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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Le passe (2013)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여섯 번째 작품. 이 영화는 <A Seperation>  https://ashland.tistory.com/m/559042 으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감독이 이란을 벗어나 해외자본으로 만든 첫 영화이다. 이란 남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파리가 배경이고 인물들 모두 프랑스어를 했다.

아스가르 파르하디는 망명을 하진 않았지만 현재 이란에선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미국에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마치 이란에선 딸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이혼까지 감행하며 미국으로 가려했던 <A Seperation>의  씨민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사실 이 감독은 최근 작품에서 표절 시비에 휘말려서 이란 본토에서의 입지가 좁아진 상태인데 검열에 대항해서 해외로 나가고 있는 이란 감독이 이미  많기 때문에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해외 활동도 표현의 자유와 이슬람 여성 해방과 관련된 감독의 정치적 입장처럼  해석되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영화에서 여성이 머리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하는 정부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배경은 비록 이란을 벗어났지만 습관적으로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다른 영화들과의 연결고리를 찾게 된다. 엄마에게 반항적인 청소년 딸이 나오는 걸 보고, 어쩌면 결국 이혼을 하고 딸을 데리고 이란을 떠나 외국에 정착한 씨민을 찾아오는 나데르의 이야기가 이어지나 싶었는데  한편으론 독일여성과 이혼을 하고 이란으로 돌아와서 동창들과 야유회를 가던 <About Elly> https://ashland.tistory.com/m/559041 속 아흐마드의 인생극장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주인공 이름도 똑같다.

물론 그 속편이라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지만 그가 다시 독일로 돌아가서 전 부인을 만나는 상황, 그로부터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좀 더 몰입할 수 있다. 이들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는 것, 왜 이혼을 했냐는 엘리의 물음에 '쓰디 쓴 결말이 끝나지 않는 씁쓸함보다는 낫다.'는 아흐마드의 말이 전작에서 미묘한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말을 제외하곤 아흐마드의 이혼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감독이 후속작을 위해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  상상해 본다.




영화는 이란 남성 아흐마드(Ali mosaffa)가 전부인 프랑스인 마리(Berenice bejo)를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마리는 딸 둘을 기르고 있는데 아흐마드와 낳은 아이들이 아니라 아흐마드와 결혼하기 전의 전남편과 낳은 자식이다. 이들 사이에 남자아이 한 명이 더 등장한다. 바로 아흐마드와 이혼을 하면 마리가 결혼하고자 하는 또 다른 남자의 아들이다.

아흐마드는 이런 사실들을 파리에 와서 알게되고 따로 호텔을 예약하지 않아 그들의 추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집에서 낯선 사내아이와 이층침대를 나눠 쓰게 된다. 4년 만에 만난 아흐마드와 마리는 어제 싸운 사람들처럼 오늘도 싸운다. 이들에게 과거는 오늘의 논쟁을 위한 복선일 뿐이고 현재는 내일의 싸움에 대비한 논거를 수집하는 과정일 뿐이다.

계속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또 결혼을 하려는 엄마를 사춘기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새로운 엄마의 남자들을 알게 되고 또 똑같은 갈등 속에 내던져지는 게 지겹다. 이들이 사는 기차역 근처의 집은 비슷한 배경의 집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나왔던 일련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원한다면 모든 갈등에서 벗어나서 어딘가로 떠나서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불분명한 희망을 갖게 하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건강한 새 출발이라기보다는 불안한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딸은 아빠를 찾아가겠다며 벨기에로 떠나겠다 말한다.
 



마리와 결혼하려는 사미르(Tahar Rahim)의 아내는 자살 시도로 인해 의식불명 상태이다. 어린 아들은 이미 엄마가 감행한 불행과 부모의 갈등을 목격했고 옮겨 온 집에서도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사미르와 마리의 곁을 지킨다. 그런 상황에서 모르는 남자 아흐마드까지 등장하고 그와 침대를 나눠 써야 한다. 사미르와 마리는 여인이 자살을 시도한 과정에서 그들의 만남이 모종의 영향을 끼친 것인지를 밝혀내는 데에 불필요하고 부정한 에너지를 쏟는다. 그 과정에서 아스가르 파르히디가 즐겨 쓰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몰랐던 진실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긴 하지만 이 번 영화에서는 그 힘이 좀 약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사미르는 마리와 끝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엎어진 물에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익숙한 향기를 맡으면 의식을 확인할 수도 있다는 소리에 사미르는 아내의 향수를 들고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향수도 가져간다. 



프랑스어 원제 Le passe는 과거라는 뜻이란다. 이들의 현재를 보여주지만 이들 모두는 여전히 과거의 관계에 머물러있다. 어디까지를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이 일정 부분 실패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과거로 되돌아가고 그 실패에 연루되지 않았던 현실의 사람들조차 다시 그 만회의 늪에 빨려 들어간다. 이상은 이상일뿐이고 그것은 현실과는 어떤 수로도 양립할 수 없지만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서 끊임없이 현실에 세워놓고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현실에서 결코 조금도 바뀌지 않은 이상에 닿으려는 노력에 몰두한다.
 
테헤란의 모습이나 이란의 생활 풍습, 음식 이런 것들을 보는 재미는 덜했지만 이란인 아흐마드가 제대로 된 사브지는 한번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아이들과 장을 봐서 요리해 먹이는 장면은 조금은 뭉클했다. 마리가 그 음식을 익숙하게 먹는 장면은 그들의 행복했던 한때를 떠올리게 한다. 순간 파리 5구에서 이슬람 사원을 지나 아랍 인스티튜트에 가던 길에 있던 바그다드 카페가 생각났다. 간판에 티살롱이라고 적혀있던 그곳은 어쩌면 중동사람들이 모여 작은 찻잔을 들어 올리고 각설탕을 입으로 가져가는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그곳엔  떠나온 저곳에서의 삶과 이곳의 삶에서 얻은 땀방울들이 뒤엉켜 고여 꾸덕해진 쓸쓸한 냄새로 가득할 거다.
 
치매로 나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지키려 하는 나데르에게 씨민은 널 알아보지도 못하는 아버지라고 매몰차게 몰아세운다. 하지만 내가 우리 아버지를 알아본다는 나데르의 한 마디가 아직 명치끝에서 울린다. 자살 시도로 의식조차 없는 부인이지만 그와 함께했던 과거의 인생은 그것이 비록 실패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직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이끌고 이들은 계속 과거로 돌아간다.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해서가 아닐까. 우리가 필요이상으로 이타적일 필요는 없지만 어떤 한 사람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일 때가 많고 모두를 위해서라는 말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일 때가 많다. 여러 번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새로운 결혼이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또 다른 시도가 될때 그 주인공들은 점점 더 정확한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 다시 한번 어떤 선택에 스스로를 내던지지만 결국 남는 것은 영문도 모른채 그 전쟁에 휘말려 들어가선 패잔병이 되어가는 조연들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경우 사랑은 전쟁인 것이 맞다. 결국 실패에 이르렀다고 시인하는 순간에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뒤늦은 변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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