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uanian Language (137) 썸네일형 리스트형 리투아니아어 137_무게 Svoris 가게에서 저울을 쓰는 사람들은 일년마다 담당업체에 가서 이 저울이 정확함을 검증하는 문서를 갱신해야 한다. 그 증명서만 따로 확인하려 오는 경우는 없지만 무슨 문제가 생겨서 기관에서 조사를 나오면 깐깐한 담당직원인 경우 그런 문서까지 다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한번 정도 저런 증명서를 갖춰놓으면 때맞춰서 갱신하라고 연락이 오니 결국 매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 연중행사들을 몇 가지 처리하고 나면 어느새 일 년이 가버리곤 했다. 9월이면 한국에서도 공인인증서를 갱신하라는 연락이 온다. 완료 40일 전에 오고 36일 전에 오고 16일 전에 온다. 그걸 놓쳐서 내가 갱신하지 못하는 것이 불상사라고 나 대신 염려해주지 않으면 좋을 텐데. 차라리 이렇게 질척거리지 않고 딱 한 번, 하루 전에만 오면.. 리투아니아어 136_올리브 Alyvuogės 이탈리아 도시 루카에 관한 짧은 기사를 읽다가 떠오른 장면 하나. 루카는 아마 피렌체에서 당일치기로 피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렀었다. 이 가게에서 점심용으로 술 한 병과 포카치아, 치즈 등 주전부리를 샀지만 정작 올리브는 사지 않았다. 아마 이 장면만으로도 충분했다 생각했나 보다. '올리브가 세 알 밖에 없으면 예쁜 접시에 담아먹으면 된다' 좋아하는 터키 영화에 나오는 대사인데 극 중 부유한 극작가가 가난한 세입자의 지저분한 집을 보고 내뱉은 말이라 앞뒤 정황을 생각해 보면 좀 도도하고 재수 없게도 느껴지지만 어쨌든 이 대사가 참 좋았다. 올리브를 먹을 때마다 떠올리고 간혹 인용하게 된다. 작가가 생각해 낸 말일 수도 있지만 왠지 중동지역의 격언이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터키 사람을 만나면 꼭 물어.. 리투아니아어 135_우정 Draugystė 휴양지에서 만난 티셔츠 한 장. 저 흑백 프린트된 남성을 보자마자 혼신의 힘을 다해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발뺌하다 결국 이실직고하는 어느 보통 사람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리투아니아 사람이라면 알 만한 꽤 유명한 장면인데. 그런 것들의 생리가 늘 그렇듯 일부 아는 사람들이 남들도 모두 다 알 거라고 생각하며 끈질기게 끼리끼리 회자하는 힘으로 인해 또다시 살아남는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1979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음주 운전자를 인터뷰한 장면인데 나에겐 일종의 음주와 우정의 질긴 밈처럼 각인됐다. 누구와 마셨냐고 물으니 친구라곤 없다며 혼자 다 짊어지고 가는 사람의 웃픈 모습 때문에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회자된다. 한국어의 특성상 단어들을 연결 지을만한 일말의 의미라도 있을.. 리투아니아어 134_고등어 Skumbrė 오른편으로는 라트비아, 멀리 바다 건너 스웨덴.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뜬금없이 모터를 단 배 한 척이 나타나더니 배를 댈 만한 아무런 명분도 준비하지 못한, 공들여 쌓아 놓은 던전과 감시탑이 있을 뿐인 모래사장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너무 요란해서 도리어 위협적이지 않은 모터소리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내려서 갑자기 총질을 할 것 같은 이상한 기운을 내뿜는다. 지방 유지의 아이들이 치기 어린 뱃놀이를 한다고 하기에는 허름한 배 한 척, 크레용으로 그려놓은 듯한 리투아니아 국기가 녹슨 뱃머리에서 펄럭이고 배안에는 한사코 안 가져가겠다는 아들들을 나무라며 엄마들이 던져놓은 듯한 구명조끼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팔고자 하는 이들은 그 흔한 호객의 단어 하나조차 내뱉지 않았지만 헐벗은 몇몇 사람들이 장지갑.. 리투아니아어 133_파인애플 Ananasas 얼마 전에 빌니우스의 외국인 커뮤니티에 재밌는 글이 올라왔다. 