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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10 기생충 (2019)
  2. 2020.01.05 Once upon a time...in hollywood (2019)
  3. 2019.12.15 Virgin mountain (2015)
  4. 2019.12.12 Stockholm (2018)
  5. 2019.12.04 Arctic (2018)
Film2020. 1. 10. 05:52

 

 

 

이 영화도 거의 3시간 가까이나 돼서 더럭 겁이 났지만 너무나 재밌다는 가장 강력한 스포일러를 지닌 채 기대를 너무 많이 하면 실망할까 봐 최대한 자중했던 그 노력이 불필요했다 느낄 만큼 좋은 영화이기를 기대하면서 보았다. 이것은 확실히 너무나 잘 만든 영화임이 분명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봉준호 최고 영화가 마더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마 괴물을 기점으로 더없이 확장된 봉준호 영화의 스케일과 누구라도 공감할만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 냉소적 유머를 가미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그의 영화가 이제는 내 개인적 추억과 애정을 가지고 대하기엔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인공적인 웃음을 뺀 마더 특유의 일관된 긴장감과 분위기가 결국 그의 연출에 있어서는 가장 오리지널 했다고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전히 김혜자의 춤추는 모습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물론 마더와 같은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탈 순 없었을 것이고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이만큼 어필할 순 없었을 거다. 하지만 기생충에서 가장 흡입력 있고 영화적 매력이 극대화된 중반 부분 (과외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좁고 궁색한 동네 골목을 빠져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해서 깔끔하고 폐쇄적인 부자 동네를 올라가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가족이 부촌에서 탈출하여 빗속을 뚫고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시궁창이 되어버린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까지)을 지배하고 있는 서스펜스는 결국 이미 마더를 통해 보여준 그의 도발적이고도 탄탄한 연출력이 확장된 절정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끊어버릴 수 없는 수직의 사슬로 촘촘하게 직조된 사회와 그것의 최상위 포식자로 위치한 상류 사회에 대한 이물감은 버닝이나 하녀와 같은 영화에서도 다뤄졌다. 그 영화 속의 인물들 역시 그 뿌리 깊은 계층간 모순의 희생양이 되며 결국은 몰락한다. 이 영화는 비슷한 상황을 좀 더 대중적이고 유쾌한 화법으로 풀어낸다. 결론이 좀 달랐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은 아마 만약 내가 이 영화에 실망을 한다면 어떤 식으로 실망할지에 조금 초점을 맞추고 봤기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왕 피를 본 김에 좀 더 하드고어로 갔어도 좋았을 거다. 가령 모든 사건의 발생 이후에도 저택의 지하실에 남아 연명하는 송강호가 화장실 변기를 얼마간 응시할 땐 지하실 속에서 썩어가는 가정부의 시체를 토막 내서 변기 속에 조금씩 내려보내다 미처 내려가지 못하고 떠오른 살점을 응시하는 것이라 순간 상상했는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당에 손수 잘 묻어줬다고 봉준호 영화 속의 송강호 특유의 톤으로 얘기하는 부분은 나로서는 끝까지 조금 더 웃픈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던 불필요한 노력이었다고 느껴졌다. 코엔 형제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했던 자잘한 블랙 유머들을 봤을 땐 좀 더 마음껏 자조하고 비웃으며 끝까지 끈덕지게 빌붙는 식의 극한의 블랙 코미디였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누가 어떤 특정 장르에 좀 더 집착하느냐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아쉬움 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초반의 가장 강력한 복선은 아마도 뜬금없이 과외 선생님을 케빈이라고 칭하는 포복절도할 순간 인디언 복장을 한 아들이 활을 쏘며 등장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에서 이미 이 영화의 참극은 예상됐다. 감독과 몇 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한 틸다 스윈튼이 출연했던 케빈에 대하여에서 그녀의 아들 케빈은 정원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을 죽이고 학교 강당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무차별적으로 활을 쏘아 죽인다. 거실에 걸어놓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의 그림이 결국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라는 짝퉁 미술 치료 교사의 말에 벌벌떠는 부자 엄마에 대한 냉소적 묘사는 어딘가에서 차용해 온 소재도 뒤틀어서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감독의 능력임이 분명하다. 핸드폰 케이스에 적힌 회사의 이름이 잘 손질한 심플한 명함 위의 회사로 재탄생하고 그 명함 한 장에 솔깃한 표정을 흘리는 사장의 모습에서는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누구의 명함이 더 잘빠졌는지로 설전을 벌이는 속물들 속에서 절망감에 빠지는 크리스천 베일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라서 재밌었다. 많은 인상적인 장면들 중에도 잊히지 않는 것은 8분 안에 짜파구리를 끓여야 하는데 한우를 썰어 넣는 장면. 하수구를 배회하는 쥐새끼들처럼 먼발치에서 클로즈업된 계단을 정신없이 내려가는 가족들의 모습과 벼름박에 일관적으로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에게 물을 뿌리는 장면이 슬로모션 처리된 부분이었다. 심지어 이 장면은 아름답기조차 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미장센이 떠오를 만큼. 

