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in

산마리노 50센트 동전 - 이탈리아 속의 작은 나라, 산마리노(San marino), 티타노 산과 세개의 탑 그리고 성 마리누스.


 

산마리노의 50센트


가진 게 너무 많은 이탈리아에게 유로 동전이 8개뿐이라는 건 너무나 잔혹하다. 그래서 2년 전 이 동전을 거슬러 받았을 때엔 당연히 이탈리아가 발행한 기념주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탈리아 속에 자리 잡은 내륙국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화국, 산마리노(San marino)의 동전이다.


유로화 사용 국가들 (출처 - 위키피디아)


 
유로존 20개국을 제외하고도 유로를 쓰는 곳이 몇 군데 더 있으니 바로 모나코, 바티칸, 안도라, 몬테네그로, 코소보, 산마리노이다. 모나코, 바티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낯설고 산레모(San remo), 산지미냐노(San gimignano)와 같은 비슷한 명칭의 이탈리아 도시들과 유사한 인상을 풍기지만 산마리노는 도시가 아닌 엄연한 주권 국가이다.


티타노 산 위에 자리잡은 세개의 탑


 
그렇다면 산마리노는 어떤 풍경의 나라일까. 잘 익은 산마르자노 토마토같은 절정의 태양이 내리쬐는 아드리아 해안의 휴양 도시일까. 아니면 세상과 단절된 오래된 수도원이 자리 잡은 곳일까. 치마부에 같은 화가가 붓을 내려놓고 말년을 보냈던 은둔의 장소는 아닐까. 올리브 나무와 사이프러스가 대열을 이룬 전형적인 토스카나풍의 나라일까.

지금껏 보고 들어왔던 수많은 이탈리아 도시들의 정경을 떠올리며, 작은 동전 속의 산마리노로 시선을 옮긴다. 굽이진 산등성이마다 탑들이 우뚝 솟아 있고, 닳아버린 톱니 같은 성벽들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산마리노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국가는 세상에 많지만 특정 국가 안에 그 나라의 도시처럼 자리 잡은 나라라니 참으로 생소하다. 나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 출신인지라 내륙국가를 떠올리면 급습하는 특유의 갑갑함이 있다. 달걀물과 튀김가루 사이를 두세 번 왕복하며 단단해진 튀김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키예프 커틀렛처럼 튀길 때마다 매번 그 익힘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어서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랄까. 내륙국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자체 항구가 없어서 자유로운 교역이 불가능한 것인데 그래도  산마리노는 그나마 바다가 가까워서 아마 높은 산에 오르면 아드리아 해도 보일 것 같다. 
 
 

토스카나지방에서 가까운 산마리노

 
 
지도를 확대해보니 보니 오래전에 다녀왔던 아레쪼와 코르토나에서도 엄청 가깝다. 산마리노에는 국제 공항은 없고 보통 우측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 도시 리미니에서 연결된다. 15년전에 산마리노의 존재를 알았더라 아마 느긋했던 피렌체 일정을 하루 정도 줄이고 이곳에 다녀왔겠다 싶다. 하지만 산마리노는 하루 정도만 그냥 다녀오기엔 코르토나처럼 며칠 유랑하기에 좋은 산의 나라이다.
 

산마리노의 국기와 국장

 
 
 
탁 트인 하늘아래 펼쳐진 망망대해에 왕관을 쓴 배한척이 떠있는 모습이 얼핏 그리스나, 몰타, 키프로스 같은 해양국가의 국기 같지만 산마리노의 국기를 절반씩 채운 하얀색과 파란색은 각각 평화와 자유를 상징한다. 그리고 하얀 바탕 위의 산마리노의 국기는 마치 평화와 자유라는 가치에는 어떤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역시 평화와 자유를 뜻하는 참나무와 월계수가 Libertas (자유)가 적힌 리본에 묶여 세 개의 탑이 그려진 방패를 휘감고 있다. 방패의 상단에는 산마리노의 독립과 주권을 상징하는 왕관이 놓여있고 사이좋게 늘어선 중세의 탑 위에서 타조 깃털 세 개가 용맹스럽게 휘날린다.
 
