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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9.11.04 흔들린 커피
Film2019.11.11 21:35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을 보다가 머릿속으로 급소환 된 프랑스 영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느 가족>의 엄마 면회 장면이 발단이었다. Guilliaume Canet. 매번 구일리아움? 귈레르메? 뭐 이렇게 저렇게 읽다가 얼굴을 봐야 아 기욤이였지 하고 뒤늦게 인식하게 되는 이 프랑스 배우. 나름 원어를 최대한 살린 한국식 표기이겠지만 왠지 프랑스 시골에 가서 당신 나라의 유명한 배우 기욤 까네 알아요 하고 현지인과 나름 친해지겠다고 이름을 내뱉으면 정말 아무도 못알아들어서 멋쩍어질 것 같은 배우 기욤 까네가 출연한 프랑스 영화이다. 헥헥. 사실 그가 요리사로 나왔던 어떤 영화를 이전에 본적이 있어서 아 혹시 이미 본 그 영화인가 긴가민가 하며 보기 시작했지만 풀죽은 월급쟁이 요리사가 자기 식당을 차려서 희망찬 삶을 시작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식당을 차리기 위해 여기저기서 무지막지하게 대출을 끌어쓰다가 폭망하고 모든게 꼬일대로 꼬여서 결국 캐나다로 도피까지 하게 되는 사실상 몹시 암울한 영화.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요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과연 행복한 삶과 더 나은 삶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것일까. 재정적인 독립은 얼마만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혹시 환상이 아닐까.  인간과의 끈끈한 감정적인 결속만이 결국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과연 그런식의 행복만으로 우리 인간은 만족할 수 있을까. 결국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은 완전치란 없이 무한히 확장되기에 끝없이 채우고 또 채워야만 하는 블랙홀 같은 것, 상대적 불만족을 합리화하는 대체어가 아닐까. 

요리사 얀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나섰다 웨이트리스 나디아를 알게 되고 둘은 연인이 된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함께라면 뭔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영감과 용기를 얻은 이들은 때마침 매물로 나온 호수 앞 건물을 운명처럼(이라고 생각하며) 마주치게 되고 자신의 식당을 차릴 꿈에 부푼다. 많지 않은 월급에 모아 둔 돈도 없는 이들에게 유일한 대안은 대출. 건물을 사기 위해 적지 않은 대출을 받고 선금을 내기 위해 또 대출을 받고 식당 인테리어를 위해 또 대출을 받으며 결국 한 달에 몇 천유로에 육박하는 대출 이자를 감당해야 할 상황이 되지만 관련 법규에 맞지 않은 식당 설비와 인테리어로 식당 영업은 불가능하게 된다. 대출 상환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 법규에 맞게 고치려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이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상황. 결국 업자를 만나 헐값에 식당을 되팔고 빚더미에 앉은 이들은 현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분열하기 시작하고 나디아는 자리잡을때까지만 아들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고는 캐나다 취업길에 오른다. 하지만 한 달 후를 기약한 나디아는 연락이 없고 얀은 여자친구의 아들을 건사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얀이 식당을 되파는것을 도와준 은인 행세를 한 남자는 알고보니 고리대금에 하층민으로부터 월세를 착취하고 사는 남자, 얀은 결국 그를 강도할 계획을 세우고 훔쳐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나디아의 아들 슬리만과 캐나다로 도주한다. 연락이 끊긴 나디아는 알고보니 마약 판매책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다. 나디아는 차마 아들을 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얀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그들은 눈물로 상봉한다. 얀은 변호사를 구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근처 식당에 취업한다. 이들이 얼마나 더 끔찍한 상황에 놓일지 보게 되는 것이 불안하여 영화가 끝나려면 얼만큼 남았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하지만 엄마없이 남은 소년 슬리만에 대한 진심어린 동정과 끝까지 나디아를 포기하기 않고 찾아내려는 얀의 노력은 희망적이었다. 어느 가족의 가짜 엄마와의 면회 장면과 나디아와 친아들의 조우 장면은 사실 그 상황 자체가 확연히 다른듯 보이지만 더 이상 엄마로써의 역할을 해줄 수 없음을 인정해야함에 있어서는 똑같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가 떠올랐을거다. 