그리고 어쩌면 가장 행복했던 그때, 마치 두고두고 되돌려 보고 멈춰서 보고 늦춰서 보고 싶을만큼 웃음이 남아있던 그 순간, 오줌을 싸는 그 나쁜 놈을 향해 그 거대한 수석을 들고나가 길바닥에 박살 내어버렸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욕망이라는 것은 무언가가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찰나의 순간 눈과 귀를 가리고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른다. 온 동네를 전부 집어삼키는 폭우 속에서도 보란 듯이 떠오르고 까마득히 보이지 않는 곳에 꽁꽁 숨어있던 치부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류하며 그 탐욕은 소독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소독약도 결코 박멸할 수 없다. 피땀을 흘려서 번 5천 원과 수를 써서 번 천원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그 만족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5천 원을 향한 노력은 시간 낭비이고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진다. 줘도 못먹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편법이 횡행한다. 그리고 그 모든 혼돈 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누군가는 더 크고 견고한 조각의 빵을 소유한채 군림한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은 왠지 돈을 쉽게 벌었을 것 같다. 과외비에서 지폐 몇 장 빼내지 않아도 그들은 여전히 풍족할 것 같다. 양주 몇 병 빼서 마셔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도 귀뚜라미가 날고뛰는 반지하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을지도 모르는일이다. 비슷한 형편에 놓인 사람들을 머리 굴려 눌러 밟고 간신히 벗어난 어떤 지난한 삶은 결국 어떤 섬유 유연제로도 씻어낼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표식이 되어 자괴감을 증폭시킨다. 누군가의 삶에 어쩔 수 없이 종속되어 있는 삶.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 이 지긋한 삶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잘못 건드린 버튼 하나로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고 마는 삶.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담배연기 속에서 야심 차게 위조한 졸업 증명서 한 장이 영원불멸해 보이는 그 피폐한 삶을 삭제할 수 있었다면. 없어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삶. 있어 보인다라는 말에 얽매여 있는 삶. 그리고 그것에 보란 듯이 속는 삶에 그 사슬은 녹슬지 않고 더 촘촘해진다.

언젠가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 본 홍콩의 야경이 생각났다. 식민지 시절 영국 상류층이 주로 살았다는 온 홍콩이 내려다보이는 그 높은 산까지 오르는 말을 대신할 교통수단으로 설치됐다는 피크 트램. 그 트램을 타기 위한 티켓 오피스로부터 저 아래 내리막길까지 몇 시간에 걸쳐 연결되어 줄어들지 않던 줄. 그 멋진 야경을 가득 채운 높게 증축된 건물들과 그 건물 어딘가에 간신히 사람 한 명 누울 만큼의 작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아마도 더 좌절스러운 것은 욕망하는 것 자체도 사치인 삶, 머리를 써서 기생할 가능성조차 갖지 못한 채 완전히 물에 가라앉아 버린 누군가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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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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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1. 5. 19:36

 

 