유럽의 그토록 많은 언어에서 파인애플을 Ananas라고 하는데 이미 -as로 끝나는 이 친절한 외래어에 리투아니아어는 굳이 왜 또 남성어미인 -as를 붙이냐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그의 고충을 이해한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이름이 가령 제임사스 스카르스가르다스 - 구텐베르가스처럼 불리는 것에 큰 염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나나스'라고 해도 다 알아들을 파인애플이 '아나나사스'가 되는것은 격변화를 위해선 사실 불가피한 일이다. 파인애플 쥬스 Ananasų sultys 라는 단어를 예로 들면, 남성 어미 -as를 붙이지 않고 외래어인 ananas에서 변형을 하면 s가 무참히 떨어져나가면서 Ananų sultys가 된다. 아나나수 대신 아나누가.. 리투아니아어 132_ Dar po vieną 한잔만 더 이른 아침 길에서 스티커를 주웠다. 우리 동네에 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여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자그마한 술집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입구 맞은편에 바가 있고 테이블이 전반적으로 높아서 의자에 앉지도 서지도 않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술집인데 공교롭게도 스티커는 그 술 집 앞에 있었다. 아직 스티커의 찐득한 점성이 남아있는 틈을 타서 좋아하는 책에 잽싸게 붙였다. 남자는 헌정되었다. 잘 어울린다. Dar po vieną ir į darbą 한잔(씩)만 더 마시고 일하러 가자. 낮술을 마시고 저녁에 일하러 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예 근무 중에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밤새 술을 마시고 바로 직장을 향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때 이 문장은 가장 애잔하게 와닿는다. 마치 숙어 같다.. 리투아니아어 131_끝 Pabaiga 아주 오래된 이란 영화 한 편을 봤는데 저 글자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캡처했다. 영화가 좋았기 때문에 저 끝이라는 단어가 더없이 강렬했던 거겠지만. 페르시아어도 아랍글자를 쓴다고는 하는데 언어 자체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이란 영화가 있다. 수용소에 끌려가는 유태인 남자가 처형 직전에 페르시아 사람이라고 속이고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마침 수용소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독일 장교가 있다. 남자는 하루하루 고된 노동이 끝나면 독일인과의 페르시아어 수업에서 또 한 번의 살얼음판을 걷는다. 매일매일 자기도 모르는 거짓 페르시아어 단어를 생각해 내야 하고 외워야 하는 단어수는 늘어만 간다. 전쟁이 끝나면 페르시아에 갈 꿈에 부풀어 있는 독일인의 학구열은 또 엄청나다. 근데 그 유태인은 페르시아계 부모랑.. 리투아니아어 130_처남 매형 형부 Svainis(Švogeris) 간혹 리투아니아 친구들이 '형부'가 될 사람이나 '시동생'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나는 그런 친척 호칭들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 대충 '그래서 너의 그 '블루베리'랑 '모과'가 어쨌다고?' 라며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그러니깐 형부, 처남, 매형,동서,제부 등등을 뜻하는 슈보게리스(Švogeris)와 스바이니스(Svainis)를 각각 블루베리를 뜻하는 쉴라우아게스(Šilauogės)와 모과를 뜻하는 스바라이니스(Svarainis)로 바꿔서 쓴 것인데. 친구들은 전혀 상관없는 단어를 연결 짓는 외국인을 웃기다고 쳐다보면서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듣다가 그 단어들이 은근히 비슷함을 깨닫고 어느새 자기들도 즐겨서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딱히 험담을 한건 아니지만 마치 담임 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르는 느낌이랑 .. 이전 1 2 3 4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