얀과 나디아의 아들 슬리만이 잠시 머무는 카페 장면이 있는데 이곳이 탕웨이가 만추에서 갔던 카페랑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감옥에서 출소해서 탕웨이가 들어서는 카페가 우울감 가득한 영화 속에서 가장 고요하고 안정적인 정취를 불러 일으켰듯 힘든 상황이지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길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얀이 잠시 현실에서 도피하여 바닷가에 머물며 유쾌한 웃음을 나누는 이 장면은 이들에게 더 큰 불행이 닥치는 것은 아닐까 끝없이 음울해지는 와중의 영화 속에서 잠시 한 숨 돌리며 마음을 쓸어내리게 해주는 따사로운 장면이었다. 

세상은 살기 다급한 사람들의 약점을 안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잘 살고 싶은 사람들, 모험을 하지 않으면 이 생애에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급한 사람들의 움직임에 온 촉각을 내세우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무서운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비단 고금리 대부업체나 사기꾼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불행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은 마치 모두가 그처럼 살아야할것처럼 자신의 성공담을 팔아먹고 꼭 막다른 길목에 놓인 불우한 사람들이 아니어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을 뒤돌아보며 더 나은 인생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다. 이 세상에 '더 나은 삶'보다 강력한 떡밥은 없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돈을 벌고 돈이 없으면 그런 삶은 불가능해보이는데 돈을 벌고나도 이미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기 힘드니 문제다. 어쩌면 얀은 감당하지 못할 변호사 비용을 치르고도 나디아의 무죄를 증명하지 못해서 그들은 지쳐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인생이 그렇게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때에도 최소한 함께이기에 덜 불안하고 덜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불행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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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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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9.11.10 17:13

 입속에서 제목을 읊조리마자 단번에 마음에 들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결코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 오래 전에 이 터키 감독의 다른 영화를 재밌게 본 기억도 있지만 제목에 겨울이 들어간다니 무조건 마음에 들었다. 세상 모든 곳의 어떤 추위가 기본적으로 공감과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겨울과 추위들을 많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통해서도 좀 더 풍부하고 산문적인 감정으로 보존하고 싶은 욕구도 있는듯하다. 길고 지루한 겨울임에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 그곳에서 짧고 찬란한 여름 이상의 빛과 따사로움을 맛보고 싶은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이 한 장의 포스터는 영화의 분위기를 너무나 잘 포착했다. 포스터의 첫인상은 어느 소인국의 버려지고 황폐한 성을 걸리버 같은 사람이 케익인줄 알고 가져와서는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절묘하게 기억해내서 먹으려고 하는데 급한 성질에 정말 너무 꽝꽝 언 나머지 도무지 먹을 수가 없어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직전의 느낌이다. 영화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을 생각하며 포스터를 좀 더 깊숙히 들여다보면 냉동고 속에서 타성처럼 자라나는 쓸모없는 성에들처럼 봄이 와도 녹아 내릴 것 같지 않은 하얀 눈 더미에 뒤덮힌 빛 바랜 성채가 보인다. 그 안을 가득 메운 것은 습관이 되어버린 권태 그리고 그 모든 권태와 자기 기만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인물들이다. 뒷편의 희뿌연 안개를 넘어서면 그들을 제외한 모든이에게 허락된 듯한 따스한 봄의 태양이 내리쬐고 있을 것도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그 모든 기쁨과 환희에서 열외가 되어버린 그들만의 폐쇄적인 왕국의 느낌은 더욱 짙어진다.      