영화를 재생하는 순간 러닝타임 2시간 40분을 가리키는데 이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보는데 재미없거나 디카프리오 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그가 연기 자랑하는 영화라면 억울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3시간 가량을 투자한것이 아깝지 않았고 심지어 아주 재밌어서 보람있었다. 포스터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면 그래서 타란티노의 이름을 포착했다면 제목 속의 저 쩜쩜쩜의 뉘앙스를 마음껏 예상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영화를 봤을거다. 오히려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라면 오며가며 길거리에서 저 포스터를 본 것 말고는 이 영화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같다.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어쩌다가 결말까지 알고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엾을 정도이다. 영화관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브루스 윌리스는 귀신이다 라는 외침을 듣고야 만 사람들만큼. 그런데 이 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것은 사실 내용적 반전 이상의 장르적 반적이라고 해야맞다. 뭔가 촌스러운듯해서 남보기 챙피한데 너무 당당해서 멋있고 그래서 되려 세련되었다 느껴지는 옷 잘입는 사람 같은 감독. 타란티노는 늘 그래왔으니깐 잠시 잊고있던 그를 다시 깨달을뿐이다. 저 포스터 자체도 일종의 속임수이다. 제목을 써놓은 방식만 봐도 그렇다. 영화가 으레 이렇게 저렇게 흘러갈거라고 예상하고 넘겨짚는 사람들을 향한 통쾌한 발차기용 영화이기도 하다. 나쁜 녀석들이나 이탈리안 잡 같은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상업영화의 포스터에 디카프리오와 마고 로비가 또 함께라니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같은 장황한 영화려나 하는 예감과 브래드 피트까지 가세하다니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를 데리고 만드는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영화 시작하고 함께 타란티노 영화란 것을 그제야 알고서는 결국 이 모든 과한 조합들의 덕을 보는 것은 결코 배우가 아닌 영화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타란티노의 영화가 그랬듯이. 그 영화의 주연은 그의 연출이지 배우일리가 없을거라는 생각.

 

 이 버전의 포스터는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을 떠올리게한다. 그렇게 날고 기는 배우들이 출연했어도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뿜는다거나 상대 배우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배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배우들이 영화의 스토리와 감독의 연출력에 기분좋게 매몰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그랬다. 볼만한 영화들로 가득한 서른 이후의 디카프리오의 필모그래피와 그의 연기에 그다지 애착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매번 미친듯이 연기하는 그가 그가 연기하는 배역보다 더 부각되곤 했기때문이다. 문득 내가 그의 목소리를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배우라면 대사 한 줄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그만의 목소리와 억양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기때문에.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결국 누군가가 써놓은 대사를 읊는 배우로써의 작은 디카프리오가 보여서 좋았다. 내 눈을 즐겁게해줬던 많은 배우들을 회상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지나 데이비스를 유혹하는 청년과 트루 로맨스에 소파에 꼬부라져있는 정키로 지나치듯 출연했던 30년은 족히 어렸을 시절의 브래드피트와 가진것 없지만 전혀 굴욕적이지 않은 스턴트맨 역할을 맡은 지금의 브래드피트를 보는 순간은 더없이 유쾌했다. 그는 왠지 전혀 변한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트루 로맨스의 각본을 썼던 타란티노가 그 시절의 유명하지 않았던 브래드 피트를 회상하며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떠올려보니 많은 영화에서의 브래드피트는 조연이었을때 더 빛났던것도 같다. 마이클매드슨이나 커트 러셀, 브루스 던 같은 배우를 봤을땐 함께 작업해 온 배우들을 향한 끈끈한 믿음과 타란티노라는 감독을 향한 우정과 충성적인 동지애가 느껴졌다. 에밀 허쉬나 데미안 루이스 같은 배우들은 촬영 현장에 구경을 왔다가 즉석에서 합류한 느낌을 줄 정도로 즉흥적이면서도 자연스럽고 임팩트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잘생긴 베버리힐즈의 아이 중년의 루크페리를 볼수있었던것도 반가웠고 아련했다. 브루스 리를 향한 타란티노식의 오마쥬도 함께이다. 세상의 모든 배우들을 위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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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9. 12. 15. 03:42

 

 

 

 

