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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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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막대기 에스프레소 신도심의 구석진곳에 있던 로스터리인데 얼마전에 구시가에 카페를 열었다. 이 카페 이름이 오래 전 자주갔던 신촌의 음악 감상실과 같아서 그냥 정이 간다. 피칸 파이가 너무 맛있어보여 잠시 뜨거운 커피를 먹을까 망설였지만 처음 온 카페의 신선하고 청량한 여름의 인상을 위해서 계획했던대로 토닉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가능하면 구겨지는 잔이 아닌 깨지는 잔으로 마시는 커피가 더 맛있지만 특히 에스프레소 토닉은 다소 촌스럽기조차한 골진 도톰한 투명 유리잔 이외의 경우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날씨가 꽤 무덥다가 비를 한번 내리더니 민망할 정도로 서늘해졌지만 잠시 비가 갠 상태에서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은 부정할 수 없이 여름 태양이다. 물론 얼음 조각은 다 마시고 난 후에도 한참 머물러있겠지만.
다른 동네 커피 오랜만에 기차 여행. 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게 빌니우스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가장 처음으로 정차하는 역으로의 여행이다. 대략 8분 정도 걸리니 구시가 중심까지 걸어가는 시간이랑 비슷하고 결국 빌니우스인데 늘 올때마다 꽤나 먼곳으로 떠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빌니우스행 기차를 기다리며 역 근처 슈퍼마켓 건물 뒤쪽 지하에 의심쩍은 모습으로 위치한 카페에 들렀다. 간판에 앵무새가 그려져있는 마틸다라는 카페. 주인은 당황했다. 주스나 잔술 따위를 파는 이 카페는 사실상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낮부터 술을 마시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구비해 놓은 것 같은 커피 기계를 이리 저리 만지더니 거의 15분만에 커피를 만들어냈다. 일주일째 30도가 웃도는 무더위이지만..
주전자가 된 모카 오래 전에 드립서버 하나를 깨뜨리고 다른 회사 제품을 사니 기존에 쓰던 도자기 드리퍼가 잘 맞지 않아서 작년에 하나를 더 사게 됐다. 결국 잘 안쓰게 된 1호 드리퍼를 친구집에 가져가기로 한다. 적당한 주전자가 없어서 냄비에 끓인 물을 모카포트에 옮겨 담아 부었다. 돌연 주전자가 된 모카포트 손잡이로부터 전해지는 느낌이 손 큰 바리스타가 작은 커피 잔에 기울이고 있는 앙증맞은 스팀피쳐를 볼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무엇을 통하든 커피물은 언제나처럼 여과지 끝까지 쭉 스며들어 올라앉는다.
실과시간의 커피 린넨샵에 수수한 테이블 러너가 반값에 팔길래 한 장 샀다. 테이블 러너로 사용하기엔 아직은 번잡한 일상이고 그냥 두개로 갈라서 부엌수건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아서. 겨울 코트를 직접 만들어 입는 친구에게 빵과 함께 가져간다. 그냥 쭉 잘라서 한 번 접어서 박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다림질부터 하라며 다리미를 꺼내온다. 멀쩡한 실밥을 뜯고 천을 접어 집어 넣고 짜투리 천으로 고리까지 만들어 끼워 박는다. 그러고도 남은 천으로는 안경 케이스 같은 주머니를 만든다. 적당히 사는 삶은 너무 낭만적이지만 대충이란 단어는 간혹 걸러내야겠단 생각을 아주 잠시하고 이내 잊는다. 열심히 일한 친구가 이브릭에 카다멈을 넣고 커피를 끓여주었다.
그저 다른 커피 미리 약속시간을 정하는 것이 지루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질때가 있다. 만나려는 목적이 아주 단순할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럴 땐 그저 내가 걷고 있는 지점에서 누군가가 생각났는데 설상가상 그 어떤 집과 내가 서 있는 곳 중간 즈음에 빵집이라도 있다면 그냥 시간이 있냐고 넌지시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면 빵을 사서 향하면 된다. 3월 들어 집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를 갈아본지도 오래. 친구에게 '커피(라도) 내가 갈게' 말했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밀을 돌리며 그 날의 힘을 측정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농담을 하며 커피를 간다. 어떤 잔에 얼마큼 태운 콩으로 얼마큼 진하게 마실 것인가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믿기 힘들 정도로 유려한 롱테이크가 될 때가 있다. 짧은 단편 소설 속의 공들인 프롤로그..
다른 창가의 커피 가끔 재택근무하는 친구의 점심시간에 맞춰 커피를 마시러 간다. 부엌 한 가득 오래 된 전동 커피밀 돌아가는 소리. 이어지던 대화가 잠시 중단되고 다 갈린 커피를 포트에 옮겨 담으며 언제나처럼 유서 깊은 전동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쉽게 망가지지 않는 것들이 주는 한 보따리의 이야기들. 그들이 만들어냈을 무수한 커피들. 제각기 다른 방식과 다른 배경의 커피. 때가 되면 자리를 떠야 하는 상황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속에서 질척 밍그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짧은 시간 속의 상큼한 커피. 정해진 시간만큼의 단어들을 내뱉고 단어 사이사이의 시간을 부여잡고 열심히 홀짝인다.
미켈란젤로의 커피 요새 보고있는 드라마가 있는데 사실 너무 어이없이 재미없는 전개에 남은 두 에피소드를 시작 하지 못해 계속 끝내지 못하고 있는 드라마이다. 1950년 캔자스가 배경인데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나온다. 특히 매번 '우리 이탈리아에서는 말이지','너네 미국이란 나라는 말이지'라는 시작을 덧붙이는 꼴통 이탈리아인이 식당에 들어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빗자루질 하는 종업원을 부른다. '우리 이탈리아에서는 돈 받고 빗자루질 하면 빗자루질 제대로 하거든? 내가 커피를 돈내고 마시는 건데 커피를 끓여오려면 미켈란젤로처럼 끓여오란 말이야!'. 그리고 종업원은 물론이고 바에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던 주인까지 빵빵 쏴버린다. 나는 순간 겁에 질려서 내가 마시는 커피를 미켈란젤로처럼 끓이고 있는지 생각에 잠겼다. ..
눈 앞의 커피 네가지 종류의 치즈가 600그램이나 들어간다는 요리책 속의 치즈 파이를 옆에 두고 입맛을 다시며 커피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커피가 그림의 떡인 순간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좋았다. 자이살메르의 사막에서도 칸첸중가 트렉킹에서도 인스턴트 커피 한 봉지 정도는 왠지 호주머니에 있을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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