이 일러스트는 좀 더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봄의 태양은 떠올랐고 강은 이미 녹아서 흐르고 있지만 고뇌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뭔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며 영화가 끝나는 듯 하지만 결국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계절이 바뀌듯 갈등과 화해도 그냥 순환할 것 같은 느낌이다. 터키 영화이고 이곳은 카파도키아의 어디쯤. 동굴 호텔 속의 벽난로, 온화한 조명, 인물들의 대화 한가운데 빠짐없이 등장하는 찻잔이 내뿜는 따뜻한 기운, 끝없는 혹한의 느낌 때문에 더 그랬겠지만 상대를 향해 거침없이 내던져지는 조곤조곤하고도 맹렬한 터키어가 러시아어적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매력적으로 들려온다. 흥미진진한 시나리오도 아니고 영화의 분위기도 관조적이고 명상적이지만 3시간 반 가량 되는 영화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의 굵은 뼈대가 되는 것은 인물들의 집요하고도 통렬한 대화 장면들. 심지어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런 두 인물의 대화만으로 20여분을 끌고가는 대범함을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호텔 투숙객들과의 형식적이고 일상적인 대화들이 깨알같이 배치되어있다.

영화 속의 동굴 호텔, 그리고 아내의 방과 남편의 서재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카파도키아의 특유의 지형이 만들어낸 이 특수한 주거 형태는 한없이 자기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을것처럼 비밀스럽고 동화적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감정적으로 고립된 인물들을 표현해내는데 최적의 배경이 된다. 어려서부터 사진을 찍었다는 이 터키 감독이 포착해낸 아름다운 겨울의 경관들은 인물들의 핏발 서린 말싸움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안톤 체홉의 단편 '아내' 에서 소재를 끌어오긴했지만 여러모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여러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흔적이 역력한 영화이기도하다. 예민한 논쟁을 통한 아슬아슬한 심리 묘사, 인물들의 장황한 대사와 분석적인 서술로 가득한 그의  소설을 읽으며 본능적으로 작가가 그렇게 공들여 표현해낸 장면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머릿속에 그려보게 되고 소설에 어울릴 것 같은 배우들을 떠올려보게 되듯이  이 영화를 보면서는 꼭 그 반대의 기분이 들었다. 영상으로 구현해내긴 힘들것이라 생각되는 한 편의 긴 소설을 읽는 기분. 반면 소설이었더라면 한 페이지 정도를 할애해서 내밀하게 묘사되었을 어떤 상징적인 장면들은 아주 차갑고도 객관적인 각도의 정지된 화면으로 순간순간 등장하며 신랄한 대화 장면들을 매끄럽게 이어준다. 천장 아래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축축한 빨래줄을 통해 덕지덕지 붙은 가난을 묘사하다 병을 고치려면 이탈리아로 요양을 가야한다고 말하는 쌩둥맞은 의사를 배치하며 궁핍을 극대화하는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한 장면이라든가 정신 나간 레뱌드낀의 여동생의 볼품없는 모습과 그녀의 식탁에 놓인 몇군데 뜯어먹은 독일빵을 묘사하는 악령의 어떤 장면이 지극히 시각적으로 다가온다면 서툰 동정심으로 돈을 들고 온 집주인의 아내에게 이미 끓여놓은 차에 뜨거운 물을 넣어 희석시킨 차를 대접하는 가난한 세입자의 모습이 대사없이 무덤덤하게 클로즈업 되는 영화의 한 장면은 역으로 소설속 묘사처럼 읽혀졌다.        

 영화는 월세가 밀려서 티비를 빼앗긴 할머니, 사람을 때리는 바람에 감방에 다녀와 새 직장을 찾기도 수월치 않은 세입자의 어린 아들이 불만을 품고 지주 어른 작가의 자동차에 돌을 던지는것으로 시작된다. 소년의 되바라진 행동과 깨진 유리창에 대해 책임을 물으러 세입자의 집을 찾아간 주인은 어지럽혀진 마당에서 세입자들의 가난을 목도하게 되지만 올리브가 세 알 밖에 없으면 예쁜 접시에 담아먹으면 될 뿐이라고 현실과 겉도는 소리를 할 뿐이다. 반면 세입자는 돈이 없을지언정 굽실거리지 않고 자존심 하나로 꼬장꼬장하다. 동네 이맘인 세입자의 동생은 그런 형과 달리 현실적이다. 돌을 던진 조카를 데리고 밀린 월세와 유리창 값에 아량을 베풀어줍사 거의 헐벗은채로 먼 길을 걸어서 호텔까지 찾아온다. 주인님 손에 입을 맞추고 용서를 빌라는 삼촌의 다그침에 호텔 주인은 겸연쩍게 손을 내밀고 아빠만큼의 자존심과 원칙을 지녔던 어린 소년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기절을 한다. 