핑크색으로 쓰인 영화 제목이 전체적으로 차갑고 엄격한 포스터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며 눈에 확 들어왔다. 난 이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가 무슨 현대판 무소르그스키 전기 영화쯤 되려나 생각했다. 레핀이 그린 빨간 코 무소르그스키와 너무 닮지 않았는가. 비록 남자는 술 대신 우유를 들고 비교적 말끔한 차림새에 또렷한 눈빛을 하고 있지만 왠지 무소르그스키의 인생 말미가 떠올라서 서글퍼졌다. 제발 우유를 든 이 남자의 삶은 순탄하기를 바랐다. 이 영화는 공항의 수화물 파트에서 일하는 남자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헤비메탈을 즐겨 듣고 금요일마다 태국 식당에 가서 팟타이를 먹고 전쟁 장면을 재연하는 미니어처들을 섬세하게 손질하며 여가를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우유에 시리얼 말아먹기를 좋아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엄마와 사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남자와 관련된 많은 사실들을 지루하게 열거했고 어떤 사실들은 이 남자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이 남자의 정체성과 성격을 가늠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팩트는 결국 가장 마지막 한 줄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성인이 된 후에도 독립하지 않는 것을 크게 문제시하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나이 들어서도 아직 부모와 산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을 설명해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한 줄이 된다. 그 한 줄의 설명은 마치 무슨 별자리처럼 그 사람의 결점과 습관 같은 것을 완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성급한 일반화를 부추기며 깨기 힘든 선입견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엄마와 사는 남자들은 히치콕의 무덤을 찾아가서 집단 소송이라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그렇게 참기 힘든 사람 아니에요 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그 대열의 선두에는 조커를 앞세우고 말이다.   

 

 

 

 

영화의 원제는 Fusi 이다. 일반 성인 남자의 두세 배는 되는 몸집을 가진 푸시는 집에서 미용일로 소일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사실 위태로워 보일 정도의 거구이긴 하지만 동여맨 꽁지머리 하며 잘 기른 수염에서 보이듯 나름의 원칙과 개성이 있으며 섬세하고 사려 깊음으로 인간적인 매력도 느껴진다. 손재주도 좋아서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믿음직스러운 인물이지만 그의 겉모습으로 인한 첫인상, 더 나아가 그의 모든 행동 거지의 원인이라도 되는듯한 엄마와 산다는 사실 하나가 그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편견을 갖지 않고 푸시를 대하는 사람들은 아랫집에 이사 온 꼬마 여자 아이, 태국 음식점의 태국인 사장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자 등에 불과하며 그들은 어찌 보면 사회적 약자들이다.  

 

 

 

 

푸시는 주방에서 저 용접 고글을 쓰고 뭘하는걸까. 동네 아줌마의 머리를 손질해주다 크림 브륄레의 존재를 알게 된 엄마의 부탁으로 주방을 태울 것 같은 화력의 용접 기구를 직장에서 가져와서는 크림브뤼레를 토치하는 중이다. 가장 재치 있고도 웃픈 장면이었다. 푸시의 엄마는 푸시가 집 밖으로 나가 소통하고 가정을 꾸리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늙은 아들에게 아이처럼 의지한다. 아들은 엄마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 

 

 

 

 

푸시는 엄마의 애인이 선물해준 춤 강습권을 들고 교습소를 찾아가지만 먼 발치에서만 두리번거리다 용기를 못 내고 돌아 나온다. 기습한 눈보라에 집으로 돌아갈 방도를 모르던 여인, 시요픈은 눈보라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푸시의 자동차를 얻어 타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된다. 항상 혼자 가던 태국 식당의 태국인 주인은 여자를 데리고 온 푸시에게 말없이 디저트를 내어준다. 푸시는 예상치 못한 여자의 호의에 순수한 마음에서 삶의 용기를 얻게 된다. 우울증을 앓는 시요픈은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런 그녀를 말없이 보듬으며 푸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기회를 얻는다. 마음을 연 그녀와 그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지만 이런 영화에서 늘 그렇듯 푸시가 결국 상처 받고 말 것 같은 분위기로 영화는 흘러간다. 

