 또 풀곤 했다. 털실은 그게 좋다. 망침의 업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이곳 생활 초기에는 그 어떤 신발을 신어도 발이 시려서 아랫집 할머니에게서 털양말 뜨는 법도 배웠는데 이젠 할머니도 안 계시고 양말은 뒤꿈치 뜨는 방법을 까먹었고 이제 이 기후에 적응이 된 것인지 웬만한 신발은 다 따뜻하다. 그와 덩달아 뜨개질 인구도 줄었는지 털실 가게는 사라졌다. 그리고 4년 전에 문방구 카페가 생겼다. 늘 가는 거리에 있음에도 4년 전 뜨거운 여름에 콤부차 한 병을 먹은 이후로 가지 않다가 트롤리버스 정류장..
동네카페의 셈라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어서 통계적으로 가장 자주 가는 동네 로스터리 카페. 2년 전에 중국 대사관 옆의 허름했던 건물이 재단장을 하더니 스타트업이 들어섰고 카페도 동시에 문을 열었다. 카페가 정상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물론 최근 1년 사이다. 작년에 생긴 공유 오피스가 카페 내부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는데 간혹 가볍게 입고 노트북만 들고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약간 대학 동기가 살던 대형 고시원의 휴게실이 떠오른다. 대형 고시원들이 다 그랬던 건지 전기밥솥에 담긴 쌀밥이 기본 옵션이었는데 한동안 친구 준다고 반찬 가져다 놓고 거기서 친구랑 밥을 많이 먹었었다. 이 카페에 아침 일찍 가면 빵을 공급하는 조그만 배달차량이 도착하는데 그 차량이 떠나고 나면 정말 단 시나몬바브카나 라즈베리잼이 들어있는 ..
토요일 오전의 더블 에스프레소 게디미나스 대로에서 중앙역을 향하는 모든 탈 것들은 한대도 빼놓지 않고 이 카페 앞에서 커브를 돌아 좌회전을 한다.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는데 도로에 면한 카페 치고는 바깥 공간도 가장 넓다. 이 축복받은 남서향의 카페는 구시가 내에서도 단연 일조량 최고이다. 지난 1월 한 달 빌니우스 일조량이 4시간 남짓이었다는데 아마 그 4시간의 희소한 햇살을 이 카페는 일초도 남김없이 온전히 누렸을 거다. 카페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서 사방에서 꼼짝없이 신호에 걸리는 이들을 구경하기에도 좋다. 어떤 차량은 마음이 앞서 첫 번째 허들을 넘어뜨릴 만큼 앞서 뛰쳐나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뒷주자의 경적을 듣고서야 느릿느릿 움직인다. 하지만 이 카페의 커피가 분명 맛있음에도 자주 가진 않는다. 커피가 맛있..
겨울을 사랑한다면 3월에도.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어떤 향기가 나는지 심지어 소곤 될 것인지 혹은 박장대소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가고 싶은 카페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옷장의 검은 옷들이 저마다의 검음으로 망설임을 유발하고 기름 종이 한 장 차이의 구름의 채도가 고만고만한 비옷들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하듯 빌니우스의 몇 안 되는 카페들도 나에겐 그렇다. 극장 앞에 위치한 이 카페는 왜인지 겨울에만 집중적으로 가게 된다. 보통의 카페의 창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상현달처럼 보여주지만 이곳의 넓은 통유리창은 구시가를 향해 미세한 가속도가 붙어 하강하는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을 제법 완전하게 보여준다. 케이블을 붙들고 언덕을 오르는 트롤리버스의 꽁무니를 따라가다보면 소실점에 걸쳐있는 어린 로맹 가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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