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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5센트 동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성 야고보와 산티아고. 나에게는 건축이란 단어를 읊조리는 순간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수십 년 전의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씻겨 내려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집트 사막 도시의 진흙집들, 시작조차 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완성되지 않은'이라는 그럴듯한 명칭을 달고 관광객을 끌어모으던 룩소르 오벨리스크의 영악한 주초이다. 없어질 수도 있었지만 기어코 살아남은 존재들,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의 운이자 타자가 부여한 숙명이 뒤섞인 결과이다. 무너진 뒤에도, 다시 세워진 뒤에도,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건축물들은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늘 후세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건축은 영리한 예술품이다. 건축물이 새겨진 동전들은 늘 내 시선을 가장 확실하게 끌어당긴다. 단지 유명해서 성스러워서 아름다..
오스트리아 1센트 동전-알프스의 야생화, 보라빛 겐티아나, 용담으로 빚은 약주들 5월 1일부터 리투아니아에서는 1센트와 2센트 동전을 더 이상 거슬러주지 않는다. 지불 총액이 0이나 5로 끝나도록 반올림하는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1센트 2센트 동전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내야 할 돈이 1.12유로라면 버림해서 1.1유로가 되고, 2.78유로가 나오면 올림 해서 2.8유로를 내게 된다. 카드 결제를 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조정 없이 결제한다. 때에 따라서 현금 결제로 일말의 센트를 절약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저런 금액이 나오지 않도록 물건 가격들이 조정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생활 물가는 오른다. 그렇다고 소액 동전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집에 1센트가 신라 고분처럼 쌓여있어서 어찌할 방법을 모르겠다면 1센트를 왕창 들고 다니면서 100개를 모아 1유로를..
오스트리아 2센트 동전 - 에델바이스,알프스의 별,알프스 보드카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 1200km 길이의 알프스 산맥은 프랑스, 스위스, 모나코, 이탈리아,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슬로베니아까지 8개국의 298 128 km²에 달하는 면적을 차지하며 뻗어나간다. 리히텐슈타인은 나라 전체가 알프스에 자리 잡고 있다. 알프스 산맥 곳곳에 솟아있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만 해도 128개. 오스트리아는 국토의 2/3 가 알프스 산악 지형이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도시, 토리노에 있는 몰레 안토넬리아나가 새겨진 이탈리아 2센트 동전 (https://ashland.tistory.com/1295)과 알프스로부터 뻗어 나온 트리글라우를 새긴 슬로베니아의 50센트 동전(https://ashland.tistory.com/558975)을 보면서 알프스에 조금이라도 지분을 가진 유럽..
독일 5센트 동전 - 독일 동전 속 참나무 가지, 히틀러의 참나무 유로 동전을 볼 때마다 세상에 과연 영원한 것이 있을까 생각한다. 체제, 민족. 국경. 나라처럼 일견 굳건해 보이는 것들도 언제든 완전히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에 얽힌 개인의 삶이 공중에 붕 뜨는 것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세계 지도는 지금도 계속 변화중이고 어떤 나라의 유로 동전은 구경도 해보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평균 직경 20밀리의 쇳조각 안에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뭔가를 고심 끝에 새겨 넣는다. 그래서 흘끔 거리게 된다. 어떤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강렬하게 존재할때 보다는 그 중심에서 벗어나서도 두고두고 기억되는 동안의 생명력을 좀 더 지지하게된다. 핀란드 2유로 동전을 포함해서 식물 도안의 유로 동전들이 몇 종류있다. 특히 이 여섯 종류의 오스트리아동전과 독..
몰타 5센트 동전- 몰타의 신전, 므나이드라(Mnajdra) 그리고 춘분 작년 언젠가 거슬러 받은 몰타의 5센트 동전. 며칠 전에 생각나서 꺼내보았다. 아마 이란 영화, 진흙집, 이집트 여행, 룩소르 신전으로 연결되는 이미지들이 몰타의 신전 앞으로 나를 데려다 놓은 것 같다. 몰타는 나에게 늘 여행사 입간판 속의 패키지 상품 리스트에 터키와 모로코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였다. 몰타가 어디 있지 생각하면 늘 정확하게 떠오르진 않는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몰타가 어디쯤인지 정확히 알려주는 지도를 찾았다. 몰타는 이탈리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지중해에 시칠리아 섬과 튀니지 사이를 잇는 작은 징검다리 돌처럼 놓여있다. 시칠리아에서 9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페리로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홍콩에 간 김에 마카오를 여행하듯 몰타는 시칠리아를 여행할 ..
슬로베니아 20센트 동전- 합스부르크의 명마 리피자너는 여전히 달리는 중. 돌이켜보니 말 한번 타보지 못한 그간의 내 인생에도 많은 말들이 있었다. 작은 숙녀 링이 타던 앤드류스, 제이크 질렌할을 브로크백마운틴까지 데려다주던 말, 와호장룡에서 장쯔이와 장첸을 태우고 광활한 벌판을 누비던 말,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크리스틴 토마스 스콧과 함께 사막을 배회하던 말, 무거운 짐을 싣고 가파른산을 오르기 전에 과음을 해야 했던 이란 영화 속의 노새들, 5살 내 동생이 설악산 입구에서 오천원주고 기념사진 찍었던 말, 그리고 슬로베니아 동전에 새겨진 합스부르크 왕조가 사랑했던 말, 리피자너. 언젠가 대형공구상점에서 연필깎는도구 하나를 사고 거슬러 받았던 이 20센트 슬로베니아 동전은 당시 그 행색이 지나치게 남루하여 나는 다시 상점으로 돌아가서 후시딘 연고처럼 생긴 금속 연마제를 ..
리투아니아 유로기념주화 -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언덕 (Kryžių kalnas) 유로 동전 디자인은 15년마다 한 번씩 바꿀 수 있다. 평균 수명이 80세라고 하면 살아가면서 네다섯 번 정도는 다른 동전 도안을 볼 수 있다는 소리인데 유로가 과연 그 정도로 영원불멸의 존재인지는 모르겠다. 리투아니아가 근 80년 동안 사용한 화폐만 놓고 봐도 러시아 루블과 리투아니아 리타스와 유로화 세 종류이다. 리투아니아는 2015년부터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https://ashland.tistory.com/336) 원한다면 2030년이면 동전 디자인을 바꿀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나름의 비전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1센트부터 2유로까지 모든 동전 도안을 국장 하나로 통일한 것은 참 따분하고 재미없다. 보여주고 싶은 게 차고 넘치는 나라와 하나라도 제대로 품고 싶은 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슬로베니아 50센트 동전 - 슬로베니아의 상징, 트리글라우 (Triglav) 유로 동전 디자인의 몇 가지 스타일이라면,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신이 새겨진 동전, 방문해서 구경 가능한 문화유산이 들어간 동전, '영국 말고 우리나라에도 왕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입헌 군주국의 동전, 지금보다 강성했던 역사적 부흥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나 민족의 상징을 앞세우는 동전, 그리고 국가가 끊임없이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우직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 유산을 담은 동전.자연 유산을 새기면 물론 그 나라의 관광 소득을 올리는데도 일조를 하겠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나라가 힘이 없어 대대로 강대국들에 휘둘렸고 민족 구성원도 종교도 다양하다. 멀쩡했던 나라가 세계 지도 속에서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할머니가 살았던 나라와 손자가 살았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