 

 

 

 

직장 동료들에게 놀림과 모멸을 당하면서도 그는 평정을 잃지 않는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나에게 왜 이러는지 도통 모르겠다라는 표정 같기도 하고 어쩌면 어쩔 방도를 몰라 그냥 스스로를 관계의 사각지대속에 방치하는지도 모른다. 분노를 표출하거나 자기 방어의 의지조차 표현할 줄 모르는 그에게 주변의 편견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가 실수로 그를 놀리는 직장 동료를 죽이거나 아랫집 여자 아이와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아주다 억울하게 아동학대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보면서 조마조마했다. 수화물을 나르면서 늘 착륙하는 비행기를 보고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는 사람들을 마주치지만 푸시 자신은 정작 자신의 방 안에 놓인 모형 벌판 위에서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벌어진 전투 장면을 재연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여행한다. 가족이 아닌 다른 이와 관계를 맺고 다른 삶으로 나아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는 과감히 모형 벌판을 자르지만 어렵게 낸 그의 용기가 무색하게 시요픈은 결국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푸시의 결함으로 보고 그를 동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삶에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좀 더 시선을 둬야 할 곳은 푸시처럼 사회의 부적응자로 분류되는 그들이 아니라 그런 그들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영화 속에서 소위 정상적인 범주에 속한 어른들 인지도 모른다. 한창 관심이 필요한 아이를 방치하는 무책임한 부모와 푸시의 어눌함을 감싸주지 못하는 동료들 역시 몸만 자란 미성숙한 어른일 뿐이다. 그리고 그 미성숙한 우리가 소수를 변화시키는 것이 다수인 우리가 각성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익숙해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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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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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9. 12. 12. 05:10

스톡홀름의 찻집에서 친척언니가 사다 준 홍차통이 있다. 그래서 부엌에 가면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 스톡홀름의 정경과 매일 마주친다. 여름인가 카페에서 읽은 커피 매거진 속의 스톡홀름의 카페들도 가끔씩 떠올린다. 아마 그래서 이 영화제목이 눈에 들어왔을거다. 하지만 영화를 봐야겠다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에단 호크 때문이었다. 브래드피트와 디카프리오, 조니뎁 혹은 크리스챤 슬레이터가 한창 젊었을때 내가 좋아했던 그 또래의 청춘 스타는 에단 호크였다. 포스터 속의 가발을 쓰고 콧수염을 붙인 저 인물이 과연 에단 호크가 맞는지 재차 확인해야했다. 여전히 많은 작품을 하고 있고 나이든 지금의 모습에 익숙해졌음에도 알아보지 못할 얼굴이었다. 영화를 보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가 심지어 은행 강도 역을 맡았다는것을 알게되었다. 과연 어울릴까? 영화 속에서 은행 강도들은 보통은 주연이다. 아무리 그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제발 은행 직원이 땅바닥을 기어다니다가 경보 장치를 누르지 않기를, 호기로운 은행 고객이 괜히 그들을 제압하겠다고 섣불리 행동하지 않기를, 제발 긴장해서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기를, 주인공은 흥분해서 사람을 죽이는 실수만은 하지말고 필요한 것만 잘 챙겨 유유히 빠져나가서 하바나든 바하마든 어디로든 가서 잘살기를 등등 바라게 된다. 은행 털이에 관한 영화들은 사실 너무나 많아서 그런 장르가 따로 있더라도 놀랍지 않을 정도이다. 영화 전체를 그들의 한탕을 보여주는데 할애하는 완전 은행 털이 영화들이 있고 은행 털이가 주인공들의 수없는 나쁜 짓 중의 하나인 에피소드처럼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내 인생 최초의 비디오 테잎이었던 제라르 드파르디유의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 아마도 가장 매력적인 은행 강도로 남을 킴 베이싱어의 리얼 멕코이,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 기저귀 강도범 니콜라스 케이지가 수줍고도 얼빵하게 들어서는 작은 마을 은행 털이는 또 얼마나 유쾌했었나. 조금 다른 방식의 은행 털이 영화 스파이크 리의 인사이드맨, 그리고 은행 씬부터 시가 총격전까지 숨막히는 리얼타임 액션씬을 보여주는 마이클 만의 히트 등등. 금방 떠오르는 은행 클래식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영화는 그들을 좀체 악랄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오히려 할 수 있는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써의 그들의 삶에 연민을 느끼게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 속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식품 몇개 훔친다고 해서 동네 마트가 망하진 않을거라는게 어린 소년을 도둑질하게 하는 어른의 철학이다. 우리는 주문을 외우는 어린 소년이 슬쩍 한 물건을 들고 무사히 가게밖으로 빠져나가기를 바라지만 이제 나쁜짓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은행 털이들이 돈가방 몇개 채우고 채권을 쓸어담아도 그것은 은행이 망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왜냐면 은행은 생각보다 부자고 영리하니깐. 어쩌면 그런 무의식중의 반감이 이 은행털이들을 미화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영화들에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범죄고 그들은 범죄자일뿐이다. 그러니 우습게도 이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착잡해진다.  

