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nd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Poland 03_구름처럼 지나가기 크라쿠프에서 아침 버스를 타고 타트라산에 오를 수 있는 도시 자코파네로 향했다. 크라쿠프에서 먹고 남은 삶은 달걀과 식빵과 소시지를 뜯어먹으며 설렁설렁 천천히 올랐다. 그리고 하산해서는 야간 기차를 타고 포즈난으로 이동했다. 슬로베니아의 트리글라우 찬양가를 듣고 있으니 갑자기 산중턱에서 만났던 수녀님들 생각이 나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Warsaw 17_반나절의 바르샤바 바르샤바는 나에게 '알지만 모르는 곳'이고 알고 싶은 동시에 잘 모르고 싶은 곳 이기도하다. 알고 싶은 마음을 아주 낮은 고도로 유지하고 있고 그런 마음이 들면 웬만해선 그냥 갈 수 있는 곳이다. 늘 그런 생각으로 가면 그곳은 영원히 영영 모르는 곳이자 항상 가고 싶은 곳으로 남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있다. 모르는 동안엔 모든 것이 다소 더 아름답다. 좋아하는 상태보다는 좋아함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항상 더 우아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단념할 수 있는 것은 휴지심에 반쯤 붙어있는 마지막 휴지 한 칸뿐이었으면 좋겠다. 바르샤바는 그냥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에 어떤 즐거움이 있다. 한없이 폐쇄적인 이 도시가 나에게 늘 열려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냥 지나치기엔 뭔가 아쉬운 위치, 애매모호하면서.. Warsaw 16_발견 바르샤바에 있는 동안 많은 것을 알게되었다. 첫째로 나의 컨버스 운동화 밑창으로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는 것. 둘째는 올리비에 샐러드에는 새우가 들어간다는 것 (인줄 알았으나 원래는 안들어가는 것으로 판명됨) 셋째는 캐리어를 올려 놓는 러기지랙이라는것이 있다는것을 모르고 그 위에 앉음. 넷째는 힌칼리 꼭지는 먹지 않고 버린다는 것. *식당 테이블에 놓인 힌칼리 제대로 먹는 방법에 따르면 꼭지 채로 잡고 아랫부분을 깨물어 속에 든 육즙을 다 빨아 먹고 힌칼리 본체를 깨물어 먹은 후 너무나 맛있어 감탄한 나머지 한 접시 더 주문하는게 룰이다. 하지만 저 그루지야의 국룰을 숙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뜨거워서 결국 손을 쓰지 못하고 국물은 숟가락에 받아 먹고 만두는 칼로 잘라 먹어서 내 마음속의 카프카스인들에게.. Warsaw 15_밤의 기마상 지난번 바르샤바에서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진하게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마 먼발치에서 그가 보이면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노비쉬비아트 거리 근처의 24시간 주류 상점들이 존재감을 발휘하는 시각에 동상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학생들도 귀여웠다. 그래서인지 코페르니쿠스의 자리는 갈 곳 없는 취객들을 품는 공간처럼 각인되었었는데 이번에 보니 그는 의외로 큰 거리 입구에 꽤 의미 있고 고상한 자태로 앉아있었다. 화창한 정오에 사람들은 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상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들 틈에서 코페르니쿠스는 단연 인자한 셀럽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바르샤바.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린다. 운동화 밑창으로 물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가랑비에도 운동화 흠뻑 젖을 수 있구나 생.. Warsaw 14_바르샤바의 유료 화장실 그리고 모던 러브 바르샤바 구시가의 좁고 한산했던 골목. 검고 둥근 것을 보면 엘피판이 먼저 생각나는지라 먼발치에서 봤을 때 저것은 화장실이 아닐 것이다, 저것은 예전에 화장실이었던 곳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쓰는, 이상한 명칭을 가져다 붙인다면 조금은 더 힙해보일거라는 강박이 있는 세상의 많은 클럽 중 하나일 것이다. 생각하며 다가갔다. 하지만 이곳은 마블 영웅들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컬러 포스터들과 모나리자가 거짓말처럼 두루마지 휴지에 둘러싸인 그림들로 장식된 진짜 유료 화장실이었다. 그런데 건물 색감과 번듯했던 문 때문이었는지 이 장면에선 베를린에서 지나쳤던 한자 스튜디오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결국 이 화장실은 순전히 나의 억지로 아주 음악적인 화장실로 뇌리에 남는다. 바르샤바에서 간혹 음악을 들었다. 텔레비전에.. Warsaw 13_생각나는 농담 1년전 우리는 스타인웨인의 상점을 지나며 힘겹게 피아노를 운반해서 사라지는 성실한 도둑에 관한 농담을 했었다. 오래된 농담이 거짓말처럼 떠오를때 난 그것이 일상의 성공이라 느낀다. 인생이란 결국 자잘한 농담들의 집합이라는 것. Warsaw 12_바르샤바행 감자트럭 1년 만에 가는 바르샤바. 바르샤바를 몇 번 갔어도 항상 오후 11시 넘어 야간버스를 탔던지라 딱히 바깥 풍경을 본 적이 없다. 이번엔 처음으로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우선 야간 버스보다 한산했고 자리를 옮겨 가장 뒷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졸며 갈 수 있었다. 국경을 지나고도 한참 숲과 들판을 낀 풍경은 그 어디와도 비슷하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감자를 잔뜩 실은 트럭이 지나간다. 높이 쌓아 올린 것은 아니지만 굴러 떨어지지 않는것이 신기하다. 리투아니아 친구들에겐 유머 한토막을 보낸다. 폴란드인도 감자먹으니 충분히 친구 될 수 있다고. Warsaw 11_루르끼츠카 루르끼바노바 루르끼떼 바르샤바 구시가에서 이 성당을 몇 번 지나쳤는데 성당은 자신의 어엿한 이름을 가지고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성당에 이름을 붙여줬다. 성당 파사드의 솟구치는 벽돌들이 초코하임과 더불어 지역 특산물 루르끼를 닮아서 깜찍하면서도 가냘프고 가련하게 짓는다. 성당 지기를 위해 설탕 심부름을 다녀오던 성당이 몰아치는 겨울 눈보라에 벗겨져 날아가는 스카프를 잡으러 가다 설탕을 쏟아 좌절하는 느낌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실제로 벽돌 성당들 파사드에는 눈들이 마치 벽돌들을 잡고 버티는 듯한 모습으로 제법 잘 엉겨붙는데 그런 겨울을 이겨내는 루르끼츠카는 아마 제법 루르끼스러울 것 같다.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