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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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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sommar (2019) 첫 해 리투아니아를 여행했을 때 얼떨결에 경험했던 하지 축제의 강렬함을 기억한다. 북구의 백야까지는 아니었지만 10시가 넘어도 대낮 같은 세상은 생경했고 아름다웠다. 들판의 야생꽃들을 꺾어서 화관을 만들고 하루 온종일 그것을 쓰고 다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스름해지면 작은 초를 켜서 화관 한가운데에 놓고 강에서 흘려보낸다. 어느 해의 하지 축제때는 장작을 높게 쌓아서 태우며 돌림노래 같은 전통 민요를 부르며 강강술래를 하듯 불 주위를 도는 행렬 속에 있었다. 불은 점점 거세지고 아래에 놓인 장작들은 점점 힘을 잃고 스러진다. 그것은 일 년 중 가장 긴 시간을 지상에 남아준 태양과의 작별인사와도 같았다. 강을 따라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알 순 없었지만 가슴이 ..
Graduation (2016) Beyond the hills 을 보고 난 후 운좋게 바로 찾아서 볼 수 있었던 Cristian mungiu 의 2016년도 영화.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라서 그냥 영어로 쓴다. 뭉규? 멍쥬?.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이 편애하는 감독들이 확실히 있는것 같다. 이 영화도 발매되어있다. 사실 이 영화는 그로부터 4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오히려 마치 유명해지기 전 데뷔작처럼 훨씬 젊고 용감하고 거칠다. 무거운 주제를 초반에 휙 던져놓고 영화가 엄격하게 전개될 것이라 예상하게 하면서 막상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미지근한 자세와 그들의 일상적이고도 개인적인 대화를 배치하는 이 감독 특유의 형식은 여전하다. 사람이 죽어서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전화를 쓰려고 돌돌말린 충전기를 느긋하게 펴는 의사와 강간사건 이야기를 하면..
Men and chicken (2015) 뭔가 짜증나는데 자꾸 보게 되는 포스터.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패러디한 그림을 또 퍼즐로 만든 것 같은 느낌. 분명 매즈 미켈슨이라고 써있는데 저 사람이 매즈 미켈슨이라는 건가? 이 배우도 참 가지가지 다양한 영화들을 찍었구나 라는 감탄을 품고 보기 시작하는 영화. 사실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져 헤드 이래 닭들이 등장하려고 폼을 잡는 영화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보는 내내 간당간당했다. 컬트 영화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설득력있고 모범적이며 단순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혁신적이다. 다시 봐도 똑같은 장면에서 또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매즈 미켈슨이 몸개그를 하는, 어찌보면 슬프고도 아름다운 블랙 코미디. 죽은 아버지가 남긴 비디오 테잎을 통해서 생물학적 아버지가 따로 있으며 심지어 엄마도 다르..
Uncut Gems (2019) 세상 모든 영화들은 결국은 어떤식으로든 맞물려있다. 역풍에 똥을 뒤집어 쓰는The lighthouse의 로버트 패틴슨을 보며 그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좋았을 영화, 사프디 형제의 Good time 을 떠올린다. 보는 사람은 말그대로 똥줄이 타는데 그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남의 욕실을 뒤져 발견한 염색약을 뒤집어쓰고 티비를 보는 로버트 패틴슨의 똘끼. 사프디 형제의 특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분명 나보다 젊은 세대만이 만들 수 있을 법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 20년 전 코엔 형제의 영화를 봤을때 만큼의 두근거림, 좋아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만으로 점점 빠져드는, 유행처럼 등장하는 형제 감독들 중 이들만이 단연 코엔의 계승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Good time 이 감각적인 음악과 편집,..
Born to Be Blue (2015) 5분가량으로 짧게 편집된 오스카 시상식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예전만큼 패기 있게 내려가진 않았지만 여전히 반쯤 내려간 바지를 입은 에미넴이 거짓말처럼 스쳐 지나간다. 눈 앞의 오스카는 페이드 아웃되고 공연 전체 영상을 보며 이제는 세상에 없는 브리트니 머피와 함께 한 그의 영화 8마일을 추억하기 시작했다. 나름 베스트 음악상 수상자인 에미넴이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 앞에 선 그의 공손한 공연을 그마저도 거의 졸면서 보고 있는 마틴 스콜세지와 열심히 그루브를 타는 갤 가돗 사이의 세대적 괴리만큼이나 18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 사이의 거리는 8000마일쯤은 되어 보였다. 힙합팬이 아니어도 가슴이 뜨거워졌던 영화, 흑인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힙합씬에 혜성처럼 나타난 말끔한 백인 아이. 오스카..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 매년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전의 12월과 1월은 그해에 개봉된 따끈따끈한 수작들을 의식적으로 챙겨볼 수 있는 신나고 즐거운 시기이다. 게다가 올해는 한국 영화가 본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같이 후보에 오른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는것이 훨씬 더 재밌었다. 후보작들을 구경하다보니 딱 한군데 남우 조연상에 후보를 올린 이 영화가 눈에 띈다. 사실 그냥 '미국인 톰 행크스'가 나오는 휴먼 드라마이겠거니 두시간 멍때리고 보는데 문제 없겠지 싶어서 보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물론 조연상은 브래드 피트가 10번을 타고도 11번을 탈 것이다. 오스카를 이미 두 번이나 거머쥔 톰 행크스이지만 이번엔 그래도 좀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연기였다. 연기 ..
Taxi driver (1976) 그냥 별일 없어도 계속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는데 또 그런 영화들을 꼭 반드시 떠올리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영화들이 있다. 그러니깐 비잉 플린 (https://ashland11.com/877) 을 봤더라면 누구라도 떠올렸을 영화가 바로 택시 드라이버.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조나단 플린이 노란 택시를 몰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누구라도 40년 전의 로버트 드 니로를, 택시 운전기사 트래비스를 떠올렸을 것이다. 40년이 지나 또 다시 어떤 택시 기사를 연기하라고 했을때 배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나단 플린도 트래비스와 마찬가지로 인종주의자에 동성애를 혐오하는 극단적인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결과적으로 그 두 택시 기사는 양립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40년전의 트래비스는 나이가 들 수 없는 캐릭터..
1917 (2019) 이 영화를 한 줄로 줄여 설명하자면 뭐랄까. 정우가 석호필이 되어 혼자서 개고생하는 영화라고 해도 좋겠다. 얼떨결에 동료에게 택일되서 적군의 함정에 빠져 말살되기 직전의 부대를 구하러 가게 된 스코필드를 연기한 이 조지 맥케이라는 배우를 캡틴 판타스틱에서 비고 모텐슨의 큰아들로 나왔을때 처음 봤는데 그때는 몰랐는데 이 영화에서는 전부 다 똑같이 군복을 입은 와중의 뭔가 지극히 평범하고 순수해 보이는 그 외모가 영화 '바람'에 나왔던 한국 배우 정우를 너무 닮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등을 보이고 뛰고 또 뛰며 미션을 수행하는 싱글 플레이어처럼 전장을 누빈다. 공중에서 폭파 된 비행기는 굳이 그의 발 앞에서 추락하고 화염에 불탄 도시에서 총격전을 하며 무사히 빠져나와야 하고 폭포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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