제목과 은행 강도라는 설정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된 스톡홀름의 은행 인질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실제 인질로 잡혀있다 풀려 난 은행 직원들이 범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에 이르렀다는데 그런 강도역에 에단 호크는 그래서 의외로 잘 어울렸다. 미화된 캐릭터인 것을 알면서도 이 영화가 그로 인해 어쩌면 조금은 지적이고 시적인 은행털이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예감했다. 아니나다를까 그들은 좁은 은행 사무실에 바닥에 앉아 밥딜런의 노래를 읊었다. 영화 속의 은행 강도에게 연민과 매력을 느끼다니 결국 세상의 무수한 은행 털이영화 제작에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밑밥이 깔려있는걸까. 인질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라는 결론에 설득력을 심어주려고 했던건지 범인들과 대치하는 경찰과 정부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재수없다. 우리 그냥 돈 좀 챙겨서 유유히 떠나게 해달라는 강도들은 어쩌면 인질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사람들이고 그들과 대치중인 사람들은 오히려 '쟤네 말만 저렇게 하지 설마 죽이진 않을거야'라는 안일한 자세로 절대 손해보지 않겠다는 식으로 행동하니 그 모든 협상을 지켜보고 있던 인질들은 당연히 범인들에게 감화될 수 밖에 없었을거다. 만약에 인질로 잡혀있는 내가 비정규직 직원이었거나 이미 정리해고통보를 받았다거나 마음에 안드는 상사밑에서 하루하루 고통속에서 일하는 중이었다면 망할놈의 직장 될대로 되버리라지라는 을의 심정이 되어 은행을 털겠다고 들어 온 철딱서니 없는 도둑에게 혹시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는게 아닐까? 영화가 얼마나 실제에 근거했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것이 영화를 위한 과장된 허구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실제 인질이었던 여자는 명예훼손으로 영화 제작사에 소송을 걸고도 남을 일이다. 누미 라파스가 연기한 인질과 에단 호크 사이에 오고가는 감정은 단지 범인에게 비합리적으로 동화되는 인질의 감정으로만은 볼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한 배를 타게 된 이들은 여자는 여자대로 강도는 강도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목숨이 담보로 잡힌 인질의 약자로써의 일방적인 동화라기 보다는 동시에 위기에 직면한 이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 상태로 보아야하지 않을까. 인질로 잡힌 누미 라파스는 은행으로 불려온 남편에게 냉장고에 있는 청어를 기한내에 어떻게 먹어야되는지 침착하게 설명해준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가장 잘 살린 부분이지만 실제 그런 상황에서 냉장고속의 청어가 생각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여자가 순간적인 쇼크로 죽음에 초연해진 것인지 많은 것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려놨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안부만 묻는 아내에게 남편은 서운한 기색을 비친다. 강도에게 우호적이 되어가는 그녀의 행동이 조금은 남편과의 밋밋해진 관계탓일지도 모른다는 설정을 집어넣은 것도 같다. 이들에게 본능적으로 이성간의 감정이 싹튼것인지 가장 강력하게 그들이 심리적으로 결합하는 부분은 협상에 소극적인 경찰을 자극하기 위해 방탄 조끼를 입힌 그녀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다. 여자는 두렵지만 절대 죽지 않을거라는 말에 기꺼이 응한다. 범인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채 결국 감옥에 수감되고 여자는 해변에서 뛰어노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며 범인을 회상한다. 감옥에 갇힌 남자의 일상은 오히려 평범하고 아늑해보인다. 남편과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간 그녀는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뭔가가 그녀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음이 보인다. 한편으로는 슬펐다. 그것이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한없이 일시적이고 현실도피적인 감정에서 기인한것이라면 그것이 말그대로 신드롬에 불과한것이라면 갇혀버려서 자유롭지 못한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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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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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9. 12. 4. 21:51


