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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애지중지 마셔야 겨우 두세 모금 나오는 에스프레소를 테이크아웃하는 때란 사실 드물다. 뚜껑을 덮는 것은 거의 치명적으로 불가능하다. 에스프레소용 컵에 맞는 뚜껑을 가져다 놓는 카페를 아직까진 본 적이 없다. 있다고 해도 그 뚜껑을 누가 닫겠는가. 안에서 마시면 될 일이다.
오늘 아침부터 일하기 시작한 초보 바리스타에게 아주 결연하게 '어제도 내가 분명히 닫았다'며 에스프레소 뚜껑을 달라고 버티면 그게 원래부터 없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물품 창고를 다 뒤엎고 나서 매니저에게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 뭔가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우린 늘 집요하게 왜 나한텐 없는지 묻곤 하니깐.
에스프레소잔 뚜껑을 닫겠다는 불필요함은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신발과 미니 신발주걱을 세트로 선물하는 행위와 비슷하려나. 4조각짜리 초밥 곁에 짜인 모찌크기만 한 와사비와 식빵 한 봉지를 사러 가서는 엉겁결에 밀기 시작하는 대형 카트처럼 그저 생뚱맞다.
그러니 비를 맞는 에스프레소를 보며 카페에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에스프레소 컵 뚜껑닫기, 실내흡연, 고성방가, 불법취사, 음주가무, 무전취식, 이전투구, 전력질주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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