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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라 20센트 동전 - 유럽의 또 다른 소국 안도라(Andorra), 유럽 소국 경기 대회, 안도라의 로마네스크 성당들.

 

'Virtvs vnita fortior', 작은나라에게는 단결만이 살길임을 강조하는 안도라의 국기와 국장 (구글)

 

 산마리노에 대해 알아가던 5월, 몇 문장 속에 등장했던 안도라(Andorra)라는 곳에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안도라에서는 재밌는 스포츠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바로 유럽에서 2년마다 열리는 유럽 소국 경기 대회 (Games of the Small states of Europe)가 지난 5월 26일부터 5월 31일까지 안도라에서 열린 것인데 이 유럽의 미니 올림픽은 1984년에 유럽의 대표적인 소국들인 안도라, 키프로스,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몰타, 모나코, 산마리노의  올림픽 위원회가 대회 창설에 합의하면서 시작됐다.

 

유럽 소국 경기 대회

 

2025년 유럽 소국 경기 대회에서는 9개국의 800명 남짓한 선수들이 총 12개의 종목 160개의 경기에 참가해서 승부를 겨뤘다. 육상,농구,사이클,골프,체조,유도,사격,수영,탁구 테니스, 배구등이 주종목으로 선수 혼자서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개인 종목을 위주로 다수 인원을 필요로 하는 단체 종목은 배구 정도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는 게 일반적이라는 아이슬란드를 생각하면 이런 작은 나라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전업 운동선수가 아니라 밤에는 책을 쓰고 낮에는 배관공으로 일하며 주말이면 조기 탁구회에 나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소인국의 꾸러기들이나 릴리퍼트, 월리를 찾아라의 아기자기한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강하고 역동적인 이미지의 국제 스포츠 행사와는 달리 이 행사는 어딘지 모르게 귀엽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소국'의 기준은 무엇일까. 바로 인구가 100만명 미만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 중에는 인구가 십만 명도 채 되지 않는 나라도 많으며 대표적으로 안도라가 그렇다. 

안도라의 수도, 안도라 라벨랴 (구글)



 안도라는 프랑스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사이의 고산지대,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다. 안도라가 현재 독립국가로 남아있는 상황은 처음부터 단일 국가였던 산마리노와는 성격이 살짝 다르다. 안도라는 샤를마뉴 대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롤루스, 카를 대제)가 9세기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지켜낸 땅이라고 전해지며 안도라 국가의 제목도 '위대한 샤를마뉴'이다. 그로부터 4세기가 흘러 카탈루냐의 귀족 여성과 프랑스 귀족 남성이 결혼을 해서 안도라의 지배권을 우르젤 주교(카탈루냐의 로마 가톨릭 교구의 통치자)와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들의 손자들과 주교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고 이들의 공동 통치 체제는 붕괴된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구름 사다리 같은 피레네 산맥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샌드위치된 안도라. (구글)

 
 
 
지도속의 안도라는 마치 하이클리어로 절묘하게 내리 꽂힌 셔틀콕이 라인에 닿았는지 벗어났는지를 판정해주길 기다리는듯이 피레네 산맥에 걸쳐있다. 하지만 안도라는 다행스럽게도 스페인이나 프랑스 중 어느 한 국가에도 귀속되지 않으며 별도의 국가로 인정받는다. 나폴레옹 시대 때에도 안도라의 독립적인 지위가 인정됐고 이런 통치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현재 프랑스 대통령과 스페인의 주교가 안도라의 공동 통치자로 이중군주제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력서에 프랑스의 대통령이자 안도라의 영주임을 동시에 기입할 수 있다는 소리.

 

안도라에는 공항이 없다. 바르셀로나에서 꽤 가깝다 (구글)

 
 
그러고보면 안도라의 역사는 재밌게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https://ashland.tistory.com/559026)와 산마리노(https://ashland.tistory.com/559028)의 역사와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스페인 북부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이슬람 세력이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스페인 북서부의 보루였다면 안도라는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있던 이민족들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까지 북진하는 것을 막는 반대편의 마지노선이었던 셈이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스페인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던 스페인에서 양측에서 피신해 온 난민들이 안도라에 정착하면서 인구가 크게 늘었으니 전쟁으로 인한 이탈리아인과 유대인 난민을 수용하던 티타노산에 세워진 산마리노의 상황과도 비슷하다. 지형적 제약으로 크게 번영하진 못했지만 한편으론 그런 핸디캡으로 인해 주변국에 큰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주권을 인정받게 된 이 두 나라. 위의 지도에서도 당당하게 굵은 폰트로 쓰여있는 두 나라가 선명하게 보인다. 
 
 

피레네에 둥지를 튼 안도라, 개마고원을 연상시키는 위치이다. (구글)


 
유럽 나라들을 작은 순서대로 줄세우면 바티칸->모나코->산마리노->리히텐슈타인->몰타->안도라 순으로 커진다. 재밌는 것은 안도라 다음으로 작아서 유럽에서 7번째로 작은 룩셈부르크 안에 앞선 6개의 나라들이 다 들어가고도 남기에 그들에 비하면 룩셈부르크는 소국에 발도 못 내밀 만큼 큰 나라라는 것.  

