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 동전을 볼 때마다 세상에 과연 영원한 것이 있을까 생각한다. 체제, 민족. 국경. 나라처럼 일견 굳건해 보이는 것들도 언제든 완전히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에 얽힌 개인의 삶이 공중에 붕 뜨는 것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세계 지도는 지금도 계속 변화중이고 어떤 나라의 유로 동전은 구경도 해보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평균 직경 20밀리의 쇳조각 안에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뭔가를 고심 끝에 새겨 넣는다. 그래서 흘끔 거리게 된다. 어떤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강렬하게 존재할때 보다는 그 중심에서 벗어나서도 두고두고 기억되는 동안의 생명력을 좀 더 지지하게된다.

핀란드 2유로 동전을 포함해서 식물 도안의 유로 동전들이 몇 종류있다. 특히 이 여섯 종류의 오스트리아동전과 독일 동전들은 사실 헷갈리기 쉽다. 아래는 전부 동일한 식물 도안의 독일 1.2.5센트 동전이고 위는 오스트리아 1.2.5센트 동전들이다. 아인 츠바이 퓐프를 적어 액면가를 표시했고 5센트 동전의 협소함을 극복하고 움라우트를 깨알같이 표시했다. 알파벳을 적어서 독일 동전과 구별되고자 했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것때문에 늘 헷갈리곤 했다. 하지만 꽃장식 아래에 오스트리아 국기가 보인다. 물론 이 오스트리아 참빗 국기를 알아보기 전까지도 오랫동안 이들이 독일 동전이라고 생각했었다.

독일인들은1,2,5 센트 세 종류의 동전에 모두 참나무 가지를 새겼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도토리 두개와 참나무 잎사귀 다섯 개가 달린 참나무 가지'이다. 독일의 공식 유로 동전 도안이 딱 세 종류인데 전부 좀 투박하다. 독일 독수리 국장과 브란덴부르크 게이트를 포함해서 나뭇가지 도안조차도 조금 말걸기 무서운 과묵한 사람같다 해야하나. 그래도 참나무 가지 아래에 매달린 도토리를 보고 있으면 도토리를 모아서 좋아하는 노래를 한곡 두곡 사던 시절이 떠올라서인지 딱딱했던 동전의 인상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애써 참나무 가지 사이로 독일 다람쥐라도 튀어나오는 장면을 연상시키면 그나마 마음이 좀 녹기 시작한다.

비교적 그 역사의 시작과 끝이 명확한 건축물이나 인물들과 비교하면 동전에 새겨지는 식물, 새, 산 이런 자연물들에선 상대적으로 영속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살짝 지루하고 성의없어 보이는 것은 상징물이 가진 그 특유의 강요와 진부함 때문일 거다.







독일은 대대로 참나무를 열심히 동전에 새겼다. 독일 독수리가 하켄크로이츠를 감싸고 있는 참나무 화환을 움켜쥐고 있는 나치 독일의 동전부터 참나무가 아주 풍성한 고목으로 성장한 바이마르 시대의 동전까지. 소장용 금화 속의 참나무 잎사귀는 알타미라 동굴에서 나왔을법한 화석처럼 불멸이고 2차 세계대전 패망 후에는 급기야 참나무를 다시 심으며 심기일전하는 여인을 동전에 등장시킨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대왕도 프로이센의 빌헬름 2세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힌덴부르크도 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참나무 가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히틀러는 심지어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30명에게 참나무 가지를 엮어서 만든 화관을 씌워주고 독일 로부르참나무 묘목을 부상으로 주기까지 한다. 손기정 선수가 단상에 올라가서 일장기를 가렸다는 참나무 묘목은 올림픽이 끝난 직후 심어져서 지금은 손기정 기념 공원에 있다는데 그것이 독일산 로부르참나무인지 미국산 대왕참나무인지 그 외양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히틀러는 독일산 참나무 묘목을 줬지만 베를린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40일이 걸려서 참나무가 죽는 바람에 다른 참나무를 심었다는 설부터 독일 정원사의 실수로 묘목이 바뀌었을 거라는 설까지 하지만 히틀러가 설마 미국산 참나무를 상으로 줬을까 싶다. 실제 기념 공원에 가서 참나무를 보면 한 번에 구분할 수 있을것 같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손기정 선수가 들고 있는 참나무 묘목이나 화관속의 마른 참나무 잎사귀를 보면 둥글둥글한 형태가 동전 속의 참나무와 리투아니아에 있는 참나무 잎사귀와 거의 동일하다.
1936년에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순간에도 히틀러는 열심히 전쟁 준비중이었다. 2024년에 올림픽을 할 때도 전쟁 중인 나라가 있었으니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불과 이삼 년 후부터 주변국들을 하나하나 먹어 삼키기 시작했던 히틀러는 언젠가 충실한 친위대로 자라줄 유겐트처럼 130그루의 아기 참나무들에 온 세상에서 자라나길 바랬던걸까? 독일 독수리가 날카로운 발로 온 세상을 꽉 움켜쥐고있는 모습을 히틀러가 꿈꿨다고해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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