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106) 썸네일형 리스트형 9월 절정 오전에 마시기 시작한 커피가 늦은 오후까지 어딘가에 남아있을 때가 있다. 사실 오후 늦게 새로 커피를 끓일 일이 없기 때문에 그때 마시는 그 의도치 않은 한 모금의 커피야말로 사실상 그 순간을 배경으로 완벽하게 새롭게 편집된 커피이다. 명백히 다 식었으며 심지어 아주 조금 남아있어서 가라앉은 커피 침전물이 입에 들어갈 때도 있으나 아마도 나를 기다려줬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건지 선물받은 느낌으로 마신다. 그래서 웬만하면 남의 찻잔이나 커피잔은 씻지 않게 된다. 어쩌다보니 잊혀졌던 한 모금이거나 잊혀짐으로 가장된 충분히 의도된 한 모금일 수 있기때문이다. 30/8/2021 생각해보면 지난 8월은 이렇다 할 날씨가 없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듯 딱히 취향도 성질도 없는 완전히 정체된 공기 속에서 다 마른 것 같기도 하고 덜 마른 것 같기도 한 질긴 청바지 같은 날씨였다면. 간간히 실수인 듯 햇살을 내비치기도 하며 그렇게 8월이 흘러간다. 지갑 속에 웬일로 동전이 있어서 시장 근처의 오래된 과자 가게에서 과자 몇 개를 사서 돌아왔다. 깨물면 여기저기서 투박한 크림이 삐져나오는 묵직한 커피에 잘 어울리는 옛날 과자. 며칠 계속 비가 왔다. 이성경이 어떤 영화에서 불렀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 주제곡들을 찾아들었다. 갑자기 이런 노래들이 뜬금없이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후자는 특히나 옛날 그룹 모노의 메인 보컬과 목소리가 너.. 7월 종료 쓰레기이지만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만 쓰레기인 것과 그저 아름다운 것에 관해 이야기하며 마시는 커피. 7월 중순 일주일간은 매우 무더웠다. 하지만 이 여름이 어처구니없이 짧을 걸 알기에 혹은 서울의 무더위를 (서울에서의 나의 마지막 여름이 15년 전 이었단걸 감안하면 또 지금의 여름과는 비교가 안 될 더위겠지만)아는 나에겐 이곳의 여름은 현지인들의 아우성과는 달리 완전히 견딜만한 종류의 것이다. 몇 번의 비가 가기싫다 버티고 있던 여름을 완전히 몰아낸것처럼 보일때도 있지만 8월에 내리쬐던 어떤 태양을 분명히 기억한다. 대나무 막대기 에스프레소 신도심의 구석진곳에 있던 로스터리인데 얼마전에 구시가에 카페를 열었다. 이 카페 이름이 오래 전 자주갔던 신촌의 음악 감상실과 같아서 그냥 정이 간다. 피칸 파이가 너무 맛있어보여 잠시 뜨거운 커피를 먹을까 망설였지만 처음 온 카페의 신선하고 청량한 여름의 인상을 위해서 계획했던대로 토닉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가능하면 구겨지는 잔이 아닌 깨지는 잔으로 마시는 커피가 더 맛있지만 특히 에스프레소 토닉은 다소 촌스럽기조차한 골진 도톰한 투명 유리잔 이외의 경우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날씨가 꽤 무덥다가 비를 한번 내리더니 민망할 정도로 서늘해졌지만 잠시 비가 갠 상태에서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은 부정할 수 없이 여름 태양이다. 물론 얼음 조각은 다 마시고 난 후에도 한참 머물러있겠지만. 다른 동네 커피 오랜만에 기차 여행. 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게 빌니우스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가장 처음으로 정차하는 역으로의 여행이다. 대략 8분 정도 걸리니 구시가 중심까지 걸어가는 시간이랑 비슷하고 결국 빌니우스인데 늘 올때마다 꽤나 먼곳으로 떠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빌니우스행 기차를 기다리며 역 근처 슈퍼마켓 건물 뒤쪽 지하에 의심쩍은 모습으로 위치한 카페에 들렀다. 간판에 앵무새가 그려져있는 마틸다라는 카페. 주인은 당황했다. 주스나 잔술 따위를 파는 이 카페는 사실상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낮부터 술을 마시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구비해 놓은 것 같은 커피 기계를 이리 저리 만지더니 거의 15분만에 커피를 만들어냈다. 일주일째 30도가 웃도는 무더위이지만.. 주전자가 된 모카 오래 전에 드립서버 하나를 깨뜨리고 다른 회사 제품을 사니 기존에 쓰던 도자기 드리퍼가 잘 맞지 않아서 작년에 하나를 더 사게 됐다. 결국 잘 안쓰게 된 1호 드리퍼를 친구집에 가져가기로 한다. 적당한 주전자가 없어서 냄비에 끓인 물을 모카포트에 옮겨 담아 부었다. 돌연 주전자가 된 모카포트 손잡이로부터 전해지는 느낌이 손 큰 바리스타가 작은 커피 잔에 기울이고 있는 앙증맞은 스팀피쳐를 볼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무엇을 통하든 커피물은 언제나처럼 여과지 끝까지 쭉 스며들어 올라앉는다. 실과시간의 커피 린넨샵에 수수한 테이블 러너가 반값에 팔길래 한 장 샀다. 테이블 러너로 사용하기엔 아직은 번잡한 일상이고 그냥 두개로 갈라서 부엌수건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아서. 겨울 코트를 직접 만들어 입는 친구에게 빵과 함께 가져간다. 그냥 쭉 잘라서 한 번 접어서 박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다림질부터 하라며 다리미를 꺼내온다. 멀쩡한 실밥을 뜯고 천을 접어 집어 넣고 짜투리 천으로 고리까지 만들어 끼워 박는다. 그러고도 남은 천으로는 안경 케이스 같은 주머니를 만든다. 적당히 사는 삶은 너무 낭만적이지만 대충이란 단어는 간혹 걸러내야겠단 생각을 아주 잠시하고 이내 잊는다. 열심히 일한 친구가 이브릭에 카다멈을 넣고 커피를 끓여주었다. 그저 다른 커피 미리 약속시간을 정하는 것이 지루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질때가 있다. 만나려는 목적이 아주 단순할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럴 땐 그저 내가 걷고 있는 지점에서 누군가가 생각났는데 설상가상 그 어떤 집과 내가 서 있는 곳 중간 즈음에 빵집이라도 있다면 그냥 시간이 있냐고 넌지시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면 빵을 사서 향하면 된다. 3월 들어 집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를 갈아본지도 오래. 친구에게 '커피(라도) 내가 갈게' 말했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밀을 돌리며 그 날의 힘을 측정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농담을 하며 커피를 간다. 어떤 잔에 얼마큼 태운 콩으로 얼마큼 진하게 마실 것인가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믿기 힘들 정도로 유려한 롱테이크가 될 때가 있다. 짧은 단편 소설 속의 공들인 프롤로그.. 이전 1 2 3 4 5 6 7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