사실 아무리 이 나라들이 작다작다해도 유럽지도를 들여보지 않으면 그 절대적인 크기는 잘 체감이 안된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같은 큰 나라를 향하는 순간에도 그것이 육로를 통해서라면 나라 간 이동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안도라 같은 조그만 내륙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 같다. 안도라에 가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자. 안도라에는 공항이 없다. 그냥 바르셀로나에서든 어디에서든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차를 타고 가면 된다. 


피레네 산맥 (구글)



안도라의 평균 고도는 1996미터에 달한다. 안도라를 둘러싸고있는 피레네 산맥의 산들 중에는 3000미터가 넘는 고봉들도 많다. 높은 산이 많으니 안도라에는 스키장을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그러니깐 안도라에 가는 길은 대관령을 타고 대략 강원도 평창에 가는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홍천에서 차를 세우고 삼계탕을 먹은 후 천천히 운전하다 보면 소화가 다 될 때쯤 평창에 도착하듯 바르셀로나에서 특대 해산물 파에야를 먹고 안도라를 향해 움직인다. 그러면 대략 한라산 높이에 위치한 제주도의 1/4만 한 크기에 살고 있는 안도라인 8만 명을 만날 수 있다. 안도라 인구의 절반은 안도라인이고 그 나머지를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아르헨티나인들이 꽁냥꽁냥 채우고 있다. 그러니 주요 언어는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어. 안도라에서는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카탈루냐어가 대부분 공용어처럼 표시된다. 

 

안도라의 동전

 
 
안도라의 20센트 동전에 그려진 건축물은 안도라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성당인 산타 콜로마이다. 안도라의 수호 성인 생 콜롱브에게 헌정되었다. 생 콜롱브는 원래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 살던 이교도 귀족 가문 출신의 여자였는데 기독교로 개종하여 박해를 받자 프랑스 갈리아 지방으로 도망갔다가 프랑스의 상스에서 순교해서 성인이 된다. 역시 안도라도 별 수 없다. 기독교 박해와 수호성인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는 유럽국가에 필수코스이다.
 
 

Columbo of Sens (구굴)

 
 
세례명 콜롱브는 비둘기를 뜻하기도 한다. 그녀가 결국 프랑스의 상스(Sens) 지방에 정착했을때 로마 제국 황제가 그녀를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려고 했는데 거부하자 산채로 화형에 처해지는데 그때 기적적으로 폭우가 내리고 암곰이 그녀를 지켜주지만 결국 참수당한다. 그래서 성화 속에서 생 콜롱브는 왕관을 쓴 처녀이자 비둘기와 암곰과 함께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생 콜롱브이자 스페인의 콜롱브로 불려지는 그녀가 어쩌다가 안도라의 수호성인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녀가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살다가 프랑스까지 가서 순교했고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려다 박해를 받은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추앙받는 것을 고려할 때 스페인과 프랑스 문화가 절묘하게 섞인 안도라에서 기독교가 자리 잡는 시기에 수호성인으로 받들 여진 것으로 보인다. 
 
 

산타 콜로마 성당 Church of Santa Coloma (구글)


 
피레네 산맥 곳곳에 위치한 안도라의 로마네스크 성당들을 보고있으니 그 고풍스럽고 우직한 모습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피레네의 산들이 배경인지 산의 배경이 성당인지 묘하게 헷갈리기 시작한다. 기독교가 아직 그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기 전 시기에 지어진 이런 성당들은 조금은 움츠러든 듯 겸손해 보인다. 건축적인 기교를 부리기엔 산에서 쪼개온 돌은 너무나 무겁고 두터운 석벽에 최소한의 창문을 만들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어쩌면 기본으로 돌아간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양식이다. 

 

안도라의 로마네스크 가톨릭 성당들 (구글)

 

 
안도라의 오래된 성당들은 초로의 건축가가 하나하나 선별해낸 오래된 자연석을 써서 건축적인 군더더기를 모두 청산하고 산중턱에 비밀스럽게 만들어놓은 사유지 같기도 하다. 고층 아파트를 피해 시골로 내려간 사람이 진흙집을 지어서 기와를 얹는 것처럼 상징적이다. 안도라 지역이 큰 공격을 받고 파괴된 역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긴 시간이 흐르면서 건축 사조들이 바뀌는 중에도 안도라에는 단조롭고도 구수한 형태의 로마네스크 성당이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안도라 성당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큰 특색이 없이 비슷해서 사실 서로 구분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성당을 둘러싸고있는 산들은 성당의 어떤 지점에서 봐도 같은 능선을 보여준다. 안도라 사람들은 아마 많은 산과 언덕의 이름을 알고 그것을 방향 삼아 움직일 것 같다. 초록으로 우거진 안도라가 분명 아름답고 청신하지만 확실히 안도라는 겨울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빛의 역량이 최소화된 어둡고 고요한 돌성당을 빠져나와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산들을 마주할 때의 느낌은 어쩌면 성당 안의 성화를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엄숙하고 종교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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