 

성 마리누스의 강림을 바라보는 산 마리노 사람들, 저 멀리 티타노 산과 탑들 (산마리노 시청 소장)

 

 
산마리노의 시작은 서로마제국이 아직 존재하던 서기 301년으로 본다. 마리누스라는 석공이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티타노산으로 도망쳐왔다는 설과 정신 나간 여인이 마리누스를 헤어진 남편으로 착각하여 고소하는 바람에 도망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마리노 시의회와 성 마리누스.

 

어쨌든 성 마리누스는 티타노 산을 은둔지로 삼았고 이 산속에서 명상과 수행의 길에 들어섰고 그의 존재를 알고 하나 둘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마리누스는 성인으로 시성 되고 그것이 산마리노 공화국의 기초이다. 성 마리누스의 축일 9월 3일은 산마리노의 국경일이기도 하다.


성 마리누스 손 안에 놓인 티타노산과 세개의 탑 (출처-구글)


성 마리누스가 공식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것은 10세기 이후이다. 로마제국은 진작에 무너졌고 신성로마제국이 세워지며 황제와 교황권의 다툼과 종교개혁에 가톨릭 박해에 유럽 역사를 장식하는 온갖 민망하고 추잡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아마도 그런 혼란의 틈에 생겨난 일종의 추앙 의식일지도 모르지만 성 마리누스가 남긴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옛날사람들이 라틴어로 남긴 말들은 그냥 왠지 좀 있어 보이는 라틴어빨이 있다.

열심히 돌을 다듬는 성 마리누스 (출처-구글)


"Relinquo vos liberos ab utroque homine" ("내가 너희를 두 사람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마리누스가 티타노산에서 은둔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만든 두 ‘사람’ 즉, 각각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억압적인 권력으로부터 자신과 공동체를 해방시켰다는 뜻인데 이것은 제국과 교황령, 어디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산마리노 공화국의 존재의 정신적 영감이자 근간이 된다. 

 

산, 티타노 산, 산마리노 (출처-구글)

 


중세부터 르네상스시대까지 유력 귀족가문들이 이끄는 수많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세력싸움과 영토다툼을 벌이며 전쟁에 휩싸일때에도 산 마리노는 국토 확장의 욕심 따윈 부리지 않으며 늘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며 살아남는다. 심지어 이탈리아를 침략한 나폴레옹도 산마리노는 건들지 않았으며  '내가 땅 좀 넓혀줄까'라는 세기의 정복자의 선심도 이들은 사양한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시기에도 이탈리아에 흡수되지 않으며 이탈리아 독립투사들의 은신처가 되며  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망온 유대인과 이탈리아인의 피난처가 된다.  산마리노는 이들이 온전히 존재해야 하는 이유들을 그렇게 차곡차곡 수집한다. 


산마리노 (출처-구글)


스파르타 같은 강력한 군대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귀족 가문의 호위를 받은 것도 아닌 이 작은 산마리노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까. 대답은 아마도 똑같다. 산마리노에는 강력한 군대도 전설적인 통치자도 주변에서 탐낼만한 자원도 바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영욕을 내비치지 않았으며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겠다는 평화롭고 소박한 의지가 대대로 유전자처럼 전해져서 결과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에는 산마리노의 위치가 큰 역할을 한다. 
 

동전을 뒤덮고 있는 산은 이탈리아반도를 종단하는 긴 아펜니노 산맥에 자리잡은 산마리노 최고봉인 해발 739m의 티타노 산(Monte Titano)이다.

2008년 산마리노시의 사적과 함께 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산마리노의 국기와 국장 그리고 동전 속에도 티타노 산에 세워진 세 개의 탑(Guaita, Cesta, Montale)이 솟아있다.

산마리노는 내가 좋아했던 코르토나처럼 에트루리아인이 세운 도시는 아니지만 평탄하면서도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주변 풍경 속에 솟아있는 높은 산을 보니 방어에 능했지만 발전에 불리했던 에트루리아인의 도시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설명이 다시 생각난다. 티타노 산기슭에 세워진 산마리노를 보며 오래전 여행했던 코르토나( https://ashland11.com/125 )를 회상한다. 코르토나와 산마리노, 이 도시와 이 나라는 닮은 구석이 많다.  
 