터키의 현재가 배경이지만 은퇴한 연극배우이자 이따금 지역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것으로 소일하는 주인공 아이딘은 거대한 영지를 거느린 봉건시대의 지주처럼 묘사된다. 그는 마을의 전통적인 부호였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주택들을 임대하고 동굴을 개조한 호텔을 운영하며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살아간다. 그의 삶은 한편으론 질투가 날 정도로 따스해보인다. 바깥의 추위와 누군가의 혹독한 가난과는 동떨어져서 지금까지 그가 누려온 자유로운 삶을 보여주는 물건들로 가득한 그의 서재 안에서 때가 되면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차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더할나위없이 아늑하다. 이 동굴집에는 남편 아이딘과는 이미 오래 전에 거리를 두기 시작한 듯 보이는 젊고 예쁘지만 차가운 아내 니할과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하는 오빠네 집에 얹혀서 무료한 삶을 사는 이혼한 여동생 네즐라가 있다. 호텔과 서재, 아내의 방, 거실들은 꽁꽁 언 바깥 마당을 통해서야 비로소 연결되고 마치 성탑에 갇힌 사람들처럼 창문을 통해서만 서로의 동태를 파악한다. 아내와 남편간의 그 어떤 스킨쉽도 남매간의 다정함도 모두 배재된채로 각자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들. 가정부에게 누가 아침에 커피를 마셨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따위를 물으며 서로를 향한 관심을 내비치는것이 전부이다. 

남편의 돈으로 지역 사회의 기부에 열중하는 아내 니할은  지속적으로 호텔에서 자선 행사를 연다. 아이딘은 자신에게는 항상 냉랭하게 대하면서 자기 집에서 자기 돈으로 자신의 친구들을 비롯한 마을 남자들게 웃음을 보이며 상냥하게 소통하는 아내가 못마땅하다. 반면 아내 니할은 이미 애정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돈많은 남편에게 재정적으로 속박되어 있으면서도 쉽게 그를 떠날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심리적으로 이용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아이딘을 증오한다. 여동생 네즐라는 오빠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척 하면서 사사껀껀 비꼬고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는다. 아내와 여동생은 없는 자에게 별다른 동정을 베풀지 않는 작가를 비판한다. 작가는 손까딱하지 않고 놀고 먹으면서 누군가가 벌어놓은 돈으로 자선과 동정을 운운하며 고고한척하는 아내와 여동생을 이해할 수 없다.  코엔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는 불임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지만 전과가 있어 입양도 할 수 없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홀리 헌터가 동네 가구 회사 사장의 일곱 쌍둥이 중 아이 하나를 훔칠 계획을 세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납치를 계획하게 했을까. 아이가 일곱이나 있으니 한 명 정도 없어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에서였을거다. 나보다 많이 가졌으니 하나 정도 덜 가져도 괜찮고 많이 가졌으니 당연히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천만한가. 특히나 그런 생각을 덜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열심히 노력해서 가진자에게는 더없는 폭력이다. 항상 덜 가진 자의 입장에서  사고하기에는 부라는 것은 너무나 상대적이다. 극 중 여동생 네즐라는 오빠에게 있는 자로써의 관용과 희생을 요구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도 이스탄불에서 산 예쁜 접시를 깬 가정부의 월급을 깎을 고민을 하는 가진자에 불과하다. 젊은 아내는 기부에 참여하겠다는 남편이 준 돈을 가지고 세입자를 찾아간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세입자는 그 돈꾸러미를 보란듯이 벽난로속으로 던져버린다. 누가봐도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부분인데 그의 다른 소설 악령의 한 부분에는 심지어 이런 구절이 있다. '자선에서 나오는 쾌감은 교만하고 부도덕한 쾌감이며 부자가 헐벗은 자의 의의와 자신의 의의를 비교해서 자신의 권력과 부에 탐닉하는 쾌감이다. 자선은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모두 다 타락시키고 더욱이 목표에 이르지도 못하고 헐벗음을 배가시킬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바르바라 뻬뜨로브나의 입을 빌려 전달하는 메세지도 극중 아이딘이 아내에게 쏟아내는 이야기들과 다르지않다.    

