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land

(20)
코페르니쿠스와 커피 한 잔 바르샤바에서 지냈던 숙소 근처에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쇼팽과 함께 바르샤바의 슈퍼스타였다. 근데 처음엔 코페르니쿠스가 맞나 했다. 왜냐하면 동상을 지나치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검색을 해보기 전까진 코페르니쿠스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왠지 코페르니쿠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총애한 제자였을 것만 같이 젊고 (실상은 갈릴레오보다 1세기 연상) 브뤼겔의 풍속화에서 술 마시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것처럼 구수해 보이는데 그는 폴란드에서 태어나서 폴란드에서 뼈를 묻은 학자였다. 동상때문만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속의 뮤지엄 패스 발현으로 인해 코페르니쿠스 과학 박물관에도 갔다. 그곳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온갖 체험학습을 하며 5년 치 할 운동을 다 하는 와중에 머릿속에선 계속 코..
Poland 11_올 가을 바르샤바의 마지막 커피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맹신하며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꽤나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편이라 마지막을 한정하는 말들은 최대한 세부적으로 소심하게 좁혀 쓴다. 터미널 근처에 와서 밤차를 탈 때까지 코스타 커피에서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서둘 곳이라곤 없으니 역시 오래 앉아 있어도 자리가 불편하지 않은 이런 대형 카페에 머물게 된다. 며칠 전 바르샤바에 아침 6시에 도착해서 중앙 역을 향해 걸어갈 때 처음 봤던 카페였지만 그래도 다소의 추억이 남아 있을 중앙역까지 가서 아침 커피를 마시자는 생각에 카페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내 갈길을 갔었다. 이렇게 '다음에 오면 되니깐 우선 딴 데부터 가자' 하고 안 가는 경우 아예 갈 기회를 놓쳐버릴 때가 있는데 8차선 도로를 건너기 싫었던 게으름 덕분에 계획대로 오게 되었다. 앉..
Poland 10_ 바르샤바의 타투 스튜디오 친구를 베를린행 기차에 태워 보내고 중앙역에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불과 며칠 전에 걸어왔던 길의 오른쪽 풍경이 왼쪽 풍경이 되자 그때는 보이지 않던 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의 감흥을 애원하듯 붙들고 계속 직진한다. 8차선 도로를 쭈욱 걸어가고 있자니 가끔 방문했던 거대 식물원 가는 길의 춥고 공기 나쁜 하얼빈 생각도 나고 цум 백화점이 있던 모스크바의 어떤 큰 대로도 생각이 났다. 이제 나에게 이런 광활한 도로는 한없이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그 단조로움의 대열들이 수타면 장인이 한없이 늘리는 면 반죽과 같았으니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다가 좀 지나면 그 조차도 익숙해져서 종국엔 그저 펄펄 끓는 빨간 국물 속의 쫀득한 면만을 기대하게 한다. 아침으로 우육면을 먹어서였..
Poland 09_바르샤바의 과일차 아이들에게 주려고 바르샤바의 티샵에서 작은 차 통에 과일차를 사서 넣었다. 커다란 투명 유리통에 담겨있는 차들 중 제일 알록달록한 색으로 골랐는데 주인 아저씨가 이 차에는 찻 잎은 없다고 몇번을 강조하셨다. 말린 과일들과 꽃잎들이 들어가있는데 향기가 좋았다. 아이들이 매번 열어보고 향기를 맡으려고 하니 잘 산 것 같다. 근데 이것만 넣어서 차를 끓이면 너무 많이 넣어야 해서 아까우니 결국 집에 있는 홍차와 섞어서 또 가학(향)홍차를 제조 하곤 한다. 이 통에는 이와 비슷한 향기가 나는 차들을 계속 집어넣어야 겠다. 없으면 시장에 파는 꽃차에다가 말린 과일을 잘게 썰어서 넣으면 될 것 같다.
Poland 08_마주르카 연주회 바르샤바에는 소규모 쇼팽 연주회가 많단다. 친구가 예약을 해서 우리도 갔다. 10명 남짓한 관객에게 폴란드 전통 술도 제공된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바르샤바의 올드타운은 북적북적했지만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늘상 금요일은 다른 약속을 안 잡고 이곳와서 피아노 연주를 듣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쇼팽 연주회니 연주곡이 무엇일까 참 궁금했었는데 마주르카 전곡을 쳤다. 연주자가 마주르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을 하더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영화들 보면 좀 어리숙하고 수줍은 이웃이 '나 공연하니깐 보러 올래..?' 해서 가보면 아방가르드 연극을 하고 있다던가 하는 그런 장면들이 있다. 이 작고 소박한 쇼팽 공연에서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아랫집에 사는 레이첼 와이즈 같은 풍성한 머리 카락을 가..
Poland 07_리스본의 이발사 리스본의 이발사는 이름이 뭐였을까.
Poland 06_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 바르샤바 여행은 대사관 방문과 친구 만나기가 주목적이었다. 그냥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 눈에 띄는 카페를 많이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다양한 카페에 가진 않았다. 위가 줄어들었는지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하릴없이 지내는 며칠간 배가 항상 불렀는지 커피 생각도 디저트 생각도 잘 안 났다. 저녁 먹고 카페에 가서는 커피 생각도 안나서 허브차를 마시곤 했다. 바르샤바로 떠나기 전에 딱 한번 카페 검색을 했는데 stor라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스톨리츼나야라는 보드카 브랜드의 stoli 로고가 계속 떠올라서 뭔가 stolichnaya와 store를 결합하며 술 저장고 같은 어감이 있었던 카페. 이름에 관한 몇 번의 농담을 하고 그렇게 잊혀졌다. 몇년 만에 오후 1시까지 질퍽하게 늦잠을..
Poland 05_여전히 그 자리에 가고 싶었지만 공휴일이라서 문을 열지 않았던 14년 전의 티샵. 티샵은 모스크바에서 처음 봤고 하얼빈에서는 철관음과 재스민 차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사서 마셨고 빌니우스에도 티샵이 있어서 첫 해에는 차례차례 모든 차와 커피콩들을 맛보는 것에 큰 즐거움과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빌니우스에서 떠나는 첫 여행지에서 만난 티샵이 정말 너무 반가웠더랬다. 그때 이 거리엔 전통 장날 같은 것이 열려서 폴란드 전통음식도 팔고 브라질 삼바 춤 복장을 한 한 무리의 여인들이 열정적으로 거리를 통과하고 있었는데 문이 닫혀있어서 너무 아쉬웠다. 어디에서 잠을 자는지도 모른채로 떠나온 여행. 친구가 잡은 숙소는 이 거리에서 굉장히 가까웠고 그렇게 마치 의도한 것처럼 이 찻가게에 드디어 방문할 수 있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