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88) 썸네일형 리스트형 커피들 빌니우스에서 13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가장 따뜻한 겨울이다. 모든 생명체가 예고를 하고 나타나듯 카페도 예외는 아니다. 카페의 삶도 '이곳에 곧 카페가 생깁니다' 라는 문구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생긴다고 하는 카페가 생기지 않은 적도 있으니 첫 잔을 마주하기전까지는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다. 이제는 열었을까 하고 찾아 갔던 어떤 카페. 사실 구시가의 척추라고 해도 좋을 거리이지만 차량통행이 일방통행이고 반대 차선으로는 트롤리버스만 주행이 가능해서 유동인구가 적고 저 멀리에서 신호라도 걸리면 온 거리가 적막에 휩싸여버리는 거리이다. 건물 1층의 점포들은 대체로 뿌연 회색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누구에게 임대를 해서 뭘 해도 잘 안되니 왠지 건물 주인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궁여지책으로 시작.. 커피와 메도브닉 얼마 간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케익을 배달해 주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냥 케익 한 조각을 예쁘게 잘 포장해서 배달해주는 곳이 있다면. 당연히 그런 곳은 없다. 생수와 양파 감자등 무거운 것을 집으로 주문하는김에 찾아봤더니 몇 종류의 매우 짐작가능한 맛의 저렴한 케익과 파이들이 보였다. 이 메도브닉도 그 중 하나였다. 두 잔의 커피를 지나치며 카페의 테이블이 거리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지만 의외의 햇살과 그림자, 의외의 커피는 어디에나 있다. 그 어떤 빛보다 반가운 1월의 햇살과 함께 여지없이 추위가 찾아왔음에도 여전히 눈은 내리지 않는다. 많은 것이 있다. 이브부터 새해를 넘겨 이어진 긴 휴일의 적막을 뚫고 도로 위에 얕게 흘러내린 비를 훑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놀이터에는 어른 넷이 들어가고도 남는 커다란 낙엽 자루가 발아래에 놓인 흙과 함께 쓸어 담겨 잔뜩 무겁고 둔해진 나뭇잎들로 반쯤 채워져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네질을 멈추게 하던 발길질로 움푹 팬 땅에는 이제 서서히 얼기만을 기다리는 빗물들이 한 꺼풀 고여있다. 물을 뿜고 있는 듯 축축하고 앙상하기만 한 나뭇가지들은 봄의 햇살보다는 오히려 흰 눈을 기다린다. 더 깊은 겨울이 되면.. 오후 4시의 커피 빛이 어둠을 향해 달려간다고 하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날들이다. 아침에 일어나도 점심을 먹고 나서도 저녁을 먹을 즈음에도 주위의 빛깔은 한결같다. 나의 경우 1년을 쪼개고 또 쪼갰을 때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겨울이다. 돌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여행지에서 그 여행을 마음껏 기다리던 순간의 설레임이 오히려 그리워지듯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떠올리게 되는 풍경은 결국 그 여름을 원없이 열망할 수 있었던 긴긴 겨울이다. 코코아와 카푸치노를 채운 우유 거품이 가장 포근하게 느껴지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향하는 커피 9월의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을때 머리속에 떠오른것은 을씨년스럽고 외롭기 짝이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흑백의 풍경이었다. 그런 풍경이라면 좋았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바와 윌리와 에디가 마주한 텅 빈 바닷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생각하니 급속히 바다가 가고 싶어졌다. 9월의 발트해는 12월의 동해 만큼 차갑겠지. 한여름의 붐비는 바다,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뜨거운 모래 사장에서 햇살을 만끽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없으니 어쩌면 다행이다. 신발만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 젖은 양말속에서 불어서 얼어버리는 발가락은 너무 절망적이니깐. 왠만해서는 뭔가를 미리 예약하지 않게 된다. 새벽 일찍 샌드위치까지 만들어서 첫차를 타러 기차역에 갔는데 일반석표가 없다고 했다. 다행히 딱 필요한 명수 만.. 10월의 토닉 에스프레소 빌니우스는 사실 그다지 작지 않지만 중앙역과 공항이 구시가에서 워낙 가까워서 구시가만 둘러보고 돌아가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겐 작고 아담하다는 인상을 준다. 중앙역에 내려 배낭을 매고 호스텔이 있던 우주피스의 언덕을 오르던 때가 떠오른다. 한때는 꾹꾹 눌러쓴 연필자국처럼 짙고 선명했던 여행의 많은 부분들은 이제 서너장 넘긴 공책 위에 남은 연필의 흔적처럼 희미하지만 그럼에도 역에 내려 처음 옮기는 발걸음과 첫 이동 루트는 한 칸 들여쓰는 일기의 시작처럼 설레이고 선명하다. 몇 일 집을 떠나 머물었던 동네는 공항가는 버스가 지나는 곳이었다. 낮동안 오히려 더 분주하게 날아다녔을 비행기이지만 막 이륙한 비행기인지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인지 그들이 내뿜는 굉음이 오히려 밤이 되어 한껏 더 자유분방해진채로 어둠을.. 겨울의 카페 케익의 첫인상은 항상 작다. 스모 선수를 보지 않아도 그는 거대할것이라 짐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맛없을 케익도 그는 항상 작게 느껴진다. 그 케익을 커보이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작은 데미타세 잔이다. 작은 에스프레소가 가져다 주는 희열이라면 어떤 케익을 먹어도 보통은 그 보다는 크다라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케익을 다 먹었는데도 커피가 남아있는것이 싫다. 커피가 부족하다고 느끼는것이 훨씬 더 정당하다. 커피는 새로 마시면 되니깐. 겨울의 카페는 두 종류이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가는 카페가 늘 그렇듯 그 중 하나이겠고 하나는 단지 추워서 들어가는 카페이다. 오후 8시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중. 이대로 집까지 걷다간 죽을 것 같아 몸을 좀 녹이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물론 장갑을 벗고, 모자를 제.. 다른 토닉 에스프레소 집에 냉장고가 오래되서인지 냉동실에는 성에가 거대한 빙하처럼 자리잡고 있다. 미끈하게 울룰불룩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이 든든하게 느껴질 정도로. 얼마전 냉장고 전원을 빼놔야 할 일이 있었는데 희끄무레해진 빙하 가장자리 틈으로 칼날을 밀어넣으니 쩍하고 크레바스처럼 벌어졌다. 그렇게 냉장고를 빠져나온 한 조각의 빙하를 그냥 싱크대에 놔뒀다. 여름이 얼마만에 그를 녹여버릴지 궁금했기때문이다. 요즘의 여름은 딱 그렇다. 싱크대 배수구 언저리에서 점점 작아지던 딱 그 얼음 조각처럼 간신히 걸려있다. 이미 진작에 끝났는지도 모르는 그 신기루 같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마시는 시원한 커피. 에스프레소 모자를 쓴 토닉.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