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에 문방구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 카페 자리에는 사실 오랫동안 털실 가게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예쁜 색깔의 복슬복슬한 털실들을 사서 겉뜨기 안뜨기로만 뜬 목도리를 휘감고 다니다 풀고 뜨고 또 풀곤 했다. 털실은 그게 좋다. 망침의 업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이곳 생활 초기에는 그 어떤 신발을 신어도 발이 시려서 아랫집 할머니에게서 털양말 뜨는 법도 배웠는데 이젠 할머니도 안 계시고 양말은 뒤꿈치 뜨는 방법을 까먹었고 이제 이 기후에 적응이 된 것인지 웬만한 신발은 다 따뜻하다. 그와 덩달아 뜨개질 인구도 줄었는지 털실 가게는 사라졌다. 그리고 4년 전에 문방구 카페가 생겼다.
늘 가는 거리에 있음에도 4년 전 뜨거운 여름에 콤부차 한 병을 먹은 이후로 가지 않다가 트롤리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워 올 겨울 몇 번 드나들게 되었다. 문구점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있고 커피 나오는 동안 결코 사지 않을 문구를 마치 살 것처럼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결코 사지 않을 문구를 살 것처럼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이 카페에 잘 가지 않게 되는 이유는 테이블이 적어서 거의 항상 자리가 없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9시에 문을 열어서 카페의 묘미인 아침의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카페가 7시에 연다고 7시가 되자마자 문을 박차고 카페에 들어갈 것도 아니면서 아침의 느낌이 없기 때문에 안 가게 된다는 것은 무슨 고약한 억지일까. 그런데 카페는 7시에 열면 8시에 가도 아늑하고 8시에 열면 9시에 가도 아늑하지만 9시에 여는 카페는 아직 예열되지 않은 커피잔처럼 뭔가 싸늘하게 늑장을 부리는 느낌이라 그 보다 훨씬 더 늦은 시간에 가더라도 마치 방금 문을 열어 허둥대는 듯한 느낌을 주어 뭔가 안락하지가 않다. 왠지 카페는 좀 일찍 열어야 하루 중 언제 가도 그 장소가 나보다는 덜 나른하고 부지런하다는 느낌을 주나 보다. 어쩌면 한 겨울, 날이 채 밝기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미약하게라도 불을 밝히고 있는 카페들과 달리 늘 불이 나가있던 이 카페가 방문 대상에서 자연스레 제외되었기에 그런 거리감이 공고해진지도 모르겠다.
3월에 연속적으로 마셨던 두 번의 에스프레소와 맛차라떼. 카페가 일본 문구를 팔고 비건 지향이어서인지 코코넛 우유를 넣은 맛차라떼가 에스프레소를 제치고 메뉴 가장 위에 적혀있다. 이미 커피를 마신 어떤 날은 처음으로 맛차 라떼를 마셔보았다. 디저트용 냉장고가 작동하지 않아서 음료 주문 시 서비스로 주고 있다며 저 프로피테롤도 공짜로 주었다. 프로피테롤이 알기론 그냥 슈크림이고 수더분한 아이인데 기교를 잔뜩 부린 이 문방구 프로피테롤은 뭔가 프로피테롤을 잔뜩 오해한듯한 모습이다. 이 단어는 늘 프로포폴, 피로, 토코페롤 같은 단어들을 연상케 한다. 개미 오줌만큼의 에스프레소와 비교해도 과한 모습의 이들의 당도가 확실히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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