 영화의 백미였던 20여분에 달하는 아이딘과 네즐라의 말싸움 장면. 한마디 두마디 나름 이성적으로  오고가던 불만과 비판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가장 예민한 부분들, 상대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약점을 보란듯이 건드리는 인신공격으로 이어지며 겉잡을 수 없는 상태로 내달린다. 상대가 침묵과 이해로 감내하고 있을지도 모를 내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가장 양심적이고 가장 올바르고 이상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치켜세우며 상대를 짓밟는다. 무엇이 우리를 아집이라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을까. 늘상 상대의 실수와 결점을 비난하고 그것을 고치겠다는 생각으로  그토록 엄격한 우리가 그 오만한 겨울잠에서 깨어나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내가 매순간 누군가에 의해 이해받고 배려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때에야 가능한지도 모른다. 이혼한 여동생 네즐라가 남편과의 관계를 회상하며 남편의 악행에 맞서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남편 스스로가 그 자신의 악행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인내하고 배려했더라면 그들의 관계는 지금과는 달랐을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와 안나가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도박에 빠져서 가진것을 탕진하고 미리 받은 원고료에 부랴부랴 소설을 써야했던 남편을 그저 지켜보고 노름 못해서 안절부절하는 남편에게 오히려 돈을 쥐어주며 도박장에 보내던 안나. 그런 안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결국 도박을 끊었다는 도스토예프스키도 결국 그의 재능을 사랑했고 그의 결점을 사랑으로 인내했던 아내가 있었기에 존재했던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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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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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9.11.08 19:50


부산 국제 영화제 상영작들 구경하는데 노아 바움백의 신작 Marriage story 가 눈에 들어왔다.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가 의외로 어울리는 부부 포스를 풍기며 아이를 사이에 두고 누워있는 포스터였는데 12월 초에 넷플릭스에서 해준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 우후후. 그린버그 Greenberg 이 영화는 프랜시스 하 (https://ashland11.com/323) 의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의 초기작이다. 언제 이들이 다시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협업할 일이 있을까 싶을만큼 완전히 독립해서 소피아 코폴라만큼 성장하고 있는 그레타 거윅이지만 이 작품은 몇몇 작품을 통해 보여진 그들의 케미스트리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조심스레 훔쳐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하다. 감독적 역량 뿐만아니라 그 개인적 삶에 있어서도 그레타 거윅은 노아 바움백의 영화 속에서 마음껏 성장한것이 아닐까. 무엇을 꿈꿔야 되는지 조차 몰라서 방황하는 아직은 소녀티를 벗지 못한 이십대 초반의 여자와 꿈꾸는 삶을 사는것이 마냥 수월하지만은 않아 절망하는 이십대 후반 그리고 결국 그런 상황들과도 타협하면서 다른 대안을 찾아 또 다시 힘을 내는 그간의 캐릭터들이 어쩌면 실제 그녀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함께 쓴 시나리오이고 그 역할들을 본인이 직접 연기할 수 있었으니 더 생동감있게 다가왔던 캐릭터들. 그리고 이 영화 속의 프랜시스는 그녀가 연기한 그런 모든 캐릭터의 원형이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는 당시 노아 바움백의 배우자였던 제니퍼 제이슨 리가 공동 참여했다. 노아 바움백은 그 이후로 여주인공을 연기한 그레타 거윅과 연인이 되어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몇 편의 영화를 공동으로 만들게 되는데 그래서일까. 벤 스틸러가 연기한 로저 그린버그는 다분히 감독 스스로의 모습일까 상상하게 되고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 온 전 남자친구 로저 (벤 스틸러)가 풀어놓는 옛 이야기들에 대해 애써 기억나지 않는 척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싱글맘을 연기한 베스 (제니퍼 제이슨 리)의 표정이 이토록 착잡해 보이고 로저와 밀고 당기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듯한 플로렌스(그레타 거윅)의 표정은 그토록 수줍고 풋풋해 보이다니 그들 두 여배우에게서 스러져가는 관계와 시작되는 관계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면 이미 결과를 알고있는 자의 끼워 맞추기식 억측일까. 

