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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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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는시간 어둑어둑해지다가 기습적인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익숙한 아침 풍경. 그럼에도 그것이 여름이라면 그 차가움은 매섭게 느껴지진 않는다. 바람이 지나자마자 볕이 한가득 들어 근처 빵집에 갔다. 눈앞에서 트롤리버스가 급커브를 트는 좁은 도로 앞에 위치한 빵집은 이 시간 즈음에는 햇살로 차오른다. 커피를 다 마시고도 한참을 앉아 맛있는 것들을 한 접시 한 접시 비우던 몹시 따뜻했던 8월의 어떤 날이었다. 여름이 끝나는 중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아차렸겠지만 이렇듯 급하게 날씨가 바뀌어버릴 줄은 몰랐다. 한두 번 겪는 9월도 아닌데 옷깃을 여미게하는 찬 공기가 새삼스럽다. 마치 눈깜짝할새에 비어버린 접시 같은 여름. 잘 포개두어 치워가지 못한 그날의 접시처럼 좀 더 머물러준다면 좋겠지만.
커피와 너 너와 마시는 커피가 너와의 세상에서는 최고로 맛있다.
한강 같은 블랙커피 어릴때 엄마에게 커피를 타준다고 물을 부어놓으면 매번 엄마가 하던 말이 '아이고 물을 한강처럼 부어놓았구나' 였다. ㅋ 지금도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때면 결국은 정량보다 물을 많이 붓게된다. 그리고 늘 다 안마시고 남긴다. 이 빵집의 블랙 커피를 보면 그 한강 커피 믹스가 늘 생각난다. 얕고 넓은 잔이어서 더 그렇겠지만.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갑자기 우리 삶에 많은 감상적 신세 한탄의 클리셰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하지만 정말이다. 모든것이 이전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가령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마자 보란듯이 팡하고 터졌던 R.E.M 의 Losing my religion. 영원 불멸의 인트로.
남기는 커피 커피보다는 빵이 월등히 맛있는 오래된 빵집이 있다. 그래도 그 커피를 남겨야만했다면 커피가 맛없어서라기보다는 그 순간 그 커피를 맛있게 마셔줄 수 없었던 나의 무언가 때문이었던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제 마신 커피 7월 들어 날씨가 꽤나 춥다가 정상적인 여름 기온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늘에 놓인 테이블이 있는 조그만 빵집에 앉았다. 에스프레소에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간 케이크와 딸기잼이 들어간 컵케익을 사서 맛있게 나눠먹었다. '맛이 없다'와 '내가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의 차이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는 것과 실망하지 않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쉬운 걸까.
바쁜 카페 신경써서 잔을 치우러 온 사람이 멋쩍을까봐 다 마신 잔이며 케익 접시들을 주섬주섬 넘겨주지만 사실 내가 일어설때까지 모든 것이 고이 남아있을때가 가장 좋다. 그럼에도 물컵은 너무 많아서 다 챙겨가지 못했다. 전부 사용하기가 왠지 아까워서 컵 하나를 같이 썼지만 어쨌든 전부 싱크대로 직행하겠지.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서 갔더니 가까스로 자리가 있어서 오랜만에 앉았다.
3월 마감 커피 3월이 아주 마지막이 되기 직전의 어느 날에는 늘 엄마에게 몇 시 인지를 물어보는 전통이 있다.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지만 그런 일들은 또 왜 유쾌한 것인지. 시간을 손수 재설정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자동적으로 바뀌곤하니 아무 생각없이 하루를 보내다 하루의 절반쯤이 지나고나서 뭔가 찌뿌둥하고 흐리멍텅하고 뒤가 뒤숭숭해지는 느낌을 받고 난 후 그제서야 아 낮이 다시 길어졌구나 깨닫는다. 맡겨놓은 빛을 되돌려 받았음을 알고 난 직후에 바라보는 하늘은 뭔가 달리 보인다.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지만 어제도 그제도 똑같이 누렸던 그 빛이 곱절은 여유로워보이는 것이 뭔가 비밀을 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아침의 느낌은 훨씬 수월해졌다. 몸을 숙여 대롱대롱 매달린 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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