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보니 기차는 끝없이 펼쳐진 우크라이나의 흑토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농부들이 비옥한 흙에 파묻힌 채, 뼈대가 굵고 육중한 말을 부리며 쟁기질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바위나 동산, 숲 따위는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다. 이따금 가냘픈 몸매의 하얀 포플러나 배고픈 까마귀들이 하늘을 나는 것이 눈에 띌 뿐이었다. 안개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는 드문드문 흩어진 마을들이 보였다. 마을 중앙에는 한결같이 서양배 모양의 초록색을 칠한 돔이 있는 교회가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빽빽하게 낮은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마을 변두리에는, 양 떼 사이로 양치기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러시아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요즘 조금씩 읽고 있는 책 중에 키예프에 관한 짧은 부분. 그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어조는 한껏 고무되어있고 지금 시대의 나는 그 문체 밑바닥 깊은 곳에서 모종의 암울함을 느낀다. 서양배 모양의 초록색을 칠한 돔이 있는 교회 부분에서 르비우에서 지나쳤던 정교 성당이 떠올랐다. 성당 주변을 빙 둘러싸고 종교 서적들과 작은 이콘들. 병조림 하는 법, 텃밭 일구는 법 등 생활상식이 적힌 포켓북이나 달력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익숙한 체크무늬 캐리어. 할머니들의 절제된 길이의 스커트와 그 바로 아래에서 절묘하게 시작되는 겨울 부츠 그리고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되어버린듯 머리를 감싸매고 있는 스카프. 언젠가는 없어질 풍경들이다.
우크라이나의 르비우, 리투아니아에서는 Lvov 에 남성어미를 붙여서 Lvovas 르보바스로 불려지다 최근 우크라이나식 표기인 르비우에서 착안하여 르비바스로 변경되었다. 그때만해도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같은 나라의 비자는 초청장이 있어야 발급이 가능했는데 거금을 들여서 대행사에 비자 발급을 맡기면서까지 우크라이나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모호한 것이었다. 드넓은 우크라이나 지도의 많은 부분에 표시를 하고 3주 정도를 계획했는데 여행이란 것이 늘 그렇듯 변수가 생겨 결국 르비우에만 1주일 남짓을 있었다. 바르샤바에서 탄 버스엔 고향으로 돌아가는 우크라이나인들로 가득했다. 나의 여권 검사로 인해 국경을 지나는 버스에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르비우에서의 일주일은 대체로 월요일 정오 같은 완만함으로 충만했다. 번잡함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시장과 기차역에서였다. 시장에서 오래된 엽서들을 샀다. 뻬쩨르에서 타지 못한 헝가리행 야간 기차가 이곳을 지날거라 생각하며 그것에 묘한 만족감을 느꼈고 기차역에서 부다페스트행 열차표를 끊었다. 기차역 키오스크에서 진열장 너머로 가격이 적힌 견출지가 붙은 체스터필드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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