스스로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사람들의 온 노래에 걸쳐 묻어나는 고유의 자전적 스토리 텔링이 있듯이 각본과 연출을 항상 겸하는 사람들의 작품들 사이의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결 고리들을 확인하며 지속적으로 그들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관객으로써 큰 행운이다. 작업하는 배우들과의 끈끈한 관계와 이 영화에서 다음 영화로 계속 확장되는 이야기들에서 노아 바움백과 홍상수가 비슷한 연출 스타일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좋다. 뚜렷한 직업없이 뉴욕에서 생활하는 로저는 베트남으로 휴가를 떠나는 형의 집을 봐주기 위해 십년 넘게 떠나있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번듯한 가정을 이루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개인 비서까지 집에 둘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남자인 형과 비교하면 한없이 불안정하고 결핍된듯 보이는 로저. 항공사며 커피 회사며 여기저기로 불만이 가득 담긴 신경질적인 편지들을 보내는 것으로 소일하고 수영장이 딸린 대궐같은 집에 덩그러니 남은 형의 개가 살집을 짓는 목수가 되어 형의 개인비서인 프랜시스와의 소통을 시작한다. 하지만 개는 병이 들어 죽어버리고 로저가 짓는 개집은 주인을 기다려보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오랜기간 떠나있던 고향에 돌아오는 주인공의 조금은 움츠러든 시선과 (하지만 동시에 애써 그러지 않은척 소극적으로 으시대는) 고향에 남아있던 친구들의 그런 주인공을 바라보는 조금은 차갑고 떨떠름한 시선이 공존하는 이런 느낌의 영화들이 종종 있었다. 이혼한 샤를리즈 테론이 고향에 돌아와서 결혼에서 잘 살고 있는 옛 남자친구의 행복한 현재를 애써 부정하며 몸부림치는 Young adult (https://ashland11.com/191) 라든가 직장도 잃고 뭘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을 추스리러 고향에 돌아오지만 부모님 집에서 샤워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몸만 큰 아이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프란시스 하의 어떤 장면이라든가. 난 항상 뭘 해야할지 모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들과 그들이 막 뭔가를 하려는 순간 끝이 나버리는 영화들이 좋았다. 어쩌면 나 자신이 아무런 발전도 성장도 추구하지 않고 주어진 작은 일들에 안주하는 삶을 살고 있거나 그것이 최선이자 최상의 상태라고 합리화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철빔 하나가 빠져서 어떻게 해도 각이 안 잡히고 무너지는 텐트 같은 삶속에서   방황은 나의 영원한 소임이라 말하는듯한 로저에게 맡겨 둔 애완견 하나 건사하지 못한다고 힐난하는 형의 목소리는 버겁기만 하다. 그래서 별달리 이룬것 없고 앞으로도 달리 그럴것 같지 않은 인생을 대하는 마흔살 로저의 심리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별 걱정도 없어보이는 로저의 그런 표면적 여유를 동경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젊기에 불안한 이십대의 플로렌스의 심리 둘다에 공감이 갔다. 심지어 '나 그냥 가끔 목수일하면서 그냥 별 일 안하면서 살 고 있어'라는 식으로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향해 냉소하는 로저에게 '우리 나이에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 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베스에게서 우리 모두가 그에 맞서 투쟁하지만 애써 부정하는 삶의 피로감이 처절하게 묻어난다고 하면 비약일까.   