 

까미노 데 산마리노, (스페인어이지만) 까미노란 단어가 퍽이나 어울리는 목가적인 풍경. (출처-구글)

 
 
산마리노 공화국(Republic of San Marino) 은  때로 가장 평온한 공화국(Most Serene Republic of San Marino)’이라고도 불린다. 유럽 역사에 대대로 이런 명칭을 가진 나라들이 몇 있는데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 공화국, 루카 공화국, 제노아 공화국 그리고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국도 이런 추가 명칭을 쓰곤 했다. 주변국과의 영토 다툼이 치열했고 나름의 야욕으로 충만했던 위의 나라들은 사실상 더 이상 전쟁이 없길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저런 명칭을 썼겠지만 정말 저 문자 그대로의 정체성을 가졌고 현재까지 이 명칭을 쓰는 나라는 산 마리노가 유일하다. 가장 평온하고 고요하다는 것은 이 나라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엄연한 주권 국가이며 다른 국가의 주권을 함부로 침해할 의지가 없음에 대한 고요한 표명이 아닐까.
 
 

과이타 탑 Guaita torre (Photo from Flickr , copyright Peer.Gynt)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잦은 전쟁과 침략에 대비하여 성벽, 성탑, 감시탑 등으로 이루어진 방어 체계를 만들었다. 특히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들은 전략적으로 탑을 삼각형 배열로 배치하여 서로 감시하고 교신하며 적의 접근을 방지했는데 산마리노의 세 개의 탑, 과이타(Guaita), 체스타(Cesta), 몬탈레(Montale) 는 이런 중세 도시 방어 시스템의 전형적인 예이다. 
 
 과이타(Guaita) 탑은 산마리노의 세 개의 탑 중 가장 먼저 세워진 탑이다. 티타노산 가장 앞쪽에 위치해서 마치 화려한 뱃머리처럼 가장 인상적인 경관을 보여준다. 다르질링, 수원성이나 서울 성곽을 오르며 봤던 마을들과 집들이 내뿜던 신비하면서도 포근한 여유로움이 있다.

저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 역시 안정감을 느낄 것 같다. 튼튼한 이중 성벽이 이 탑을 둘러싸고 있어서 전쟁시 사람들의 피신처가 되기도 했는데 성문이나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됐던 영화에서 본 많은 공성 무기들, 불을 붙인 물체나 엄청 무거운 돌 같은 걸 장정들이 잡아당겨 투척하던 그런 무기들을 산중턱까지 끌고 와서 조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겠다 싶다. 
 
 

티타노 산의 두번째 탑, Cesta (구글출처)

 
 
세 개의 탑 중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세워진 체스타 타워는 성곽과 망루의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중세 요새 건축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현재는  성 마리누스 기념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티타노 산의 세번째 탑, Montale (출처-구글)

 
 
티타노 산의 세 봉우리중 가장 낮은 봉우리에 세워진 몬탈레 탑은 세탑 중 가장 마지막으로 지어진 탑이다. 산마리노에 가장 위협적이었던 리미니의 말라테스타 가문의 위협에 대비해서 지어진 감시용 탑이지만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탑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았던 감옥이 악명이 높았다는데 축축하고 물이 차오르고 쥐들이 날뛰는 그런 감옥이 아니었을까. 환기시설이고 뭐고 없었을 거고 중세 죄수들 대부분은 감옥에서 질병사했을거 같다.


이 탑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지상에서 7미터 높이에 난 문인데 죄수들의 탈주는 막는데 용이했다. 이동식 사다리를 사용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 유일하게 내부관광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 바깥에서만 조망할 수 있다. 저 탑 내부에 들어가면 철저히 중세인들의 시선에서 산마리노를 조망할 수 있겠지만 외부 개방을 위해서 별도의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달콤한 관광수입을 포기한 대단한 노력이다. 어쨌든 관광객인 우리도 엄밀히 말해 외부인이기에 중세의 산마리노인이 사수하려 했던 성벽과 탑을 후세의 사람들도 보호하겠다는 의지로도 받아들이고 싶다. 
 
