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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페는 정말 날씨가 지나치리만치 좋을 때 킥보드를 타고서 1년에 한 번 정도 간다. 자주 가지 않는 카페는 결코 아니다. 날씨가 그냥 자주 안 좋을 뿐. 대성당부터 베드로 성당 뒤쪽으로 이어지는 안타칼니스( antakalnis) 동네까지 네리스 강변을 따라 별다른 장애물 없이 쭉 타고 올라갈 때의 뻥 뚫리는 기분. 출퇴근 차량과 트롤리버스는 한결같은 매연을 내뿜고 있겠지만 곳곳의 과묵한 녹음들이 피톤치드를 분사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동한다기보다는 놀이기구를 타는 마음으로 혼자 몰래 불량식품 먹으러 간다는 생각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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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중고책을 샀는데 만나서 전해주겠다는 장소가 바로 이 근처여서 오랜만에 이 카페에 들를 생각에 그러자고 했다. 11월인데 벌써 너무 춥다. 4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정거장에 3시 30분쯤에 도착했다. 기다렸다가 책 건네받고 4시 이후에 카페에 가는 것이 느긋하니 더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전에 굳이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고집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카페로 향했다. 오고 가는 시간을 빼고 나니 대략 5분이 주어졌다.
카페에 머무르는 가장 이상적인 시간은 몇 분일까. 최소 30분이라고 해도 몇 장의 책을 읽든 미뤄뒀던 메일에 답하든 그 시간은 촘촘히 채워진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 주어지면 그런 견적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마시는 행위 하나만이 오롯이 남을 뿐. 그런데 인생에서 이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황장군처럼 폭설을 맞은 것도 삼고초려에 와신상담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닌데 그 5분 동안 들이킨 커피는 너무나 훌륭했다. 커피도 커피지만 어쩌면 저 물이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커피를 마신 후의'라는 의미를 획득하는 어떤 물과 물을 마신 후에 되새겨보는 한 모금 전의 커피. 그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예상가능한 훌륭함들을 잘 주워 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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