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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지나고 먹은 파스타 회상

 


부활절을 보내고 일정상 혼자 하루 먼저 일찍 돌아와서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를 뒤져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며 영화 컨트롤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컨트롤은 조이 디비전의 프론트 맨이었던 이안 커티스에 관한 영화인데 결정적으로 흑백필름이고 음악이 많이 나오고 음악을 했던 사람이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명명백백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이다. 비록 실재했던 그 영화 속의 삶은 암울하기 짝이 없지만. 무슨 계기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진 건진 한 달이 지나니 그 경과가 또렷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더 웨일에서 사만다 모튼의 피폐한 연기를 보고 이 영화가 생각난 것도 같고 지난달 한창 듣던 본즈 앤 올의 영화 음악 때문에 그랬던 것도 같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가장  쉬운 경로는 나로썬 새로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듣는 것인데 이것도 대부분 영화 음악 담당자들이 베테랑들이라 결국 건너 건너다보면 클래식으로 진입한다. 여기서 클래식이란 바로크 음악이 아니라 이제는 고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훌륭한 대중음악이다. 그것은 마치 장영규가 담당한 어떤 한국 영화 음악을 듣다가 얼떨결에 어어부 프로젝트 음악을 듣기 시작하고 그러다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로 넘어가 자우림이나 넬, 넥스트, 부활, 공일오비로 가는 여정과 비슷하다. 아무튼 간혹 잡면이라고 해도 좋을 파스타 한 그릇을 만들어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다. 때로는 음식을 다 먹는 순간까지의 20분 정도만 보고 영화를 꺼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참으로 충만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가끔 머리를 묶으려고 한 줌에 쥐면 뭔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 들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어떤 봉지에서 어떤 파스타면을 꺼내도 그 양이 파스타 한 접시에 못 미칠 때가 약간 엄지와 검지 사이에 쥐어진 그 줄어든 머리숱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럴 땐 그냥 이것저것 다 넣고 끓이면 된다. 하지만 면마다 삶는 시간이 다르므로 넣는 순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한다. 이 파스타엔 먹물면과 일반면과 카펠리니까지 골고루 들어갔다. 먼저 검은 면을 넣고 삶다가 흑백의 면이 자연스레 서로에게 길을 터줄 무렵에 최종적으로 카펠리니를 넣고 4분 정도 더 삶는다. 부활절을 빌니우스에서 혼자 보낸 새우 한 마리와 오래된 버섯 네 개와 고추 반 개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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