추운 영화 좋다. 누가 나왔어도 봤겠지만 매즈 미켈슨이 나와서 더욱 기다렸다 봤다. 사실 그가 이 영화에 몹시 잘 어울릴것이라는 예감 자체가 영화의 첫인상이다. 이 배우가 어떤식으로 처절하게 고생하는지 보고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즈음에서 재난 구조 영화 한 편 찍으시면 딱 좋을 것 같은데요' 라는 제안을 받은 매즈 미켈슨이 현장에 도착해서는 산악용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빨간 패딩을 입혀주는 스텝을 향해 팔을 벌린채 몇 문장 안되는 대사를 반복해서 연습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영화 내내 대사없이 누워있는 여배우를 제외하면 유일한 등장인물인 그는 단 한 벌의 의상을 입고(심지어 나중에는 그마저도 손수 불태우며)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짧은 대사를 내뱉으며 북극의 설원을 고독하게 누빈다. 북극에 조난당해서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와 사소한 대화를 주고받을 이렇다할 상대 배우도 없이 혼자서 영화를 끌고 나가야하는 배우. 영화보는 내내 촬영 현장의 유일한 배우로서 수많은 스탭들에 에워싸인 그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내가 영화에 이입된건지 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에 이입한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재난 영화의 문법대로 처절하게 고생하지는 않았다. 그런고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흥미진진함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영화들에 익숙해져서 결국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야 말것이라 생각하며 봤기 때문인지 하루 온 종일 좌절과 희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을 인물의 심리에 철저하게 몰입되었던건지 결국은 시종일관 긴장을 하면서 보았다.

캐스트어웨이나 마션, 그래비티, 문, 127시간,식스빌로우 등등등 기후도 상황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극한 상황,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에 맞서는 고독에 대한 서사,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적극적인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조난 당한 인물의 이야기는 사실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대부분은 조난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복선을 깔아놓는 동시에 그 역경을 감당해내야하는 인물의 성격에 대해 조금 훑어주고 구조된 이후의 이야기로 훈훈하게 끝을 맺고 실화를 토대로 한 경우라면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실존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저런 악몽을 겪은 사람에게 힘겹게 쟁취한 새 삶은 어떤 모습일까 다시금 가늠하게하면서 드라마를 극대화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모든것이 생략되어있다. 북극판 캐스트 어웨이인가 라고 생각하고 싶다가도 주인공이 낯선 상황속에서 적응해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심지어 재미를 느끼고 대리만족을 경험하게하는 생존 에피소드는 턱없이 부족하고 톰 행크스의 배구공 윌슨처럼 조금 오그라들지만 나라도 저런 상황에선 별반 다르지 않았을거야 라고 타협하게 되는 장치들은 더더욱 없다.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다 돌아와서 후배들에게 우주 생존기를 설파하는 맷데이먼처럼 북극에서 송어를 잡아 먹고 살아남은 그의 북극 이후의 삶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물론 제발 저 북극곰과 온 몸으로 맞서서 혈투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길 바랬고 다행히 북극곰에게 그 정도 분량을 주진 않았지만 북극곰 카드는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드라마와 서사를 시도한 흔적은 역력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히려 사색적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을 분명히 보여주지만 희망적인 자세로 현실에 맞서는 것에 이미 피로한 인간의 모습이 나에게는 오히려 더 눈에 들어온다. 하얀 설원을 마주하고 철저하게 혼자임을 인식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은 어떤것일까. 그의 하루는 도대체 얼마나 길었을까. 인간은 정말 저런 상황속에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 정도면 됐어라고 미련없이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결국 살아남는 것이 인간이며 우리는 그토록 강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습된 결과가 아닐까. 영화는 사실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영화 속의 남자가 조난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영화가 <인투더와일드>식으로 끝이난것이라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모든것을 했다는 생각이 목적지에 도착한 그에게 안식과 평온온함 주었을거다. 나에게는 그것이 좀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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