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편으로는 라트비아, 멀리 바다 건너 스웨덴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뜬금없이 모터를 단 보트 한 척이 나타나더니 배를 댈 만한 아무런 명분도 없는, 공들여 쌓아 놓은 던전과 감시탑이 있을 뿐인 모래사장을 향해 다가왔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내려서 갑자기 총질을 할 것 같은 이상한 포스를 내뿜는다.

다수의 배를 거느린 지방 유지의 아이들이 치기 어린 뱃놀이를 한다고 하기에는 허름한 배 한 척, 크레용으로 그려놓은 듯한 리투아니아 국기가 녹슨 뱃머리에서 펄럭이고 배안에는 한사코 안 가져가겠다는 아들들을 나무라며 엄마들이 던져놓은 듯한 구명조끼가 손질하지 못한 그물처럼 겹겹이 쌓여있다.
팔고자 하는 이들은 그 흔한 단어 하나조차 내뱉지 않았지만 헐벗은 몇몇 사람들은 장지갑을 들고 모여든다. 분홍색 봉지에 훈연한 생선 몇 마리를 주섬주섬 넣어주고 이들은 미련 없이 배를 돌렸다. 딱 세 마리만 팔고 돌아가자고 입을 맞춘 듯이.

발트해 연안의 휴양 도시 어디를 가든 생선 훈연하는 냄새가 난다. 아주 오래전, 우리들이 빌니우스의 술집에 모여있을 때 바다에 갔던 친구들이 이 생선을 들고 왔었다. 우리는 맛있게 헤쳐먹고 손을 씻으러 갔다.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뜨겁게 훈연한 고등어 한 마리는 일종의 의식처럼 현지에서 사먹는다. 떠나는 날에는 친구를 위한 한 마리를 주섬주섬 챙긴다.
서울에서 그래도 생선중에 가장 자주 먹었던 게 자반고등어였는데 생선 껍질에 엉겨 붙어있는 갈색 부분을 거침없이 먹는 아빠는 늘 어른이었고 나는 밥만큼 하얀 부분이나 바삭한 부분만 골라 먹곤 했는데 이곳의 훈제 생선은 따뜻한 밥이 생각날 만큼 맛있다.

여기 사람들은 실온에 놔둔 버터를 두껍게 바른 빵에 생선을 얹어 먹는다. 그것도 꽤 먹을만하다. 단, 바로 먹어야 하는 온훈법 고등어 Karštai rūkyta skumbrė여야 한다. 차갑게 훈연한 고등어는 Šaltai rūkyta skumbrė는 상대적으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지만 조직이 두껍고 짜서 그 맛이 좀 맹렬하다.
루시드 폴의 애잔한 감성 고등어를 떠올리기엔 이 훈제 고등어들을 둘러싸고 퍼져나가는 노래들은 언제가 양양 하조대에서 울려 퍼지던 가요처럼 촌스럽게 휘청거린다. 그리고 고등어는 이상하리만치 서늘한 7월, 오후 10시 일몰 후에 보란 듯이 입수하는 차가운 바다보다 더 바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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