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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의 노란 자두


푸르고 빨간 자두는 마트에 팔지만 신호등 사탕 만한 이 노란 야생 자두는 오며 가며 걸어 다니다 바짓가랑이에 쓱쓱 닦아 먹을 수 있는 빌니우스 거리의 과실수 중 하나이다. 구시가의 지름길을 찾아 남의 집  마당을 지나다 보면 꼭 한 그루 정도는 있어서 잔뜩 떨어져 있는 자두를 보면 아 8월이구나 하고 봄이 되어 모든 나무들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우면 아 이것이 자두꽃이었지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앙상해지면 지난봄의 초입과 8월의 자두를 회상하는 것이다. 

지난달에 동료가 바람이 불어 마당에 노랑 자두가 많이 떨어졌는데 그걸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주겠다고 했다. 20년 넘게 그 집에 사는 친구가 자두의 용도를 모를 일이 없다. 이제는 다 귀찮아서 자두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다. 며칠 후에 정말 큰 비가 오더니 자두가 전부 다 떨어졌다며 줍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다 가져가라고 하는 친구. 그래서 가져왔다. 작은 정교 성당 앞 벤치에 한번 앉고 구청사 계단에 한번 앉고 가톨릭 성당 앞에 한번 앉으니 얼추 집에 도착했다.



동료는 자두를 줬으니 행복해했고 난 잘 가져왔으니 좋았는데 이틀 정도는 손을 대지 못했다. 과일과 야채를 섞어서 통조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처음에는 이거랑도 섞고 저거랑 섞어서 다양한 뭔가를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결국 귀찮아서 그냥 자두잼만 만들기로 결정하고 자두씨를 빼는 무료한 과정을 함께해줄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다. 사실상 자두잼 만드는 과정 중 가장 신났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떤이들은 그냥 냄비에 다 넣고 펄펄 끓인 후 자연분해된 씨를 거르기도 하지만 난 불을 쓰지 않고 설탕만으로 말랑해지는 것을 보는 그 하루의 과정이 좋은 것 같다. 척박한 아이슬란드 시골에서 젖소와 양을 기르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 두 편을 보며 나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쾌하게 씨를 발랐다. 늘 레이캬비크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하는데 대외적으로 유명한 아이슬란드 영화에서 레이캬비크는 항상 시골에서 더는 못살겠다 싶을 때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지로 그려지는 느낌.  


씨를 없애고 상처가 많은 것들을 빼니 10 킬로 정도였던 자두가 6킬로가 되었다.  설탕은 총 2킬로 정도를 썼다. 늘 설탕 많이 넣어야 안 썩는다고 하는데 차마 더 이상은 부을 수 없었다.


이렇게 설탕이 다 녹아 자두들이 잠길 정도가 되면 그냥 휘리릭 한번 펄펄 끓여서 마무리 짓는 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법인데. 그렇게 끓여서 그냥 바로 유리병에 넣으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즙이 너무 많이 생겨서 결국 체에 걸러야 했다.


체에 부어놓고 기다리며 좀 휘저어주면 흘러내린다. 시럽보다는 좀 묽고 주스보다는 농도가 짙었는데 대략 3리터 정도가 나왔다.


집에 남아있던 블루베리를 좀 졸여서 위에 얹었더니 칵테일 색감이다. 테킬라 선라이즈까진 아니지만 뭔가 테킬라 선셋 정도는.

 
유리병을 본래 그냥 뜨거운 물을 휘휘부어 헹구는 걸로 소독의 임무를 다 하곤 했는데 이번엔 양이 많아 보관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 일괄 100도 이상 오븐에 넣어 놓고 하나씩 꺼내 채웠다. 사실상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 같다. 갑자기 생긴 자두에 집에 있는 모든 빈 병들을 총출동시켜야 했으나 짝이 맞지 않는 뚜껑들이 많아서 애를 먹었다. 자두즙은 일 대 십으로 탄산수와 섞어 마시거나 물에 희석해서 막대 아이스크림으로 얼려 먹는다. 8월의 자두잼을 나누면서 9월이 그렇게 다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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