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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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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여행에서 한번쯤은 다시 가볼 계획이 있지만 그럴 땐 왠지 다시 사게 될 것 같아 그냥 오래된 론리플래닛과 이별하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은 그냥 좋다. 특히 시티 가이드. 사실 난 사진 없이 글씨만 많아서 깝깝하고 답답한 스타일이 좋은데 점점 보기 편안하고 트렌디하게 바뀌고 있어서 좀 별로이긴하다. 이 시국에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 모르겠다. 책을 펼쳐보니 알고 있었지만 또 모르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와르륵 쏟아져 나온다. 쓰고 남은 파리의 까르네. 공항버스 티켓, 아르쪼에서 코르토나로 가던 기차 티켓, 무수한 카르푸 영수증 틈 사이의 루브르 기념품 가게의 엽서 산 영수증 등등.
토요일 티라미수 만들어 먹겠다고 오랜만에 4컵 모카를 꺼냈다. 틱틱거리고 툴툴거리는 소리를 뿜어내며 결국 채운 물의 반만이 추출되었다. 아침에 마시다 남은 묽은 드립 커피를 섞어서 대충 해결했다. 간밤에 잠이 너무 안 와서 왜지 생각하다가 10시 넘어 퍼먹은 티라미수 생각에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물 6월이 다 되어가지만 참으로 진도가 안 나가는 날씨. 그렇지만 아무리 낮동안 비가 오고 흐려도 오후 7시 정도에는 맑게 갠 하늘이 아주 아주 이른 아침 내가 자고 있을 때나 볕이 드는 북쪽 방향의 부엌에까지 따스한 빛을 나눠준다. 고작 5센티 정도 크기였던 다육식물은 절대 내 손에선 죽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식충 식물 같은 포스로 2년 동안 무섭게 자랐다. 다 먹은 커피용기에 옮겨주고 커피 나무라고 부른다. 이를 악물고 더 자랄 생각이라면 3킬로짜리 업소용 할라피뇨나 파인애플 캔에 옮겨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책 오래전에 시어머니께서 주신 러시아어 회화집. 맨 앞장에 78년도에 샀다고 적어놓으셨다. 상황별 짧은 러시아어 문장들이 리투아니아어와 함께 적혀있는데 마지막 칸에 리투아니아어 발음을 키릴 문자로 적어놓은 부분도 있다. 가끔 들여다보면 재밌다. 특히 식당 카페나 여행부분. 겉모습은 너무 다르지만 언어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잊어버린 단어들만 소환시키면 금방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어 조금 안도한다. 요즘 틈틈이 러시아어를 소리 내서 읽곤 하는데 리투아니아에 뿌리를 내린 러시아인들의 러시아어가 본토 러시아인의 그것과 너무 다르듯이 내 러시아어 억양도 오히려 리투아니아어를 전혀 하지 못했을 때 그나마 더 나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는 한국어 자음 발음에 리투아니아어 억양이 섞인 이상한 러시아어이..
11월 말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창밖으로는 이미 거뭇거뭇 어두워지는 하늘. 비도 오고 축축했지만 책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는데 방문 허용 시간이 15분이란다. 사람이 전혀 없었고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 직원들도 방문객이 고팠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 새로 들어온 보드 게임 같은 것을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좀 더 시간을 초과해서 나와보니 도서관 마당 여기저기 널린 게임 도구들. 비를 맞으며 낚시를 하고 고리를 던져서 걸고. 날씨가 아직 딱히 춥지는 않다. 웬만큼 비 맞아도 별 상관없는 비옷이 생겨서 좋다. 예전엔 겨울 좋아한다고 니트며 털양말이며 포근하고 풍성하고 길게 덮이고 파묻히는 옷들이 참 좋았는데 이젠 별로다. 자리 많이 차지하고 보관하기 어렵고 오랜만에 꺼내면 재채기에 콧물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코트가..
어떤 가게 뭐든 뭔가를 조금씩 덜어서 사는 행위는 특유의 행복감을 준다. 100그램의 잎차나 20그램의 팔각. 0.5 리터의 참기름, 작은 초콜릿 두 개, 4개의 스트룹 와플, 자두 한 알. 양배추 롤 한 개, 심지어 나사못 100 그램 같은 것들 조차도. 한 개 혹은 두 개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보면 단순한 소비에도 서사가 생기고 사색의 여지가 생긴다. 그런 아날로그 느낌이 참 좋다. 이 가게는 각종 양념가루들과 기름을 판다. 나는 이곳에서 참기름을 주기적으로 사며 팔각이나 갈아먹을 후추. 인도 향신료 같은 것을 구매 가능한 최소량으로 산다. 이런 가게에서는 직원이 또 뭐 필요한 거 있나요 물어볼 때 부담스럽기는커녕 도리어 마음이 편해진다. 보통 저런 큰 통을 가져와서 중량을 재고 다시 가져다 놓고 돌아와서 또 ..
2유로 여행지를 정하면 가장 처음하는 일은 보통 서점에 가서 론리플래닛을 펼쳐보는 것. 그리고 도시든 나라든 정성스럽게 적힌 개관을 다 건성건성 넘기고 찾는 페이지는 조그만 네모칸에 적힌 대강의 물가였다. 생수 한 병. 버스티켓 한 장. 커피 한 잔 한 번 주유하는데에 드는 돈. 뭐 이런 생활 물가들이 대여섯줄 적혀있다. 아니면 1달러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적혀 있었나? 일요일이 되면 사실 먹을게 별로 없는 동네 빵집을 지나쳤다. 주머니에서 구겨진 마스크를 꺼내고 지갑을 뒤지니 2유로가 나왔다. 텅 빈 진열대 위에 로또추첨공처럼 수북히 담긴 알록달록한 마카롱. 2유로만큼만 담아달랬더니 저만큼. 빌니우스 중앙역 근처 빵집의 2유로 물가.
짜조 베트남 여행할때 지나가는 오토바이 행렬을 구경하며 서서 먹던 500원짜리 짜조가 생각나서 해먹었다고 해야 뭔가 좀 더 이국적이고 추억돋는 느낌이 들겠지만 그냥 우리 동네의 없어진 베트남 식당을 추억하며 만들어보았다. 속을 먼저 스팀해서 넣고 말았더니 살짝만 튀겨도 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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