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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의 리가



바르샤바와 리가는 빌니우스를 중심으로 반대방향이다. 바르샤바 가는 길이 서울로 전학 간 친구를 보러 가는 느낌이라면 리가는 연락이 닿지 않는 먼 친척이 사는 바닷가 도시 구경 가는 느낌.

좀 고약하고 냉정한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르샤바는 꽉 막힌 사람들이 괴롭힘 당한 도시의 인상이 있고 리가는 셈에 능한 사람들이 단물을 빨아먹은 도시의 느낌이 있다. 그 외의 다른 점이 있다면 버스 옆으로 감자를 실은 화물차 대신 목재 화물차가 지나갔다는 정도..

목적이 없는 여행이 어디 있겠냐마는 리가엔 이전에 꽤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 번 왔었다. 그리고 볼일만 보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발길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발길은 미련이 남아도 돌려야 하는 놈이고 미련은 발길을 안 돌리면 안 남으려는 놈이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게끔 하는 여행도 있다. 미련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여행도 나쁘지 않다.


방심하고 있으면 늘 생뚱맞게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이 구역의 스탈린 케이크들. 존재감이 있다고 하기에도 천덕꾸러기 같다고 하기에도 늘 애매한 친구들이다. 리가의 문화과학궁전은 외지고 좁은 골목의 게토 지구에 위치해 있어서 위압적이라기보단 그저 음산했다. 높이가 맞지 않는 책상에 앉아있는 유급당한 학생처럼. 몸집만 컸지 맥을 못 추리는 느낌.


낯선 도시를 걷다가 첫 번째로 만나는 동상은 경험상 늘 가장 훌륭한 나침반이 된다. 복장과 사망시기로 리가 나침반의 이력을 짐작해 본다. 장군이었을 거고 1818년에 이 근방에서 죽었으면 나폴레옹 전쟁 참전용사인 걸로 보인다.

이후에도 몇 번을 먼발치에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눈짓해 줬다. 포개진 손이 약간 들썩들썩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시선이 꽂히는 벤치에는 숙취에 시달리는 후세가 널브러져 있었다. 일요일이고 날씨도 화창해서 장군님께서 용서해 주는 분위기.

라트비아가 워낙에 이민족에게 대지를 '대여'해준 느낌이 있는 나라여서인지 누구의 지배를 받았냐 와 상관없이 이 땅 자체를 지켜낸 것에 의미를 부여하나 보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밑에 있었으면 리투아니아 입장에선 민중봉기를 진압한 러시아인이니 또 엄연한 적장이다.

그저 국가의 녹을 먹고살아야 했을 뿐인 장군이었을 거라 연민하며 커피를 주입하러 직진한다.


일요일 정오, 젊은이들이 출몰하는 외진 동네 카페를 한 줄로 정의해야 한다면. '금요일에 밤늦게까지 열심히 놀고 토요일에 자느라 밖에 못 나왔던 사람들이 일요일에 얌전히 혼자 오는 곳.'..

한 사람당 테이블 하나씩 차지하고 있고 직원들은 일요일 아침부터 왜 이래라는 눈짓을 주고받으며 분주하며 둘이서 개를 끌고 동네 마실 나온 사람들은 밖에서 훑어보고 발길을 돌리는 일요일 오전. 

자리가 없어서 절대적인 응달에 나와 커피를 마셨다. 카페 밖에 세워진 전동킥보드로 고객 충성도를 가늠해본다. 뜬금없이.


일요일 여행지에 도착할 때의 특유의 느낌도 있다. 전화기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고 주말이 다 지나가고 있지만 실행되지 않을 월요일로 인해 화요일도 일찌감치 없는듯한  평안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방금 마신 커피와 햇살 후광효과였는지 퉁명스려운듯 뾰족했음에도 상당히 상냥해 보였던 동네 성당. 마치 학교 가기 전날 가지런히 깎아서 필통 속에 높이별로 정렬하는 연필 같았던 거트루드 연필 성당..일요일 아침 바지런떨며 일어나서 깎아놓고 다시 잠든 누군가를 상상하게 한다.

성당 주위로 연결되는 어떤 거리를 향하든 이 성당을 조금은 훑듯 지나쳐야 한다. 성당에 들어가 성호를 긋는 대신 크지 않은 성당을 탑돌이 하듯 빙 돌 수 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1.5바퀴 정도는 돌아야 한다. 그렇게 다음 커피가 있는 거리를 향해 간다.


일요일에 어디 안 가려고 잔뜩 참고 있는 승용차와 자전거를 지나고.  



쉬고 있는 컨테이너와 의자도 지나고.



꽤 최근에 써진 듯 말끔한 글씨와 꽤 오래전에 버려진듯한 쓰레기들도 지나고. 익숙한 종이컵, 다 피운 담뱃갑,  바리바리 비닐봉지도 지나고.



그렇게 두 번째 커피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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