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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모자를 쓴 아저씨가 극장문을 열고 나와 배우가 몸이 안 좋아서 연극이 취소됐다고 미안해했다.
세상에 많은 공연이 있다. 감동적인 공연, 형편없는 공연, 두 번째 보는 공연, 꿈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은 공연,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공연, 절대 봐선 안된다고 말리고 싶은 공연, 그리고 취소된 공연. 이들 중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장담할 수 있는 공연은 어쩌면 오직 '취소된 공연'이 아닐까.
공연은 이렇게도 시작되고 저렇게도 끝나지만 취소된 공연은 사정이 생겨 시작되지 못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작과 끝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름 끼치도록 일치해서 철저하게 공중분해된 느낌이다. 그리고 관객 모두는 극장 문 앞에서 그 파편들을 한 아름씩 나눠 안고 발길을 돌린다.
어떤 포지션에서든 공연이란 놈은 역시 떳떳하고 우직하다. 너란 존재는 공연 전의 커피와 공연 후의 독주 한 잔을 위한 교각에 불과하다며 독설을 퍼부어도 절대 상처받지 않고 우쭐해한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에도 없었던' 공연을 관람하고 예외 없이 일어나 과장된 박수를 치고 맡겨둔 코트를 찾아 찬 공기로 가득한 대로로 쏟아져 나와 왔던 방향으로 다시 걸어 나간다. 마치 공연 전의 커피를 다시 향하기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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