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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책 작년에 번역되어 나온 타르코프스키의 책을 찔끔찔끔 읽고 있다. 이런 책은 사실 진도가 잘 안 나가지만 그나마 처음부터 순서대로 쭉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서 단어 사냥한다 생각하고 하루에 한 페이지씩이라도 읽는데서 보람을 느끼려고 한다. 특히나 이 책은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처음에 얼핏 본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기도 했다. 노스탤지어의 한 장면인데 이 영화 자체는 나의 베스트라고 할 수 없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눈으로 한컷 필터링된 이탈리아를 감상하는 매력이 있다. 많은 감독들을 좋아하지만 그 작품들은 보통은 그들의 연출작이라고 일컫게 되는데 유독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그의 유산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 겹치거나 반복되는 인상이 없이 구성도 느낌도 다르고 뭔가 더 ..
무심코 담아놓고 쳐다보게 되는 것들. 가끔 사 먹는 크림치즈가 들어간 미니 파프리카. 마트엔 이런 동그란 파프리카 말고 뭉툭하지만 길쭉한 모양의 미니 파프리카만 있어서 몇 번 크림치즈를 넣어서 구워봤는데 옆으로 잘 삐져나오고 아무튼 이렇게 예쁘게는 안 만들어진다. 이것은 의외로 달고 육각의 예쁜 유리병에 담겨있다.
세탁기 사용 설명서를 읽으며. 주말에 옷장 정리를 하다가 5년 전에 산 세탁기 사용 설명서를 발견해서 읽어보았다. 주기적으로 해줘야 할 필터 청소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좀 찔끔했다. 설명서에 다양한 외국어들이 들어가 있어서 분량이 꽤 두꺼운데 이 세탁기 책은 특히 정말 너무 책처럼 생겨서 그리고 워싱 머신이란 단어에 대한 개인적 집착으로 남겨 놨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닉 유스의 워싱 머신 앨범과 그 앨범 커버를 좋아하는 건데 사실 이 앨범 커버가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순간이라면 예전에 피씨통신의 브릿 동의 시샵이 푸른색의 워싱 머신 앨범 커버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음감회에 나왔을 때였다. 중키의 마른 남자들이 한국에서 잘 구하기 힘든 외국 밴드 티셔츠 같은 것을 입었을 때의 특유의 핏과 소울 같은 게 있는데 또 이런 분들은 영..
옛날 달력 한 장. 헌책을 읽는 경우 이전 책 주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특정 부분에 줄이 그어져 있거나. 메모가 되어있거나. 날짜와 함께 건넨 이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고 직접 산 책에 대한 기대 같은 것도 간혹 적혀 있다. 책을 팔았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책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겠지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않는 책이란 사실 없다. 나도 이곳으로 오기 전에 많진 않지만 가지고 있던 책을 대부분 팔고 왔지만 어떤 책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거리 도서관에서 가져오는 책들도 자신들의 사정이 있다. 며칠 전 카페 가는 길에 발견해서 카페로 데려간 톨스토이의 부활은 리가에서의 추억이 담긴 책인가 보다. 반갑게도 그 속엔 뜯어서 간직한 달력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비 오는 날에 길거리에서 열어 봤으면 아마 나풀나풀 떨어..
비 내린 다음. 윗줄은. 카푸치노와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의 도나스. 아랫줄 왼쪽으로부터는. 카페에서 읽으려고 가져 간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인상기. 카페 가는 길목에 있는 거리 도서관에 있길래 습관적으로 집어 온 톨스토이의 부활. 카페에 비치되어있던 빌니우스 관련 계간지 순이다. 이들이 모두 우연인데 어떤 면에서는 비교할 구석을 주었다. 따끈따끈한 계간지는 늘 그렇듯이 빌니우스가 발굴해서 기억하고 지켜나가야할 가치가 있어보이는 과거의 것들에 대한 감상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부활은 보통 카츄사와 네흘류도프가 법정에서 조우하는 순간까지는 나름 생명력있는 서사에 사로잡혀 순식간에 읽지만 그 이후부터는 뭔가 새로움을 주입하며 혼자 앞으로 막 내달리는듯한 느낌에 오히려 마음속은 정체된듯 오글거린다. 겨울에 쓴 유럽의 여름 인상기는..
돌고 돌아 집으로 묻지도 않은 정보를 친절하게 나열하는 사람들이 있고 더 알려줬으면 싶지만 딱 물어본 만큼만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간혹 물어봐도 잘못 알려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묻는 것을 주저하기도 하고 거짓임이 분명할 것 같은 대답도 믿고 싶은 강한 열망으로 내치지 못할 때가 있다. 엉터리 같은 질문에 나름의 좋은 대답을 했다고 만족하는 빈도가 있어 보이는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한 것 같아 찝찝한 경우보다 훨씬 많아진다. 남을 향한 질문은 현저히 줄어든다. 스스로에게 내뱉는 질문은 늘어난듯하지만 답변은 미룬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텅 빈 버스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왠지 이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은 느낌에 그냥 올라타서는 기사분에게 중앙역까지 가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버스는 정..
영원한 휴가, 멋진 영화들은 어떤 장면에서 멈춤 버튼을 누르든 전부 명장면이지. 아주 오래전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보고 이 영화가 정말 정말 내 마음에 들기를 바랬었다. 텅 빈 거리의 삐딱한 정적과 밤새도록 이곳저곳을 떠돌다 아침이 되어 겨우 잠들어가는 중의 퀴퀴함이 화면을 뚫고 전해졌으니 그것은 당시의 나에겐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어서 오그라듬은 오히려 아방가르드하게 보일 뿐이었고 값싼 철학을 롱테이크로 읊는 게으름뱅이의 배회는 저렇게 살아도 살아지는 삶에 대한 은근한 공감과 안도를 불러일으켰다. 삶은 정말 이렇게도 살아지고 저렇게도 살아지는 놈일 뿐인 것이다. 인간에게 더 이상의 오글거림을 포기하고 세상에 대항하여 자신의 모든 행동을 계면쩍어 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는것이라면 그 시기는 아예 늦거나 영원히 오지 않아..
토마토 모리스 모리스라는 이름의 보라색 토마토가 팔길래 한 개 사와서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