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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토요일 오전의 더블 에스프레소

 
 


게디미나스 대로에서 중앙역을 향하는 모든 탈 것들은 한대도 빼놓지 않고 이 카페 앞에서 커브를 돌아 좌회전을 한다.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는데 도로에 면한 카페 치고는 바깥 공간도 가장 넓다. 이 축복받은 남서향의 카페는 구시가 내에서도 단연 일조량 최고이다. 지난 1월 한 달 빌니우스 일조량이 4시간 남짓이었다는데 아마 그  4시간의 희소한 햇살을 이 카페는 일초도 남김없이 온전히 누렸을 거다. 카페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서 사방에서 꼼짝없이 신호에 걸리는 이들을 구경하기에도 좋다. 어떤 차량은 마음이 앞서 첫 번째 허들을 넘어뜨릴 만큼 앞서 뛰쳐나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뒷주자의 경적을 듣고서야 느릿느릿 움직인다.

하지만 이 카페의 커피가 분명 맛있음에도 자주 가진 않는다. 커피가 맛있었던 카페들이 보통 그렇듯 브런치를 팔기 시작하면 잘 가지 않게 된다. 그것은 처음부터 브런치 카페로 개업하는 경우와는 또 좀 다르다. 주방의 덕트 설비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일단 음식을 하기 시작하면 카페 안의 공기는 바뀌기 시작한다. 음향도 움직임도 전부 달라진다. 카페가 버터의 고소하고 믿음직한 발연점과 타협하고 나면 단지 마시러 오는 사람들의 욕구에는 등을 돌려야만 하는 것.
 
이 카페는 바르샤바의 스토르 카페와 느낌이 유사해서 요 근래 자주 떠올리다 토요일 아침 일찍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들렀다.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카페에 겸한 문 닫은 갤러리에도 햇살이 원 없이 쉬어간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는데 크지 않은 카페의 구석부터 이미 손님들로 빽빽하다. 유독 앞자리 학생에게만 질문 세례를 퍼붓는 교수가 진행하는 선택 교양 수업 같다. 그런 강의들은 보통 생면부지의 타 학과 학생들로 가득한 법인데 아는 사람들끼리는 또 돈독하게 서로 자리를 맡아주며 옹기종기 모여 앉는 법. 그럴 땐 혼자서 구석에 애매하게 남은 자리에 끼여 앉아 수업에는 관심도 없는 타인들이 작정하고 소곤대는 농담에  남몰래 공감하며 킥킥 거리던가 강사님의 질문 공세를 감수하고 중앙 자리에 앉거나이다.

토요일 아침엔 그 철옹성 같은 구석을 뚫지 못하고 결국 가장 되바라진 섬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맞은편에서는 일찍 출근한 직원이 토스트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Skanaus라고 맛있게 먹으라고 말해줬다. 그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상적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길가에 엉거주춤 서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어도 맛있게 먹으라고 말할 수 있는 곳, 특허로 출원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권장된 오지랖이 있는 동네니깐.

곧이어 커피의 출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 큰 잔에 더블 에스프레소를 꾹꾹 눌러 담아 가져온다. 60밀리 정도의 이 커피를 대략 세 모금에 걸쳐 이십밀리씩 넘긴다. 이런 빠른 커피의 직접적이고 당돌한 카페인을 최대한 유예하려고 온전히 집중하고 있을 때 간혹 잔을 가져가도 되겠냐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떠나지 않았음에도 카페에서 다 마신 잔을 치우는 이유라면. 장사가 아주 잘되는 카페. 장사가 잘되지만 잔이 충분하지 않은 카페. 자리가 없어서 시종일관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 카페. 빠릿빠릿한 직원이 일하는 경우. 직원이 내가 커피를 들이켜는 각도를 기가 막히게 관찰하고 있거나 뭐 심지어 아무런 이유도 없을 수 있다. 다 마셨으니 빨리 나가라는 의도로까진 절대 비약하진 않지만 나에겐 카페에 관한 모든 좋은 인상을 압도하고도 남는 요소이다. 커피잔이 대학가 호프집의 수북한 재떨이도 아니고 리필이 필요한 강냉이 접시도 아닐진대 커피 주인이 자리를 뜰 때까지는 주인과 함께 머물게 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정 그렇게 빈 잔에 집착하고 싶다면 가져가겠다는 사람에게 그냥 놔둬 달라고 말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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