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에는 소규모 쇼팽 연주회가 많단다. 친구가 예약을 해서 우리도 갔다. 10명 남짓한 관객에게 폴란드 전통 술도 제공된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바르샤바의 올드타운은 북적북적했지만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늘상 금요일은 다른 약속을 안 잡고 이곳와서 피아노 연주를 듣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쇼팽 연주회니 연주곡이 무엇일까 참 궁금했었는데 마주르카 전곡을 쳤다. 연주자가 마주르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을 하더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영화들 보면 좀 어리숙하고 수줍은 이웃이 '나 공연하니깐 보러 올래..?' 해서 가보면 아방가르드 연극을 하고 있다던가 하는 그런 장면들이 있다. 이 작고 소박한 쇼팽 공연에서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아랫집에 사는 레이첼 와이즈 같은 풍성한 머리 카락을 가진 여인이 우편함에서 세금 고지서를 꺼내다 마주친 나에게 내일 마주르카 치니깐 시간되면 올래?,, 해서 간 공연 같았다. 나만을 위한 연주라는 느낌이 들었던 아주 귀엽고 따뜻했던 공연.
초등학교때 천안으로 전학가서 2년 동안 다닌 천안 리듬 피아노 학원에는 피아노가 12대씩이나 있었다. 학원에 들어서면 피아노 자리가 생길때까지 기다릴때나 다같이 청음이나 이론 공부를 하는 커다란 응접실에 갈색 피아노 한대가 있었고 그 응접실을 빙 둘러싼 투명 미닫이 문이 달린 다섯개의 방 속에 보통의 피아노 학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검은색 피아노 2대씩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소파가 있고 피아노 연주 디스크가 가득 꽂혀있던 원장 선생님 방 속에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8월초에 이사를 가서 개학할때까지 낯선 곳에서 의기소침했던 시기에 가끔 울기도 하는 아이가 안타까웠는지 엄마가 보내 줬던 피아노 학원, 돌이켜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정말 행복했던 2년이었다.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는 체르니 30에서 40으로 넘어가는 즈음에 쇼팽 마주르카를 40이 넘어가면 왈츠를 그리고 50 들어가는 애들은 녹턴을 쳤었다. 같은 방에 때로 나보다 레벨이 높은 애들이 앉아서 나한텐 없는 악보를 치곤 했는데 그때 참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들리던 작품들은 대부분 쇼팽의 작품이었다.
옆 방에서 콘서트 합주를 하는지 계속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참 민망했으나 연주자는 처음이 아니라는 듯이 집중해서 연주를 이어갔다. 연주자가 특유의 동작으로 연주가 끝난 악보를 한장씩 옮길때마다 악보를 넘겨주며 레슨을 해주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 생각이 났다.
술은 아마 꿀 베이스였다.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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