너무나 좋아했던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 돌이켜보니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러쉬, 위험한 독신녀, 조지아 등등의 모든 전성기의 영화에서 그녀가 보여준 매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퇴폐미가 아니었나 싶다. 택시 드라이버의 조디 포스터 역이나 25그램의 나오미 왓츠 역, 레퀴엠 포 어 드림의 제니퍼 코넬리역을 그녀가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 시대의 비슷한 또래의 여배우들 중 가장 개성있었고 드라마틱한 얼굴을 가졌던 배우, 곧 예순을 바라보지만 무슨 역을 해도 좋으니 마블 영웅들의 엄마역 같은것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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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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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2019.11.06 20:43


9월의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을때 머리속에 떠오른것은 을씨년스럽고 외롭기 짝이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흑백의 풍경이었다. 그런 풍경이라면 좋았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바와 윌리와 에디가 마주한 텅 빈 바닷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생각하니 급속히 바다가 가고 싶어졌다. 9월의 발트해는 12월의 동해 만큼 차갑겠지. 한여름의 붐비는 바다,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뜨거운 모래 사장에서 햇살을 만끽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없으니 어쩌면 다행이다. 신발만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 젖은 양말속에서 불어서 얼어버리는 발가락은 너무 절망적이니깐. 왠만해서는 뭔가를 미리 예약하지 않게 된다. 새벽 일찍 샌드위치까지 만들어서 첫차를 타러 기차역에 갔는데 일반석표가 없다고 했다. 다행히 딱 필요한 명수 만큼의 1등석표가 남아 있었다. 그 가격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커피와 물, 샌드위치도 준다고 했다. 무엇보다 강제적으로 5시간 동안 편한 좌석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책 한권을 동반하고 그냥 읽다 잠들다 읽다 잠들다 하면서 기차만 타고 다시 돌아와도 좋을 것 같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승무원이 초콜렛과 커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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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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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설마

    한번쯤 누려보고 싶은 호사(?)

    2019.11.12 07:51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 글과 사진을 보니 삽산 고속철 타고 모스크바에서 뻬쩨르 가던 몇년 전이 떠올랐어요 근데 홍차랑 초코케익을 내 돈 내고 사묵었음 ㅠㅠ 1등석이 아니어서ㅠ

    2019.11.12 16: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Coffee2019.11.04 18:40


10월의 어느 날 마셨던 커피들의 향기가 유독 진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포터필터 가득히 담겨지는 균일하고도 포실포실한 커피 가루들처럼 마음속으로는 앞으로 할 수 있을 법한 내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들에 대한 단어들과 상상들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우유저그를 갖다 댄 스팀 파이프에서 순식간에 쏴하고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처럼 지나고 나서야 마음 놓고 회상 할 수 있을 순간들에 대한 인내와 아련함도 동시에 늘어만가던 시간들. 추출되는 커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다 담아내고 나니 어느새 11월이 되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감동적인 영화들이 보고 싶어졌고 어떤 영화들은 조금씩 머리밖으로 꺼내서 회상하고 싶어진다. 조금씩 스멀스멀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시기. 이미 시작된 난방이지만 아직은 악착같이 매달려있는 어떤 낙엽들과 함께 의외로 조금은 유예되고 있는 겨울. 11월의 비로 짖이겨진 낙엽들이 지나 온 모든 계절의 희노애락을 담고 기억의 토사물이 되어 거리거리 채워지는 시간. 마치 젖은 옷을 입은것처럼 축축한 느낌을 지니고 걷다가 무심코 건드린 길가의 덤불이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물방울을 뿜어내고 머리 위 어느 건물 높은 곳에서 조준이라도 한것처럼 이마 한 가운데에 똑 떨어져 꽂히는 단 하나의 물방울이 가장 강렬한 가을로 다가오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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