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바르샤바에서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진하게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마 먼발치에서 그가 보이면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노비쉬비아트 거리 근처의 24시간 주류 상점들이 존재감을 발휘하는 시각에 동상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학생들도 귀여웠다. 그래서인지 코페르니쿠스의 자리는 갈 곳 없는 취객들을 품는 공간처럼 각인되었었는데 이번에 보니 그는 의외로 큰 거리 입구에 꽤 의미 있고 고상한 자태로 앉아있었다. 화창한 정오에 사람들은 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상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들 틈에서 코페르니쿠스는 단연 인자한 셀럽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바르샤바.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린다. 운동화 밑창으로 물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가랑비에도 운동화 흠뻑 젖을 수 있구나 생각하며 코페르니쿠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바르샤바 여행의 동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도착 전화를 받고 호텔로 향하는데 한적한 거리에 진입하니 꽤 선명한 색감의 건축물 하나가 돌연 나타났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작은 정원은 비 온 뒤라 짙고 청신했고 그 한편에는 별다른 기개가 느껴지지 않는 기마상 하나가 놓여있었다. 늦은 밤 대열에서 낙오되어 천천히 숲을 걷다 뭔가에 꽂혀서 멈춘 듯 어수룩하고 기동성이 다 떨어진 기마상. 난 이것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1년 전의 코페르니쿠스가 그랬던 것처럼 바르샤바에 있는 동안 집을 향하는 나침반이 될 것 같았다.
이 기마상이 있는 곳은 찹스키 궁전인데 대대로 여러 귀족들이 거처로 삼았던 웅장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양반가의 대궐 느낌으로 지금은 바르샤바 미대 건물로 쓰인다. 이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 경로는 크라콥스키에 프제드미에스치에 거리에서 십자가 성당을 지나 쇼팽이 살았다는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것, 심지어 작년에 친구와 가서 아이리쉬 커피를 마셨던 쇼팽룸 카페 뒤쪽으로 펼쳐졌던 공간이 알고 보니 이곳이었다. 다른 하나는 좀 돌아서 조용한 트라우구타 거리를 통해 측면에서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난 후자가 훨씬 좋았다.
늦은 저녁 짐을 풀고 물을 사러 밖으로 나왔을 때 궁전을 끼고 꺾어야 하는 것을 잊고 그냥 직진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야했다. 그대로 가서 꺾었어도 목적지에 다다랐겠지만 기마상을 굳이 확인하고 싶어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어둠 속의 기마상을 구석구석 찬찬히 웃으며 훑어보았다.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폴란드어 설명도 제법 진지한 자세로 읽는다.
이틀 밤 내내 기마상을 방문했다. 과제 때문인지 삼각대를 세워놓고 계속 카메라를 설정하던 학생들. 늦은 밤 폐쇄된 행사가 있었는지 간간이 문 밖으로 나와서 손님을 맞이하던 여성. 텅 빈 벤치와 잠시 앉아가는 사람을 호위하는 작은 조명.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간신히 지켜낸 불씨에 안도하며 말 위에 앉아있는 기수의 시선을 따라 몸을 비틀어 고개를 한 번 쭉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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