 

Monte Titano (구글출처)

 

 
티타노 산의 세 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산마리노의 정체성과 생존의 상징이다. 이들이 국기와 국장에 그리고 동전과 수많은 기념우표에 자신의 탑을 새기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기념 우표 속의 산마리노



이탈리아 속에 자리잡은 산마리노의 주요 교역량의 80퍼센트는 당연히도 이탈리아이다. 산 마리노처럼 이렇게 작은 나라, 다른 나라를 통하지 않으면 바다로 나아갈 수 조차 없는 나라는 뭘 해 먹고살까. 나라 살림 전체를 책임질 만큼은 아니지만 재밌게도 기념주화나 기념우표 발행도 주요 관광 수입원 중 하나이다. 특히 희귀 우표 수집자들 사이에서 산 마리노의 우표들이 인기가 많다.
 

대대로 전해지는 가치,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것은 작은국가들의 또 다른 국력이다.


먹는 것은 자급자족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외부에서 들여오는 구조였다면 이 나라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 중 하나는 외부로 나가는 우편물에 붙여지는 우표를 정성스레 만드는 것이었을까.  전혀 모르는 나라의 사람들끼리 엽서를 주고받는 포스트크로싱 같은 국제교류 형태를 생각해보면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나라의 소인이 찍힌 엽서를 세상으로 보내는 것도 각자의 자리에서 국가를 알리는 좋은 방법 같다. 


산마리노의 영공에서의 바라본 티타노 산 (출처-구글) - 산마리노는 자체 영공이 있지만 실제적인 항공 주권은 이탈리아가 가지고 있다. 특별한 갈등없이 양국간 오래동안 유지되고 있는 협조 체계이다. 산마리노는 갈등을 싫어하니깐.



실제 1인당 국민소득이 높고 살기 좋은 산마리노이지만 시민권 취득은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한때 부자들의 조세 피난처가 되기도 했고 돈세탁에 용이한 나라이기도했지만 많은 노력 끝에 이들은 금융시스템을 투명화하는데도 성공했다.

이들이 더 강한 나라로 거듭나서 국가로써의 존재감을 부각하고자 한다면 투자를 받고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들은 위협적으로 근육을 키우기보다는 기름기를 줄이면서 티타노 산 위에서만 소박하게 존재하는 방식을 택한 것 같다. 

 

티타노 산을 바라보며 영적으로 마르는 21세기의 빨래...

 

산 마리노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부탄에 관한 수필이 생각났다. 히말라야 소국의 아시아인들과 이탈리아 반도의 유럽인들의 근본적인 정서는 다르겠지만 둘 다 내륙국이고 산이 있는 나라니깐 일종의 기질적 공통점은 있으려나.

부탄에서는 과잉관광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행하는데에도 제한이 많다는데 자신의 소중한 나라가 휴가지에서 상대적인 풍족을 누리는 외부인들이 돈을 풀고 가는 장소로만 변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부를 개선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외부인의 자본을 유치해서 모든 국민의 삶이 윤택해진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란 것을 이들은 아는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나라에서 느꼈던 모종의 불편했던 감정과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풍족한 도시에서 간혹 보였던 현지인들의 시크한 표정, 점점 관광객이 많아지는 리투아니아에 살면서 사로잡히는 이중적인 감정들과 뿌리가 같다. 
 
 

Monte Titano, San marino (구글출처)

 

 
 티타노 산에 오르기 위해 티타노 산기슭을 이리저리 에둘러 걷다보면 세 개의 탑이 시야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럴 것 같다. 맛있는 치즈와 올리브, 와인을 가방에 넣고 티타노산에 약수가 있다면 이따금 목을 축이면서 천천히 산을 오른다. 석공이었다는 성 마리누스가 쪼개다 말았을법한 무너져가는 돌산 위에 앉아서 엽서를 쓰고 산마리노에 있다는 10개 우체국 중 하나를 골라서 정과 끌을 들고 있는 동화속 요정같은 성 마리누스가 그려진 우표를 붙여 산마리노 바깥 어딘가로 보내는 상상을 해본다. 따뜻한 바람과 따갑지 않은 태양이 비치는 어느날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